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이스라엘과 다투시는 하나님 7:1-9

 

하나님께서는 오래참으시나 자신을 노하게 하는 백성들에게 항상 참으시지는 않으신다.

(1)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것에 대한 두가지 실례.

1) 하나님은 여기서 죄로 가득찬 민족을 치러오신다. 그는 먼저 한 심판을 내리시고 그다음에는 또다른 심판을 내리신다.

① 그는 기근 심판부터 내리신다. 선지자는 이상중에 이것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황충' 혹은 메뚜기를 지으시는 것을 보았다(1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노를 나타내는 도구로써 이 황충들을 지으셨다(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는 코끼리뿐 아니라 개미의 구조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 황충들은 '왕이 풀을 벤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때' 보내졌다. 이 심판은 그 이전에 베풀어진 긍휼을 생각할때 많이 완화된 것이라 할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풀이 처음 자라기 시작할때 곧 가장 많은 풀을 필요로하는 봄에 그 풀을 모두 먹어버리도록 이 곤충들을 보내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풀을 자라게한 다음 그들이 그 풀을 거둘때까지 기다리셨다. 황충들은 단지 '다시 움돋는' 풀(시골에서는 이것을 그루갈이 풀이라고 부른다)만을 먹도록 위임받았다. 그런데 다시 움돋는 풀이란 처음에 난 풀과 비교해 볼때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처음난 풀을 내버려둠으로써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비록 다시 움돋는 풀에 대해 피해를 입었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케될 것이다. 어떤사람은 이것이 그들을 황폐케하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쳐들어온 군대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② 하나님은 그 다음으로 불심판을 내리신다(4절).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그들에게 불심판이 임했다. 그 불은 아마도 큰 가뭄이나(태양의 열기는 풀을 시들게 할뿐 아니라 황충이 먹어버린 풀의 뿌리까지 태워버린다), 뼈속에 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격렬한 열병이나, 소돔과 고모라의(욜 4:11) 가옥을 불태웠던 것과 같은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이나, 우연이든, 원수들의 손에 의한 것이든 그들의 성읍이 방화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골이 황충에 의해 황폐해졌다면 성읍들은 불에 의해 황폐해졌다. 이 불은 하늘로부터 엘리야의 제단위로 떨어진 불이 도랑속에 있던 물을 핥고 지나갔던 것처럼 '큰 바다를 삼켜버렸다.'

2) 선지자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자 했다(2절). 선지자들이 해야할 일은 그들이 예언을 선포하는 대상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그들이 '재앙의 날'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① 선지자의 기도 :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2절). 그는 환난을 당하는 주요원인이 죄라고 생각하면서 죄에 대한 용서를 구원의 열쇠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곧 "청컨대 멈추소서 심판을 돌이키소서. 즉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진노를 멈추든지 원인을 제거하면 그 결과도 사라지는 법이다.

② 이 기도를 강화시키기 위한 선지자의 탄원 :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2절). 이 말은 5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다시말해서 그는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을 야곱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고 있다. 야곱은 이전에 받은 심판들로 말미암아 미약해지고 비천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심판을 받게되면 야곱은 완전히 멸망될 것이다. 그 백성은 이웃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도움을 줄 능력이 없다. 죄가 있으면 아무리 수가 많아도 순식간에 감소되며 아무리 용기가 많던 사람도 나약하게 된다. "그가 어떻게 서리이까?"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주지않는한 그를 돕거나 일으킬 친구가 전혀 없다.

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3절).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 단지 그의 방법을 바꾸셨을 뿐이다. 즉 그는 은혜안에서 또다른 길을 취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6절에서 그는 또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생명이 선지자들이 간구함으로써 구원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기도하고 선지자들이 기도할때 그 땅에는 엄청난 축복이 임하게 된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앞에 대한 집행유예를 요구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집행유예를 허락하시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흔번씩 일곱번을 용서하는 것보다(마 18:21) 더많이 용서하시는 것은 바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일이다.

(2) 종종 집행유예를 받으면서도 결코 올바른 길로 돌아서지 않는 자들이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받게되는 거절 : 이것은 한 이상을 통하여 선지자에게 보여졌다(7,8절).

1) 그는 이상중에서 '다림줄' 곧 석공이나 벽돌공이 벽을 똑바로 쌓아올릴때 사용하는 것과 같이 그 끝에 추가 달린 줄을 보았다. 그들은 이 다림줄이 있어야 바르고 진실하게 일할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방벽과 같았다.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소를 지키기 위한 방법과 같았다. 이 벽은 '다림줄'에 의해 정확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그 벽은 놋쇠로 만든 벽과 같이 오랫동안 단단하게 서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벽의 상태를 판단하시기 위해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계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여 그들이 어떤점에서 잘못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시고자 하신다. 그는 또한 그들의 벽이 어느 정도로 허물어질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다림줄을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려고' 하셨다.

2) 철저한 파멸이 예고되고 있다(9절).

① 백성들은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이삭의 산당들'로 불리고 있는데(16절), 어떤사람은 이것이 이삭이란 이름의 뜻인 "비웃음"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인근의 모든 열방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성을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또 자기들의 성전을 성소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우상숭배와 그들의 세상을 신뢰하는 마음에 대한 형벌로 이것들은 황폐하게될 것이다.

② 왕족이 제일 먼저 멸망할 것이다. 여로보암 2세는 이 당시 열지파를 다스리던 왕이었으나 그의 아들 스가랴때에 이르러 그의 가문은 멸절되고 말았다(왕하 15:10).

 

Ⅱ. 아마샤의 고발 7:10-17

 

아모스 선지자는 핍박을 받게되었다.

(1) 선지자 아모스를 모함하려고 왕에게 전달된 악한 정보(10,11절) : 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였다. 그는 바로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기던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였으며 벧엘의 대표자였다. 그는 아모스가 자기의 제단을 나쁘게 예언하자 아모스를 고발했다. 그것은 아모스의 전파내용이 인정을 받을경우 그 제단들이 곧 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종종 매우 가혹한 핍박자들로 돌변했다. 아마샤도 결국 아모스를 핍박하기위하여 여로보암에게 하나의 정보를 가져왔다.

1) 그가 고발당한 죄목은 반역죄었다.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가 당신을 폐위시키고 살해하려 하나이다. 그는 당신의 왕위를 차지하려 하고 있나이다."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수 없나이다. 이 말속에는 온나라가 그에게 격분하고 있음을 교활하게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겨져있다. 형제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왕과 왕국의 원수로 허위진술하여 고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도리어 고발당하는 그 형제들이 실제로 왕과 왕국의 가장 훌륭한 지지자들일수 있다.

2) 이 고발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11절).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그는 이미 이 아모스의 말을 입증할수 있는 증거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아모스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재했으며 또 그 중재를 통하여 그가 어떻게 두차례의 심판을 돌이키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 온땅이 회개할경우 멸망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아모스가 얼마나 빈번하게 확신시켰는가에 대해서도 왕에게 말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여로보암이 아모스의 이러한 통보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아모스 선지자를 존경했으며 자기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더 두려워했던것 같다.

(2) 아모스로 하여금 그 나라를 떠나도록 아마샤가 설득했던 방법(12,13절) : 그는 아모스를 아는체하면서 그로하여금 벧엘이 아닌 '유다땅'으로 가서 예언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1) 그는 벧엘이 아모스가 전도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벧엘은 '왕의 성소요 왕의 궁'이었기 때문이다. 이 왕의 궁은 왕족이 거주하는 곳일뿐 아니라 심판의 보좌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마샤는 어째서 벧엘이 아모스가 전도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였는가?

① 그것은 아모스가 궁전과 왕의 성소에는 어울리지 않을정도로 평범하고 무딘 설교자였기 때문이다.

② 그것은 왕의 성소에서 드리는 예배가 계속 아모스를 격분하게 했기 때문이다.

③ 왕과 그의 집안이 그들에게 속한 궁전과 성소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책망과 경고를 받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④ 그는 그곳에서 아무런 격려도 받을수 없었고 오히려 조롱과 위협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왕의 권세가 지지할뿐만 아니라 왕 자신이 솔선수범하는 그 우상숭배에서 돌이키도록 아무도 설득할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그곳에서 자기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은 기둥에다 자기의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2) 그는 유다땅이 아모스가 전파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설득한다. 너는 유다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그곳은 네게 안전할 것이며 그곳은 너를 환영할 것이라."

① 악한 자들은 자기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을 기꺼이 제거하려 한다.

② 세상적인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기 쉽다. 제사장인 아마샤는 자기의 신분을 통해 생기는 유익을 얻는 일에만 급급했다. 그래서 그는 선지자인 아모스도 자기와 같은 견해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3) 아마샤의 이 제안들에 대한 아모스의 대답 : 그는 자기의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았고 또 부자가 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단지 자기의 사역을 잘 수행하는것 뿐이었다. 즉 그는 털가죽속에서 편안히 자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선한 양심을 지키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로 결심했으며 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1) 그는 자기의 일과 자기의 자리를 고수해야하는 입장을 정당화시켰다(14,15절).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사무엘과 예레미야처럼 이 직책을 위하여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양육되지도 않았나이다. 나는 단지 가축을 지키는 '목자'이며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일 뿐이니이다." 그는 평범한 시골 사람이었다. 즉 그는 시골에서 자라고 시골에서 필요로하는 일을 한 자로 시골생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지자로 만들고 그에게 하나님의 일과 직책을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침묵을 지켜서는 안되었다.

① 그는 자기의 일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수 있었다.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사자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는 그를 보낸 왕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같다.

②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전에 간직했던 소박한 성품은 그의 정당성을 더 강화시켰다.

첫째, 그는 자기가 선지자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예언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둘째, 그는 예언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교육도 받지못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예언능력을 직접받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인할수 없는 증거이다. 본래 아무런 교육도 받지못하여 무지했던 사도들은 자기들의 지식이 '예수와 함께 있던'(행 4:15) 것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셋째, 그는 정당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직업을 통해 자기 자신과 가족을 편안하게 부양할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아마샤가 말했던 것처럼(12절) 양식을 위해서 예언할 필요가 없었다. 만일 그를 보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주시지않았다면 그는 이렇듯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사 50:7) 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드고아의 목자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리인의 권세를 받으면 벧엘의 제사장까지 수치스럽게 할수 있다.

2) 그는 아마샤의 방해에 대해 여호와의 이름과 그로부터 받은 권세로 아마샤를 정죄하였다(16,17절).

① 아모스에 대한 반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마샤와 그의 가족을 파멸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가족속에서도 아무런 위로를 얻지못할 것이다. 네 아내는...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또한 그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빼앗기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더러운 땅' 곧 낯선 이방나라에서 죽게될 것이다.

② 아모스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11절)라고 말한 것으로 인해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고 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다. 비록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입을 막는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막지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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