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바울의 변론 22:1,2

바울은 탄복할만한 침착성을 가지고 설교에 임했다. 그는 공포에 위압당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평온했으며 침착했다. 그는 어떤 격정도 표출하지 않았고 어떠한 욕설도 퍼붓지 않았다.

1. 바울의 정중한 경칭(1)

부형들아…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바울은 그들에게 '부형들아'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그의 변명을 듣고 그것에 따라줄 것을 기대했으며 그들에게 인도적인 정신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일반인들을 향하여는 형제라는 칭호를 제사장들을 향하여는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바울은 그들을 이같이 칭함으로써 자신이 그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아부해서는 안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해야 하며, 우리가 친절하게 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거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이 말은 충분히 타당하고 근거있는 요구였다. 왜냐하면 고소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변론한 권리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2.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청중들(2)

그는 히브리 방언으로 말했다. 히브리의 방언은 유대인들의 대중 언어였다. 당시의 히브리어는 순수한 구약 시대의 히브리어만이 아닌 시리아어의 히브리 방언이었다. 바울이 히브리 방언을 사용한 것은 동족인 유대인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경의의 표현이었으며 이로써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바울의 설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의 히브리어 진술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다. 저희가 그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2절).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는데(행 21:37), 이제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히브리어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로써 천부장과 유대인들 모두는 그에 대하여 낫게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현자와 선량한 사람들은 단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멸시를 당하곤 한다.

 

Ⅱ. 회개하기 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한 바울의 진술 22:3-21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천부장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러한 애굽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과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그들의 율법과 성전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해명하고 있다.

1. 바울의 혈통과 교육(3)

바울은 유대민족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유대인으로 즉 나는 너희 민족의 한 사람이며 너희 민족과 한 동족이다.

(1) 그는 유명한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그 도시의 자유민으로서 출생하였다. 이러한 진술은 한낱 사소한 자랑거리에 불과하나 당시 바울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사람들에게는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2) 그는 지식교육과 진보적인 교육을 받은 자였다. 그는 예루살렘과 유대 학문의 중심지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양육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들의 율법에 관해 무지할 수 없었으며,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율법을 업신여기는 자로 간주될 수도 없었다.

(3) 그는 젊었을때 매우 진취적이고 유망한 유대종교 교사였다.

첫째, 그는 유대교에 박식한 교사였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학문의 도를 닦았으며 거기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율법으로부터 이탈한 것은 개념상의 혼동이나 어떤 실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고사(故事)와 전통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또한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 중 유대교에 대해 바울이상으로 잘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둘째, 바울은 유대의 행동적인 교사였다.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3절). 유대교 교리에 해박한 사람들 중 대부분 종교 의식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기를 원했으나, 바울은 한 랍비로써 상당한 열성주의자였다. 여기서 바울은 그의 청중들을 다음과 같이 칭찬한다.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3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롬 10:2). 이러한 바울의 칭찬이 결코 유대인들의 분노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즉 그리스도가 기도하셨듯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희의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2.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박해를 설명함(4,5)

바울은 초기에 지독하게 사나운 박해자였다. 바울이 이 사실을 말한 이유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변화가 매우 자명한 것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즉 그가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였을때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그 갑작스런 변화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기독교에 대하여 극도의 혐오감을 지녔었다. 바울이 이같은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을 권유하여 격려함으로써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신성 모독자인 동시에 박해자였지만 하나님의 자비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박해자였을 당시의 그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1) 바울은 극도의 적의를 품고 기독교를 증오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말한다(4절). 또한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살기가 등등하였으며(행 9:1), 죽일 때에 가편 투표를 하기도 하였다(행 26:10). '바울이 이 도를 핍박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는 말은 그가 목숨을 내걸고 기독교를 반대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들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수호하는 일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을 것이다.

(2) 바울은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김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을 해산시키며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바울이 결박당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투옥시킨 자신의 죄과를 규탄하고 있으며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투옥시켰던 사실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했다.

(3) 바울은 산헤드린과 대제사장, 그리고 고위층 장로들로부터 이 새 종파를 탄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었다(5절). 다메섹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그들은 그 유대인들을 탄압하기로 결정했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에 바울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에게 다메섹의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공문과 함께 바울을 파견했던 것이다. 여기서 다메섹의 유대인들을 형제라고 부른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는 일에 바울을 협조하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그리스도인들은 형벌을 당함으로써 기독교로부터의 탈당이 강요되거나 다른 사람들의 공포심을 조장할 목적으로 처형당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현재의 당신들처럼 처음에는 그러한 일에 종사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박해자의 심정을 알고 있으므로 당신들을 동정한다. 또한 나는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나를 변화시켰듯이 당신들에게도 개종자의 심정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3. 바울이 개종하게 된 경위(6-11)

바울의 개종은 어떤 자연적이거나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었으며, 그 일이 되어진 상황은 그의 변화를 충분히 정당화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변화를 비난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능력을 비웃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개종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그것은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행9장) 자신의 개종이 온전히 하나님의 행위였음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1)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를 사로잡으시기 직전까지만해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여행을 하여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까지만해도(6절) 오직 그에게 부여된 잔혹한 임무의 집행에 대한 생각에만 몰두해 있었다.

(2) 무엇보다도 바울을 놀라게 한 것은 하늘로부터의 빛이었다. 그 위대한 빛은 갑자기 바울을 둘러 비추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사실과 한낮의 햇빛 같은 그러한 밝은 빛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만이 나온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 빛은 정오 노상에서 바울을 비추었는데, 그 빛이 너무 밝았으므로 바울은 땅에 엎드러졌으며(7절), 모든 사람들이 그와 함께 엎드러졌다(행 26:14).

(3) 무엇보다도 바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두렵게 여기도록 한 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들려왔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주여 뉘시니이까?" 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8절)는 대답이 들렸다.

(4)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이의가 제가된다. 즉 이 빛과 음성이 어떠한 방법으로 임하였기에 바울에게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고, 그와 함께 여행한 자들에게는 일으키지 못하였는가? 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동료 여행자들도 참으로 그 빛을 보았고 두려워했다고 밝힌다. 비록 그 빛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다해도, 그들은 바울에게 전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난다. 따라서 그 변화는 말씀을 직접 들은 자에게 임했을뿐 그 빛을 보기만 했던 자들에게는 임하지 않았다.

(5) 바울은 그가 이처럼 놀란 후에 자신을 온전히 성령의 인도에 의탁하였음을 그들에게 확증한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하늘에서 들여온 같은 음성이 나를 그릇된 길에서 멈추게 하시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그리고 그는 곧장 다메섹으로 가서 지시를 받았다.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10절).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는 환상이나 하나님의 음성, 또는 천사의 출현과 같은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것은 단지 성서와 현장 목회자들을 통한 일반적인 계시를 소개하거나 확증할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여기서 그 음성은 바울에게 그가 행할 일을 말하지 않고 다만 다메섹으로 향할 것을 명한다. 거기서 그에게 지시가 주어질 것이다.

(6) 바울은 자신에게 비추인 그 빛의 위대함을 증거함으로써 그의 눈에 미친 순간적인 영향에 관하여 그들에게 전한다. 나는 그 빛의 광채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다.(11절). 그 빛은 순간적으로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정죄받은 죄인들은 어둠의 권세에 의해 눈이 멀어 영원한 장님이 된다. 그러나 자각하는 죄인들은 본문의 바울처럼 어둠이 아닌 빛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바울처럼 실명하지 않았으므로 바울을 손에 이끌고 도시로 인도했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그의 영안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우리도 장님인가?(요 9:40)라고 말했다. 바울은 육체의 눈이 멀게 되자 자신의 영적 실명상태를 인식하게 되었다.

4. 바울이 자신의 변화를 확신하여 아나니아로부터 지시 받음(12-16)

(1) 본문에 제시된 아나니아란 인물 : 그는 유대 민족이나 유대교에 대해 전혀 편견을 갖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율법을 준수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진일보한 자였다. 그는 다메섹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바울이 친구로서 교제를 나눈 최초의 신자가 바로 이 아나니아였다.

(2) 바울의 눈을 즉시 치유한 아나니아(13절).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와서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그에게 왔음을 납득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울의 곁에 서서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고 말했다. 이 말과 함께 능력이 나옴으로써 바울은 즉시 시력을 회복하여 아나니아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가 전하는 지시를 받을 수 있었다.

(3)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주 예수께서 그 누구보다 월등하게 그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였다.

첫째, 바울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현현(14절) :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신 이 능력있는 부르심은 특별한 선택의 결과이다. 여기서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유대인이었음을 암시한다.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이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그의 뜻을 알게 하고 또한 그의 뜻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즉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뜻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알게 되었음을 뜻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그분을 지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은총이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으나, 바울은 그 자신의 오른편에 서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스데반은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스데반이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저 의인으로 칭해졌다. 왜냐하면 그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 선택하신 자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이해하며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둘째, 자신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시기 위해 바울을 선택하신 하나님(15절) :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본문과 26장에서 바울이 자신의 개종 경위를 이처럼 상술한 것으로 보아 그가 다른 사람들의 개종을 권유하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자주 반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위해 행하신 것에 관해 말했으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을 위해 무엇인가 행하실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4)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세례로써 주 예수와 결합될 것을 권한다(16절). 본문에는 '일어나 세례를 받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께 봉헌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바쳐야 한다.

첫째,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증되는 위대한 복음의 특권은 죄의 사면이다.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당신의 죄에 대한 용서의 위로를 받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입으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씻김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의롭게 되고 성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여되는 위대한 복음의 의무는 주의 이름 곧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즉 이 말은 그분을 우리 주님과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를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범한 죄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서둘러 세례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맺는 계약은 필요한 일이며, 결코 지연될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할 일을 지금 실행하지 않고 뒤로 미루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5. 바울이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전파의 소명을 받음(17-21)

이 사실은 그들이 바울에게 심히 노하게 된 커다란 이유였다. 그러므로 그는 사명이 신성한 근거로부터 나온 것임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을 예루살렘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1) 바울이 자신의 나아갈 방향과 자신의 임무를 지정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을때, 그는 이방인의 전도 임무를 수행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그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일컬어진 성전에서 기도하였다. 그곳은 만민의 기도처였을 뿐만 아니라, 만민을 위한 기도처였다. 성전에서 드린 바울의 기도는 그가 성전에 대해 존경심을 품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울은 후에 이러한 이방인 전도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그 사명을 기도중에 받았다는 사실을 회상할 때 크나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2) 바울은 환상가운데서 그 사명을 받았다. 비몽사몽 간에(17절). 그는 이런 몽환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18절). 그는 이 상황을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라고 전하고 있다.

(3)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에게 이방으로 가라는 사명을 주시기 전에, 그에게 예루살렘에서 어떤 선한 일을 하려는 생각은 전혀 헛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만약 바울이 이방으로 파송된다면, 그에 대해 힐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문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속히 예루살렘에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18절).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일 자들이 누구인지 미리 아시는 것처럼 그것을 거부할 자들이 누구인가도 미리 아신다.

(4) 바울은 예루살렘에 남아있기를 거듭 간구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자신의 회심전의 행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엄청난 변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바울은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위해서나, 주님을 위해서나 모두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19,20절). 그러므로 바울은 "주여 내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가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또 사람들을 가두고 또한 각 회당에서 때린 것을 그들이 알고 있습니다. 특히 스데반의 경우를 들자면, 그가 돌에 맞을때 내가 그 곁에 서서 그의 죽음을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이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들 사이에 나타나 스데반이 전파하고 그 때문에 박해받은 그 가르침을 전한다면 분명히 그들은 증언을 받아들일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그들이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너를 변절자로 낙인 찍어 더욱 격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5) 이런 근거로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바울의 청은 기각되었다.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21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를 통해 간구하는 바로 그것으로가 아니라 더 나은 어떤 것으로 그들의 기도에 은혜로운 응답을 주신다. 자신의 사역자들에게 사역의 시간과 장소를 정해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며, 설령 그 지시가 사역자들 자신의 생각과 어긋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예루살렘에서 전도자가 되는 것이 바울의 가장 큰 포부였으므로,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더 크게 쓰시려고 계획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종종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들을 위해 좋은 일을 도모하신다. 바울이 내가 너를 보내리라는 하나님의 사연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이방인들 사이에 복음을 전파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보내신다면, 그의 성령이 바울과 함께하심으로, 바울이 행하는 사역의 성과를 바울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바울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파송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바울의 행동에 대해 분노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며 바울은 하늘로부터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의해 이방인들 사이에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Ⅲ. 바울의 변론에 대한 군중들의 분노와 공회에 넘겨진 바울 22:22-30

바울은 자신의 입장에 대한 변론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에는 개의치 않고, 그가 더이상 말을 못하도록 방해했다.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이제까지, 그들은 바울의 변론을 인내심을 가진 상태로 정중하게 경청했었다. 그러나 그가 이방인에게 파송된 사실을 말하자, 그들은 더이상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말을 듣자 인내심을 상실하고 모든 예의범절과 공정성을 망각하고 말았다.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이방인들도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그에게 대항하고 있는 무리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분노를 사고 있는지 보게 된다.

(1) 그들은 바울의 말을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소동을 피웠다. 성난 사람은 조금만 비위가 상해도 화를 내게 마련이며,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라 하더라도 전혀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2) 그들은 바울을 살려 둘 가치가 없는 자라고 떠들며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격양된 목소리로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둘 자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와 같이 그 세대에서 가장 커다란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의 짐으로써뿐 아니라 그 세대에서 저주받은 사람들로 간주되어 왔었다. 여기서 사악한 유대인들은 바울을 살려둘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바울을 제거함으로써만 세상의 짐을 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3) 그들은 바울과 천부장에게 대항하여 미쳐 날뛰었다(23절). 그들은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자들처럼 옷을 벗어던지며 악을 쓰며 외쳐댔다. 이것은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자들이 자신의 옷을 벗어던졌던 것과 같이(20절), 그들도 바울을 돌로 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또 그들은 바울이 신에 대해 모독적인 발언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옷을 찢었고, 바울의 변론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티끌을 공중에 날렸다. 그들의 이런 모든 행동은 자신들이 바울에 대해 얼마나 심하게 분노하고 격분하는지를 천부장에게 시위하고자 함이었다.

(4) 천부장은 바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그를 성으로 데려가도록 명령하였다(24절). 감옥은 때로 성난 군중들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 바울이 죽을 때가 아니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보호할 사람을 세우셨다.

(5) 천부장은 바울에게 태형을 명하였다.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여 심문하라 한 대(24절). 이러한 천부장의 처사는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불평분자들 중 몇 명을 가려내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정당한 변론을 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그들이 뒤집어 씌우려던 죄가 무엇인지 심문했어야 했다. 즉 그는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는지를 바울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소동을 피운 그들에게 물어야 옳은 일이었다. 비록 죄를 범한 자라 하더라도 자백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하물며 그가 결백할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친 듯이 날뛰는 폭도들이 바울에게 대항하여 고함만 질러댈 뿐, 그들이 왜, 혹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조차 말하지 못하는데 바울을 채찍질하는 것이 정당하고 타당한 일이겠는가?

(6)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그의 특권을 행사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종류의 모든 처벌과 징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사들이 가죽 줄로 바울을 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백한 사람에 대한 그들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고함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로마 시민인 자신에 대하여 그들의 처사가 위법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사람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25절). 바울의 이런 말투는 자신이 처한 위기와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부당함 속에서도 전혀 분노와 공포의 기색이 없이 오히려 마음의 거룩한 평정과 안온함을 향유하는 선량한 그의 면모를 여지없이 나타내 주고 있다.

(7) 천부장은 이 사실을 듣고 놀랐으며, 겁에 질렸다. 그는 바울을 방랑중인 애굽인으로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훌륭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단지 그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멸시를 당하고 있는가! 천부장은 자신을 수행하는 부하장교인 백부장을 거느리고 있었는데(행 21:32), 그들 중 한 명이 바울이 로마인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보고했다(26절). 어찌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그들 모두가 로마시민의 특권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천부장은 직접 바울의 입을 통해 그가 로마인이라는 사실의 진위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는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27절). 즉 네가 과연 로마시민의 특권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바울은 '그러하다'라고 대답했다. 천부장은 이 문제에 대해 바울과 의견을 교환했고, 이를 통해 로마시민으로서 바울이 갖는 특권이 천부장 자신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천부장의 시민권은 돈을 주고 산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그가 나도 로마의 시민이지만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고 말하자(28절), 이에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로다'라고 응답했다. 바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다 해야하며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이 로마시민이라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그의 고문은 즉시 중지되었다. 곧 채찍질로 그를 심문하도록 지시받은 자들이 그에게서 물러갔다(29절). 천부장은 그가 바울을 결박하고 그를 때리도록 지시했었기 때문에, 그가 로마시민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자신들의 악행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인간을 두려워하며 인간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악행을 그만두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의 법과 재판관이 베푸는 은덕과 그것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것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공평하고 공정한 관례로 유지시켜 줌으로써 사악한 인간들의 분노를 억제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권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은덕을 마땅히 그들에게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날 천부장은 바울을 산헤드린 회의 앞으로 데리고 갔다(30절). 천부장은 먼저 그의 결박을 풀었다. 그런후 그는 바울의 문제가 종교적인 성질의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심의하기 위해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모든 회원들을 동시에 소집했다. 군인이었던 이 로마인은 바울을 폭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금시켜 놓았다가 공회에 재판을 청구했다. 우리는 천부장이 생각하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라면 바울을 공의로 대하고 그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오직 그의 안전을 고려하여 그를 공회로 넘겼다는 소망에 찬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정은 공의의 원칙에 의해 다스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천부장이 바울을 공회에 넘긴 것은 단순히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 본문은 이것을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30절).

  

# 해설

바울의 능력있는 변론 ( 22 )

본장은 바울이 폭도들 앞에서 행한 변명과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히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유대인으로 출생한 사실, 그의 배경,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사실, 율법에 대한 자신의 열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도를 핍박한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일어난 자신의 회개 경험을 자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방인에게로 가야할 자임도 말하고 있습니다.

 

1. 바울의 자기 변명

1) 바울의 열심

바울은 히브리 방언으로 모인 무리를 향하여 자기 변명을 시작했습니다. 회중은 순간 조용하여 바울의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낳고 그 성에서 자랐으며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율법에 열심인 사람처럼 오늘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있는 자였습니다. 바울의 열심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믿는 자를 결박하여 누구든지 옥에 넘겼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요점은 분명합니다. 그는 율법에 완전히 결속되어 있었으며 기독교 박멸에 매우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a.기독교를 핍박함(행8:3)

2) 다메섹에서의 회심

바울의 열심은 대제사장들과 모든 장로들이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공문을 받아가지고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형벌을 받게 하려고 다메섹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바울을 비취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이었습니다. 바울은 두려움 속에서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그는 그 음성이 자신이 그렇게도 열심히 핍박했던 예수의 음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동행하던 자들에게는 음성이 아닌 빛으로만 그 사건을 경험케 했습니다. 그 일로인해 바울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함께하는 자들에게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a.그리스도의 음성(계3:20)

b.빛의 광채(히1:3)

3) 아나니아의 방문

바울은 이제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주님에게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듯이 조용히 주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을 부르신 주님은 또다른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주님은 경건한 사람 아나니아에게 임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였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울을 찾아왔고 형제 바울에게 안수하여 그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바울의 부르심과 사명을 알게하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a.순종(롬12:2)

 

2.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모든 사람앞에서 증거해야 하는 증인임도 알았습니다. 또한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은 이후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보았던 환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바울이 회심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도시의 유대인들이 그가 박해했던 일과 스데반을 처형할때 그가 했던 일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겪은 일과 그의 증언에 대단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주님께 아뢰었을때, 주님은 그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바울의 증언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사명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에게로 가야 했습니다.

a.환상(행16:9)

b.이방인의 개종(시22:27)

 

3. 로마 시민인 바울

1) 유대인의 소동

성전 바깥뜰에 운집해 있던 무리들은 바울이 이방인에 대한 그의 사명을 말하기 전까지는 대단히 흥미를 가지고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명에 대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울에 대한 그들의 반감과 분노가 되살아난 것입니다. 더이상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자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들은 옷을 벗어던지며 티끌을 공중에 날리고 고함과 흥분된 몸짓을 나타냈습니다.

a.시기(막15:10)

b.분노(전7:9)

2) 목숨이 위급함

상황이 갑자기 악화되자 천부장은 당황해서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그는 바울에 대항해서 일어난 그 분노에 대해 무언가 알 필요가 있었지만 군중들의 일관성 없는 고함소리로는 아무 사실도 알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자 천부장은 바울을 심문하기로 결정하고 채찍질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증인을 고문하는 것이 로마의 오랜 정책이기는 했지만 이처럼 단도직입적으로 고문을 시작하는 방법은 로마 시민에게는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채찍질을 당하기 위해 매어 달렸을때 백부장에게 자기가 로마 시민이라고 밝히며 항의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채찍질은 살인적인 고문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고문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a.채찍질(갈6:17)

3) 로마 시민권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전하자 천부장이 즉시 나섰습니다. 바울은 난폭한 취급을 받은 이후라서 로마 시민처럼 보이지 않았고, 더구나 천부장은 경험상 로마 시민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지를 알았던 까닭에 바울의 말에 의아해 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의 때는 로마 시민권의 매입이 가능했습니다. 정부 관리들은 이 특권을 팔아서 받은 뇌물로 사복을 채웠던 것입니다. 천부장과는 달리 바울은 부모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이에 천부장은 자기가 지나쳤음을 깨닫고 이후로는 적절한 예우로 바울을 대했습니다. 이제 그는 엄정한 법의 절차를 따라 처리해야 했기때문에 그 다음날 유대 산헤드린 공회를 명하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습니다.

a.로마 시민권(행16:37)

 

결론

바울의 소명과 회개,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의 택함은 그를 담대히 유대인들에게 증거케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의 사역에서 이 소명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죽음의 채찍질 앞에서도 담대하며 지혜로운 바울의 모습에서 한 전도자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 핵심

22:1-21

체포당한 바울이 군중앞에서 행한 변론이다. 그는 자신이 이방 전도 여행에 나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로마 시민권(22:25-29)

로마법에 의하면 적법한 절차없이 로마 시민권자를 체포, 구속, 매질하거나 수갑이나 차꼬를 채우는 일이 금지되었다. 그외에도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는 많은 혜택을 누렸다. 당시, 로마인이 아니더라도 로마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였다. 첫째, 날 때부터 세습받는 경우로서 바울이 이에 해당했다. 둘째, 본문의 천부장처럼 돈을 주고 사는 경우이다. 셋째, 로마를 위해 큰 공을 세운 경우이다.

 

# 묵상

박해자였던 바울 ( 22:4 )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의 도를 핍박하여 그 도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로들이 증인이 될만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정작 회심하였을때는 누구보다 큰 일을 감당하는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만난 예수님 ( 22:7-11 )

다메섹 도상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핍박받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핍박받은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홀로 세상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늘 함께하시며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함께 겪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나니아의 역할 ( 22:12,13 )

아나니아는 바울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박해자 바울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를 피하려 했으나 환상을 본후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이었음을 알고 바울이 눈을 뜰 수 있도록 안수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지시 ( 22:18-21 )

하나님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지않을 것을 아시고 바울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런 단순한 이유외에도 바울을 지키시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본문 말씀은, 바울이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불리워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백부장에게 항의한 바울 ( 22:25 )

바울은 자신을 신문하려는 백부장에게 ‘너희가 로마 사람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때에는 이 권리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로마 시민은 재판을 받지 아니하고는 절대 채찍으로 때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채찍은 가죽에 짐승의 뼈를 박았기 때문에 살이 찢기고 심하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었습니다.

공회앞에 세워진 바울 ( 22:30 )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안 천부장은 결박을 풀고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그들 앞에 세웠습니다. 여기서 제사장들과 온 공회란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키는데, 천부장은 이 문제가 종교적인 문제이므로 유대교 최고 사법 기관이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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