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7절)
기롱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 - 거짓 교사들은 세상이 창조된 후 아무런 일이 없이 보전되어 왔던 것처럼 이후에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면서 장차 도래할 세상의 심판과 주의 재림을 부인하였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예전에 이 세상이 노아의 홍수로 심판받았듯이 종말에도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 때는 불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날에 모든 악인들에 대한 심판도 함께 있을 것임을 경고한다.
[1~2절]
본서의 기록 목적이 나타나 있다. 즉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이미 들었던 재림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려고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3절]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도덕적 부패와 정통 교리의 부인이다. '기롱'은 '비웃다' 혹은 '빈정대다'는 뜻이다.
[4절]
이것은 구약 예언(단 7:13), 주님의 말씀(막 8:38), 사도들의 가르침(고전 15:51; 살전 4:15; 약 5:7) 모두를 부인하는 것이다. 조상들. 주님과 사도들로부터 주님의 재림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것을 못 보고 죽은 그리스도인들이다.
[5절]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하늘이 창조된 후 그 상태로 계속 지금까지 보전되어 옴을 가리킨다. 하늘은 노아의 홍수 때에도 심판의 대상은 아니었다(창 6:7). 땅이 물에서...말씀으로 된 것을. 베드로는 땅이 창조된 경위와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임을 주장한다(창 1:9, 10).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에 의한 천지 창조를 부인하면서<창 서론> 세상은 원래부터 있었고 또한 영원히 보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만물이 하나님의 보전 사역 아래 있음과(골 1:17)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부인한다.
[6절]
베드로는 심판의 또 다른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 노아 때의 홍수 심판을 예로 든다. 즉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또 다른 것, 즉 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포한다.
[7절]
본절은 이 세상은 앞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창 9:8~17) 물에 의한 심판은 받지 않을 것이며, 악인의 영벌(永罰) 때에 이 세상도 심판을 받아 사라질 것이며, 이 세상은 창조 때처럼 '말씀'으로 약속된 불에 의한 심판을 받을 것임(사 29:6)을 시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 신자들은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시 73편) 둘째, 신자들은 먼저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함(마 6:33; 고전 9:25)을 깨닫게 된다.
(8~13절)
재림에 대한 소망과 경고 - 앞에서 재림의 필연성을 언급한 베드로는 이제 재림의 지연으로 불안해 하는 신자들에게 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준다. 더불어 재림 때에 일어날 현상과 이를 아는 신자들의 합당한 삶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살전 5:23; 딤전 6:14). 한편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이며,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이며, 자신의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는 기회임을 알 수 있다.
[8절]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므로 시간에 대한 감각에 있어서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시다(시 90:4).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아래 있는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을 의심하면서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9절]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분명한 이유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모든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후에야 세상을 심판하신다(마 24:14; 계 7: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백성에 대한 당신의 신실성을 포기치 않으시며(요일 1:9),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위한 최종적인 봉사의 기간임을 깨닫게 된다.
[10절]
주의 재림이 예고 없이 갑작스레 닥쳐온다는 사실 때문에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말한다(마 24:43, 44). 이 날에 있을 현상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노아 홍수 때 심판을 면했던 하늘도 심판을 받아 파괴될 만큼 말세 심판은 대단히 두려운 것임을 보여 준다(계 6:14; 계 20:11).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하나님이 내리신 불에 의하여 천체 및 모든 물체들이 녹아 버릴 것을 가리킨다(계 6:14).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말세 심판 때에는 모든 인간의 선행과 죄악이 낱낱이 폭로됨을 의미한다(히 4:13; 계 20:12, 13).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사모하라. 이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마 6:33), 세상의 가치에 집착지 않는 삶(요일 2:15, 16), 세상의 풍조(딤후 3:1~7)를 추종치 않는 삶으로서 성도의 삶에 대한 요구이다.
[13절]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은 오직 의만 있는 곳임을 가리킨다(사 65:17; 사 66:22). 새 하늘과 새 땅. 헬라어에는 '새로운'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네오스'와 '카이노스'가 있다. 이 중 본문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카이노스'로서 동일한 본성이나 본질의 새로움을 가리킨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로서 영화롭게 재창조될 것임을 알 수 있다(롬 8:20, 21). 신자는 신천 신지에서 새롭게 부활된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되며(눅 16:23), 신령한 교제로 인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계 21, 22장), 완전한 행복의 상태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계 21:3, 4). 따라서 이 땅에서 신자는 본향인 신천 신지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된다(히 11:10, 15, 16).

(14~18절)

재림을 위한 준비 -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자세를 말하면서 올바른 종말 신앙에 굳건히 설 것을 권면한다. 그런 후 이 신앙에 근거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배격할 것을 언급한다.

[14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신천 신지에는 죄가 없기 때문에 그곳을 바라는 자는 그곳의 속성에 합당한 도덕적 순결을 지녀야 함을 뜻한다(고후 11:2; 살전 2:12).

[15절]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재림의 지연은 많은 백성을 구원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 때문이다(9절). 바울도...이같이 썼고. 베드로가 재림에 관해 가르쳤던 것과 동일하게 바울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가르쳤음을 말한다(살전 1:10; 살전 4:13~17; 살후 1:10; 살후 2:8). 사랑하는 형제 베드로는 전에 자신을 공식석상에서 면박했던 바울을(갈 2:11~14) 이렇게 지칭함으로써 관용의 훌륭한 본을 보여 준다(벧전 2:18). 이 같은 관용이 초대교회를 하나되게 하며 화평케 했음이 틀림없다.

[16절]

그 모든 편지에도...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베드로가 본서를 기록할 때는 바울 서신들 중 다수가 이미 기록되어 교회에 회람되고 있었다. 바울은 다른 성경 저자에 비해 특히 심오한 진리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당시의 일부 성도들은 바울의 서신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종말에 관한 어려운 부분으로는 살전 5:2~6; 살후 2:1~12절 등이 있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 사도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제자가 되지 못할, 신앙 수준이 낮은 자들이다. 다른 성경과 같이. 구약성경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 바울 서신이 이미 구약성경과 같이 정경으로 인정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억지로...이르느니라. 니골라 당(계 2:6)처럼 자신의 잘못된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함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교리적으로 잘못되어 타락하게 되고, 결국 멸망하게 된다(벧후 2:1~3).

[17절]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전 절의 '무식한 자들'과는 달리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깨우쳤음을 가리킨다. 이들은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이 아무리 미혹한다 하더라도 진리를 사수한다. 진리를 소유한 자만이 비진리에 미혹되지 않는다.

[18절]

전 절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다. 그것은 곧 균형 잡힌 신앙인으로서 성숙하는 일이다(엡 4:13, 14).

 

# 해설

예수 재림의 확실성 (1~13절)

2장부터 시작된 이단 비판 내용의 핵심부로서 이단 사설의 사소한 내용보다는 이단 사설의 발생 동기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즉 초대교회의 주요 가르침 중 하나는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며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이었다(히 9:27, 28). 그러나 당시 거짓 교사들은 이를 부인하며 성도들을 미혹하였는데(1~4절) 이에 대해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논박하고 있다. 과거 노아 홍수 심판(창 7장)은 예수 재림시 있을 불 심판의 전조이다(5~7절).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 개념을 초월하는 분(8절)이므로 언제 재림 사건이 있을지 모른다(10절). 비록 우리에게는 주의 재림이 더딘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유보 기간일 뿐이다(10절). 끝으로 현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결론 (14~18절)

본서는 교회 내부의 이단 세력에 대한 경고를 주기 위하여 베드로 사도가 죽음을 예감하고 쓴 편지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는 지금껏 베드로가 때로는 이단주의 자체의 비판으로, 때로는 성도 자신의 성장 촉구 등을 통하여 준 말씀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되는 교훈과 예수 재림 때까지 이단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성도 자신의 영적 성장으로 사탄과의 영적 투쟁에서 승리하라는 교훈으로 되어 있다.

 

# 핵심

1~13절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재림관을 반박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에 관해 교훈하는 내용이다.

 

# 묵상

주의 재림 (1~10절)

거짓 교사는 주의 재림에 대하여 만물이 자고 이래 여전하였듯이 우주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의 재림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지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고, 이미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헛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날'이 그렇게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날'은 도덕같이 임하며, 그때가 되면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피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매일 성결하며 준비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롱하는 자들 (3절)

기롱하는 자들이란 헬라어로 '아무렇게나 취급하다'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무책임하고 무가치한 거짓 선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며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마지막 날에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의 경건한 자들 (11~13절)

경건한 자들은 주님의 날이 이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이곳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재림에 대한 성도의 자세 (12절)

성도는 재림을 위해 준비하고(마 24:44), 직분을 수행하며 (눅 19:13), 기다리고(고전 1:7), 사모하며(딤후 4:8), 기도하고(계 22:20), 인내하며(요일 2:28), 기쁜 소망을 가지고(단 2:3), 확신하며(욥 19:25, 26) 살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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