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공적예배의 즐거움 84:1-7
공적인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길수 없게된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그 어느때보다 그 의식의 가치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1) 기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가 놀라울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이 장막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장막들을 언급한다. 왜냐하면 그 장막에는 백성들이 참석하는 여러개의 뜰이 있었고 그 장막자체도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성화된 사람들의 눈에는 성소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은혜스러운 심령들은 경건함과 경건한 일속에서 놀랍고 형언할수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장막은 누추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영적인 것이며 영광이 있는 것이다.
(2) 기자는 공적인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의식을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2절). 그것은 육과 혼과 영으로 바라는 간절한 열망이었으며 강렬한 바람이었다. 그는 다시 주의 장막에서 일하고 싶어서 실신할정도로 열망했다. 그러나 그가 바랐던 것은 여호와의 뜰자체가 아니라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의식은 아무쓸모도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3) 기자는 하나님의 제단근처에 둥지를 쳐놓은 작은 새들의 행복을 질투했다(3절).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이 작은 새들은 자연의 본능에 따라 다른 새들이 나무에 둥지를 치듯 제단근처에 그들의 둥지를 마련했다. 어떤사람들은, 다윗이 하나님의 집근처에 있는 건물에 이와같은 둥지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과 멀리 떨어져있는 궁전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제단근처에 있는 새의 둥지에서 살기를 원했다.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55:6). 그는 때때로 안식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참새의 날개를 바라고 있다. 그는 미지의 하나님의 뜰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참새라는 말은 작은 새를 나타낸다. 추측컨대,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할경우 많은 음악이 사용되었던 다윗시대에는 전체의 하모니를 이루기위하여 장막의 뜰주변에 새장을 달아놓고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를 길렀던것 같다. 왜냐하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104:12)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새들이 제단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자기들의 둥지를 갖고있는 것을 부러워한 것이다. 또한 다윗은 하루밤을 묵으려는 나그네처럼 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의 입에서 편안하게 지내듯이 하나님의 집에서 거주하고 싶어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이 새들의 둥지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새끼를 위한 둥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일과 명성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기도를 살펴보라. "주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이시니이다. 가난하고 고난받는 백성이 그의 왕외에 어디에다 보호를 청할수 있겠나이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지말아야 하나이까?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나로하여금 주와 주의 제단곁에서 살게하시고, 그곳에서 죽게하소서."
(4) 기자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수종들수 있는 권리를 가진 성직자들과 백성들의 행복을 고백하고 있다. 장막주위에 거주하면서 그 반열에 따라 장막 일을 하는 성직자들, 곧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복이 있다(4절).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만일 세상에 천국이 임한다면 그 천국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가운데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 이것을 적용시켜 보면, 그곳에 거하는 천사들과 영화롭게된 성도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밤낮으로 쉬지도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처럼 항상 하나님의 집에 거하지는 못해도 자유롭게 하나님의 집에 출입할수 있는 백성들도 복이 있다(5-7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은 "주를 자기의 힘으로 삼고 의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의식을 사랑하는만큼 복을 받는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안에서 얻는 행복을 그들의 목적으로 정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모든 길을 기뻐한다. 그들은 거룩한 의식을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순종할때 생기는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하는만큼 복을 받는다(6절). 그들이 절기에 예배를 드리기위하여 각지방에서 올라올때, 그들의 길에는 메마르고 모래투성이의 계곡들이 많이 가로놓여 있다. 그들은 그 계곡에서 갈증으로 말미암아 항상 죽음의 위협을 받게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목을 축일만한 작은 구멍들을 파서 빗물을 받아놓는다. 그들은 바카(Baca)라는 말이 의미하는바와 같이 수많은 눈물골짜기를 통행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물기가 많은 골짜기들이 가로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그 골짜기는 비가 올경우 빗물이 그 샘들을 채울뿐 아니라 넘쳐흐르기까지 해서, 그들은 통과할수 없다. 그러나 물을 빼내고 도랑을 팜으로써 길을 만들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들이 편리하게 오고가게 하였다. 시장으로 가는 길뿐 아니라 교회로 가는 길도 잘 보수해놓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선한 뜻을 가지고 예루살렘 길로 나섰음을 보여준다. 하늘로 이르는 우리의 길에 바카 계곡이 가로놓여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천성을 향해 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하여 마련해주신 위로들을 계속 받게된다면 그 계곡조차도 하나님의 샘이 될수 있다. 결국 자기들의 여행목적지에 도달할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7절). 저희는 힘을 얻고 더얻어 나아가. 그들은 여행의 지루함과 중도에서 겪는 난관들로 말미암아 피곤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예루살렘으로 다가갈수록 더많은 생기와 기쁨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꾸준히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위에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요 1:16).

Ⅱ. 즐거움을 주는 하나님의 규례 84:8-12
(1)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열납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귀를 기울여 주시기만을 기도하고 있다(8,9절). 그는 자기 자신을 '주의 기름부으신 자'로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은 주에 의해서, 그리고 주를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가지의 영광스런 칭호로 불리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곧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고 자기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하시는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이시다.
(2) 기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규례를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궁정에 머물기를 원했다(10절). "모든 세속적인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앙적인 봉사를 할수 있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이세상의 어떤 곳에서 보내는 천날보다 나은즉 이제 내가 악인의 장막에서 군왕처럼 거하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천직에 불과한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사옵니다. 나는 악이 지배하는 장막에서 왕으로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집에서 짐꾼으로 지내기를 원하나이다. 아니 거지가 앉아있는 문지방에라도 눕기를 원하나이다(행 3:2). 그것은 아무상관이 없나이다. 하나님의 집에 머물지못하는 것보다는 그 문지방에라도 머무는 것이 좋사옵니다."
2) 하나님 자신은 그의 소망이며 기쁨이자 모든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11절). 우리는 이세상에서 흑암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그는 곧 우리에게 빛과 활기를 주며 우리를 인도하고 지시하는 해와 같은 분이 되실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세상에서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방패와 같은 분이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11절).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시는 선의와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선한 일을 뜻한다. 그리고 영화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받아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베푸신 영광과 그가 우리에게 아들의 기업으로 예비하신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롭게 하시기위한 준비로서 이세상에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며, 또한 은혜의 완성으로서 저세상에서는 영광을 주실 것이다. 은혜와 영화는 모두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이것은 포괄적인 약속이며, 성도들에게 위로를 보장해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할수 있다. 곧 그들은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한지 않은지를 살펴보시며,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적당한때에 그것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우리가 여호와의 전에 갈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 전에 계시는 여호와께 나아갈수 있다. 그리고 그안에서 우리는 복을 얻고 안락함을 누리게될 것이다.

# 핵심
84:1-12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편이다.
성전과 예배당(84:1-4)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의미를 지닌 반면에, 오늘날의 예배당은 주로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축복을 누릴수 있다. 하지만 예배당 역시 하나님과 성도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처소이다. 분주한 세상으로부터 예배당으로 나아갈때, 우리는 보다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날수 있다.

# 묵상
성전에 대한 감탄 ( 84:1 )
본문은 성전의 외적화려함에 대한 탄성이기보다 내적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입니다.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때 성전은 성도에게 가장 안전하고 복된 장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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