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여호수아에 대한 이상 3:1-7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처음 정주하게 되었을때 그 선두에 여호수아라 하는 지도자가 있었다. 그리고 본문에 포로 시대이후 두번째로 가나안 땅에 정주하려고함에 있어 매우 활동적인 사람으로 여호수아라고 하는 똑같은 이름의 또다른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곧 '구원자'라는 뜻이다. 이들 두사람은 모두 장차오실 이로 우리의 대군이시며 대제사장되신 이의 모형이다. 스가랴와 대화하던 천사는 그에게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스가랴는 그를 자주 보았던것 같으며 따라서 두사람 사이가 매우 가까웠던것 같다. 그러나 그는 단지 사람들앞에 비춰진 그의 모습을 보았을뿐이었다. 따라서 여호와앞에 선 그의 모습은 이상을 통해서 보아야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앞에 섰고. 이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즉 그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섰던 것이다. 죄와 부패는 우리가 하나님앞에 서게될때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거스리는 두가지 커다란 저해요소이다.

(1) 여호수아는 죄인으로 고소되었으나 곧 의롭게 되었다.

1) 맹렬한 방해가 그에게 있었다.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사단은 마치 기소자 혹은 증인처럼 서있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을 다시 세우려하시자 사단은 그들가운데서 발견되는 죄를 이유로 들어 그것을 반대하였다. 사단으로하여 우리를 대적할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우리는 사단의 교활함과 악의가 우리에게 가져올 온갖 반대에 맞설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를 대적하라. 그러면 그가 우리를 피할 것이다.

2) 승리의 방어가 취해졌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2절). 재판장되신 이가 성도들의 친구라는 것은 그들의 복이다. 여기서 사단은 권세를 가지신 이에게 책망을 받고있다. 처음의 '여호와'는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는 여호와를 말하는 것이고 두번째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에서의 '여호와'는 창조주되신 여호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효과있게 하는데 사용된다. 사단이 제사장을 대적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에 대해 아무뜻도 이루지 못하게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곳을 택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을 택하셨을때 그는 그들이 가장 나쁜 것임을 아셨다.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여호수아가 그러했으며 제사장직이 그러하였고 그 백성들이 또한 그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하겠기에 그들을 위하여 그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있을 당시 비천할수밖에 없고 경멸받을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생각할수가 있다. 그들은 놀랍게도 불에서 꺼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가 그들을 버리시겠는가?

(2) 여호수아는 더렵혀진 자로 나타나지만 곧 정하게 되었다. 그는 모두가 부정한 자들로 여겨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있다. 그는 허름할뿐만 아니라 '더러운 옷'을 입음으로 그의 위엄있는 직무와 그의 거룩한 사역에 어울리지 않게하고 있었다(출 28:2). 여호수아의 옷은 그에게 부끄러움과 치욕을 끼쳤다. 그러나 그는 천사앞에 서있었다. 그는 직무를 수행하기위해 입을만한 깨끗한 세마포가 없었다. 이것은 제사장직이 비천하고 멸시받았을뿐만 아니라 거룩한 일에도 부정이 따라다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귀환한 유대인들은 우상숭배에서 떠났으므로 송사받을만한 어떤 부정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가운데 잘못된 많은 것들이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들과 다투어 싸우는 영적인 대적들이 있었다(스 1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앞에 서도록 허락받았다. 그를 깨끗케하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신자들안에서, 그리고 신자들을 위해 행해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이중적 역사를 나타내주는 두가지 일이 여호수아를 위하여 취해졌다.

1) 그의 더러운 옷이 벗겨졌다(4절). 이것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것 가운데 나타나있다. 권세있는 자로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때 그는 우리의 죄과를 제하여 버리신다. 즉 그는 우리의 본성을 성결케하시며 우리로 옛사람을 벗을수 있도록 하시고 타락한 애정과 정욕의 더러운 옷을 벗어던질수 있도록 하신다.

2) 그는 새옷을 입었다. 즉 더러움의 수치가 제거되었을뿐만 아니라 벌거벗음의 수치가 가려지게 되었다.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여호수아는 그 자신의 깨끗한 세마포를 가지고있지 않았으나 전에 더럽게 보였을때와는 달리 이제 그는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제사장으로 삼으신 자들은 그의 의의 흠없는 옷을 입고 그들에게 장식이 되는 성령의 은혜와 함께 하나님앞에 서게 된다.

(3) 여호수아는 그의 직임에 다시 임명되어 세워졌다.

1) 제사장직의 면류관이 그에게 씌워졌다(5절). 이것은 스가랴의 요청에 따라 행해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를 회복시키시거나 소생시키고자 하실때 선지자들과 백성들로하여금 그것을 위해 기도하도록 감동시키시고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것을 행하신다. 스가랴는 천사들이 여호수아의 머리에 관을 씌우기를 위해서 기도했으며 그것은 즉시 이루어졌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 제사장의 옷까지 입혀졌다.

2)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으로 불리우는(민 25:12) 제사장직의 언약이 여호수아와 더불어 새롭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직무의 특권'으로 증인들앞에서 그에게 선포되어지고 전달되어지고 있다(6,7절).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여야 했다. 즉 백성들앞에서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가야 했으며 신중히 걸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야 했으며 자기보다 낮은 제사장들이 각자의 의무를 다하도록 돌아보아야 했다. 그가 맡은 일을 잘 이행할때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실 것이다.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법을 만든다거나 다른 예배의식을 제정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집을 판단하여야 했다. 즉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들이 준수되고 있는지 돌보아야 했다.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너는 성전의 모든 뜰을 감찰할 것이며 각 곳에서 행해져야할 예배의식이 잘 지켜지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가 또 너로 여기섰는 자들중에 왕래케하리라.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자들이 곧 천사들중에 왕래하는 자들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듯이 그들 역시 그렇게 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9:10절에서는 '형제들과 같이된 종'이라고까지 하였다.

 

Ⅱ. 순에 대한 예언 3:8-10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종종 점차로 메시야에 대한 약속들로 나아갔듯이, 그리고 다윗의 나라가 메시야의 나라의 모형이었듯이, 여기서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더욱 위로 올라가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또한 여호수아의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그림자였다.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역시 죄인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대제사장이시다.

(1)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8절). 여호수아야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너는 이제껏 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느니라. 그러나 보라 너보다 더크신 이가 가까이에 계시니라. 이제 너와 네앞에서 들으려고 앉아있는 네 동료 선지자들은 그에 관해서 들을지니라." 그들은 '예표'를 위해서, 즉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상징과 모형을 위해 세워진 자들이다. 그들은 놀라는 자들이다(한글개역에는 '예표의 사람이라'고 되어있음-역주). 즉 그들은 자기들의 형편이 얼마나 복되게 바뀌었는가를 생각하고서 놀랐던 것이다.

(2) 여러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약속의 내용은 성전건축이라고 하는 큰일에 종사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그의 친구들을 격려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메시야가 오시리라고 하였다.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그는 순이시다. 여러 곳에서 그는 그와 같이 불리우고 계시다. '여호와의 순'(사 4:2, 한글개역에는 '싹'이라고 되어있음-역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순이 나며'(사 11:1, 한글개역에는 '싹'이라고 되어있음-역주). 그의 시작은 연한 순처럼 미약하나 때가되면 큰나무가 될 것이다(사 53:2). 그래서 그 가지에서 우리의 모든 과실을 거두게될 것이다. 그는 '여호수아앞에 세운 돌'이시다. 이는 아마도 여호수아가 참예한 가운데 아주 엄숙하게 놓여졌을 성전의 기초 혹은 주요 모퉁이 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나무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는 순이실뿐만 아니라 건축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는 기초이시다.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성부 하나님의 눈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고난당하는 중에 계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지켜보았다. 모든 선지자들과 구약의 성도들의 눈이 이 한돌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의 눈 역시 그의 위에 있다. 그들은 그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게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건축자들은 거칠고 눈에 거슬린다고해서 이 돌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잘 다듬고 매끈하게 하고 잘라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하실 것이다. 이 돌은 비록 기초로 놓여졌으나 보석이다. 새긴 돌이란 곧 대제사장의 흉패에 있는 보석들을 가리키는 듯싶다(출 28:21,22). 그에 의해서 죄가 제거될 것이다. 죄악과 죄의 권세 역시 마찬가지로 제거될 것이다. 내가...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대제사장이 자신을 장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이름들이 새겨진 보석들을 취하였을때 그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도록' 지시받았다(출 28:38).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그땅의 죄악을 담당하였으나 그것을 제할수는 없었다. 그 일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이었다. 어떤이들은 "새긴다"는 말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때문에 그리고 우리를 낮게하도록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가해진 상처와 채찍질을 나타내시기 위해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의 효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10절). 죄악이 사라지게 될때 우리는 평온한 가운데 쉴수 있게되며 악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수 있게된다. 우리는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그늘아래 앉아있으며 따라서 율법의 저주의 타는듯한 열기로부터 피할수가 있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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