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부활된 할례의식 5:1-9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친 여리고 평지는 의심할바 없이 그 수많은 진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광야에 있던 교회가 이제 광야에서 나왔다. 적에게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1절에서 알수 있다. 2절이하에 기록된대로 애굽의 수치를 굴려보낸후 그것은 친구들의 눈에 매우 아름답고 맑게 보였다.
1. 공포에 빠진 요단 서편의 왕들(1)
본문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넜다는 소식이 이땅의 왕들에게 얼마나 큰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나온다. 그들은 불앞의 밀초와 같이 되었다.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이제까지 가나안 땅의 왕들은 사기를 잘 유지해왔었다. 땅을 소유했고 인구로 번성했으며 성들도 요새화되어 있어서 침략자와 맞서서 얼마든지 싸워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그것도 기적으로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는 분명히 자연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워주고 있다고 생각한 가나안 왕들은 '마음이 녹았고' 이제는 어찌할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두려워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 자체가 만만찮은 조직체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머리로 계셨기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약속하신대로(출 23:27) 그들에게 공포를 집어넣고 그들의 혼을 빼놓으셨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의 할례(2-9)
그때에 (2절). 즉 그들 주변의 나라가 몹시 당황해할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1)이런 거국적 할례를 시행하게된 경위를 살펴보자. 애굽에서…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4,5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당시 그들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바로의 포고령이 떨어지자 할례식이 중단되었었다. 애굽에서 나온후…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그리하여 이들을 상대로 거국적인 할례가 실시된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서 이제 있게된 할례는 '다시'란 말로 표현되었다(2절). 모세가 친히 통치할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38년동안 자녀를 낳으면서 그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첫째, 어떤이들은 할례가 필요없었기 때문에 빠뜨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로 제정된 것으로서 따라서 광야에서는 할례의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할때까지 할례에 대한 가르침을 의무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셋째, 어떤이들은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나라가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를 감안하여 할례에 대한 준수를 요구치 않으셨다고 한다.
넷째,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불신앙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을 계속해서 나타낸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금송아지를 만듦으로써 계약을 깨뜨렸을때 언약의 돌판이 깨뜨려진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있다. 그 이유가 어쨌든간에 거의 40년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이 장엄한 규례가 빠진것 같다. 이 사실은 할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며 또한 영속적인 의무도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2) 여호수아에게 떨어진 이 거국적 할례에 대한 명령에 관하여 알아보자(2절). 왜 지금 이 명령을 내리셨을까?
1)약속이 이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할례는 이 약속의 보증으로 제정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약속대로 안전하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
2)40년의 세월이 끝남으로해서 위험한 기간이 모두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계약의 표식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①하나님은 이로써 이스라엘 진영을 전쟁의 규율이나 방책으로써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지시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②하나님은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했던 언약을 확약하신다. 그리하여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칠 그들에게 새힘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와 성취 그리고 약속의 땅을 완전히 소유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③하나님은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과 또한 우리에게 교훈을 베푸신다. 모든 큰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며 그의 은혜를 확인하는 한편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할례의 피가 뜻하는 것이다.
④이처럼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할례가 부활된 것은 다른 규례들도 다시금 부활시켜 준수해야함을 뜻한다.
⑤본문에 기록된바 '다시' 시행된 이 할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복음의 안식에 들어갈때 받는 신령한 할례를 상징한다. 그것은 예수를 참된 할례자 즉 율법의 명령에 따른 육체적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시사해준다(롬 2:29).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리우는 것이다(골 2:11).
(3) 백성은 이 명령에 순종하였다. 여호수아가…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3절). 백성은 이 고통스런 의식에 선뜻 복종함으로써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였다.
(4) 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애굽의 수치를 굴러보낼수 있었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숭배에 오염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수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 모든 수치를 굴려보내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할수 있는 소망을 갖게되었다. 그들이 무사히 가나안에 도착한 것도 역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굽 사람들의 못된 생각 즉 '그들이 그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출 14:3)는 생각을 침묵케하였기 때문이다.
Ⅱ. 유월절을 지킴 5:10-12
가나안 백성들이 깜짝 놀랐으리라고 쉽게 생각할수 있다. 여호수아는 전쟁을 시작하기전에 연이어 종교의식을 가졌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면 끝맺음이 좋을 것이다.
(1) 율법에 정한 시간 곧 '첫달 십사일'에 할례를 행한 그 장소에서 엄숙히 유월절을 지켰다(10절).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유리할때는 그들에게 위로와 유익이 되는 이 제도를 거절당하였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위로하시며 이로써 그 즐거운 제도가 부활된 것이다. 엄숙한 할례예식에 이어 곧바로 엄숙한 유월절이 따랐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받고 세례받은 이들은 바로 '떡을 떼게' 되는 것이다(행 2:41,42). 이스라엘 자손은 여리고 평지에서 이 유월절을 지켰다. 그것은 가나안 사람들을 상관치않는 행위였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시 23:5).
(2) 이스라엘 진을 위하여 '그땅 소산'이 양식으로 쓰이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만나가 그치게' 되었다(11,12). 만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베푸신 놀라운 자비였다. 하지만 그것은 광야생활을 대변하기도 한다. 더욱 바람직한 일은 '그땅의 소산'을 먹은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공급받게 되었다.
1)들에 살던 백성들은 자기들의 곳간과 논밭 그리고 그안에 있는 모든것들을 버려둔채 안전을 위하여 여리고 성으로 도망하였다. 그래서 때에 알맞는 공급이 이루어질수가 있었다. 유월절이 끝난 다음에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만일 만나외에 다른 양식이 없다면 규정대로 무교절을 지킬수 없다. 이제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곳간안에서 충분한 곡식을 찾아내어 무교절을 지키는데 넉넉히 쓸수가 있었다. 유월절의 안식일 이튿날에 그들은 '곡물의 첫이삭 한단을 여호와앞에 흔들어야' 한다(레 23:10,11). 이 명령은 특별히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지키도록 지시된 것이다. 그때는 마침 '그해 그땅 소산'이(12절) 이미 자라서 익기 시작할무렵이라서 쉽게 이 명령을 지킬수가 있었다.
2)그들이 '그땅 소산'을 먹기 시작하자 만나가 그쳤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만나는 그들에게 필요할때에 내렸다. 그것은 필요로하는 경우에만 내렸고 이후 더이상 내리지않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식량을 얻을수 있을때에는 비상한 공급을 기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수 있다. 이제 그들에게 만나가 필요없게되자 하나님은 그것을 거두어가셨다. 하나님은 슬기로운 아버지이시다. 그는 자기 자녀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공급해주신다. 그러나 그들의 기분에 맞추어 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는 신령한 만나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광야에 있는 자기 백성을 먹이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가나안으로 이르게 될때 이 만나는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더이상 만나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Ⅲ. 여호와의 군대장관 5:13-15
이제껏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차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을 찾아볼수 있지만 이제까지 하나님이 영광중에 그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 곤경이 커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더 큰격려가 있었다.
(1) 여호수아가 이 환상을 보는 은혜를 입은때는 그가 할례와 유월절을 아주 엄숙하게 지킨 바로 직후였다. 우리도 마땅히 할일을 지켜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될 것이다.
(2)여호수아가 이 환상을 본곳은 '여리고' 가까운 곳이었다. 아마도 그는 전혀 혼자있었던 듯하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였으므로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사람은 생각하기를 그가 거기서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니면 아마도 여리고성을 살펴보며 그것을 어떻게 공략할지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지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 법은 잠자는 자를 돕지않고 깨어있는 자를 도와준다. 하나님이 오셔서 스스로를 군대장관으로서 알리셨을때 여호수아는 장군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잘지키고 있었다.
(3) 하나님의 현현에 대하여 알아보자. 사고와 주의력이 깊은 사람이 늘 그렇듯이 여호수아는 눈을 땅아래로 고정시키고 아래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얼마 멀지않은 거리에 한사람이 나타나 서있는 모습에 놀란 그는 눈을 치켜들지 않을수 없었다. 이 사람은 영원한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는 지속적인 상태로 인간의 성질을 입으시기전에 자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곤 하였다. 그는 여기서 '칼을 빼어 손에 든' 군인으로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있을때 그는 나그네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들판에 있던 여호수아에게는 전사로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의 믿음이 바라고 갈망하는바가 되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여호수아에게 오신 것은 용감히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칼을 빼어 손에 드신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힘입어 용감히 싸울 것이다.
(4)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가가서 담대히 질문하였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큰용기와 결의를 보여준다. 그는 이 갑작스런 출현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기 백성의 복지에 대한 여호수아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아마 여호수아는 그를 적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이처럼 우리도 가장 우리를 위하는 자를 우리를 대적하는 자로 오인하기 쉽다. 이스라엘 자손과 가나안 민족 그리고 그리스도와 바알세불사이에는 어떠한 중립적 입장도 있을수 없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해치는 자이다.'
(5)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14절). "아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너희의 대적이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너희에게 친구로써뿐만 아니라 총사령관으로서 온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와 또한 이들을 도와줄 천군을 모두 다 지휘하실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 암시를 받아서 훗날에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히 2:10), 그리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명자'(사 55:4)라고 부른 듯하다.
(6) 여호수아는 그가 신적인 인물이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1)여호수아는 그에게 절하였다.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14절). 여호수아는 자기가 이스라엘 병력의 장군이 되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를 자기의 상관으로 맞아들이고 복종을 표시했다.
2)여호수아는 그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4절). 앞서의 질문은 여호수아의 담대하고 군인다운 점을 보여주는 반면에, 이번 질문은 그의 경건하고 성도다운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것이 여호수아의 뛰어난 기상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면류관을 쓴 왕들조차도 '왕의 왕' 되신 주 예수의 보좌앞에서 아무리 자기를 낮춘다 해도 부족한 것이다(시 2:10, 11; 72:10,11; 계 19:16).
①여호수아와 그리스도와는 어떤 관계인가? 그리스도는 주가 되시고 여호수아는 종이다. 따라서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대장이 되시고 여호수아는 한군사로서 그의 휘하에 있어야 한다. 곧 여호수아는 명령받은대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마 8:9).
②여호수아는 이러한 관계에 준하여 질문한다. 주여…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자하는 진지한 열망과 그 뜻대로 기꺼이 행하겠다는 마음자세와 결의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기질의 마음이야말로 그가 현직의 적임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복종할줄 아는 사람은 명령하는 방법을 가장 잘알고 있다.
(7) 하나님의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더욱 경외의 표시를 요구하였다(15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모자를 벗는 것처럼 경외와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였다. 흔히 우리는 무척 좋아하는 사람을 향하여 그가 밟은 땅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안의 존경심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울리는 일이며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패트릭 주교는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모세에게 내리신 명령과 같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또한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이었다(1:5).
# 핵심
5:1-15
요단강을 건넌뒤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식을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에 대한 육체적 증거이며(창 17:9-14), 유월절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었다(출 12:48). 할례는 언약백성이 지니는 표시였고, 유월절은 출애굽의 구원을 축하하며 기념하는 축제였다. 가나안 땅에서 이 두의식을 지켜 행한 이유는 아브라함 언약과 출애굽이 바로 이 성취의 때를 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 묵상
할례의 목적 ( 5:2-5 )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명령하신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하는 외적인 징표입니다. 할례의 진정한 증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신약에서 할례는 세례로 변화되어지는데,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정한 할례(세례)를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약속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골2:11-15).
가나안에서 그쳐진 만나 ( 5:12 )
만나는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양식이었기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땅의 소산을 거둘수 있게되자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역사하기도 하시지만 자연적인 은총으로 인간의 노력을 통해 역사하기를 더욱 원하십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 ( 5:13-15 )
이는 어려운 상황속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없습니다. 다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오셨기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적 차이 ( 5:15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시고, 악에 관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롬3:23). 그 죄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면 더크게 인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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