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피조물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19:1-6
시편 기자는 이 구절들에서, 온 세상에서 날마다 볼수 있는 것들로부터 육안으로 볼수 없는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숙고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눈으로 볼수 있는 하늘의 구조와 아름다움 그리고 천체의 질서와 작용속에서 탁월하게 빛나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이 예는 하늘이 있음을 보면서도 "하나님은 없다"하며, 결과를 보면서도 "원인은 없다"라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하나님만을 가리킬뿐인 하늘의 빛에 대해 영광을 돌리는 우상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상상력의 헛됨을 보여주고 있다.
(1) 피조물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들은 우리에게 여러면으로 유용하고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이 하는 일중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중요한 일은 없다(1절). 그것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모든 변천과 운동에는 분명히 시작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만들수 없었으며, 만일 그렇게 할수 있었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그것들은 우연한 원자의 충돌에 의해 생겨질수는 없다. 그러므로 영원하며 무한히 지혜롭고 유력하며 선하실수밖에 없는 창조주가 그 피조물들에게 있어야 한다. 창조물의 탁월함에서 그것을 만드신 위대한 창조주의 무한한 완전하심을 추론할수 있다. 또한 하늘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에서 창조주가 빛이시라는 것을 추론할수 있다. 우주의 광대함은 하나님의 광대함을 나타낸다. 그 높음은 그의 초월성과 주권을 말해 준다. 이 땅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그의 지배와 섭리, 그리고 우주적인 은혜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2) 어떤 것들이 이것을 선포하는가.
1) 하늘과 궁창 : 이곳은 대기가 있는 드넓은 공간이며 행성들과 항성들이 있는 영역이다. 사람은 신체구조상 짐승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짐승들은 그들의 영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처럼 아래를 내려다보고 산다. 반면에 사람은 똑바로 서서 위를 향하고 산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은 곧 위로 올라가야 하고 그의 생각은 위로 향해야하기 때문이다.
2) 낮과 밤의 규칙적인 연속(2절) :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낮과 밤은 빛과 어둠사이를 처음 나누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속적인 운동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영광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흡족하게 하신다. 아침의 빛이 그날의 일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녁의 황혼은 밤의 안식을 돕는다. 매일 낮과 매일 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며 자기의 증거를 끝마치고나면, 다음 낮과 밤에게 그것을 물려주어 다시 하나님의 선을 말하게 한다.
3) 태양의 빛과 영향력 : 이 태양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천체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이세상에서 가장 유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세상은 모두 동굴이 되고 사막이 될것이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4절). 천체는 천군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므로 진지에 있는 병정들처럼 장막에 거한다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할수 있다. 영광스러운 피조물은 가만히 있도록 지어지지 않고 하늘 이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끝까지 운행하도록 되어있으며(적어도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한날동안의 주기를 완성하기위해 다시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러한 불변성과 항구성때문에 우리는 해가 언제, 어디에서 떠오를 것인가 정확한 시간을 확실히 예고할수 있는 것이다. 그 해는 나타날때 매우 찬란하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5절). 신랑은 최대한도로 화려하게 꾸미고 아름답게 장식하여, 신랑 자신이 즐거워할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해는 자기의 길을 즐겁게 달린다. 그것은 사람에게 봉사하기위해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이' 행한다.
(3) 누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가. 세상의 모든 곳에 선포된다(3,4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땅에 통하고(자오선이라 추측된다) 그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르도다. 즉 자신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신의 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설명하는 것을 들을수 있을 것이다.

Ⅱ.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 19:7-14
하나님의 영광, 즉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은 창조의 역사속에 충분히 나타나있으나 하나님의 계시속에 그리고 그 계시로 말미암아 훨씬 많이 나타난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와 그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알려주는 길잡이로서, 밤이나 낮보다 그리고 우리가 숨쉬는 공기나 햇빛보다 우리에게 훨씬더 유용하며 유익한 것이다.
(1) 시편 기자는 여섯 문장속에서(7-9절)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한 특성들과 유용성을 설명해 준다. 그 각문장에서 여호와라는 성호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계시를 총괄적으로 생각해 볼때 교훈, 약속, 특히 복음으로 간주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명칭이 본문에 여섯가지로 나온다.
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7절). 즉 그 율법은 모든 타락에서 완전히 떠났고 모든 선으로 완전히 채워져있으며, 의도된 목적에 전적으로 합당하다(딤후 3:17). 그것에는 더하거나 빼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영혼을 소성케하고,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우리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의무로 돌이키게 하는데 유익하다.
2)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그것은 확실히 살아있는 위로와 영원한 소망의 토대이다. 그것은 우둔한 자들까지도 그들의 영혼과 영원을 위해 지혜롭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하나 겸손한 자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자하는 자들을 지혜롭게 해줄 것이다(25:9).
3)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8절). 선악의 영원한 규범과 원리에 정확히 일치한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므로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리스도의 손안에서 볼수 있는 율법은 우리에게 기뻐할 이유를 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면 우리의 정직한 마음을 회복시킴으로써 영원한 기쁨을 위한 토대를 세워준다.
4)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그것은 성령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해주기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로하여금 우리의 죄와 불행을 보고 깨닫게 해주며, 의무의 길로 우리를 지시한다.
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9절;119:9). 의식법은 사라진지 오래이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은 항상 존재한다. 시간이 도덕적인 선과 악의 본질을 변경치는 못할 것이다.
6)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그의 모든 교훈은 무한한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모든 규례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인하여 가지게 된 큰가치와 큰유익,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갖게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10,11절). 그는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여긴다. 금은 땅에서 나온 것이며 세속적인 것이지만 은혜는 하늘나라의 형상이다. 금은 육체와 한대의 기쁨을 위한 것이나 은혜는 영혼과 영원에 대한 관심을 위한 것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에게 달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달다. 감각적인 쾌락은 헛된 것으로서 금방 식상할 것이며 결코 만족을 주지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인 즐거움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만족감을 주며 거기에는 별로 위험성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할 의무와 우리가 피해야할 위험을 경고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후뿐만 아니라 지키는 가운데서도 보상이 있으며, 복종에 대한 즉각적인 큰보상이 따른다.
(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함에 대해 말한다.
1) 그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게 된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명이 이처럼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하나이까? 그렇다면 자기의 허물을 깨달을 자 누구리이까? 어느 누가 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할수 없나이다." 그는 거룩한 율법의 올바름에 입각하여 자기 죄를 자기의 허물이라고 부를줄 알게된다. 계명을 범하는 것은 우리가 준해서 행해야할 규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탈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알고있는 것보다 우리의 사악을 더많이 알고 계시다.
2) 그는 여기에서 죄에 대항하여 싸우기위해 기도하게 된다. 자기의 범죄를 모두 구체적으로 열거할수 없음을 발견한 그는 "여호와여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은 없다. 즉 세상에서 비밀인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못하는 것일지라도 하나님께는 감추어질 것이 전혀없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결점으로 인한 죄를 용서받기위하여 기도한후에 범죄를 짓지않게 되기를 간구한다(13절). 그의 간구는 다음과 같다.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그는 범죄를 이렇게 일컫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제물로도 그것을 속죄할수 없기 때문이다(민 15:28-30).
3) 그는 그의 생각과 애정이 주께 열납되기를 겸손히 간구한다(14절). 그리고나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가 한일을 받아주시기를 빈다. 그의 봉사는 '그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었으며 하나님께 드린 그의 거룩한 사모함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 핵심
19:1-14
하나님이 인간에게 두가지의 위대한 선물, 즉 피조세계와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을 찬양한다. 바꾸어말해서, 자연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계시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돌리고 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19편)
자연세계에 대한 관찰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지성적인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게 만든다. 사도바울도 롬 1:19-21절에서 그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 헬라의 시인 아라투스(Aratus)도 인간을 관찰하면서 모든 인간이 ‘신의 소생’(행 17:28)이라고 했다. 이처럼 일반계시는 피조세계에서 살고있는 모든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구원을 얻는 신앙에 이르는 것은 특별계시인 성경의 증거를 통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야만 가능하다.

# 묵상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위한 설명 ( 19:1-10 )
율법, 증거, 교훈, 계명, 도, 규례 등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여 자연안에 계시된 일반계시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친히 말씀을 통한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만 영안을 밝히 뜰수 있고, 하나님을 바로 알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 19:11 )
다윗이 자기 자신을 여호와의 종으로 부른 의도는 자신의 왕에 대한 소명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이는 자신의 왕됨이 강탈하거나 침략해서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소명의식은 어떠한 어려움과 재난속에서도 피난처가 될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전생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인간적인 명예나 권세보다는 하나님의 품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고 확실한 소명의식과 함께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 ( 19:13 )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는 고범죄(자범죄)입니다. 고범죄란 의지가 박약하여 짓는 잘못이 아닌 적극적인 범죄를 가리킵니다. 이같은 고범죄는 사람을 주장하여 자신의 노예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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