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본 장의 목적 3:1,2

 

베드로는 그 문제를 더 잘 권고하기 위해,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기록하였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1절).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서 명하신 것은 자주 기억되어져야 하며 또 기억하도록 강요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순수한 마음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격려되어져야 한다.

 

Ⅱ. 기롱하는 자들의 등장 3:3-7

 

기롱하는 자들, 즉 죄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조롱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말세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도, 즉 복음을 조롱할 것이다. 신약에서의 신령하고 순결한 예배는 인간의 정욕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언급되고 있다.

(1) 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3절) : 그들은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다. 즉 그들 자신의 마음의 생각과 욕망을 좇는 자들이다. 그들은 임의대로 살며 임의대로 말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길을 행하며 그들 자신의 말을 말하듯이 또한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며 그들 나름대로 원칙들을 정하게 될 것이다.

(2) 그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뇨' 하고 기롱하여 말할 것이다(4절) : 만일 이 신앙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다른 모든 신조들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이 신앙은 다른 모든 신조에 결정적인 의미를 채워주며 부여해 준다. 우리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그들은 주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들은 그가 재림하시리라는 말조차 비웃을 것이다. 신자는 그가 재림하실 것을 바랄 뿐 아니라 그가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가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확신한다. 그러나 이 유혹자들은 그가 재림하시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온갖 것을 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그가 결코 재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온갖 것을 행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 약속을 비웃을 것이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3) 그들은 조롱하면서도 마치 논쟁하는척 할 것이다(4절) : 이것은 기초가 탄탄한 추론의 방법은 못된다 할지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음흉한 것이다. 이것은 약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쉽다. 그 약속을 받았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그들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어떤 시대에서도 그것이 실현될만한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가 스스로 그것으로 인해서 근심하는가? 바로 오늘까지도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행하시지 않은 일은 행하실 수 없거나 아니면 결코 행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것이다.

(4)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미 과거에 있었던 변화, 즉 노아의 시대에 세상이 물에 잠겼던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다(5절). 즉 그들은 입은 다문채 슬쩍 넘겨버리려고 하였다.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이 찾으려 하지 않는 진리를 믿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알고자 유의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죄 가운데 빠지게 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1) 물심판(5,6절) : 우주적인 대홍수의 때에 원리원칙이 이상하게 바뀐다. 즉 하나님께서 전에 둘로 갈라 놓으셨던 물을 이제 진노 가운데서 다시 하나로 합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되어진 것이었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던 것도 바로 그의 능력있는 말씀에 의해서 였다.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후에 세상이 혼돈케 되어지고 파멸케 되어진 것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인간까지 철저히 멸망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로 말씀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남께서 이전에 세상에 행하신 변화이며 이들 기롱하는 자들이 보지 못하고 넘어간 변화이다.

  2) 앞으로 임할 불심판(7절) : 우리는 여기서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운 기사를 접하게 된다.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심판은 아직 임하지 않는 것으로 비록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임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한번 우주적인 대홍수에 의해 멸망되었던 사실은 세상이 다시 우주적인 큰 불에 의해서 멸망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로 하여금 그것이 있을 것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자. '이제 하늘과 땅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다. 즉 그것들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되어진 바 된것'이다. 심판의 날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이 멸망하는 날이다. 이제 장래 있게 될 심판을 기롱하는 자들은 그 날이 보응의 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쓰라. 이는 그 날이 너희에게 구원의 날이요 유쾌하게 되는 때가 되게 하려 함이다."

 

Ⅲ.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음 3:8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부름을 통해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온유함과 애정을 가지고 말하고 있음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기를 거절한 경건치 않은 가련한 자들에 대해서 자비로운 관심과 선의의 사랑을 가졌다. 그리고 참된 신자들에 대해선 특별한 존대를 표하고 있다.

(1) 베드로가 역설한 진리(8절) : 그것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이 항상 주 앞에 드러나 있다.

(2) 이 진리의 중요성 : 이것은 베드로가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당부한 한 가지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의 화평에 관한 진리이다. 따라서 그는 그것이 우리의 눈에 가려지지 않기를 위해서 애쓰고 있다. 즉 원문에 있는대로 하자면 '이 한가지가 너에게 숨겨지지 않도록'이란 말이다. 그러나 영원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Ⅳ.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 3:9-10

 

우리는 여기서 '주께서는 더디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즉 그는 정해진 때를 늦추지 않으신다. 그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강림하시기로 정해진 때를 지키실 것이다. 선한 사람조차 하나님께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실상 그 시간이란 자신들이 정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는 다르다.

(1) 사람들이 더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상은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이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의 백성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시간을 더 주기 위함이며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로 자랄 시간을 더 주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그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본성으로 행한 모든 죄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을 더 엄하게 다루실 것이다.

(2)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올 것이다(10절).

  1) 주의 날의 확실성 : 그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2) 그 날의 불시성 : 그 날은 도적같이 밤에, 즉 사람들이 모두 안심한 가운데 잠자고 있을 때에 임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생각지도 못하는 시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가장 마음을 놓고 있을 시기에 주께서 강림하실 것이다.

  3) 강림의 장엄성 :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모든 것은 불, 곧 죄가 세상에 가져온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을 통과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 대해서는 단지 정케하는 불이 되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가! 우리 모두 그 날을 예비하는 현명한 자들이 되어 그 날이 우리에게 보응과 파멸의 날이 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Ⅴ.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한 여러 가지 권면들 3:11-18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교리를 교훈한 후에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1) 모든 행실에 있어서 경건하고 정결하라(11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런 풀어짐이 그들의 본래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회복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제 보고 있는 것들은 잠간 동안에 사라져 버릴 것이며 또한 더이상 지금과 같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남은 것을 바라보자. 이와 같이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온갖 행실이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소망하며 열심으로 바래야 한다. 가시적인 하늘과 체질이 풀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자들은 그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가시적인 피조물의 찌꺼기들을 태우는 두려운 불에 의해 정제되어져서 더욱 영광스러운 하늘로 변하리라는 것을 소망함으로 기뻐할 수 있다.

  1)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바래야 하는가(13절) :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에만 의가 거하고 있다.

  2) 이러한 기대와 소망의 근거와 토대는 무엇인가(13절) :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은 억측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기대가 약속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2) 14절에서 베드로는 그들이 다시 새롭게 될 것을 고려하며 재삼 권면 한다. 온 세상의 심판주가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 때, 우리는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인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피도록 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한다.

  1) 너희는 주 앞에서 평강 가운데서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고 화목한 상태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케 된 자들은 유일하게 안전하고 복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평강을 좇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라. 우리 자신의 양심 안에서 화평하라.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라.

  2) 너희는 그리스도 앞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는 화평 뿐 아니라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점도 흠도 없는 정결, 즉 절대적인 완전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완전히 거룩해야만 한다. 주의 날에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자들은 오직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만일 그가 우리에게 정해 주신 일에 우리가 부지런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보답하실 것이다. 이제 우리로 부지런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다. 이는 "너희 주께서 강림을 지체하시는가? 이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많이 줌으로서 영원을 준비할 시간을 많이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으심을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전에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책망한' 적이 있는 그 사람에 대해 이 할례자들의 사도는 얼마나 존경할만한 언급을 하고 있는가! 베드로는 그를 '형제'로 부르고 있으며 함께 그리스도인 된 자로서가 아닌 함께 사도된 자로서 부르고 있다. 많은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했으나 베드로는 그가 사도인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그를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있다. 그는 바울을 비범한 지혜를 받은 자로 언급하고 있다.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베드로가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서로 관계한다면 이는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① 바울에게 있었던 뛰어난 지혜가 '받은 것'으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각과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②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그 자신이 복음의 신비한 지식 가운데로 이끌려 간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끌림 받기를 위해서 힘썼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더러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어떤 것들은 그 자체의 난해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또 어떤 것들은 그것의 탁월함과 고상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으며 또다른 어떤 것들은 사람의 지성의 연약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또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불행한 일을 행한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곡해하며 억지로 풀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잘 배우지 못한 자들과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할 큰 위험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진리 가운데 굳게 서게 해주는 곳에서는 사람들은 과오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보호받는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빠지게 되는 죄의 치명적인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파멸까지 가져오는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 봄으로 우리가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3) 베드로는 그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다(17,18절).

  1) 경계해야 할 두가지 위험(17절)

   ① 우리는 미혹 받음으로 진리로부터 돌이킬 위험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읽는 자들 중에는 많은 사람이 자기들이 읽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한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믿음 가운데 굳게 서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이 모든 자들은 죄 가운데 떨어지기가 쉽다.

   ② 우리는 미혹된 것에 의한 큰 위험 가운데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비참한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했을 때'그들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떨어지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그들의 행위도 닮게 될 것이다. 미혹에 이끌린 자들은 '그들의 굳센데서 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전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며 혼란 가운데 있는 자들로 쉴 곳을 알지 못한다.

  2) 베드로의 권면(18절) :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우리 안에 은혜가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는 진리 안에 더욱더 굳건히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그를 따르게 하며 그로하여금 더욱 우리를 사랑케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는 때에 우리를 타락의 자리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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