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다니엘의 깨달음과 기도의 결심 9:1-3

 

우리는 여기서 다니엘이 그 어떤 왕이 그에게 행하도록 했던 것보다 더욱 훌륭한 직무에 임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것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또 그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는 이 일을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수행하였다. 다니엘이 하나님과 이러한 교제를 가졌던때는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 때였다(1절). 다리오는 자기 조카 혹은 손자인 고레스와 함께 바벨론을 정복하고서 새로 갈대아인의 왕이 된 사람이었다. 이 해는 유대인의 포로기간이 끝나는 칠십년이 되는 해였다. 다니엘은 '서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2절). 그로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게 한 책은 예레미야의 책이었다. 그는 그 책안에 그것이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예레미야25:11절에도 마찬가지 말씀이 나타나있다. '이 온땅이 황폐하여...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여기서 "황폐"란 단어는 다니엘이 예루살렘의 "황무"(2절)에 사용했던 것과 같은 단어인데 이는 다니엘이 이 글을 쓸때 예레미야서가 그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다니엘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성취하시고자 하셨던 구원을 준비하도록 하기위해 기도로 간구한다. 내가...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이는 의무에 있어서의 그의 생각의 확고함과 그의 믿음의 견고함을 나타낸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을 향하는 표시로 그의 얼굴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들었을 것이다. 그 자신의 죄와 그의 백성의 죄때문에 하나님앞에서 느끼는 깊은 통회의 표시로써, 그는 기도할때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썼다.'

 

Ⅱ. 다니엘의 기도 9:4-19

 

우리는 여기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그 기도속에서 행한 고백을 보게된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4절). 기도할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수 있어야 한다.

(1) 그는 겸손하고 경건한 기도를 드리며 그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1) 두려워해야할 분이신 하나님 :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즉 당신은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을 가장 두렵게 만드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2) 신뢰해야할 분이신 하나님 :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를 사랑하는 증거이다. 그는 말씀하신 것보다 더 선하실 것이다. 이는 그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약하신 것보다 더크게 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하나님앞에 그의 백성의 비참함을 내어놓고 약속을 이행해주실 것을 간청할때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함은 합당한 일이었다.

(2) 죄를 회개하는 고백이 나타나고있다(5,6절).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때 우리는 국가적인 죄때문에 우리 자신을 겸비케해야 한다. 그들의 죄를 더욱 무겁게했던 두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위배하였기때문에 그들의 죄가 더욱 무거워졌다.

2)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경고를 무시하였기때문에 그들의 죄가 더욱 무거워졌다(6절). 우리가 또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나게 해주는 주의 종 선지자들이...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3) 그는 자신들에게 임한 모든 심판을 돌아볼때 하나님께서 의로우셨음을 겸비하게 인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기들을 이 모든 환난가운데 빠지게 한것은 바로 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에 있는 각국으로 흩어졌고, 그리됨으로 인하여서 미약해졌으며 궁핍하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7절). 그들은 스스로 이방 민족들과 혼합하여 자신들을 더럽히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이방 민족들과 혼합되게 하기 위하여 강탈당하게 하셨다. 다니엘은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이 성경을 들어맞게 한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11절). 즉 이 저주는 모세의 율법가운데 있는 것으로 맹세에 의해 비준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이 삶가운데서 일상적으로 겪는 그런 류의 환난이 아니며 그 안에 하나님의 진노라고하는 특별한 징후를 지니고있는 것이었다. 온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같은 것이 없나이다(12절)." 교회의 이름으로 '내게 임한 근심같은 근심이 있는가'(애 1:12)라고 탄식하던 예레미야의 애가가 또다른 비슷한 물음을 생각나게 한다. "내 죄와 같은 죄가 있는가?" 그는 전백성, 즉 가장 높은 자에게부터 가장 낮은 자에 이르는 전백성이 수치를 느끼게끔 하였다. 만일 이스라엘이 계속 거룩한 백성으로 있었더라면 그들은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되었을 것이다(신 26:19). 그러나 그들이 죄를 범했고 사악하게 행하였으므로 그들에게 곧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모든 이스라엘'에게 수욕과 치욕이 돌아갔다. 그리하여 '가까운데 있는 자'인 두지파, 곧 유다는 바벨론 강가로, '먼데 있는 자'인 열지파, 곧 이스라엘은 앗수르 땅으로 쫓겨갔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심판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돌이키지 않기때문이라고 고백한다(13,14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평을 누리는데 관심을 두지않았나이다." 만일 사람들이 참으로 주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것의 능력과 권세아래 복종한다면 그들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것이다. 이렇게 되기위한 첫단계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다. 이는 재앙이 제거되기전에 먼저 그 재앙이 옳은 것이었음을 인정케하기 위해서이다.

(4) 이제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항상 죄를 사유해오셨다(4절).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느 9:17).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2)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을 더욱 견고케하기 위해서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15절). 그런데 이제 주께서는 그 강한 손으로 저희를 바벨론에서 인도하여 내시지 않으려 하시나이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이 애굽으로부터의 구원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이까?(렘 16:14,15)

(5)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처한 수욕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가 파괴된 것에 대해 애처롭게 탄원하고 있다. 그들의 이웃은 그들을 조롱하며 그들이 수욕당하는 것을 보고 기세등등해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는 황폐케되었다. 또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조소거리가 되었으며(46절) 거룩한 집은 황무케되었다(17절). 제단들은 파괴되었고 모든 건축물들은 잿더미로 변하였다.

(6) 그는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회복시켜달라고 하나님께 끈질기게 청원하고 있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16절).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시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17절). 그러면 그가 간구하고 기도한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그의 진노를 거두어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성도들이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주는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16절). 그는 자기들이 포로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으며("주께서 보시기에 선하신대로 행하소서")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어주실 것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는 그치게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얼굴빛을 그들에게 비춰달라는 것이었다.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17절). 황폐케된 성소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빛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소는 그 기초위에 다시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목적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7) 그는 탄원과 논증을 통하여 더욱 강력하게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간구하는 것을 허락하실뿐만 아니라 탄원하는 것도 허락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위해서가 아니라(그는 자신이 하실바를 스스로 아신다) 우리 자신의 신앙을 북돋아주기 위해서이다.

1) 그들은 그들 자신의 어떤 의를 의지하지 않았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았으며 다만 노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18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은 결코 그들의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었다고 말했었다(신 9:4,5).

2) 그들은 기도함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힘을 얻었다. 이는 자신들이 구하고 있는 자비와 은혜가 그로부터 나옴을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①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19절). "즉 당신 자신의 뜻의 성취와 당신 자신의 약속의 이행을 위해서 하시옵소서."

② "주를 위해서 하시옵소서." 그리스도는 주이시다. 즉 그는 만유의 주이시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때 족히 여기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얼굴빛을 비추심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③ "주는 주의 모든 공의를 좇아 행하시옵소서(16절). 즉 주의 공의를 좇아 박해자들과 압제자들에 대한 우리의 신원을 갚아주소서."

④ "주의 큰긍휼을 좇아 행하시옵소서(18절). 주께서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옵소서. 황폐해있는 성소는 '주의' 성소이니이다(17절). 그리고 예루살렘은 '주의 성'이며 '주의 거룩한 산'이니이다(16절). 그것은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이니이다(18절). 지금 수욕을 당하는 백성은 '주의 백성', 즉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니이다(19절). 그들은 '주의 것'이오니 그들을 구원하소서"(시 119:94).

 

Ⅲ.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받음 9:20-27

 

다니엘의 기도가 즉각 응답받았는데 그 응답속에는 구약에 나타나있는 그리스도와 복음의 은혜에 관한 예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포함되어 있다.

1. 응답받은 시기(20)

(1) 그때는 다니엘이 여전히 기도중일 때였다. 그는 이 사실을 주목하고 크게 강조하였다. 내가 말하여 기도할때에(21절). 즉 다니엘이 무릎을 펴고 일어나기도전에 그리고 아직 더 말하려고 했을때였다. 그는 죄를 자복하면서 애통해하였다.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20절). 이렇게해서 '그들이 말을 마치기전에 내가 들을 것'(사 65:24)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졌다. 다니엘은 매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18,19절). 그러자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때에 전에 나타났던 천사가 은혜로운 답변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리라고 기대할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열심히 구한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으로써 약속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천사는 다니엘에게 훗날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하여 이루실 크고 영화로운 구원을 보여주었다.

(2) 그때는 '저녁 제사를 드릴때 즈음'이었다(21절). 제단은 잿더미가 되었고, 더이상 아무 제사도 드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경건한 유대인들은 포로생활 중에도 매일 제사드릴때를 잊지않았으며 자기들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자기들의 손과 마음을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열납되어지기를 바랬다(시 141:2). 저녁 제사란 곧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저녁에 드린 위대한 희생 제사의 모형이었다. 또한, 주를 위하여 드린 다니엘의 기도가 열납되어진것 역시 그 희생제사의 덕분이었다.

2. 응답을 전해준 천사(21-23)

그 기도의 응답은 꿈을 통해서나 혹은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았다. 다니엘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고자 천사가 직접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가브리엘은 유일하게 성경에 이름이 나와있는 천사이다. 그는 다니엘이 '이전 이상 중에 본' 바로 그 천사였다. 다니엘은 그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가브리엘임을 알았다(단 8:16). 이 천사가 바로 사가랴에게 '나는 가브리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눅 1:19). 다니엘이 기도하자 빛의 아버지되신 분께서 천사를 통해 보내주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주목해 보라. 네가 기도를 시작할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23절). 이 명령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 즉 고레스의 지시가 내려진때가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즈음' 이었을수도 있다(25절). "그 일이 바로 이 날에 행해졌느니라. 즉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라는 포고가 네가 기도를 시작하던 때인 오늘 아침에 내려졌다." 그는 전에처럼 다니엘을 만져(한글개역 성경에는 단지 '내게 이르더니'라고만 되어있음. 21절-역주) 그의 기도를 멈추도록 암시를 주었다. 내가 말하여 가로되(22절). 그 천사는 다니엘이 두려워하지않도록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였다.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23절). 그 천사는 전에 다니엘에게 교회가 안티오커스 통치때에 겪게될 환난과 그 환난의 시대에 대하여 말했었다(단 8:19). 그러나 이제 그는 다니엘에게 더 큰일을 말하였다.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22절). "즉 나는 네게 이 일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그것을 깨닫게 해주고자 왔노라." 그 천사는 그에게 그가 하늘의 은총을 입은 자임을 확신시켰다.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계시해 주시는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입은 자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3. 천사가 전한 내용(24-27)

그것은 아주 명확하게 기록되어져 왔다. 그러나 그 안에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 내용들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포로생활이 70년만에 끝날 것을 알았던 다니엘은 이제 칠년으로 환산되는 단위인 이레로 칠십이레가 끝날무렵에 더욱 영화로운 또다른 해방이 있게될 것을 교회에 알려야하는 자리에 있게되었다.

(1) 여기에 나타나 있는 기간은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칠십이레'로 알려져있는 이 기간은 정확하게 490년을 말한다고 할수 있다. 즉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읍에 대하여 일어날 큰일은 490년안에 있게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땅은 슬픈 의미에서 칠십년동안 안식하였다(레 26:34). 그러나 이제 주의 백성들은 490년동안, 즉 칠년마다 있게되는 안식의 해가 칠십번이나 될뿐만 아니라 희년으로도 열번이나 되는 기간동안 안식하게 될 것이다. 칠십이레를 말함에 있어서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며 언제까지 환산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본문 35절에 의하면, 그것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환산되어져야함을 알수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에스라1:1절에 언급되어 있는 고레스 왕의 영이라고 생각해 볼수 있다. 따라서, 이 칠십이레는 칠십년이 차자마자 곧바로 시작되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경우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할때부터 알렉산더가 다리오를 정복한때까지의 바사 제국이 단지 130년간 존속한 것으로 환산되어야 하는데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그리고 다른 여러역사가들의 통계에 의하면, 실제로 바사 왕들이 통치한 기간은 230여년에 달하고 있다. 풀(Poole)씨는 이 이레가 시작되는 시기에 대한 각가지의 견해를 매우 치밀하게 그의 라틴 일람표에 모아놓았다. 그 기간이 끝날때에 대해서도 역시 해석가들의 의견은 일치되고 있지 않다. 어떤이들은 그 기간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끝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이들은 '그 이레의 절반에'(여기서 '그 이레'는 칠십이레 중 마지막이레이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27절)이라고 했으므로 그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지 3년 6개월후에 끝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칠십이레가 일곱이레, 육십이이레, 그리고 한이레로 나누어져있는 이유 역시 다른것 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렵다. 처음 일곱이레 즉 49년간 중에 성전과 성읍이 건축되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이레 중에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그것에 의해 복음의 도성과 성전을 위한 기초가 놓여지게 되었다. 이상의 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이 기간을 정확히 정하는 것이 불확실하나 여기에는 두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1) 그것은 믿는 자들이 기대를 불러일으킬뿐만 아니라, 그 기대를 지지해 준다. 이 예언의 빛에 의해서 신자들은 메시야를 바라볼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지시함을 받은 것이다.

2) 그것은 예수가 바로 오시리라던 그분임을 부인하고 여전히 또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불신자들의 기대를 나무라며 잠잠케 해준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때부터 이 칠십이레를 계산해보면 아무리 그 견해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지금부터 1500년전에 그 기간이 끝난 것만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메시야가 오신 것이 분명하며 우리가 주로 섬기는 예수가 바로 그분이라고 하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할수 있는 것이다.

(2) 여기에 예언된 사건은 보다 이해하기가 쉽다.

1) 이제 유대인들이 속히 본국으로 귀환할 것이며 다시 그곳에 정주케될 것에 관하여 예언되어졌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25절)은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곤란중에서도' 자신의 일을 행하실 것이다. 곧 그의 예루살렘을 건축하실 것이고, 그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이며 또한 든든케하실 것이다.

2)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되어졌다. 현세의 일을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그들을 로마의 멍에에서 건져낼 것이며 그들에게 현세적인 권력과 부를 주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본문에서 메시야가 다른 목적, 즉 순전히 영적인 목적으로 오리라는 예언을 듣고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이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을 불목케 만들었으며 사이를 나쁘게 만들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진노하시도록 만들었다. 인류에게 비참함을 가져다 준것이 바로 이 죄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는 "너희 허물과 죄"를 버리라고 하지않았으며 총체적인 것으로서의 허물과 죄를 버리도록 말씀하셨다. 이는 그가 온세상 죄를 위한 대속물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오셨다(24절).

첫째, 허물을 버리게 하고, 그것을 삼가게 하며, 그 세력을 파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거룩함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다.

둘째, 죄를 종결짓기 위해서, 즉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봉인하기 위해서 오셨다. 이는 죄가 우리를 파멸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죄로인해 잘못된 관계를 화해시키고자 오셨다. 즉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화목케 하시고자 오셨다. 그는 화평케하시는 분이실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평강이시다. 그는 대속물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죄인을 없앰으로써 죄를 없애고자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셨다. 그것은 죄인에게 의를 제공함으로써 죄인을 구원하고 죄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의 희생의 공로가 곧 우리의 의가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며 또한 하나님께 그것을 탄원할수 있는 것이다. "위의 믿음이 우리에게 의로 여기신바되는 것이다"(롬 4:3,5). 그는 '이상과 예언을 응하시기' 위해 오셨다. 즉 그는 메시야에 관해 언급된 구약의 모든 예언적인 이상들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 그는 그것들을 응하셨다. 즉 그것들을 이루셨다. 그는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요 1:41) 메시야로 불리우게될 것이다(25,26절).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과 그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파했을때 그는 자신은 오직 선지자들이 말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증거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다(행 26:22,23). 따라서 그리스도는 고난받으셔야 했으며 또한 죽으셔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죽으심은 우리 죄로인한 것이었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위한 것이었다. 그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다. 즉 자신을 단번에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써 모든 율법적인 제사를 끝내실 것이다.

3) 예루살렘과 유대 교회, 그리고 유대 민족의 마지막 멸망에 관하여 예언되어졌다. 이것은 메시야의 죽으심직후에 곧바로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메시야를 죽인 자들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의식적인 율법을 없애기 위해서, 즉 계명으로 주어진 율법을 폐하기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에게 전하여준 규례를 예수께서 고치고자 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다(행 6:14).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이 멸망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고 있는데 이는 아직 오지않은 제국인 로마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 도성과 성소는 특별한 방식으로 파괴되어질 것이며 황폐케될 것이다. 로마의 장군 디도는 성전을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군사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매우 격분해 있었기때문에 디도는 그들이 성전을 불태워 파괴하는 것을 막을수가 없었다. '제사와 예물'이 금지될 것이다. 여기서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란 곧 로마의 군대로 이해할수가 있다. 이 구절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4:15절이하에서 언급하신바 있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때는 유대에 있는 자들은 도망할지어다.' 누가복음 21:20절에 그것이 설명되어 있다.

 

# 핵심

 

9:1-27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다니엘의 회개기도와 칠십이레의 환상에 관한 내용이다. 칠십이레의 환상은 이스라엘의 귀환과 성전재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로마 군대의 성전파괴,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미래와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있을 종말론적인 사건을 함축하고 있다.

미운 물건(9:27)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우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힌 것을 뜻하는 이 말은 B.C. 167년경에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우고 부정하게 여겨지는 돼지를 제물로 바친 사건으로 구체화되었다. 예수님은 이같은 신성모독적 사건이 A.D. 66-70년의 유대 전쟁에서 다시 일어날 것을 예견하셨다(마 24:15; 눅 21:20). 종말론적으로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예배를 저해하는 적그리스도의 신성모독 행위를 포괄하고 있다(참조, 살후 2:2-4; 계 13:14,15).

 

# 묵상

 

다니엘의 깨달음 ( 9:1-19 )

다니엘은 ‘서책’인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보고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만에 마치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렘25:11; 29:10).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감추인 비밀이 아니라 작정하신때에 반드시 나타내실 일이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로 하여금 이것을 깨달아 알게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깨닫는 일은 성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기도 자세 ( 9:3-19 )

본문에서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처참한 처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즉 다니엘은 구원의 길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며 주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면서 ‘주를 위하여’, ‘주 자신을 위하여’ 응답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를 극심한 곤란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입니다(눅18:1-8).

다니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 9:4-15 )

그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아니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아니신 바로 ‘나’와 개인적이고 생명적인 관계를 맺고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관계는 일대일의 관계입니다.또한 ‘크시고 두려워할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크신 왕 느부갓네살 왕도 그앞에서는 한줌 흙만 못하며 무서운 사자도 그앞에서는 먼지만 못합니다. 이렇게 크신 하나님은 죄인을 벌하시며 회개할때 용서하시는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잠28:13).

다니엘의 기도의 결과 ( 9:21-23 )

기도가 끝나기전에 응답이 왔습니다. 다니엘이 무릎을 펴고 일어나기도전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 끝나기도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왔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진실한 자의 기도에 응답하실 준비를 언제나 하고 계십니다. 또한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즈음에 명령이 내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다 아시고 필요를 아시기에 기도시작을 결단할때 벌써 천사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 제사를 드릴때 즈음에 응답이 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제단은 무너져 없었지만 다니엘은 옛날 성전을 회상하며 열납되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저녁때까지 계속 드렸습니다.

70이레 후와 62이레 후에 일어날 일 ( 9:26 )

70이레 후에는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고, 죄가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62이레 후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지고(예수님의 죽음),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되 홍수같이 엄몰될 것이며(예루살렘의 멸망), 끝까지 전쟁이 있을 것이고 계속적인 전쟁으로 인하여 우주는 황폐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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