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죄사함 받은 자의 복 32:1-6
이 시편에는 '마스길'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어떤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이 시편에 붙여져서 부르게 되어있던 곡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난외주에서 마스길은 교훈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참된복의 성격만큼 그 교훈을 필요로하는 것은 없다. 즉 우리는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위하여 마땅히 행해야할 바로서 참된복의 성격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은총에 있지 이 세상의 부에 있지않다. 즉 그것은 영적인 축복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허물의 사함을 얻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여질때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허물의 사함을 얻는 것, 이것이 그의 복의 근거이다. 즉 이것은 그의 복의 다른 모든 요소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본적인 특권인 것이다."
(1) 사죄의 성격에 관하여.
1) 그것은 허물, 곧 죄에 대한 용서이다. 죄란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회개를 근거로해서 용서된다. 즉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이 취소된다는 것이다. 어떤사람들은 이구절을 허물이 '제거된다'라고 해석한다. 즉 우리는 허물에 대한 용서로, 짐 곧 무거운 짐을 덜수 있는 것이다.
2) 그것은 벌거벗은 몸이 가리워지듯이 우리가 수치를 당하지않도록(계 3:18) 죄를 가리우는 것이다. 죄가 용서될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가리워진다.
3) 그것은 죄악을 전가시키지 않는 것, 즉 죄악을 죄인에게 책임지우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우리 모두의 죄악을 지우시고' 그로 '우리를 대신해서 죄'가 되게 하시므로 우리의 죄악이 전가되지않는 것이다.
(2) 죄를 용서받은 자들의 특성에 관하여 : 마음에 간사가 없고(2절). 여기서 다윗은 죄가 없는 자라고 말하지않고(살면서 죄를 짓지않는 자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간사가 없는 자라고 말한다. 용서받은 죄인이란 회개와 신앙에 대한 고백에서 하나님을 속이지않는 자이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때 종일 신음하므로 내뼈가 쇠하였도다(3절). 토설치 아니하는 자들이란 이런 자들이라고 말할수 있다. 즉 양심의 가책을 억누르는 자들, 자신의 죄의 악함과 그로인한 자신의 위험을 볼수밖에 없는데도 마음을 딴데로 돌려 그런 것을 생각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편하게 하는 자들, 회개의 고백으로써 양심을 편하게 하지않는 자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영혼의 안식을 얻는 방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죄악가운데서 수척해지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말할수 있다.
(3) 양심의 평안에 이르는 유일하고 참된 길에 관하여 :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용서를 받고 그것을 밝히 말함으로써 의롭게 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를 위해 다윗은 다음과 같이 행했다. 내가...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5절).
(4) 참으로 자기의 죄를 뉘우치는 자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신속히 용서해 주심에 관하여 : "내가 자복하리라 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에 악을 사하셨나이다. 그리고 내 양심에 사죄의 위로를 주셨나이다. 그리하여 즉시 내가 내 영혼의 안식을 얻었나이다." 이렇게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직 상거가 먼데' 달려가 입을 맞추므로 그의 용서를 보증하였다. 이로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주께 기도할지라(6절). 경건한 자들은 모두가 기도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회심하자마자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행 9:11)는 말을 들었다. 기도에 진지하고 열심인 자들은 곤경에 처했을때 기도의 혜택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Ⅱ. 성도들에 대한 훈계 32:7-11
(1)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와 기대를 하나님앞에 고백한다(7절).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내가 믿음으로 주를 의뢰할때에 나는 세상에서 충분히 안심할수 있고 실제적인 어떤 악도 내게 미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할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나이다. 주는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리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유익한 환난의 고통과 타격에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니이다. 주는 내가 토설치 아니할때(3절), 빠져있던 그런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을지라도 만일 그가 우리를 혼자 내버려두시면 우리는 곧 전과 같은 죄의 빚을 지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죄의 위로를 받았을때는 다시 어리석은데로 돌아가지 않기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급히 달려가야 한다. "주는 나를 구원하실뿐만 아니라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무릇 경건한 자들이 나와 함께 기도할때에 그들은 또한 나와 함께 감사할 것이라."
(2) 그는 사람들에게로 말을 돌린다. 다윗은 회개하고나서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하기위하여'(눅 22:32) 그가 할수 있는 일을 한다. 너희가 누구이든지 간에 교훈을 바라는 자라면 '내가 너희를 가르치고 너희의 갈길을 가르쳐 보이리라'(8절). 솔로몬은 회개하자마자 곧 전도자가 되었다(전1:1). '내가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어떤사람들은 이 말을 하나님의 지도와 지시에 적용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말은 그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 특별히 그의 자녀와 가족들에게 하는 다윗의 약속으로 간주되어야 옳다. "내가 너희에게 충고하리라. 내 눈이 너희 위에 있으리라"(난외주에는 이와같이 적혀있다). "나는 너희에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충고를 주고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지 아니하는지 지켜볼 것이라." 영적인 안내자는 감독 노릇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죄인들에게 제멋대로 굴지말라는 경고의 말씀이 있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7절). 우리에게 지각이 있다는 것은, 즉 우리가 이성의 지배를 받을수 있고 또 이성으로써 자신을 설득할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명예이자 행복이다. 새롭게 하는 은혜가 있는 곳에는 제어하는 은혜의 재갈과 굴레가 전혀 필요없다. 이러한 경고를 하는 이유는 죄의 길은 반드시 슬픔으로 끝나고 말기 때문이다(10절). 여기에는 성도들에 대한 위로의 말씀이 있다. 그들은 만일 그들이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와 가까이 있기만 한다면 모든면에서 '인자하심이 그들을 두르리라'는 보장을 받는다(10절).
# 핵심
32:1-11
죄사함의 기쁨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교훈을 주는 시편이다. 표제의 마스길은 그 어원의 뜻이 다양하여 정확히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확정할수 없다. 70인역(LXX)은 이 말을 ‘지혜롭게 함’,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 묵상
죄를 고백하지 않은 결과 ( 32:3 )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결코 묵과하시지 않기때문에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에게 절망적인 고통을 안겨주십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앞에서 죄를 자복할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되었습니다.
죄에 대한 진정한 자복의 의미 ( 32:5 )
진정한 자복은 단순히 양심의 가책으로 죄를 인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죄의 자복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숨은 죄를 모두 토하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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