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역경에 대한 탄원 69:1-12
이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의 고난을 호소하고 있다.
(1) 그는 매우 비통해하며 자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을 덜기 원하는 자로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 그는 그의 고난이 그의 영혼에 끼친 깊은 영향을 호소하고 있다(1,2절).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1절). "그 고난의 물들은 나의 생명을 위협할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불안케하기까지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전처럼 항상 하나님과 내 자신을 기뻐할수 없나이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잠 18:14). 그러나 그 심령이 상했을때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여기 다윗의 경우였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영혼의 고통과 그가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요 12:27), 즉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마 26:38;막 14:34)라고 말씀하셨을때 겪으신 내적고민을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죄를위해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바치셨던 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2) 그는 자신의 고난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3절).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그는 그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죽음에 직면할수록 더욱더 그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즉시 죽음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평강의 응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탄원함으로써 그의 믿음과 기도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목은 말랐으나 그의 심령은 마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쇠하였으나 그의 믿음은 쇠하여지지 않았다. 이와같이 우리 주 예수께서도 십자가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게 붙잡으셨다.
3) 그는 그의 원수들의 악의와 세력, 그들의 불의와 잔인성, 그리고 그에 대한 그들의 학대를 호소하고 있다(4절).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즉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건만 그들은 나에게 그러한 악의를 품고 있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저희가 연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요 15:2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다윗의 이 기도를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내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이 원수들은 그 수효가 매우 엄청났고 그 힘이 강해서(권위와 권능에 있어서 그들은 강했다) 결코 멸시할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에게 심히 큰두려움을 주었다.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 이것은 다윗이 그의 원수들을 진정시키고 그들과 화평을 맺기위하여 그들이 그에게 부당하게 강요한 것들에 동의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그리스도께 적용시킨다면 이것은 그가 그의 피로써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던 것에 대한 주목할만한 묘사가 된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취하지도 않은 것을 우리를 위하여 물어주셨던 것이다. 즉 그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처벌을 대신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빚을 갚으셨고 우리의 잘못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손상되었다. 또한 인간의 명예와 평화와 행복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사라졌다. 이러한 것들을 탈취한 자는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죽음을 댓가로 이것들을 물어주셨던 것이다.
4) 그는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의 냉대를 호소하고 있다(8절).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이는 "그들이 나를 외면하여 나와 대화하기를 싫어하고 나를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즉 그의 형제들이라도 그를 믿지 아니하였고(요 7:5),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며(요 1:11), 그의 제자들조차 그를 버렸던 것이다.
5) 그는 그가 당한 경멸과 끊임없이 그에게 퍼부어지는 비난을 호소하고 있다. 다윗의 이 호소는 특별히 우리를 위하여 가장 큰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입장을 나타낸다. 다윗은 여기에서 자기에게 가해진 심한 모욕을 말하고 있다. 다윗을 모욕한 자들은 그가 겸손하게 행동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린 것때문에 그를 조롱했다(10,11절). 다윗은 순수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가운데,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을 입증하기위해 곡하고 금식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으며, 겸손한 회개자가 하는 것처럼 '굵은베로 그의 옷'을 삼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본보기를 따르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온갖 힘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희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그들은 이처럼 그가 자학을 일삼는 어리석은 자라고 비웃었다. 가장 엄숙하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 즉 좋은 말을 기대할수 있는 사람들도 그를 조롱했다. 여기서 우리는 선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떤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보게된다. 지혜로운 자들에게 있는 칭찬할만한 점이 종종 어리석은 자들의 노랫거리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사리를 옳게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들이 당하는 멸시를 가볍게 여길수 있을 것이다.
(2) 그는 매우 진지하게 자기 죄를 고백한다(5절).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곧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나니 그들이 나를 고발한 죄에 대해 내가 얼마나 결백한지에 대해서도 아시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진실한 참회를 하는 자의 고백이 아닐수 없다. 그는 자기의 죄를 덮어두고는 형통할수 없으며 따라서 그 죄를 시인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앞에서는 모든 죄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속에 담겨져있는 우매함을 아시나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자행되는 범죄, 그것도 가장 은밀하게 행해진 범죄를 모두 알고 계시다. 그것들은 모두 그가 보시는 가운데서 행해지며 회개하고 사함받기전에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3)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간구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침잠하지 않도록 절망하지 않도록 나를 구원하소서!"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로 나를 인하여 욕을 당케 마옵소서(6절). 이것은 다윗이 두려워하는바를 암시해 주고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지 않을경우 모든 선한 백성들이 좌절에 빠지고 말것이며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을 짓밟고 승리를 거두게 되리라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했으면 하나님을 찾고 바라던 모든 사람들은 수치와 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갖고 그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고 있다.
(4) 그는 매우 강력하게 탄원하고 있다(7,9절). "주여 나에 대한 비난을 멈추게하시고 나의 사정을 변호해 주소서 내가 주로인하여 훼방을 당하였나이다." 선행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를 하나님께서 빛처럼 드러내실 것을 겸손한 태도로 신뢰하고 있어야 한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이런 이유로 주와 주의 집을 미워하는 자들이 나를 미워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열심히 사모하고 있는지 그들도 알기때문이니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들에게서 받았던 모든 사랑과 존경을 사라지게 했나이다."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다윗의 열심에 대한 실례로서 해석될수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행해진 모든 무례함을 마치 자기 이름에 대한 모욕처럼 여기며 분개했던 것이다. 그는 신앙위에 퍼부어지는 모든 경멸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이 구절에 대한 두가지의 해석은 모두 그리스도께 적용될수 있다.
1) 그리스도가 성전의 매매자들을 채찍으로 내쫓으심으로써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그를 삼키게 했던 사실은 아버지에 대한 그의 사랑의 실례였으며 이는 그의 제자들로하여금 이 시편을 상고시키게 했다(요 2:17).
2)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참조. 롬 15:3)라고 한것은 그가 자기를 부인하고 그 자신을 기쁘게하지 않은 것의 한 실례가 되었다. 그런점에서 그는 또한 우리의 본보기가 되신다.
Ⅱ. 다윗의 열성적인 간구 69:13-21
그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때문에 그들로부터 비방을 당했으며 또한 그것때문에 술취한 자들의 노랫거리가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도를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우리가 선행을 한 것때문에 조롱을 받을수는 있지만 선행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여호와여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1) 그는 무엇을 요청했나. 내게 응답하소서(13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시며(16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17절). 즉 "내가 말하는 것을 들으실뿐만 아니라 내가 구하는 것을 허락해주소서."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하시고(14절). 즉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나를 수렁속에 내버려두지 마시고 나를 도우사 내발을 반석위에 두소서"(40:2).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14절). 곧 "사자의 발톱에서 건지우는 어린양처럼 나를 건지소서." "비록 내가 깊은 물에 들어가도(2절) 큰물이 나를 엄몰하지 말게하소서(15절). 나를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하시며 그 깊음이 나를 삼키지 않게하소서. 그리고 웅덩이가 내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그렇지않으면 내가 멸망하게 되나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로 돌이키사(16절) 그에게 미소하시며 그로부터 그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17절).
(2) 그는 이러한 청원들을 굳게 주장하는 근거로 무엇을 탄원하고 있나.
1) 하나님의 자비와 진실을 탄원하고 있다(13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로 내게 응답하소서.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서 얻은 논증을 반복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그 인자하심은 자체로서 선할뿐 아니라 차고 넘치나이다."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16절).
2) 그 자신의 환난과 고통을 탄원하고 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중에 있사오니(17절). "나는 주의 은혜를 필요로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 은혜가 이제 때맞춰 임한다면 나는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기겠나이다."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19절).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20절). 왜냐하면 선한 명성의 가치를 알고있는 자가 나쁜 평판을 받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능욕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이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총으로 간주될수 있는가(사도들도 그렇게 생각했듯이, 행 5:41)를 깊이 생각해볼때, 우리는 그러한 비방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할 이유가 조금도 없음을 알게될 것이다.
3) 그의 원수들의 오만과 잔인함을 탄원하고 있다(18절).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19절). 즉 "주께서는 내가 어떤 위험에 빠져있으며 또 그들이 나를 치기위해 행하고 계획하는 일에서 주께서 얼마나 비방당하시는지를 아시나이다." 그는 그들의 잔인한 행동을 보여주는 한 실례를 언급하고 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때에 초로 마시웠나이다(여기서 쓸개라는 말은 쓴풀을 의미하며 흔히 쓴쑥에 해당된다).
4) 그는 그의 친구들의 불친절과 그들에 대한 실망을 호소하고 있다(20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그들은 모두 여름의 시냇물처럼 그를 실망시켰다. 이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행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제자들이 그가 고난을 당할때 그를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Ⅲ. 예언적인 저주 69:22-29
다윗이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주들은 그 자신의 원수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핍박자들, 특히 유대 민족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이것은 우리 주께서 친히 눈물로써 예고하셨던 것으로 그가 죽은지 약 40년후에 이루어졌다. 이 본문의 처음 두구절에는 하나님께서 믿지않는 유대인들을 심판하시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사도 바울도 이 점을 로마서 9:9,10절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 전체는 그러한 맥락위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1)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받게될 심판은 어떠한 것인가. 이 심판은 그들 모두에게 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가담했었으나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얻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행 2:23;3:14,15). 이 심판은 그들가운데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임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완악한 마음으로 복음을 불신하고 거절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과 그 따르는 자들을 마음속 깊이 적대하였다(참조. 살전 2:15,16). 여기에서 예언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제물은 그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22절). 저희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이 '밥상'은 하나님의 제단으로 볼수 있다. 하나님의 제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상으로서 제사를 드린후에 그 제물을 나누어 먹는 곳이었다. 또는 '밥상'의 의미를 그들의 필수적인 양식을 포함하는 일상적인 음식물로 볼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쓸개와 신포도주를 주었었다. 따라서 그들의 음식과 음료수도 당연히 그들에게 쓸개와 신포도주 같이 될 것이다.
2) 그들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복된 지식과 평화의 위로를 결코 얻지못할 것이다(23절).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못하게 하시며. 즉 그들이 그리스도앞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죄로인해 빛을 싫어하여 눈을 감고 그 빛을 보려하지 않게될 것이다. "그들을 절망속으로 몰아넣어 끊임없는 혼란에 빠지게 하소서." 이 말은 로마 군대가 쳐들어왔을때 유대인들이 절망중에 빠짐으로써 성취되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맹렬한 분노아래 놓이게될 것이다(24절). 주의 분노를 저희위에 부으시며.
4) 그들은 땅과 나라를 완전히 빼앗길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것을 두려워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주장한대로 이것을 방지하기위하여 그리스도를 핍박했다(요 11:48).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25절). 이 말은 그 나라가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황폐하게 됨으로써 성취되었다. 그리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한 것이다(미 3:12). 성전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의 자부심을 주었던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은 '황폐하여 버린바' 되었다(마 23:38).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하소서(25절). 이 말은 특별히 유다와 예루살렘에 철저히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멸망한뒤 어떤 목적으로라도 사람들이 그 나라에 다시 거주하게 된 것은 무척 오랜후였기 때문이다.
5) 그들이 멸망에 이르는 길은 내리막길과 같아 아무것도 그들을 멈추게 하지못할 것이다(27절). "주여,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그들로 그들 마음대로 행하게 하소서."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어느누구도 의로부터 내쫓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복음은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음을 거부하지 않은 자라면 그 누구도 멀리하지 않기때문이다.
6) 그들은 행복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갖지못할 것이다(28절).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즉 "저희를 오래살지 못하게하소서. 그들이 오래살수록 그들은 더많은 죄악을 범할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믿지않는 많은 유대인들이 칼과 기근에 의해 쓰러졌다. 그들은 민족으로서 도말되었으므로 더이상 하나의 백성이 될수 없었다.
(2) 그들은 어떤 죄로 이 두려운 심판을 당하게 되었나(26절). 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께서 치신 분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사53:3,4,10). 그는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같이 되었다(사 53:3,4). 그들은 분기충천하여 그리스도를 핍박했을뿐 아니라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외쳐대기까지 했다.
(3) 시편 기자는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29절).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즉 "내 처지는 외적인 고통으로인해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나이다. 그러나 나는 의인과 함께 기록되었으며, 그들처럼 하나님의 분노아래 있지 않나이다."
Ⅳ. 감사와 찬송 69:30-36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본보기로서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슬픔의 탄식과 항의로 시작했던 이 시편을 거룩한 기쁨과 찬송으로 끝맺는다.
(1) 그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로 결심하고 있다(30,31절).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는 마음으로뿐 아니라 노래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겠다는 뜻이다. 이 찬양은 기도뿐 아니라 찬송의 중보자도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를 기쁘시게할 것이므로 율법상의 가장 귀한 제물인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나을 것이다(31절). 이것은 메시야 시대에 속죄제물뿐 아니라 의식법에 의하여 규정된 찬양과 감사의 제사로 끝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 대신 영적인 찬송과 감사의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가장 값비싸고 화려한 제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위로가 된다.
(2) 그는 다른 선한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을 기뻐하고 계속 그를 찾도록 격려하고 있다(32,33절).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1) 그들은 궁핍한 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응답하시고 또 그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베풀어주시고자 하심을 보게될 것이다.
2) 그들은 구세주의 높이 들리우심을 보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는 구세주에 대해 그리고 구세주의 모형으로서의 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3) 그는 모든 피조물 곧 천지와 바다, 그리고 그중에 거하는 모든 것들로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촉구하고 있다(34절). 온세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베푸신 은혜를 찬양해야 한다(35,36절).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에 대한 예배가 거행되던 시온 그 거룩한 산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각각의 교회들이 복음의 원리에 따라 형성되고 조직될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는' 남은 자들이 있게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일반적으로 신앙에 대해 호의를 갖고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앙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또 그리스도 교회안에서 그들의 거처를 찾게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나라의 시민들, 곧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 교회안에 머물게 된다. 구속자는 그의 후손을 볼 것이며 그들속에서 그의 날이 연장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비밀이 풀리고 신비스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 핵심
69:1-36
원수들의 무고한 모함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암담한 상황을 탄식하는 시편이다.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하며, 고난속에서도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신앙이 돋보인다. 특히 본시편은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신 예수님이 지상사역 기간동안 당하신 고난을 예표하는 대표적인 시편이다(참조, 요 2:17; 15:25; 행 1:20; 롬 11:9,10; 15:3).
# 묵상
고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 ( 69:1-35 )
성도는 고난가운데서도 그속에 담겨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혹 죄에 대한 형벌로 고난이 임했을경우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고후7:9),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선하시며 의로우심을 믿어야합니다. 또한 회복을 기다리며, 고난으로 인한 연단을 잘 견뎌내었을때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히4:15)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다윗이 겪은 고통의 예표적 의미 ( 69:4 )
다윗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억울하고, 잘못없이 배상해야할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무흠하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구속사역을 예표합니다(요15:25).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원천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을 위한 기도 ( 69:4-28 )
본문은 환난을 당한 성도가 환난을 극복하기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환난에 빠진 성도는 고난이 극심할때 다른 길로 나아가지 않고 주님앞에 나와 부르짖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환난을 당할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림으로 응답받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역경에 대한 탄원 ( 69:15 )
‘깊음이 삼키고 웅덩이가 입을 닫는다’는 것은 구원받을 소망이 전혀없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가 암담하고 처절할때에 하나님께 구원의 소망을 잃지않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에 매달리는 다윗의 신앙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특징 ( 69:16 )
여호와의 인자는 자비롭고 풍부하시며(출34:6), 선하시고 영원하십니다(대상16:34).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하시며(시33:5), 용서하시고 복주시며(대하30:9), 보배롭고 선하시며(시36:7), 오래참으시고 구원하십니다(딛3:5).
은혜에 대한 찬양 ( 69:29-36 )
본문은 고난과 시련가운데서도 승리를 예견하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한 감사시입니다. 여기서 시인의 찬송은, 하나님께서는 곤고와 환난가운데에서도 종래에는 그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것입니다. 이같은 다윗의 구원의 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결국은 구원해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시온의 구원 ( 69:35 )
시온은 하나님 백성이 거하는 거룩한 도성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시온의 구원은 하나님백성의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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