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하나님께 영광 145:1-9
'다윗의 찬송시'라는 표제로 미루어 다윗이 이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였으며 자주 불렀었으리라고 짐작해 볼수 있다. 실제로 다윗은 어느곳에 가든지 이노래와 동무하여 다녔었다.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을 찬양하고 후반부에 이르러 영원한나라와 그 통치하심에 대해 찬양을 하였다.
(1)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시편 기자는 다른사람들이 무슨일을 하든지 상관치않고 오로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전념하려 한다. 이 일은 그에게 있어 마땅히 해야할 의무이며 동시에 기쁨의 근원이었다. 다윗은 엄숙하게 예배를 드릴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하였다. 더군다나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겠다고 하여 일생동안 쉬지않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할일이 많아 바쁘거나 슬픔에 젖어 마음이 우울하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날이 하루라도 있어선 안된다. 하나님은 매일을 하루같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송축하며 거룩하신 그 이름을 높여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 역시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성적인 다윗의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에 동참하게 만들수 있을 것이다. 그 백성은 앞으로도 영원히 여호와를 송축하며 살아갈 것이다(4절).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2) 무엇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하는가. 다윗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광대하심과 능한 일로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땅히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한걸음 더나아가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자기안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주의 이름을 한껏 '크게 찬양해야'할 것이다. 여호와의 광대하심은 인간의 지혜로 도저히 헤아릴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찾아도 끝을 찾지못할때 우리는 다만 가장자리에 앉아 내려다보며 그 깊이에 대해 경탄할수밖에 없다(롬 11:3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낮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역사하시는 과정을 놓치지말고 지켜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선하심은 그의 영광이 된다(출 33:19).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7절).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찬양하여도 주의 은혜를 다 거론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은혜를 풍성히 베푸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 말할때에는 언제나 '주의 의를 노래해야'한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영혼을 위해 큰은혜를 베푸시지만, 한편으로는 주께 대적하는 무리를 반드시 의로 다스리신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속성중에는 끊임없는 선하심도 포함된다(8절). 주를 섬기는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그 손길을 필요로하는 영혼에게 '자비하심'을 베푸신다. 또한 주의 뜻을 거스릴때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인자하심'을 크게 베풀어주시기도 한다. 즉 하나님은 언제든지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려고 준비를 갖추어 두신다.
Ⅱ. 여호와께 감사의 찬송 145:10-21
시편의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 선하심에 대하여 송축하였다. 이제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선하심과 광대하심에 기반하여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통치를 주관하니 성도들은 모두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될 것이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10절). 만물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되어있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한다 함은 아름다운 건물로인하여 건축가의 명성이 높아지고 훌륭한 그림으로 말미암아 화가가 칭송을 받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도 만물로인해 찬양받으심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성도들은 자녀의 입장에서 사려가 깊고 자애로운 부모를 높이는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해야 한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나라는 실로 크고 광대하다. 왜냐하면 땅위의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솔로몬이나 아하수에로왕의 궁전도 상당히 훌륭하고 장엄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엄있는 궁전도 하나님나라의 영광과는 도무지 비할바가 못된다. 마치 한낮의 밝은 태양아래 반딧불의 빛을 내놓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다윗은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할'때에는 항상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을 인생에게 알게'하여야할 것이라고 훈계하였다(11,12절). 한편 주의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점도 기록해 놓았다(13절). 이 땅위에서 아무리 큰권세를 누리는 왕이라하더라도 보좌가 영원히 계속될수는 없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왕관을 장식하던 꽃은 시들고 그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스리시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그의 나라의 성격과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곧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의 통치는 그 호칭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하나님은 매사에 그 선하심을 나타내시고 모든 생물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풀어주셨다(15,16절).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살아간다. 생물의 기원자체가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처럼 주어진 생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역시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하등동물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처음부터 그러한 지식을 소유할 능력조차 지니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도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에 의존하여 식물을 찾기때문에 '주를 앙망'하는 상태라 할수 있다. 비록 하등동물이라 하여도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신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이성을 지닌 피조물로 인정하시고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시는 인생들의 경우는 더 말할나위도 없는 일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사 누구에게나 불법을 행하시는 법이 없고 모든 피조물에게 공의로 대하신다. 인간들은 때때로 공의에서 벗어난 일을 저지르곤 하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한결같이 의를 행하실 뿐이다. 또한 하나님은 멸망에 이르려하는 자를 도우사 건져주신다(14절). 이렇게 약한 자를 도우시는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히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라는 표현은 혹시 실족하는 자가 있어도 저들로하여금 완전한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숱한 세월을 억압과 고초속에서 보내느라 '비굴'해졌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일어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다가 기진해버린 인생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만하면 짐을 가볍게하사 일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사 응답을 하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두고 계시다(18,19절).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 나라의 은혜가 밝히 드러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단 기도의 자유뿐만 아니라 담대히 은혜를 구할수 있는 용기도 지니게 된다. 본문에 여호와께서는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하시며'(16절) 한걸음 더나아가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였다(19절).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천부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굶주리도록 버려두실리가 없다.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일찍이 다윗의 음성을 들으사(이는 곧 저를 구원하셨다는 의미이다) '들소 뿔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귀기울이고 계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22:21). 우리가 진정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 여호와께 경배하고 선한 사업에 힘써 봉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사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임할때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생각이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과 일치해야 한다. 만약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예배를 드린 것이라 할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신다(20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다윗은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라는 말로 이 노래를 끝맺는다(21절).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이란 인간의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아름답게 서술하여도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한가지가 끝나기 무섭게 또 새로운 일이 시작되므로 감사의 찬송도 계속해서 불러야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윗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밝혀놓았다.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 핵심
145:1-21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른 답관체 형식의 시편이다. 피조세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한다.
하나님의 불가해성(145:3)
한마디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너무 위대하기때문에 인간의 유한한 생각으로는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관한 참된 지식을 가질수는 있지만 그분을 남김없이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른바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라는 교리를 진술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 온전히 파악되고 이해될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인생은 신비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하신만큼만 그분을 알수 있을 뿐이다.
# 묵상
찬양의 시기 ( 145:1-13 )
본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광대하심을 주제로 한 다윗의 찬송시로써,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웃과 그의 크신 능력을 대대로 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즉, 기쁠때나 슬플때를 불문하고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높여드려야 마땅합니다(살전5:16-18).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루신 일은 가장 지혜롭고 인생을 궁극적으로 유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인생 ( 145:14 )
하나님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와 영육간에 무력하여 권력앞에서 넘어질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경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수 없는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사61:1, 2).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본받아 이웃에게 자선과 긍휼을 베푸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약1:27).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자 ( 145:20 )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자는 악인입니다. 여기서의 악인은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한 자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며 매사에 하나님 없이 생활하는 자를 말합니다(롬1:21). 인생은 각각 하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영원한 미래가 결정됩니다(요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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