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질문 20:1-8
다른 복음서의 내용보다 특별히 추가된 것은 없다.
(1) 그때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 구원을 획득하셨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공표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 전도자들을 영예롭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일반 복음 전도자들을 영예롭게 한다. 그리스도는 백성들의 능력에 맞게 자신을 낮추어 복음을 전하셨으며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2) 그리스도의 대적들이 그에게 가까이 오다. 이 말씀은 여기서만 나타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1)그들은 이런 질문을 해서 예수를 당황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불쑥 다가왔던 것이다.
2)그들은 이런 질문을 해서 예수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 이 말씀 안에서 알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빛에 대항해서 눈을 감아버린 자들이 명백한 사실을 반박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는 그가 베푸신 이적을 통해서 분명히 알수 있다.
②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해 질문하는 자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세례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써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답변하셨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4절). 모두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써'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질문으로 인해 그들은 난처해지고 꼼짝 못하게되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③이들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써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백성들이 두려워 사람에게로서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명성과 세상의 권세에 탐닉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명백한 진리를 제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④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묻어두는 자들은 그 이상의 지식을 소유하려 하지않는 것이다(7,8절).
Ⅱ. 포도원의 비유 20:9-19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권세를 인정치 않으려고 작정한 자들을 향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 이 비유에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서 볼수 있는 이상의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다. 이 비유가 의도하는바는 유대 나라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하도록 내버려두게 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세를 내고 경작할 포도원을 빌린 소작농과 같다. 하나님께서 계시 종교를 만드신 것이 곧 세로줄 포도원을 만드신 것과 같다(9절). 농부들에게는 해야할 '포도원 일'이 있다. 그 일은 고되고 쉴 사이 없지만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또한 농부들에게는 포도원 주인에게 바칠 "포도원 소출"이 있다. 갚아야할 세가 있고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해야할 일은 교회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소출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한 세금 징수인들이다(10절).
3)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때로 하나님께 속해있는 소작인들에게 지독한 욕을 당할때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행치않으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의무를 행하라는 요청을 거두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선지자들은 '종'으로서 말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들'로서 말씀하셨다. 아들을 보내면 그 농부들이 생각을 달리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내쫓은 자들이면 그리스도도 내쫓을 것이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이 종을 죽였을때는 다시 보낼 종이 또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아들을 죽이기만 하면 우리에게 보낼 아들이 더는 없으니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던 것이다.
5)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유대인들의 죄악은 절정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리라는 것외에 달리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소홀히하며 지내는 자들은 자기들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죄악과 파멸 가운데로 뛰어들고 있는가를 모르는 자들이다.
(2) 앞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그 비유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 있다. 즉 그들은 그러한 심판에서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16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지어다 하거늘'은 그런 뜻으로 해석해야만 한다. 심판을 막을만한 일은 전혀 하지않으면서 단지 "하나님 그렇게 하지마소서"하고 비는 것만으로 심판을 면할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속임수를 가장하고 있는지 보라.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잘 살펴보라.
1) 그리스도는 그들을 바라보셨다. 누가복음에서만 이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17절). 그분은 동정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분은 그들이 자신의 어리석음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들을 바라보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참조하게 하셨다. '건축자들의 버린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오르실 것이다. 즉 그로인해 파멸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박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 위에 떨어져 그들을 박살낼 것이다. 즉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3)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이 비유를 듣고 몹시 화가났다고 했다(19절).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줄 알았다. 그들은 예수에게 몹시 화가나서 즉시 잡고자하였다. 그들이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목을 조르지 않은 것은 단지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고 한 예수의 말씀을 실증하려던 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맞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죽일 것이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결국 그들은 "당장 그를 덮치고 말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심판을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순간 죄지을 생각을 하고있는 것이다.
Ⅲ.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문제 20:20-26
우리는 여기서 예수의 대적들이 세를 바치는 것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예수를 잡으려고 쳐놓은 올무에서 빠져나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1. 그리스도를 해치려는 흉계(20)
그 흉계는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아래 붙이려'는 것이었다(20절). 그들의 힘으로는 예수를 법에 따라 처형할수 없었으며 "폭동"을 일으키는 것외에는 달리 그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총독이 예수에 대해서 분노하도록 만들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했다. 이렇게해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2.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20)
그들은 정탐이었으며 스스로 의인인체 해야했다. 스스로 의인인체 하는 일이 악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정탐은 틀림없이 변장을 한다. 이 정탐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판단을 존경하는 것처럼 가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3. 그들이 제시한 질문(21,22)
그들은 매우 정중하게 말을 시작한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21절). 이렇게 말함으로써 예수를 부추겨 자기들에게 허물없이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려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렇게 겸손하신 예수를 속이려는 생각을 한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예수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 도리어 그분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며, 그들이 아무리 정중하게 말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속생각을 다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에게 가르침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을 예수는 아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을 책잡으려고 왔으나 예수는 결코 그들에게 책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한 질문은 아주 미묘한 것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21절). 유대인들은 긍지가 있고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세금 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금내는 것이 합법적인가 아닌가를 종종 문제삼곤 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것이 가하다고 말씀하신다면 백성들이 화를 낼 것이고, 그들이 기대한대로 불가하다는 답을 하신다면 총독에게 고발할 명목이 생기는 것이다.
4. 올무에서 빠져나가시는 예수님(23)
예수께서는 그 간계를 아셨다(23절).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자기를 속이려한 그들을 꾸짖으셨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24절). 그리스도는 그것이 누구의 돈이며, 거기에 누구의 도장이 새겨졌으며, 그것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를 그들에게 물으셨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그들은 인정했다. 그러자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는 먼저 가이사의 돈이 너희가운데 통용되는 것이나 가이사의 돈을 너희 화폐로 인정하는 것이 가한가를 물어봐야 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러나 거룩한 것에 있어서는 하나님 한분만이 너희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5. 어리둥절해진 그들(26)
올무는 벗어졌다. 그들은 백성 앞에서 예수의 말을 책잡을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의 대답을 듣고 놀랐다. 그 대답은 아주 완벽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잠잠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않고 그들이 계속 질문했다면 예수는 분명히 그들에게 망신을 주며 그들의 죄를 폭로했을 것이다.
Ⅳ. 죽은 자의 부활과 그 이후의 상태에 대한 설명 20:27-38
(1) 어느 세대건 계시 종교의 근본원리를 뒤집어 놓으려고 하는 타락한 사람들이 있어왔다.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그 이후의 상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들은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않으며 육신에서 행한데 따라 보상과 형벌이 있는 상태를 믿지 않는다. 이 원리를 제거해 버리면 종교는 다 실패하고 만다.
(2) 하나님의 진리를 흔들리게 하려는 자들이 그 진리를 혼란케 만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 사두개인들은 부활교리에 대한 백성들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싶어서 그리했던 것이다. 이 경우는 아마도 일곱 남편을 가진 여자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부활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3)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자녀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자녀의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다.
1)세상 사람들의 자녀는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간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분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주로 친척과 아내와 자식에게서 기쁨을 누린다. 국가도 그런 경향이 있다. 결혼은 인생의 안락함을 위해 제정되었다.
2)오는 세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오는 세상을 강조하기 위해 "저 세상"이라고 부른다.
①누가 저 세상의 시민이 될 것인가? 그들은 저 세상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얻은 자들일 것이다. "법적인"가치가 아니라 "복음적인" 가치에 의해서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다. 전가된 의에 의해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을뿐 아니라 우리에게 전가된 가치에 의해서 우리는 영화된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은 저 세상을 얻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저 세상을 추구하는데는 어려움과 실패의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을 얻도록 계속 노력하도록 하자.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즉 축복된 부활을 얻을 것이다.
②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한 상태가 어떠할는지 우리는 표현할수도 알수도 없다(고전 2:9). 그리스도가 여기서 그것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참조하도록 하라.
첫째, 그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 주님과의 기쁨을 한번 경험한 자들은 거기에만 전념하게 된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럽힐만한 것이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
둘째, 그들은 다시 죽을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시 죽는 일이 없는 곳에는 혼인의 필요가 없다. 다시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은 저 세상이 주는 안락함의 극치를 이룬다. 이 세상에는 죽음이 지배하지만 저 세상에서는 죽음은 영원히 추방된다.
셋째, 그들은 천사와 동등하다. 다른 복음서에는 '천사들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사와 동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천사와 동등한 자 그들에게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전혀 못지않는 영광과 행복이 있다. 성도들은 천국에 가게되면 "시민권"을 받게될 것이다. 사생아였던 그들은 모든 면에서 천국의 원주민인 천사들과 동등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넷째,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사들과 같다. 우리에게서 아들의 성품이 있기는 하지만 천국에 가서야 비로소 완전해질 것이다.
다섯째, 그들은 "부활의 자녀"이다. 즉 미래 상태를 향유할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부활의 자녀이다.
(4) 이 세상 이후에 또하나의 삶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다(37,38절).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했다.
그들은 그때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들은 수년전에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났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I was)"고 말하지 않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I am)"고 말씀하시는가? 그러므로 그 당시 그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누가는 여기에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같은 진정한 신자들이라면 그들이 비록 죽었다할지라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이들 족장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을때는 그 이상의 의미가 남아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복이요 기업이자 지극히 큰 상급(창 15:1)이라는 사실을 의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는 또하나의 세상이 분명히 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완전히 이행하실 것이다.
Ⅴ.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라는데 대한 질문 20:39-47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며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혜롭고 예의바르다는 명성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대개의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나 복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다.
1. 그리스도께서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대답을 칭찬하는 서기관들(39)
서기관 중 어떤이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말씀이 옳으니이다(39절). 서기관들조차도 예수의 행위를 칭찬했으며 그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면에서는 매우 부족하다.
2. 그리스도의 지혜와 권세에 놀라는 서기관들(40)
저희는 아무것도 감히 더 물을수 없음이더라(40절).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제자들은 담대하게 그 이상의 질문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감히 더이상 물을수가 없었다.
3. 메시야에 대한 질문을 듣고 당황하는 서기관들(41)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여러 성경구절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소경조차도 이 사실을 알았다(눅 18:39). 또한 다윗이 메시야를 나의 '주'라고 부른 것도 확실하다(42,44절).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시 110:1).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다윗은 왜 그를 주라고 불렀을까? 어떻게 자신의 자손에 대해 '주'라고 불렀을까? 겉에 보이는 이러한 모순을 그들은 해결할수 없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 즉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였으며,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었다.
4. 요주의 인물로 묘사된 서기관들(45-47)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명하신다.
1)"그들로 인해 죄악에 빠지지않도록 주의하라. 그들이 빠져있는 마음가짐을 갖지않도록 주의하라"
2)"그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지않도록 주의하라." 앞에서도 같은 뜻으로 말한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리라"(마 10:7). 그러니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대단히 거만하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시장에서 사람들의 문안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매우 압제적이며 종교를 자기의 범죄에 대한 은닉 수단으로 삼는다.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서기관들의 운명을 간단하게 선언하신다. 즉 "더 중한 심판, 곧 갑절의 저주를 받으리라." 외식적인 경건은 갑절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 해설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유대 지도자들 ( 20 )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관한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과 그에 관한 다각적인 답변이 주요내용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여러가지 문제를 들고 나와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그들로 하여금 침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심
1) 권위에 대한 시험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던 주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부터 권위에 대한 도전과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전 정화에 악감을 품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신적인지, 인적인지 그 권세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질문했습니다. 이들의 질문의도는 예수님을 체포할 증거를 얻기위한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발자국, 위대한 삶의 모본을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유독 악한 일생을 보낸 사람들의 뒤를 따르려는 사람들이 적지않게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a.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심(삼하3:39)
b.죄를 사하는 권세(눅5:24)
2) 진퇴양난에 빠진 무리들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간계를 아셨으므로 질문에 대한 대답대신 요한의 세례의 출처에 관해 반문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질문을 받자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참조, 마28:18).
a.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임(요5:35)
b.오리라 한 엘리야임(마11:13-15)
3)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불의를 폭로하시기 위해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소작인들은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또한 종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포도원을 맡아 관리하던 소작인들은 소출을 받으려고온 종들을 죽이고 주인의 아들까지 거역하고 죽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의 악행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사악한 소작인으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메시야를 죽였으며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는 유대인 대신 이방인들이 복음을 계승할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a.세상이 그리스도를 미워함(요7:7)
b.하나님의 나라는 열매맺는 백성이 받음(마21:43)
2.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
1) 계략을 세우는 무리들
예수님께서 비유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교만과 외식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행위를 진리로 공격하자 그들은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위장을 하고 예수님께 질문을 하도록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존경해서 어려운 문제를 풀기위해 질문하는 것처럼 세를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옳지않은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예수님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분을 무너뜨릴수 있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다고하면 하나님보다 가이사를 더높이는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가이사에게 대적하는 정치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a.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상론함(마22:15)
b.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함(마26:3-4)
2) 간계를 파악하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계략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내면을 꿰뚫어보시기 때문에 그들의 위장은 예수님 앞에서는 전혀 효과를 낼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는 그들의 질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a.마음의 의논을 아심(눅5:22)
b.저희의 생각을 아심(눅6:8)
3) 책잡지 못함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정탐꾼들은 능히 책잡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의 대답을 기이히 여기고 잠잠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 진리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잘 해결하고 오히려 유익한 기회로 삼게됩니다.
a.예수께서 대적자들을 설복시켰음(눅20:39-40)
b.대적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음(눅13:17)
3. 예수의 답변
1) 부활에 대한 질문과 대답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부활의 문제를 들고 나와 질문하였습니다. 즉 한여인이 형사취수의 제도로 일곱명의 남편을 가졌는데 부활때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부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들의 그릇된 내세관을 시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현세와 내세를 분명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부활하면 천사와 같은 형체를 입게되어 다시 죽을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부활때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음(막12:25)
b.항상 주와 함께 있음(살전4:17)
2) 예수님의 대답이 옳다고 인정함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부활 문제로 시험한 사두개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답을 듣고는 그분의 대답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요, 약속에 참예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a.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임(고전1:24)
b.그리스도의 교훈은 하나님의 것이요(요7:16-17)
3) 다윗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셨으며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혈통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민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었을때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습니다(참조, 시110:1). 메시야는 하나님으로서 다윗의 주가 되시고 인간으로서는 다윗의 자손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 즉 인간으로서 해결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으로서 해결하시기 위해 만유의 주재로 약속된 메시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a.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심(롬1:3)
b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롬1:4)
결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악인의 모습을 알게됩니다. 이들이 가진 악한 모습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핵심
20:1-26
성전 청결로 인해 야기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과 악한 농부 비유, 납세 논쟁이다.
# 묵상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문제 ( 20:1-8 )
예수님을 처치하기로 꾀한 사람들은 주로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두목들입니다. 이들은 성전 체제의 옹호자들로, 그 체제에서 가장 덕을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권위 문제로 도전해 왔을때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에 관한 질문으로 도리어 그들을 침묵시키셨습니다.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종교적 권위가 공회에 있으며, 공회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수 없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권위를 무효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하늘로부터 주어집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 ( 20:9-18 )
이 비유는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세상이 도리어 능욕하고, 그분의 아들까지 죽임으로써 그들이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공의회 산헤드린에서 자신을 죽일 것을 알고 이 비유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오류 ( 20:19-26 )
구약 경전 일부를 유대인 입장에서만 곡해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건을 오해했으며, 위선과 외식을 유발시켜 형식주의적 신앙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또한 참사랑이 결여된채 무조건 진리를 배척하는 배타주의에 빠져있었고, 내세의 영원한 구원보다는 현세의 안정을 더 갈망한 세속 지향주의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이때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5절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란 말씀에서 배울점은 신앙인은 무조건적인 반정부를 지향해서는 안되고, 신앙인도 국민으로서 합당한 세금을 내야하며(롬13; 눅23:2), 화평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행10:36).
부활을 부정한 사두개인들 ( 20:27-33 )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부활이 있다면 일곱 형제의 아내되었던 여자가 부활때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는 계대 결혼(형이 자식없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맞이하여 형의 후사를 잇게하는 혼인 제도)을 인정하는 당시 상황에서 나온 발상이었습니다.
부활후의 상태 ( 20:34-40 )
결혼 제도가 없으며, 죽음도 없고, 천사와 같이 됩니다. 부활은 단지 육신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의 부활관은 더이상 세상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말고 새로운 하늘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 20:41-44 )
다윗이 비록 혈육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조상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자인하도록 하기위한 것입니다.
서기관들의 죄악 ( 20:45-47 )
서기관들은 속으로는 과부의 재산을 삼키면서 겉으로는 길게 기도하는 외식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온갖 특혜를 누리며, 지위를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재물을 착취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은연중에 자신이 이런 죄악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잘 살펴야할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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