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이스라엘의 참회의 결의 6:1-3

 

이것은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는 선지자의 말이거나 아니면 백성들 서로가 권면하는 말로써 이해할수 있다.

(1) "우리가 더이상 앗수르에게 가지말고, 야렙왕에게 사람을 보내지도 말자. 다만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그를 경배하며 우리의 소망을 그에게 두자."

(2) "우리가 그에게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고, 그가 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로 돌아가자. 우리가 그를 변절한연고로 그가 우리를 치셨으므로, 우리가 그에게로 돌아가기까지 그는 우리와 화해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라. 찢으신 분이 우리를 치유하시리라. 치셨던 분이 우리를 싸매어 주시리라." 마치 유연한 손을 가진 능숙한 외과 의사가 부러진 뼈나 피흘리는 상처를 싸매어주듯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비로 그것을 하실 것이다. 아니, 어떤의미에서 그는 치유하시려고 찢으신 것이다. 어떤학자는 이것은 특별히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귀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고난가운데서의 그들의 구원이 그들에게 있어서 마치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기대한다(2절). "여호와께서 이틀후에 우리를 살리시며(즉 하루나 이틀안에, 잠깐사이에) 제 삼일에, 즉 시체가 우리 눈앞에서 매장되었다고 간주되었을때 그가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며, 우리는 그앞에서 살 것이라.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부활과 같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잠시동안 버리신다할지라도 영원한 자비로 모으실 것이라." 그러나 이것은 더나아가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스도께서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상징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모든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곧이어 뒤따를 영광에 대해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말씀속에서 이 비밀을 주의하지 않았지만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문자그대로 성취되었다. 그것은 그분은 오셔야할 분이시며 우리는 어떤 다른사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확증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언이 이와같이 "그가 우리를 일으키심으로 우리는 살게되리라"라고 표현된 것은 옳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첫열매로 부활하셨고, 우리는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통하여 살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3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비로 되돌아오실때 그는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더많은 지식을 주실 것이다. 그때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사 11:9).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열매와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명으로 이해될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얻는 더 큰 수단뿐만 아니라 지식을 증진시켜주는 은혜도 갖게될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온전하여질 것이고, 그러면서도 영원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의 나아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그것은 그가 자기 처소로 돌아가셨을때 우리에게서 거두어 들이셨던 그의 은총을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즉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실 것이다. 늦은 비는 땅을 신선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다. 이제 이것은 포로로부터 구원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그리스도와 복음의 은혜가운데서 완전한 성취를 보았다. 그의 나아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이는 그가 때가차서 오신 까닭이다. 세례요한 자신은 밝은 새벽별이었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을 것이다'(시 72:6).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늦은 비와 이른 비 둘다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열매맺는 선한 일은 그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Ⅱ. 책망과 권면 6:4-11

 

유다와 에브라임은 모두 여기에서 두가지 악한 일로 책망을 받는다.

(1) 그들은 불안정하였다. 즉 물같이 동요하였다(4,5절).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가를 보이시려고 인간의 방식대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려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에 대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내가 명예를 걸고 너희를 구원할수 없을때 너희를 내던지는 것외에 다른 무엇을 할수 있을까?" 여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소행을 보라.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같도다. 때때로 그들에게 나타났던 선은 아침 구름과 이슬처럼 곧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들의 인애를 열납하실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인애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침구름과 이슬같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우리 자신에게 유익을 전혀 주지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한 약속을 하고 실행치 않을때, 지속적이고 불변하여 끊임없이 행하지 못할때 그들의 인애는 아침의 구름이나 이슬과 같다고 할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조악하고 기형적이기 때문에, 마치 통나무나 돌을 사용하기위하여 쪼개듯이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쪼개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라." 그들은 걸핏하면 선지자들이 그들을 죽였다고 말하였다. 그때 선지자들은 성실하게 그들에게 대해 처신하였다. 그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일정치 못하였다(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쪼개셨다. 죄인들의 마음은 마치 거친 돌과 같다. 그것이 모양을 갖추기위해서는 상당한 수고를 필요로 한다. 또한 그것은 옹이가 많은 통나무와 같다. 그래서 어려운 손질을 많이 하지않고는 다듬어지지 않는다. 종종 목회자들이 심하게 책망해야할 사람들이 있다.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때문에, 책망받는 자가 책망하는 자를 정면으로 대항하고 그를 원수처럼 여긴다 하더라도 말씀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해야한다.

하나님은 그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하셨다. "내가 내 입의 말에 따라 내 심판으로써 그들을 죽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죄나 죄인에 대하여 죽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큰 수고를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그 수고를 통하여 원하는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고한 불행을 내리신다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가혹하다고 비난할수 없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이 공정하고 의롭다고 분명하게 고백한다.

(2) 그들은 그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치 못하였다(6,7절).

1) 하나님이 그들과 맺은 언약은 다음과 같다(6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서 인애는 4절에 있는 인애, 즉 선함(헤세드), 경건, 고결함으로 번역되는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것은 모든 실천적 신앙에 대해 사용되며 신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대해 널리 사용되는 자비(charity)와 같은 단어이다. 이것은 예레미야7:22,23절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 아마 이것은 그들이 버린 하나님과 그들이 쫓아간 이방신들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언급되었을 것이다.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요구하시는 주요한 일이므로, 그것이 없는 경건의 모양은 아무소용이 없는 것이다.

2) 그들은 이 언약을 얼마나 만홀히 여겼는가! 그들에게는 지키도록 위탁된 선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제사와 번제의 장롱속에 있는 인애와 경건,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보석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롱은 지켰지만 그들의 진실을 팔아버렸다. 천박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보석들을 저당잡혔다. 그것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쟁론하신 것이다(7절).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아담이 순결의 언약을 범한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은혜의 언약을 범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불성실한 관계를 하나님께 패역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욕이며 대적이기 때문이다. 요단 건너편을 바라보라. 그 지역은 이웃나라들에 대하여 가장 위험하게 드러나있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 지역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고자 부심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거기서 매우 대담하게도 대부분이 하나님의 존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8절). 갓과 므낫세 반지파의 지경에 있던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었다. 라못 길르앗은 레위인의 성읍으로 요단 건너편에 있는 세 도피성중 하나였다. 거주민들은 거룩한 지파이었지만 행악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뇌물을 위하여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거룩한 일을 주요임무로 삼는 자들이 가장 악한 자만큼이나 악하였다(9절). 제사장의 무리가 잔인하고 피에 목말라 하였다. 그들은 교활하였다. 그들은 세겜 길에서 살인하였다. 그들은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하는 자들이었다(그 목적을 위하여 세겜 길이 나 있었다). 아니면 어떤학자가 생각하듯이 '세겜 길에서'라는 말은 그들의 조상 레위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사기와 속임으로 세겜 사람들을 죽였던 것과(창34장) 같은방법을 나타낸 말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그것은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행한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하여 부인할수가 없는 것이다. "유다를 들여다 보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였음을 발견할 것이라"(11절).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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