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영에 대한 분별 4:1-3
(1) 여기서 사도 요한은 신자들로 하여금 당시에 일어났던 영들에 대해 경계하며 세심한 조사를 행할 것을 명한다.
1) 경계 :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1절). 즉 "하나님의 영을 가장하는 모든 것들을 추종하지 말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참된 교제들이 있으며, 다른 것들은 그것을 가장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2) 세심한 조사 : 즉 성령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시험하라(1절). 신자들에게는 영들을 분별하여 판단할 것이 허용된다. 우리의 이성은 이러한 시험을 감당하기 위하여 주어졌다(1절). 실제로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나타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일찌기 사도들의 시대에도 그러했다.
(2) 사도 요한은 이러한 거짓 영들을 시험할 수 있는 일종의 시금석을 제시한다. 즉 그들은 교리로써 판별된다(2절).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전파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그렇게 한다. 계시종교의 요지는 그리스도와 그의 인격, 그의 사명에 관한 교리에서 파악된다. 이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에 관한 이러한 것들에 대항하는 조직적인 방해가 전개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일찌기 사도들의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반대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의 성취를 보면 볼수록 우리는 그 진리 안에서 더욱더 굳세져야 할 것이다.
Ⅱ.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에 대한 식별 4:4-6
사도는 이러한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항하도록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는 그들 안에 보다 거룩한 원리가 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고 있다(4,6절).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6절). 사도는 그들에게 승리의 소망을 주고 있다. "너희들 안에는 강한 보호자가 계시다(4절).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고 계시며, 그 영은 사람이나 마귀들보다 더욱 권능이 크시다. 하나님의 영은 너희들이 마음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도록 인도하셨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5절). 그리하여 그들 자신과 같은 자들이 그들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즉 세상은 세상의 것을 사랑하며 세상의 것은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6절). 하나님의 성결하심과 거룩하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자는 그가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것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와 함께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자들 사이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6절).
Ⅲ. 그리스도적인 사랑을 촉구함 4:7-13
진리의 영은 사랑으로 알게 된다(7절). 사도는 이들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랑 안에 연합시키고자 하였다.
(1) 사랑은 저 높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7절). 하나님의 영은 사랑의 영이다. 사랑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2) 사랑은 거룩한 품성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보여 준다(7,8절). 거룩한 권위의 특징은 사랑이며, 이것은 선에 관한 그의 말씀들과 마찬가지로 온 세상에 명백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런 자의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8절). 사랑은 하나님의 권위에 있어서 본성적이며 본질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셨다.(9절). 하나님께서 더러운 먼지와 재같이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니 그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하나님은 비교할 수 없이 귀중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9절). 이러한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보내졌다니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신비스럽고 기적적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10절). 그분은 우리가 그에 대하여 아무런 사랑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단지 죄 안에 갇혀 있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사명과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그의 아들을 주셨다. 그 사명은 그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화복제로 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하여, 곧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과 축복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3)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을 촉구한다(11절). 이것은 명명백백한 논증이다. 우리가 어찌 영원하신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려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의 사랑의 예찬자들이어야 하고, 그의 사랑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결과적으로는 그가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계시다는 보증이 된다(12절). 형제들을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곧 하나님의 전인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주권이 특별히 그 안에 거하게 된다.
(5) 12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그 믿음이 역사함으로써 온전케 되며, 사랑은 그 사랑이 작용함으로써 온전케 되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형제들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은 비로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이 온전하여졌음을 천명하시는 이때 진실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13절).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성령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 안에 거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고귀하여,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이 상호적인 거함에 대한 온전한 의미는 축복된 세계의 계시로 이루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러한 상호적인 내재함을 안다고 말한다.
Ⅳ. 하나님의 사랑 4:14-16
1.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조항(14)
(1) 주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 :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2) 주 예수와 우리와의 관계와 사명 : 그는 세상의 구주이시다.
(3) 그가 그렇게 되는 근거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이다.
(4) 이에 대한 사도의 확신은 그와 그의 형제들이 보았다는 사실에 의거한다. 즉 그들은 그의 인간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5) 이에 대한 사도의 증거 :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2. 이 진리를 소유한 자의 특권(15)
이 진리를 마땅히 인정함으로써 주어지는 탁월한 특권이 있다(15절). 즉 그리스도와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게 된다.
3.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남(16)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휘된다(16절). 기독교의 계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이다. 우리의 외면적인 믿음의 조항들은 오직 거룩한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것들인 것이다. 주 그리스도의 역사(歷史)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이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16절). 그는 본질상 한없는 사랑이시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가지고 계시며 그 사랑을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사역을 통하여 나타내 보이셨다. 그렇다면 이같이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실 때, 그 스스로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실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를 위하여, 또한 우리에게 영원한 아들을 주시는 그러한 섭리를 통하여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입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서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2)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거룩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그의 마음에 넓게 드리워진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Ⅴ. 하나님과 형제에 대한 우리의 사랑 4:17-21
사도 요한은 우리의 사랑을 두 측면, 즉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의 두 측면에서 권면하고 있다.
1. 하나님에 대한 사랑(17-19)
(1)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 사랑이 가장 필요하게 될 그날에 우리에게 영혼의 평강과 만족을 줄 것이다(17절). 온 인류의 심판의 날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날에 심판관 앞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그가 그들의 친구가 되심을 앎으로 인하여 머리를 들고 그를 마주 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복될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담대함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17절). 사랑은 우리로 그리스도를 따르게 한다.
(2) 사랑은 노예적인 두려움을 막아 준다(18절). 사랑이 넘치는 한 두려움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 사이를 구별하여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종종 신앙의 본질로서 언급되고 명령된다. 그러한 경외는 사랑 즉, 완전한 사랑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에 대한 불안으로 비롯되는 두려움이 있으니 이는 죄책감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두려움은 공포의 상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18절).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두려움을 내어쫓고 기쁨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사랑이 자랄수록 기쁨 역시 커지게 된다. 그리하여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이나 공포를 온전히 내어쫓는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의 사랑 안에서 승리를 얻는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일반적으로 두려움은 불안케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온전한 사랑은 고통 즉 형벌을 내어쫓는데, 그 이유는 온전한 사랑이 사랑하는 자의 마음에 완전한 순종을 가르침으로써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의 사랑이 아직 온전한 데까지 이르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3)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사랑받을 만하지도 못하였을 때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던 그 선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혼에 사랑을 인쳐 주셨다.
2.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에 대한 사랑 (20,21)
이 사랑은 다음의 이유들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다.
(1)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에 있어서 우리는 신앙의 근거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눈은 으례 마음에 영향을 끼치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정신에 보다 덜한 영향을 끼치며 따라서 마음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지체는 그 자신 안에 하나님에 대한 가시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보이는 형상을 미워하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 자체를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2) 하나님의 계명에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21절).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 안에서 다른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해야 함'은 당연하고도 합당한 의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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