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여호와께 대한 확신과 찬송 16:1-7
이 시편에는 믹담이라는 표제가 붙어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매우 정련된 금보다 더가치있는 황금의 시라고 번역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구약성경의 영역에서는 숨기어진 참보물이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속으로 뛰어든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1절). "나는 끊임없이 죽음으로부터 특히 죄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나이다. 내가 오직 주님께만 피하나이다. 이것은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셨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주실 것임을 믿었던 그리스도께 적용할수 있다.
(2) 그는 하나님께 스스로 엄숙한 헌신을 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2절).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의지할수 있나이다." 아도나이는 나의 지지자, 내마음의 힘이라는 뜻이다.
(3) 그는 성도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바치고 있다(2,3절). "내가 주님께 선을 베풀지못하나 성도들께 행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시라면 그를 위하여 그의 백성인 세상의 성도들에게 우리의 선을 베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대신 받을 자로 세우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행하는 것을 자기에게 행하는 것처럼 기쁘게 받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땅위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자신을 드린 자들이다. 땅위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자신을 드린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땅위에 있는 성도들이 연약하고 여러가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기뻐해야할 좋은 이유가 된다(요 17:19).
(4) 그는 모든 거짓 신들에 대한 숭배와 그들 숭배자들과 일체의 교제를 거절한다(4절). 그는 우상숭배자들의 운명을 알고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그 괴로움은 그들이 버린 참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통해 그들 자신에게 온것이며, 그들이 받아들인 거짓 신에게서 얻은 절망으로 인한 것이다.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그들이 제사하는 신들이 거짓된 것일뿐 아니라 그 제물 자체도 야만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피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는 것이기때문에 피를 마시는 것은 매우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으며, 전제는 포도주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마귀는 그의 숭배자들에게 희생의 피를 마시고, 그들에게 잔인성을 배우도록 지시한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적용하여 그가 드린 희생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다(이것은 율법에 따라 바쳐졌던 수소와 염소의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명명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그 자신도 언급한 적이 없었던 자기 자신의 피였다).
(5) 그는 그의 행복과 분깃을 위하여 하나님을 선택한 사실을 엄숙히 반복하여 말하며(5절), 그 선택으로 인한 위로를 취하고(6절), 그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7절). 천국은 기업이다. 우리는 우리의 집, 우리의 휴식, 우리의 영원한 선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 세상을 우리가 여행할때 지나가는 나라이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 분깃을 얻을 것에 대하여 그는 확신하고 있다.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주께서 내게 약속해 주신 것을 은혜롭게 잘 이루어주실 것이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하나님을 그들의 분깃으로 삼을 자들은 그렇게 말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더이상 무엇을 바랄까? "나의 영혼이여 너의 안식처로 돌아오라! 그리고 더이상 바라지 말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는 빛의 땅에 환상의 골짜기에 분깃을 정한 자들은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라고 말해야 마땅하다. 임마누엘의 땅뿐만 아니라 임마누엘의 사랑을 갖고있는 자들은 더욱 그렇다.
"그를 나의 분깃과 행복으로 취하도록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만일 우리가 그 기쁨을 느낄수 있다면 하나님께 그것에 대한 찬양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과 영으로 그를 훈계하셨을때 그 자신의 심장(자신의 생각) 역시 밤중에 그를 가르쳤다. 그가 침묵하고 한적했을때, 그리고 세상에서 물러나있을때, 그의 양심(심장으로 불리고 있다, 렘 17:10)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회고했을뿐만 아니라 그 선택에서 야기되는 의무에 대해 그를 훈계하거나 권고하였다.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적용할수 있다. 그리스도는 여호와를 자기 분깃으로 정하셨고 그 분깃을 기뻐하셨으며, 자기 아버지의 영광을 자신의 가장 높은 목적으로 삼았다. 우리도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이것을 노래하고 거룩한 만족과 평안을 소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택한 우리의 선택을 다시 새롭게 할수 있을 것이다.

Ⅱ.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16:8-11
이 모든 성경 구절들은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가 행한 설교에 인용되었다(행 2:25-28). 거기서 베드로는 다윗이 그리스도에 관해, 그리고 특히 그의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을 향한 다윗 자신의 경건하고 헌신적인 애정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인정할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향하여 경건하게 송축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초월한 예언의 영을 통하여 메시야의 영광을 예언하였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이 구절의 신비를 캘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1) 이 구절들은 확실히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구약성경의 많은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벧전 1:11)했던 것처럼, 선지자인 다윗도 이것을 증거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여기 이 예언의 주제라고 할수 있다.
1) 이 예언은 그가 고난당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라"고 말할때, 이것은 그가 육체를 벗을 것이라는 사실, 곧 죽어서 장사되고 얼마동안 사망의 권세아래 거하리라는 사실이 틀림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2) 그 예언은 그가 고난과 죽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놀랍게 감당하시리라는 것이다. 그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수 있을때까지 결코 요동해서는 안된다. 그의 마음은 기뻐해야 했고 그의 영광은 기쁘게 받아들여져야 했다. 그는 그의 사업을 단호하게 행할뿐만 아니라 즐거이 추진해 나가야 하였다. 사도행전 2:26절에 나타나 있는바와 같이 그의 입술은 그의 영광을 의미하고 있다. 그때 그로하여금 이처럼 기쁘게 일하실수 있도록 한것은 다음의 세가지 점이었다.
① 그가 행하신 일가운데 있는 아버지의 뜻과 영광에 경의를 표하셨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앞에 모심이여.
② 그는 고난중에서도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하실 것을 확신하였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즉 "필요할때에 바로 옆에 계셔서 항상 나를 도우시도다."
③ 그는 그의 고난이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계셨다. 그가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그앞에 있는 즐거움 때문이었다(히 12:2). 그는 소망가운데 거하셨으므로 그의 거한 곳이 영화로왔다(사 11:10;참조. 요 13:31,32).
3) 그는 고난을 극복하고 영광스러운 부활로써 죽음의 권세아래에서 벗어나실 것이다.
4) 그는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그앞에 있는 기쁨으로 풍성히 보상받을 것이다(11절).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이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그 생명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리라." 이러한 확신속에서 그의 기운이 다했을때,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바로전에는 '아버지여,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다.
(2)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이 구절들의 대부분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인도받고 생기를 얻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될수 있다. 그리고 이 구절들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서로를 격려하고 교화시킬수 있을 것이다. 죽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어가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부활의 소망에 대한 믿음가운데서 즐거이 육체를 떠날수 있을 것이다.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 핵심
16:1-11
위기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시편. 표제의 믹담이란 ‘비문’, ‘겸손’, ‘구속’, ‘묵상 기도’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나, 그중 ‘묵상 기도’가 가장 나을것 같다.
성도의 교제(16: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동일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안에서 삶의 기쁨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 헌신하며 말씀에 근거한 바른 인생관을 지닌 믿음의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영육간의 부족함을 서로 채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도간의 교제와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수가 없느니라”(요일 4:20)는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 묵상
복받는 신앙 ( 16:1-4 )
복받는 신앙은 하나님만이 명령자요, 주관자라는 유일 신앙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위해 성도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사46:3) 우상을 버려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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