# Study
Ⅰ. 예수를 잡으려는 음모 22:1-6
무교절이 가까운 때에 그리스도를 넘겨주었다(1절)
1. 원수들의 음모(2)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일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마음먹기만 하면 곧 실천할수 있었지만 그들은 백성을 두려워했다.
2. 그들과 결탁한 배신자 가룟 유다(3,4)
가룟 유다는 열둘 중에 하나였다. 그리스도를 매우 잘 아는 열둘 중의 하나가 비열하게 그리스도를 배반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매우 잘 아는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배반하게 되었는지 여기서 말하고 있다. 즉 사단이 들어간 것이다(3절). 그것은 마귀의 소행이었다. 그리스도나 그의 진리나 그의 길을 배반하는 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렇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단이다.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체포하고 싶어하는지를 유다는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자진해서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제안을 했다(4절).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의논을 하고 있다면 분명히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3. 그들 사이에 맺은 협정(5,6)
1)유다는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틀림없이 넘겨주기로 했으며 그들은 그것을 기뻐했다.
2)그 대가로 그들은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했으며 유다는 이를 기뻐했다(5절). 저희가…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 유다는 찾던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그 일을 행할 시간과 장소 즉 무리가 없을때 소동없이 하기로 결정하였다.
Ⅱ. 유월절 만찬 22:7-20
(1)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르자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위한 유월절 만찬이 준비됐다(7절). 예수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셨다(9,10절). 그들은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게 된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그들을 집으로 인도할 것이다.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에 의지하며 한걸음씩 그 섭리의 인도에 따르도록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집주인에게 방을 보여달라고 해야하며(11절), 집주인은 기꺼이 방을 보여줄 것이다(12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미 하신 말씀대로 그들을 인도할 사람과 집과 방을 찾았다(13절). 그들은 완벽하게 유월절 준비를 갖추었다(11절).
(2) 유월절을 엄숙하게 지내셨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셨다. 유다도 빠지지 않았다. 유다는 이미 공공연한 반역죄를 지은터였지만 공개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기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에 나머지 제자들과 같이 앉도록 허락하신다.
1)그리스도께서는 이 유월절을 어떻게 지키게 하셨는가? 내가 고난을 받기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5절). 예수는 이것이 자기가 받을 고난의 서곡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것을 원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 앞장서 주신 그분을 섬기는데 주저하지 말자. 그분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그 사랑을 보라. 예수는 그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원하셨다. 예수와 그 제자들에게는 사적인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예수는 이제 막 제자들을 떠나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고난을 받기전에 그들과 함께 이 유월절 음식먹기를 원하신 것이다. 마치 이로인해 자기의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도록 격려를 받으신것 같다.
2)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유월절을 폐하셨는가?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16절).
①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유월절이 완성되었다.
②유월절이 완성된 복음시대의 성례인 성만찬에서 완성되었다. 그들은 만찬을 먹었으며 그리스도도 그들과 함께 만찬을 잡수셨다고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었던 영적교제 때문이었다.
③그러한 자유로운 축제는 유월절 양을 먹으면서 하신 말씀을 유월절 포도주 즉 축복의 잔 또는 감사의 잔을 드시면서 반복하신다.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17절). 그 다음 성례전의 잔을 마실때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의 피로 세우신 새언약이므로 특별한 주의를 요하게 하려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누어 주신것 같다. 그러나 유월절 잔에 대해서는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18절)고 말씀하신 것으로 충분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16절). 이튿날 죽어가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성취하셨다.
(3) 성만찬의 제정(19,20절). 유월절과 출애굽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며 예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에서 틀림없이 건지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성만찬을 제정한 것이다.
1)우리를 대신해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breaking of christ's body)을 여기서는 떡을 떼는 것(breaking of bread)으로 기념한다. 즉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우리를 위하여 주신 이 떡은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써 주신 것이다. 즉 우리의 죄를 만족시키려고 떼어주셨던 이 떡을 이제는 우리의 영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 떼어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를 행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과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때를 기념한다. 또한 이를 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며 그와 함께 영원한 언약에 참여하기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2)대속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잔에 담긴 포도주로 표현하였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언약을 확보한 사실을 기념하여 그 언약의 약속을 확증한다.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는 모든 의식을 통하여 그것이 우리를 위하여 붓는 것임에 주목하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분"
Ⅲ.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 22:21-38
여기서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가 나온다. 이 설교의 대부분은 독특한 것이며 요한복음에는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자기를 배신할 자에 대해서 하신 말씀(21,23)
(1)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배신자가 지금 그들가운데 있으며 그들 중의 하나라고 암시하신다(21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이 성만찬 이전에 나오지만 여기서는 성만찬 이후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유다가 성만찬에 참석했으며 떡과 잔을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한것 같다. 즉 그 엄숙한 의식이 끝난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라고 말씀하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 음모가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대로 거거니와(22절).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에 따라 원수들에게 넘겨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강제로 고난당하신 것이 아니라 기꺼이 고난을 받으셨다.
(3) 그리스도께서는 배신자를 저주하신다.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23절).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께서 배신당하도록 작정하셨으며 또 그리스도 자신이 그 작정에 기꺼이 복종하신 것이지만 유다의 죄나 심판은 결코 가볍지않다.
(4) 그리스도께서 그 배신자가 그들 중의 한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제자들은 놀라서 서로 의심하게 되었다.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23절).
2. 제자들의 분쟁(24-20)
1)어떠한 이유로 다툼이 일어났는가를 보라.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난지라(24절). 앞에서 한 말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앞에서는 누가 배신자가 될 것인가를 묻고있었는데 여기서는 누가 제 일인자가 되야할 것인가를 묻는다. 인간의 사악한 마음이 얼마나 모순되는가!
2)이 분쟁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보라.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날카롭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그런 다툼이 얼마나 큰 죄이며 어리석은 일인가를 부드럽게 깨우쳐주셨다.
①이런 다툼으로 인해 제자들은 이방인의 임금같은 자가 되었다(25절). 이방인의 임금들은 백성을 주관한다. 주관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에게보다는 이방 임금들에게 적합한 일이다. 집권자들은 은인이라는 칭함을 받는다. 집권자 자신이 그렇게 부르며 아첨하는 사람들도 또한 그렇게 불러준다. 사실은 그들이 아무리 자신을 위해 일한다하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한다. 프톨레미 왕조 중의 한사람은 "은인"이라는 성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주목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넌지시 가르치신다.
첫째, 선을 행하는 것이 큰 자처럼 보이는 것보다 훨씬 귀하다. 그들 스스로 말한바와 같이 나라의 은인이 통치자보다 훨씬 존경을 받는다.
둘째, 선을 행하는 것이 큰 자가 되는 확실한 길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가장 존귀한 일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는 것임을 믿게하셨다. 은인이라는 더 큰 명예를 가진다고 하면 집권자라는 하찮은 명예는 버려야한다.
②이런 다툼으로 보아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지 아니함을 알수 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26,27절).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지않고 진리와 은혜의 능력외의 방법으로 누구를 주관하려고 생각지 말라."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주신 원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을지니라." 나이나 명예는 안락함을 보장하는 대신 두갑절 수고하라고 채찍질 한다.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런 원리의 본보기를 들어주신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27절).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섬기는 자세를 취하셨도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을 보라.
③제자들은 세상의 영예를 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게는 제자들을 위해 예비해두신 더 귀한 영예가 있는데 제자들 모두 그것을 함께 누리게될 것이기 때문이다(28-30절).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28절). 너희는 내 곁에 서서 나에게 충성을 다한 자들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있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같이 했다. 제자들이 결코 그리스도께 도움이 될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함께있었던 것을 고맙게 여기셨으며 그들의 친절을 인정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부족한 점이 많았었다. 그들에게서 많은 실수와 연약함을 발견할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생께서는 그 모든 실수들을 다 눈감아 주신다. "너희는 나와 함께한 자들이다." 헤어지면서 이렇게 그들을 칭찬하심으로써 자기와 같이 마음이 바른 자들을 얼마나 만족해 하시는지를 보여주신다.
㉡제자들의 충성에 대한 보상을 계획하셨다. "너희에게 나라를 맡기리라."
첫째, 이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해하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사람들 중에 있는 나라 즉 복음교회를 맡기셨다. 이 나라를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복음 사역의 후계자들에게 맡기셨다.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 예비해 놓은 영광이다.
둘째, 저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라를 주실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나라에 있어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될 것이다(16,18절).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고와 고난의 대가로 얻으신 기쁨을 같이 누리게될 것이다. 최고의 영광은 "내 보좌에 함께 앉게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계 3:21).
3. 그리스도를 부인할 베드로(31-34)
1)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 대한 마귀의 궤휼을 예고해 주신다. 시몬이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31절). 한때는 나머지 사도들을 대신해서 그리스도께 말하는 입이었던 베드로가 여기서는 나머지 사도들을 대신해서 듣는 귀가 된다. 제자들 모두에게 경고하실 말씀(나로 인하여 너희 모두가 배척을 받으리라)을 특별히 사단의 공격을 받은 베드로에게 직접하신다. 사단이 너희를 청구하였으나(31절). "그들을 시험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특히 베드로를 시험하게 해주십시요"라고 사단은 간청한다. 사단은 그들을 까불러서 그들이 밀이 아니라 겨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그들을 청구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사단은 그들을 시험할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말을 한 것이다. "사단은 너희가 특히 너희의 선두주자인 베드로가 위선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너희에게 도전해 왔다."
2)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특히 격려하셨다. "가장 맹렬한 공격을 받게될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노라." 참신자들의 믿음에도 실수가 많이 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선 안된다. 제자들의 믿음이 때로는 비참할 정도로 흔들리지만 아주 쓰러지지 않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께서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기도가 그들을 붙잡고 계신다.
3)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다른 형제들을 도우라고 부탁하신다. "너는 돌이킨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알게되면 다른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도록 힘쓰라. 함께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되거든 다른 형제들을 격려해 주어서 그들도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하라." 죄를 지은 자들이지만 분명히 죄에서 돌이킬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돌이킨 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형제들을 굳게하며 넘어지지 않게해야 한다(참조 시 51:11-13).
4)베드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와 함께있겠다는 결심을 말한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33절). 이 말은 참으로 대단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때 베드로는 그것을 꼭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제자들은 누구라도 그가 어디를 가시든지 그를 따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5)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세번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34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더 우리의 약한 것과 그리스도께서 은혜롭게 등장하셔야할 것을 잘 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다행한 일이다.
4. 제자들의 형편(35-38)
1)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과거의 형편에 대해서 물으신다(35절). 그리스도는 전에 제자들이 자기에게 매우 충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셨다(28절). "내가 너희에게 전대없이 보내었을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는 자기가 전에 제자들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내보내셨다는 것을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같이 아무것도 없이 세상으로 내보내신다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자들도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없었나이다(35절). 가끔씩 하나님의 섭리를 뒤돌아보며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리스도는 선하신 주인이시며 그의 보살핌에는 부족함이 없다. 때로 그의 종들은 빈 손으로 내보내신 다음 그들을 도와주신다. 우리가 아무리 간신히 먹고산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사는데 필요한만큼만 있다면 여유를 갖도록 하자.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2)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곧 상황이 바뀔 것임을 경고하신다. 그들의 주님이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예언하신바와 같이 이제는 고난을 받으실때가 된 것이다(37절). "기록된바대로 내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이 일이 이루어지리라. 그래서 나에 관한 일이 끝이 아니라. 그때 나는 다 이루었다고 말하게 되리라." 고난받을 것을 미리 예언함으로써 고난받으실때 위로가 된것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고난받을때도 그것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들은 끝을 맺게될 것이며 영원한 유종의 미를 거두게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어느 정도 그들의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게된다. 그리고 주님이 가시고 없을때 그들은 주님과 같은 고통을 받게될 각오를 해야한다. 그들은 이제 친구들이 과거에 그랬던것 같이 친절을 베풀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제는 전대를 가져야 한다. 적들이 전보다 더 사나워질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식량뿐만 아니라 무기도 필요하다. 검이 없는 자는 검의 필요를 절감하게 될 것이며 겉옷을 팔아 검을 샀으면 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령의 검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무장해야할 무기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으신것 같이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경건히 복종함으로써 갑옷을 삼자. 그러면 겉옷을 팔아 검을 산 것보다는 더 안전하게 준비할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듣자 제자들은 그들에게 어떤 무기가 있는가 찾아본다. 그리고는 검 둘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38절). 그중 하나는 베드로의 검이었다. '족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검에 의지하라는 부탁이 아니심을 시사하신다. 검보다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도움이 되시며 영광의 칼이 되어주기를 부탁해야 하는 자들에게 검 둘은 족한 것이다.
Ⅳ. 감람산의 고뇌 22:39-46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동산에서 괴로워하시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어둠의 세력이 주관하는 과정속으로 들어가셨으며 결국은 그것을 정복하신다.
1. 다른 복음서와 공통된 내용(39-46)
(1) 그리스도께서 나가셨을때 제자들도 따라 나갔다. 그리스도께서 시험받으실때도 아직까지 그와 함께했던 그들이므로 지금도 그를 떠나려하지 않았다.
(2) 그리스도께서는 혼자계시기 위해 늘 가셨던 곳으로 가셨다. 그리스도께서 가끔 혼자계셨던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3) 아무리 피할수 없는 시험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것때문에 시험에 들어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권면하신다.
(4)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혼자서 기도하셨다. 그는 돌 던질만큼 떨어져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서는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했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하고 기도했다.
(5)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고난을 받아 죽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알았기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간구한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소서 인간적인 내 생각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6)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내내 기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잠들어 있었다(45절). 기도하신후 일어나셔서 제자들이 잠든 것을 보셨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일인데 여기서는 제자들이 잠든 것을 아주 선의로 해석하고 있다. 즉 슬픔으로 인하여 잠이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형제들의 약점을 덮어주도록 가르친다. 만약 더좋은 이유가 있다면 형제들의 약점을 그것으로 자비롭게 덮어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7) 제자들을 깨우시고 나서는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자느냐 일어나 기도하라(46절). 일어나 기도하라는 말씀은 시험에 들려고 할때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씀이다. "주여 이 위기에 나를 도우소서"
2. 누가복음의 독특한 내용(43-46)
1)그리스도께서 괴로워하실때 하늘로부터 사자가 나타나 힘을 도왔다(43절).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면하게 된것은 아니지만 사자들로부터 그에 상당한 힘을 얻게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짐을 지우시든 불평해서는 안된다. 천사들은 고통받고 있는 주 예수님을 보살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의 군대로 자기를 구하라고 부탁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를 도와 힘을 주도록 기도만 했다.
2)예수께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44절). 고통이 더할수록 그는 더욱 기도에 전념하셨다. 기도할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이 있을때는 특히 더 기도해야할 때이다. 고통이 크면클수록 기도를 더많이 해야한다.
3)이렇게 애쓰심으로 인해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여기서 땀을 핏방울에 비유한 것뿐이냐 아니면 피가 정말 땀속에 섞여서 피빛이 되었으며 피땀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냐는 논쟁이 비평가들 사이에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땀구멍마다 피가 맺히고 옷에는 온통 피로 얼룩졌다. 이는 영혼의 고뇌를 보여주는 것이다.
Ⅴ. 유다의 배반 22:47-53
1. 유다의 표시(48)
여기 많은 무리가 있으며 유다가 앞장서 있다. 왜냐하면 예수를 잡도록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였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예수를 찾을지 몰랐으나 유다가 그들을 데리고 예수가 있는 장소로 갔다. 그들이 거기 가서도 예수가 누구인줄 알지 못했으나 유다는 자신이 입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갔다. 누가는 여기서 예수가 유다에게 한 질문 즉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는 질문을 주목한다(48절). 이 질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와있지 않다. 제자 중의 한사람이 그를 배반해야만 하는가? 입맞춤으로 그를 배반해야 하는가? 그 사랑의 표시가 이렇게 더럽혀진 적이 있었는가?
2. 그를 보호하려는 제자들의 노력(49-51)
그 될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49절). "우리에게 검 둘을 가지라고 하셨으니 이제 그 칼을 쓸까요?" 그러나 그들은 너무 성질이 급하고 불같아서 대답을 들을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의 머리를 겨냥했으나 빗나가서 오른편 귀를 떨어뜨렸다. 다른 복음서에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막았다고 말하고 있다.
(1) 그리스도께서 사과하신 방법 : 이것까지 참으라(51절). 그는 자기를 잡으러 온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진정시켜 그 화가 제자들에게 미치지 않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정중히 말씀하시고 자기 제자 중의 한사람이 그들에게 한 잘못에 대해 소위 사과하심으로써 원수에게 까지라도 선한 말로 대하라고 가르치신다.
(2) 그리스도께서 상처를 치료하신 방법 :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61절). 그 귀를 다시 붙여주셨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증거를 보여주셨다.
①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셨다. 낫게 하실수 있는 분이라면 원할 경우 죽게할수도 있다.
②자신의 자비하심을 증명하셨다. 후에 우리를 경멸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라는 자신의 규칙에 대해 본을 보이셨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충고(52,53)
그리스도는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52,53절). 그 말씀을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에게 하셨다고 누가는 전한다. 그들은 성직자들이었으며 이처럼 가증한 일을 하도록 채용되어 성전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1)그들의 행동을 설득하시는 방법 : 그들은 무엇때문에 한밤중에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는가? 그리스도께서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강도를 잡는것 같이 나왔는가? 그리스도께서 도망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매일 성전에 그들과 함께있었기 때문이다.
2)그들의 행동을 수용하시는 방법 : 앞에서는 볼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내게 닥친 일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그에 따르리라. 왜냐하면 그렇게 결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두움의 권세 즉 이 세상의 어두움을 지배하는 사단이 제멋대로 하도록 두어라." 주도권을 잡은 것은 바로 어두움의 권세이다. 어두움은 빛에 양보하며 어두움의 권세를 빛의 왕자에게 굴복하게할 것이다.
Ⅵ. 베드로의 부인 22:54-62
여기서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는 우울한 이야기를 보게된다. 대제사장의 집에 끌려갔다는 것 말고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받으시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다(54절). 그러나 표현 방법은 주목할만하다.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54절). 이 말로 보아 그들이 당황하고 있었던것 같다. 그들은 전에 보고들은 바로인해 두려움이 생겨서 그를 가장 먼 길로 해서 데려갔으며 마음은 조급했다.
1. 베드로의 실족(55-60)
이는 몰래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따라갔다. 이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멀찍이 따라갔던 것이다. 베드로는 중용을 지키기로 하였다. 즉 양심의 가책을 받지않으려고 그리스도를 따랐다. 하지만 소문내지 않고 무사하려고 멀찍이 따라갔다. 그리고는 대제사장의 종들속에 끼었다. 종들이 뜰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다. 베드로는 그들 중의 한사람인 것처럼 그 가운데 앉았다. 그리스도와의 친분을 일체 부인(22:47-53)하고 있었던 것이 베드로의 실족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때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찮은 비자가 베드로를 예수와 함께있던 자라고 고발했다. 그녀는 베드로가 불가에 앉았을때 주목해서 보았다. 그리고는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베드로에게는 그 말을 인정할만한 용기도 없었고 그 말을 슬쩍 돌릴만한 재치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을 간단히 부인해 버렸던 것이다.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58절). 그는 이러한 실족을 계속 반복했다. 조금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58절). 한시간쯤 있다가 또 한사람이 장담하며 말했다.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59절). 베드로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부인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6절).
2. 베드로의 회복(61,62)
베드로가 자신을 되찾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보라.
1)닭이 울었다. 이 소리를 듣자 베드로는 깜짝 놀라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작은 사건이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다.
2)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이 장면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볼수 없으나 매우 놀라운 장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베드로에게 등을 향하신채 재판을 받고 계셨지만 베드로가 한 말을 전부 알고 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주목하신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했으나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퍽 다행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쳐다보셨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비록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했으나 베드로의 눈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이 베드로를 바라보셨으며, 베드로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었던것 같다.
①그것은 깨닫게하는 눈빛이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야 나를 모르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②그것은 질책하시는 눈빛이었다.
③그것은 비난하는 눈빛이었다. "베드로야 어찌된 일이냐? 나를 부인한 자가 바로 너란 말이냐?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제일 먼저 고백하고 결코 나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던 네가 그랬단 말이냐?"
④그것은 동정어린 눈빛이었다. 그는 베드로를 부드러운 눈으로 쳐다보셨다. "불쌍한 베드로야 내가 돕지 않으면 형편없이 되겠구나"
⑤그것은 무엇인가 지시하는 눈빛이었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물러가서 좀 생각해보라고 눈짓하셨다.
⑥그것은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드로의 마음에 전달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보지 않으셨다면 아무리 닭이 울더라도 베드로는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눈빛과 함께 능력이 나와서 베드로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3)베드로에게 주의 말씀이 생각났다.
4)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 그리스도의 눈빛은 베드로의 마음을 녹여서 죄를 회개하는 경건한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Ⅶ. 그리스도의 수난 22:63-71
(1) 대제사장의 종들이 예수를 모욕한 방법 :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며 때렸다(63절). 그들은 예수를 조롱했다. 예수에게는 괴로운 밤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즐거운 밤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눈을 가리고 얼굴을 때리되 때린 자의 이름을 댈때까지 계속하면서(64절). 예수의 선지자직을 모욕하려 했다. 이외에도 많은 말로 욕을 했다(65절).
(2) 산헤드린 공회가 그리스도를 고발하고 판결한 방법 : 산헤드린은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날이 새자마자 모여들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네가 그리스도냐고 그들은 예수에게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많은 말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사실을 자백하라고 강요했다(67절). 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했다면 그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믿으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목적으로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2)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당당히 항의하셨다(67,68절). "그러나 너희는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여도 믿지 아니할 것이다. 미리 결정해 놓고서 무엇때문에 소송을 여는가? 내가 제시하는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들은 내게 대답도 아니할 것이며 나를 풀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내가 그리스도임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들에 대해 답변을 해야한다. 또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너희는 나를 풀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둘다 하려고 안할 것이다."
3)그들에게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재림이야말로 자기가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69절).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4)그러자 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라고 물었다(70절). 그는 단 7:13,14절에 나오는 것처럼 다니엘이 본 인자의 환상을 인용하면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만약 인자라면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5)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신다.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80절).
6)이를 근거로 그들은 예수의 유죄를 판결했다.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71절).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친히 그 입에서 들었으니 더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는가?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한 그를 메시야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 해설
최후의 만찬과 고난 ( 22 )
본장에 언급된 일련의 사건들은 사복음서 전체에서 다루는 주제와 연결되는 하나의 유기적인 사건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산헤드린의 음모와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나서 최후의 만찬을 베풀고 만찬석상에서 주님의 말씀과 그후에 예수님의 기도, 그리고 적대자들에게 체포되어 고난당하시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 만찬과 배반
1) 악한 무리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책을 연구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당장이라도 예수님을 체포하고 싶었으나 그분을 정치적 해방자로 믿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유대 군중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잡고 싶어도 백성들이 그분을 선지자 중의 한사람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댈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가 자기들에게 찾아와서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다는 예수님을 제거할 방책을 의논했습니다.
a.분기가 가득하여 서로 논의함(눅6:11)
b.율법을 응하게 함임(요15:25)
2) 유월절 만찬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에게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의 장소까지 준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통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떡과 포도주는 성찬의 식물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그분의 육체적 구속의 상징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유월절 어린양과 자신을 연결시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a.다락방을 미리 준비해 두셨음(눅22:12)
b.장차 성도의 처소를 예비하실 것임(요14:3)
3) 가룟 유다의 배반을 아심
예수님은 최후의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는 이미 작정된대로 가지만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함께한 자 중에 주님을 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그 일을 행할 자가 누굴까하며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만찬석상에서 말씀하신 것은 가룟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하여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스승을 배반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a.하나님의 정하신 뜻(행2:23)
b.인자를 파는 자는 화가 있음(막14:21)
2. 예수의 권면
1) 큰 자에 대한 다툼
유월절 만찬후 제자들 사이에는 자기들 중 누가 더높은 자인가 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였습니다. 큰 자에 대한 다툼을 아신 주님께서는 역설적인 섬김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즉 제자들의 논쟁은 자기 과시에 있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기 겸손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주님은 역설적 섬김을 말씀하시고 난후 바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참조, 요13:4-5).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삶은 교만을 멀리한 철저한 겸손의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a.랍비라 칭함을 받지말아야 함(마23:8)
b.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됨(막10:43)
2) 검을 사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실패를 내다보시면서도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하기 위한 중보 기도를 드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오늘 닭 울기전에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제자들에게 검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수난과 박해가 기다리는 어두움의 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검을 사라는 것은 핍박과 유혹에 대비하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a.전도 여행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음(눅9:3)
b.아버지 뜻대로 행해야 함(마7:21)
3) 감람산에서 기도하심
주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고 감람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로 목전에 둔 예수님의 기도는 여느 때와는 다른 기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내용에서 십자가의 고난의 잔을 앞에 놓고 인성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온몸과 마음으로 애써 기도하셨든지 땀방울이 피 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간절한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a.예루살렘과 가까운 곳(마21:1)
b.심한 통곡과 눈물의 간구임(히5:7)
3. 악인들의 소행
1) 체포되시는 주님
감람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말씀하실때에 한무리가 유다를 따라 올라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그 권속들이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악한 무리들이 몽둥이와 검을 들고 나타나자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검으로 내리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우리는 최후까지도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하시며 원수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인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a.성경을 응하게 함임(요17:12)
b.악한 자를 대적지말아야 함(마5:39)
2)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끌려가신 대제사장의 집 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있었고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습니다. 한비자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이 사람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다'고 하자 베드로는 즉시 비자의 말을 부인하였습니다. 비자의 두번째 질문에도 다시 예수님을 부인했고, 또 한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자 또다시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 닭소리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베드로는 통곡하였습니다.
a.결국을 보려고(마26:57-58)
b.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함(마26:70)
3) 심문을 받으시는 주님
예수님을 잡아가두고 지키는 군병들은 주님을 채찍으로 때리고 침을 뱉으며 희롱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때린후에 누가 때렸는가 알아맞혀 보라고 했습니다. 공회에 모인 장로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참람한 말을 들었다고 했음(마26:65)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고 심문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악행을 본장에서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는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집단으로 변한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게 됩니다. 날마다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해야 하겠습니다.
# 핵심
22:1-23
예수님이 만백성을 위해 대속 죽음을 당하실 순간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가룟 유다의 배신 예고와 최후 만찬 기사이다.
검과 관련한 대조적인 말씀(22:36)
예수님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무리에게 베드로가 검을 빼들었을 때 “이것까지 참으라”(51절)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평소에도 원수를 사랑하라며 비폭력주의를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본절의 명령은 모순되지 않는가? 이에 대해 혹자는 ‘성령의 검’을 가지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엡 6:17).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예수님의 수난이후 초대 교회에 닥친 핍박(행 8:1-3)과 연관지어, 그런 상황에서 지혜롭게 대처하여 자구책을 강구하라는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담대한 희생마저 각오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눈 가리고 하는 놀이(22:64)
고대에는 헝겊으로 술래의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게한 후 다른 사람이 번갈아가며 그를 때리고서 술래로 하여금 누가 자신을 때렸는지 맞추도록 하는 놀이가 널리 행해졌다. 지금도 이와 유사한 놀이를 볼수 있다.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이런식으로 희롱한 것은 그분의 신성을 조롱하는 행동이었다. 즉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선지자라면 누가 자신을 때렸는지 단번에 알아맞힐 것이라며 놀렸던 것이다.
# 묵상
가룟 유다의 음모 가담 ( 22:1-6 )
가룟 유다의 역할은 무리가 없을때를 틈타 예수님을 대적들에게 넘겨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에 유다가 가담한 것은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죄악이었습니다. 유다는 돈을 사랑하여(신14:25; 요2:15), 사탄의 유혹을 받아(신4:19) 세상의 권세에 아부함으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사40:26; 엡2:2) 하나님은 이런 모든 일을 섭리가운데 이끄셔서 구원 사역을 완성지으십니다.
유월절 예비 ( 22:7-13 )
유월절 준비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장래의 일을 아시는 분임을 깨달을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최후와 관련된 모든 일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만찬 예식 ( 22:14-20 )
이는 최후의 만찬시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성만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며 살기로 결단하는 의식입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때 하나님나라의 백성들과 더불어 갖게될 메시야적 잔치를 상징합니다. 떡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하여 찢기고 흘리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합니다. 이것을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언약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제자들의 직위 ( 22:24-30 )
유월절 식사이후 제자들은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계신데도 그들은 권세를 얻었을때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에서의 그들의 직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다스리는 원리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뇌의 기도 ( 22:39-46 )
이 기도에서부터 예수님의 수난은 시작됩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은 먼저 시험에 들지않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피할수 없는 시련으로 인하여 혹시 믿음에서 떠날까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41-44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시기에 온인류의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죽어야하는 신적, 인적 고뇌가 절정에 달하는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깨어서 기도했더라면 베드로가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기도 ( 22:40-44 )
시험에 들지않기 위한 기도이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돕는 기도이고, 힘쓰고 애쓰는 간절한 기도이며 또한 솔직한 기도입니다.
가룟 유다의 범죄 ( 22:47-48 )
그는 적대자들을 데리고와서 예수님을 넘겨 주었습니다. 이는 낮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때문에, 그리고 밤에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은신해 계셨기때문에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잡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예수님의 은신처를 그들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 22:54-62 )
인간은 그 본성상 누구나 다 연약한 존재이고(고전1:25), 죄를 범하지않는 인간은 한명도 없습니다(롬3:10).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할때 죄를 짓게 됩니다(마10:28).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를 통해, 죄를 범하더라도 즉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요일1:9).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심히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곧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된 길로 나갈때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돌이켜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깊이 새겨 늘 기억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문 절차 ( 22:54-23:25 )
① 대제사장의 심문(22:54),
②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22:66),
③ 빌라도의 1차 심문(23:1),
④ 헤롯의 심문(23:7),
⑤ 빌라도의 2차 심문(23:11),
⑥ 빌라도의 판결(23:24).
예수님의 죄명 ( 22:66-71 )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라는 죄명으로 재판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죄없으신 분으로 유대 지도자들의 모함과 로마 총독의 잘못된 판결로 인해 무고하게 처형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가장 고귀한 대속의 사건으로 삼으셨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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