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 25:1-12

우리는 흔히 주인이 바뀌면 법도 바뀌고 관습도 바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곳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한 후에도 여전히 바울은 그로부터 전임 총독에게서 받은 것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베스도 역시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바울을 석방시켜 주려고 하지 않았다.

1. 바울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대제사장과 다른 유대인들의 강청(1-3)

이제 그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베스도에서 청원하였는지를 살펴보자. 베스도가 도임한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1절). 대제사장들은 베스도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베스도는 가이사랴에서 삼일동안 머물렀으며, 그곳은 전에 바울이 죄수로 감금되었던 장소였다.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당도하자마자 대제사장들은 서둘러 그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그들이 얼마나 악감을 품고 그를 고소했는가를 살펴보자. 그들은 공정한 재판이 개정되기도 전에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2절). 그리하여 그들은 이 사건의 재판관이 될 총독을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자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책략은 그들이 충분히 생각하여 꾸민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치밀하게 심사숙고된 또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총독이 친히 바울을 재판하기 전에 바울을 암살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구실이 얼마나 허울 좋은가! 이제 그들은 총독인 그가 예루살렘에 있으니 바울을 그곳으로 옮겨와 거기서 재판할 것을 제안하였다(3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모독하였다는 죄로 기소되었으며, 범죄자들은 그 범죄가 저질러진 곳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바울을 호송하는 도중에 그를 습격하여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베스도의 호의를 얻고자 하였다(3절). 기소자들의 사명은 범죄자로 추정된 자에 대하여 법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수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 재판관의 호의를 사려고 한 것은 결코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 재판관의 호의는 죄수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그들은 바울을 없애기 위해 총독의 호의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2.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재판받게 하려는 총독의 결심(4,5)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명령하였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이 일을 적대자들의 손아귀로부터 바울을 보호하는 방편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예전처럼 그들의 음모를 발각되게 하지 않으셨지만, 총독의 마음을 움직여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옮겨가지 않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음모를 무산시키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한가지 방법만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총독은 만일 그들이 가아사랴로 와서 바울을 고소할 경우, 그들의 고소 내용을 듣고 공정한 입장을 취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베스도는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이 사람을 송사하라. 또한 증인들도 함께 가서 그들의 증거를 제시하도록 하라'고 말한다(5절). 베스도는 바울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까지는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만일 바울에게 유죄사실이 있다면, 그들은 그의 유죄 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3. 바울에 대한 베스도의 재판(6-8)

베스도는 열흘동안 예루살렘에 체류한 후에 가아사랴로 내려갔다(6절). 대제사장들이 기소에 너무 열을 올렸으므로 베스도는 이 사건에 우선권을 두어 이튿날 그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려 하였다.

(1) 개정되자 죄수인 바울이 법정에 출두하였다. 베스도는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였다(6절).

(2) 기소자들이 죄수에 대하여 고소한 기소 내용(7절) : 본문에 '유대인들이 둘러서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숫자가 많았음을 시사한다. 그들이 둘러선 것은 가능한한 판관을 놀라게 하여 그들의 사악한 음모를 관철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적어도 죄수인 바울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아주 정당하고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둘러서서 여러가지로 중대한 죄목을 들어 고발하였다. 그들은 꾀와 악의를 총동원하여 모함할 수 있는한 바울이 불순하고 가증한 자라고 법정에 고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진술한 내용을 능히 증명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에 대한 그들의 진술은 모두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온갖 거짓된 중상모략을 당한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못된다. 그들은 심지어 재판자리에서까지 중상모략을 한다.

(3) 바울의 자기 변론(8절) : 그는 자신의 무죄를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즉 그는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율법을 세웠다.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려는 것은 전혀 율법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성전을 모독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는 가이사에 대해서나 그의 정부에 대해서도 거역하지 않았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볼때, 유대인들은 그를 고소하면서 그가 현재의 고위권력층에 대한 반감을 품었다는 몇몇 실례를 증거로 제시하였던 것 같다. 그들의 이러한 고소는 바울로 하여금 그 문제에 관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4. 가이사 황제에게 호소한 바울(9-11)

그의 호소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바울에게 '네가 나의 일을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행 23:11).

(1) 베스도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도록 제의함(9절) :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베스도는 죄수인 바울보다는 오히려 기소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베스도는 바울을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에게 넘겨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고 물었을 뿐이다(9절). 총독은 바울에게 그곳으로 가도록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의 동의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다.

(2) 베스도의 제의에 대한 바울의 거절과 그 이유

첫째,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으므로 그가 가이사랴에 위치한 로마인들만을 다루는 법정에서 재판받는 것이 가장 합법적이었다. 내가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10절). 법정은 가이사의 명의와 그의 권위 및 위임으로 개정되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대리 직무자 앞에 서는 것을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 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바울의 진술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도 시민권에 대한 사법적 조치로부터 면제 받을수 없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다. 즉 그 사역자들이 견책을 당할수 밖에 없는 죄를 범한 현행범일 경우에 그들은 마땅히 재판을 받아야하며, 비록 그들이 결백하다 할지라도 법정의 심문에 순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바울은 유대 민족의 한사람으로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불쾌하게 했던 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라고 말했다(10절). 무죄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백을 호소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셋째, 바울은 기꺼이 율법의 규례를 준수하였으며 율법에 저촉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11절). 만일 그가 사형당할만한 어떤 중죄를 범했다면, 그는 결코 재판을 회피하지도, 법정 투쟁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라(11절). 만일 재판에 회부된 피고가 무죄하다면, 그는 바울처럼 이렇게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삽나이다(11절). 아니 "내게 혐의가 없는한 나를 총독 자신에게도 넘길 수는 없나이다. 왜냐하면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큼 무죄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총독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보호를 주장하였다.

(3) 바울이 법정에 호소함 :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계속적인 위협을 받았으며, 그를 그들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음모 또한 잇따라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공정한 판결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다음과 같이 항변하였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11절).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길바에는 차라리 네로 황제에게 넘겨주시오." 아브라함의 한자손이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피하기 위해 네로에게 호소할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과 예루살렘보다는 로마가 오히려 안전한 장소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 베스도의 최종 판결(12)

바울의 적들이 그의 죽음으로 이 사건이 마무리 되기를 원했던 반면에 바울의 친구들은 바울의 석방으로 사건이 종결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건이 미결로 남게 되자, 그들 양쪽 모두는 실망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때로 서서히 진행된다는 하나의 실례이다. 우리는 종종 성급함때문에 우리의 소망과 두려움으로 인한 수치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꾸준히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 재판장은 이 문제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그 배석자들은 유대인의 회의단이 아닌 베스도 자신의 상임고문단이었다.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로마 시민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최고의 법정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고 말하였다(12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때 율법에 의거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자들은 그들이 호소한 율법에 의하여 정죄받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으로써 복음에 호소하는 자들은 그들이 호소한 복음에 의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 아그립바의 베스도 방문 25:13-27

(1) 여기서 우리는아그립바왕 앞에서 바울의 사건에 대한 또다른 청문회가 개최되었음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단지 아그립바의 호기심을 만족시킨다(13절).

1) 방문객들

첫째, 아그립바왕이 있었다. 그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시킨 헤롯(별칭은 아그립바-역주)의 아들로 충을 먹고 죽은 자였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당시에 통치했던 헤롯 대왕의 증손자였다.

둘째, 버니게가 아그립바 왕과 동행하였다. 그녀는 아그립바의 여동생으로 그의 삼촌 헤롯의 미망인이었다. 남편이 죽은후에 그녀는 자기 오빠인 아그립바와 함께 살았다. 후에 그녀는 길리기아의 왕 플레몬과 재혼하였으나 곧 그와 이혼하고 오빠인 아그립바왕에게로 돌아왔다.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는 그후 그녀와 티투스 베스파시안 황제사이에 있었던 불륜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벨릭스의 아내인 드루실라는 그의 또다른 여동생이었다. 당시 상류 계층의 사람들은 이처럼 음란한 무리들이었다!

2) 이 방문의 의도 : 그들은 베스도의 총독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베스도에게 인사차 들렀다. 그들이 베스도를 방문한 목적은 오직 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껏 기분을 내고, 그의 궁전에서 벌어지는 피로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리라.

(2) 베스도는 아그립바왕에게 바울과 그의 사건에 관해 설명하였다.

1) 아그립바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 : 아그립바가 베스도의 설명을 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그가 재판관으로서 충분히 파악해야할 율법과 관습의 문제가 이 사건속에 있었기 때문이며, 유대인인 그가 알아야할 종교적인 문제들이 또한 이 사건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2) 아그립바의 자문을 얻기 위한 목적 : 베스도는 신임 재판관으로서 오랫동안 경륜과 연륜을 쌓은 자들의 자문을 쾌히 받아들였다. 그가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에 관한 문제를 보고한 내용은 14-21절에 수록되어 있다.

첫째, 베스도가 이 지방의 총독으로 부임했을때, 바울은 죄수의 상태로 수감되어 있었다. 벨릭스가 한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14절). 그러므로 설사 바울을 구류시킨 것에 어떤 잘못이 있었다 해도, 베스도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둘째, 유대의 산헤드린은 바울에 대한 극도의 악감을 품고 있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바울은 위험 인물이므로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하더이다"

셋째, 베스도는 죄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로마의 법을 주장했으며, 죄수의 증언을 듣지않고는 구형하지 않으려 했다(14절). 무릇 피고가 원고들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사람의 법이 아니라(16절). 로마인들에게 있어서는 상대방의 진술을 듣는 것이 하나의 통례였다. 상대방이 말하는 자기 변호의 진술을 끝까지 듣기전에는 그들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거나 그들의 말과 행동을 비난해서는 안될 일이다.

넷째, 베스도는 법정의 의무에 준하여 바울을 재판하였다(17절). 베스도는 그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였다. 그는 그들이 그와 함께 여기 왔을때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바울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그는 가장 엄숙한 의식에 따라 바울을 재판하였으며 또한 바울에 대한 소송 사건을 최종적으로 종결시킬 목적으로 대법정을 소집하였다.

다섯째, 베스도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바울을 고소한 내용에 대해 실망하였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였던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18절). 총독이 바뀔때마다 기소자들이 이 사건을 의뢰하였으므로 그는 바울이 그들의 사유 재산이나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굉장한 위험 인물로써 고소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핵의 외침이 지나치게 크고 격렬하였으므로 그 때문에 주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악한 무리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악한 자들로 몰아세우기 위하여 그들은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구세주에 대한 그들의 소요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바울을 고소한 그들이 로마 법정에서 인정할만한 어떤 증거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마치 갈리오가 기대했듯이(행 18:14), 총독이 정당한 판결을 내릴수 있는 증거를 그들이 제시하도록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바울이 범한 죄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바울의 주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장만을 고집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신적 신앙에 대한 문제만을 제기했다. 이 점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그는 유대인의 종교를 미신적 신앙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그들의 법에 따라 보호했을 뿐 그들의 미신을 보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커다란 문제가 된 것은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였던것 같다(19절). 이 로마인이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문제, 그리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쟁점으로 대두된 다음의 몇가지 문제들에 관해 얼마나 하찮게 말하고 있는가를 보라. 그 문제들은 그리스도가 약속된 메시야인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와 그의 메시야성에 대한 확증 및 죽은 자들로부터의 그의 부활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예수가 살아계시다라는 바울의 확언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만일 그의 확언이 진실되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헛수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베스도는 이러한 사건을 가장 잘 다룰수 있는 유대인의 법정에 이 소송을 이송할 것을 바울에게 제안하였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했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20절).

일곱째, 바울은 자신에 관한 사건이 예루살렘보다는 로마에 이송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베스도는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고 말했다(21절).

(3) 베스도는 아그립바앞에 바울을 데려왔다.

1) 그 왕은 바울과 대면하기를 원했다.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22절). 아그립바는 바울에 대하여 이미 들은바가 있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베스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말을 듣는 것 이상의 어떠한 것도 아그립바의 기대를 충족시킬수 없었다. 아그립바는 바울의 설교를 듣기위해 집회에 참석했던 적이 결코 없었으며, 이 점은 헤롯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예수와 바울을 그들 앞에 출두시켰다.

2) 베스도는 아그립바왕의 바울과의 대면 신청을 승락하였다. 그래서 그는 '내일 들으시리이다'라고 말했다(22절). 우리는 여기서 체포되어 생매장된 것 같았고, 또한 선을 행할 모든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았던 바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이로써 바울은 수많은 상류 계층의 회중앞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벨릭스는 그리스도의 신앙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바울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아그립바와 베스도는 공개적으로 그의 설교를 듣기로 합의를 보았다.

3) 심문을 하기 위한 엄청난 준비(23절) : 이튿날 공청회의 장소에는 대단한 위풍이 서렸다.

①아그립바와 버니게는 이번 기회로 자신들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그들은 크게 위의를 베풀었다(23절). 그들은 말 그대로 매우 황홀한 옷차림으로 나왔다. 엄청난 화려함은 엄청난 장식을 뜻한다. 이 엄청난 장식은 그 대신에 실질적인 탁월함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못하며, 진정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한다. 그것은 단지 허영심만을 유발하게 한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전시에 불과하며, 꿈과 허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갖춘 외모의 화려함에서 다음의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들의 화려함 이면에는 음탕한 그들의 성격이 숨어있고 그 외관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들의 더러움을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아는 모든 덕망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장식을 꾸민 그들을 사악한 자들이라고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들의 화려한 모습이 법정에 선 초라한 죄수 바울의 진정한 영광의 광채로 무색해졌다는 사실이다. 선한 일을 위한 그의 매임은 그들의 금사슬보다 더욱 영광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간악한 사람은 세상적인 위의로 자신을 감춘 반면, 선한 사람은 오히려 초라한 모습을 지닌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누가 세상적인 위의를 좋아하겠는가?

②천부장들과 그 도시의 고위계층 사람들은 이 기회에 참석하여 베스도와 그의 내빈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죄수로서 법정에 출두할 바울이 이 회견에 대해 염려한 것보다, 위의를 갖추고 법정에 참석한 자들이 자신들의 옷에 대한 걱정때문에 더욱 당혹해 했을 것이다.

(4) 베스도는 이 사건의 전모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는 군중들에게 정중히 경의를 표하고 연설하였다. 그는 '아그립바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라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는 고의적으로 버니게를 무시하는 말투로 '모든 신사 여러분'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남자들로부터 여자들을 따돌리는 것을 의미할때 사용된다. 한편으로는 버니게가 이런 모임에 뭣하러 참석했느냐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는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대단히 원한을 사고있는 죄수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예루살렘과 이곳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그는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24절). 베스도는 바울의 무죄를 천명하였다.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25절). 그 사건의 전모를 듣고나서 재판관인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볼때, 그는 바울에게 죄가 없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스도가 바울을 석방해야할 것을 알면서도 왜 그를 석방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울을 증오했으므로 만일 그가 바울을 석방하였다면, 그 원성이 자신에게로 돌아올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양심을 가진 인간이 양심에 따라 행동할 용기가 없다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베스도는 이 사건의 현재상황, 즉 바울이 황제에게 호소한 사실과 그 호소를 베스도 자신이 허락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내가 그를 보내기로 작정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25절). 이로써 이 사건의 소송은 본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베스도는 그 사건이 조용하고 공평하게 심문되도록 그들의 협조를 요망했다. 다시말해서 그는 이 자리를 빌어 그가 황제에게 보고할만한 자료를 얻을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26,27절). 베스도는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줄 아나이다'라고 하였다(27절). 왜냐하면 그 죄목이 제시되어야 황제가 신속한 판결을 내릴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죄목을 발견할 것이 없었다. 즉 바울을 송사하는 제보들이 너무나 혼잡했으며 그것들 중에서 베스도가 죄목으로 적용시킬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바울을 공개적으로 심문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죄목에 적용할 제보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였던 것이다.

 

# 해설

후임 총독 베스도 앞에 선 바울 ( 25 )

벨릭스의 뒤를 이은 베스도는 도임한지 삼일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의 내용을 듣고 가이사랴로 내려와 바울을 재판자리에 세웁니다. 이때 바울은 베스도에게 가이사의 재판자리에 세워줄 것을 요청합니다. 얼마가 지나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그때 베스도는 바울의 일을 의논하므로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 서게 됩니다.

 

1. 베스도의 재판

1)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의 고소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함을 알면서도 감옥에 가둬두었으나 종국에는 그 지위를 잃어버리고, 그 뒤를 이어 유대 총독으로 베스도가 부임을 했습니다. 가이사랴로 부임한 베스도는 삼일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높은 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이때를 바울을 살해할 호기로 생각한 듯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재판할 것을 청했습니다. 이때를 기회로 매복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들에게 가이사랴로 내려와 자신의 법정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 내용을 진술하라고 명했습니다.

a.재판관의 공의(신16:18)

b.악한 행실(약3:16)

2) 베스도의 재판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장로들이 총독의 명령대로 했을때, 바울은 그들이 고소한 죄목 하나하나에 대해 2년전 벨릭스 앞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직접적인 반론으로 대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무죄함을 힘있게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의 주재하에 열리는 심문에 응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베스도가 산헤드린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자신을 다시 죽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이 재판을 유대 통치자의 하급 법정에서 로마의 최고 법정으로 옮길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이 권리를 사용해서 가이사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a.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함(막15:15)

b.가이사에게 호소함(행26:32)

3) 가이사에게 호소

바울은 베스도가 이런 종류의 종교적인 고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있음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으로의 위험을 생각하여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했습니다. 한때 이 권리는 로마의 주권을 가진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형태를 띠었었으나 나중에는 시민들의 주권이 황제에게 위임되었습니다. 황제는 직접 그 사건을 심리하거나 국가의 고위 관리에게 그의 법적 권리를 위임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의 법정에서는 베스도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지역적인 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가이사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그가 여러 속주들을 다니며 로마법의 공명정대함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을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가이사앞에 선다면 제국 권력의 심장부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얻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이제 이 문제를 가이사에게로 가져갈수 있었기에 조금은 안심을 할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로마로 가야했던 것입니다.

a.복음 전파(고후4:5)

b.평판을 좇는 인간(엡6:6)

 

2. 베스도를 방문한 아그립바와 버니게

1) 아그립바와 베스도

베스도가 바울을 심문한 직후 헤롯 아그립바 2세와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베스도를 방문하여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것을 축하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2세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헤롯의 장손입니다. 당시 그는 약 30세의 나이로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팔레스타인 북동부를 다스렸습니다. 그의 배경에는 바울을 심문할 특별한 자격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 종교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사건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문이 있었으나 마침 도움이 될 사람이 찾아와서 그에게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인사를 나눈후 베스도는 아그립바 같은 유대교 전문가야말로 이 소송을 이해할수 있을뿐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할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서 바울에 관한 문제를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아그립바는 즉시 흥미를 느끼고 직접 바울을 만날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베스도는 기꺼이 동의했고, 심문을 공개 질의의 형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아그립바앞의 바울(행9:15)

b.호기심(눅9:9)

2) 베스도의 개정연설

다음날 총독과 그의 손님들은 군대의 고위 장교들과 가이사랴의 지도자들이 배석한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왕 아그립바와 그의 누이 버니게는 이 사건을 자기들의 지위와 의복과 의식을 전시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누가는 아그립바와 버니게 그리고 고위 관리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회견실에 있는 비천한 죄수 바울을 대조시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마침내 바울이 그들앞으로 불려왔습니다. 총독은 바울을 소개하고 그의 소송건을 요약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에게 유대인들이 바울 죽이기를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이미 바울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벨릭스가 그랬던 것과 같이 베스도도 바울은 죽을 죄를 범한 일이 없음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베스도에게 고민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바울을 고소할만한 확실한 내용이 없이 가이사에게 보내는 일이 베스도에게는 좋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를 잘 아는 아그립바 왕과 의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이번 심문을 통해서 가이사에게 보낼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특히 아그립바앞에 세워서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a.심문(마27:2)

b.과시(사39:2)

 

결론

바울에게 죽음의 위협은 끊임이 없는 듯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바울에게 죄가 없음이 발견되어졌고 바울 자신도 담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힘있게 선포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반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채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의 유대인들이 바로 그 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바울에게 담대함을 주시고 마침내 로마로 가는 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 핵심

25:1-12

베스도가 새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여 재개된 재판에서도 바울을 처형할 죄목이 입증되지 못했다. 이때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고했다.

항소권(25:11,12)

당시 로마 시민권자들은 황제에게 호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즉 로마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의 하급 재판정에서 받은 재판에 이의가 있을경우 그 판결에 굴복해 황제가 주재하는 로마 대법정에 항소할 수 있었다. 이러한 항소권은 로마 공화정이 수립된(B.C. 6세기경) 이래 계속 보장되었다고 한다.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은 미결수의 신분으로나마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권리를 사용했다.

  

# 묵상

베스도의 역할 ( 25:4, 5 )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만난 대제사장과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다시 고소하며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청하자,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곧 떠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가서 그에게 옳지 않은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고 했습니다. 베스도는 아마도 전에 모의했던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거나 바울을 호송하기가 번거로워서 청을 무산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베스도를 통하여 다시 한번 당신의 종인 바울을 지켜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베스도의 제의와 바울의 답변 ( 25:9-12 )

베스도는 부임 초기부터 유대인들의 인심을 잃을까봐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겠느냐’는 제의를 하게 됩니다. 이 제의에 대하여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답변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목표는 로마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 시민은 황제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었으므로, 바울은 그것을 로마행의 기회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위의를 베푼 아그립바와 버니게 ( 25:23 )

여기서 위의는 화려한 행렬이나 과시를 뜻하는 말로, 그들은 자신들을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당당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의상속에는 음탕하고 추한 그들의 본성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은 바울의 용기와 진실에 비하면 배설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 ( 25:26-26:3 )

베스도는 황제에게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후 상소할 재료를 얻고자해서 바울을 아그립바왕 앞에 세웠습니다. 베스도는 이미 바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로마 황제의 신하로서 공공 질서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보고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바울을 잘 아는 아그립바 앞에서 한번더 심문함으로써 상소할 재료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그립바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으로서 유대인의 풍속과 규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문제에 관해 대치하고 있는 유대인과 바울의 싸움을 잘 판단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복음증거할 기회를 얻은 것이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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