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에브라임에 대한 책망 28:1-8
(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죄로인하여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 경고한다. 그심판때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땅을 황폐시키고 그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에브라임은 '결실이 많음'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그들에게는 '기름진 골짜기'가 아주 많았고(1,4절)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사마리아는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었다. 그들의 땅은 가나안의 영광이었고 그들의 골짜기는 곡식과 포도로 뒤덮여 있었다.
1) 그들은 풍요함을 그릇되게 사용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의 시대에 베풀어주셨던 선하심이 그들에게 '교만한 면류관'이 되었다. 교만은 그들가운데 만연해 있는 죄였다. 그래서 선지자는 담대히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있을진저'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육욕에 빠져있었다. 에브라임은 술취함으로 유명했고 가장 기름진 골짜기인 사마리아는 '술에 만취한' 자들, 다시말해서 '술때문에 쇠잔해진' 자들로 가득하였다. 술취한 자들은 스스로를 바보와 짐승으로 만든다. 그죄는 사람들을 이기어 그들을 '종으로 만든다'(벧후 2:19). 그들의 육체는 그죄로인해 상하고 그들의 건강은 파괴된다. 그들은 그죄로인해 파멸된다. 하나님과의 화목도 깨어지며 오로지 천박한 정욕을 만족시키려고만 한다. '에브라임의 취한' 자들에게 화있을진저! 에브라임은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때문에, 그들이 취하면 특별한 화가 따른다. 어떤 사람들은 술마시기를 겨루는 못된 시합에서 다른 사람들을 곯아 떨어지게 만들고 승리를 거두어 쓴 화관이 곧 '교만한 면류관'이라고 생각한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남용한 풍요함을 그들에게서 거두신다. 그들의 '영화' 곧 그들이 자랑하던 풍요함은 '쇠잔해가는 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시절에 그들의 곡식을 도로 찾아가실'수 있으며(호 2:9) 그들이 바알을 위해서 준비한 하나님의 물건들을 도로 찾아가실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대신해서 강탈할 준비가 되어있는 '강하고 힘있는' 대리자 곧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것을 '손으로 땅에 던질' 앗수르 왕이 있다(2절). 그때 '교만한 면류관과 에브라임의 취한 자가 발에 밟힐 것이다'(3절). 술취한 자들은 어리석게도 교만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비웃음을 사게된다. 그들의 골짜기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시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안에서 부패할수밖에 없는 원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처음익은 무화과'는 발견되자마자 곧 따먹힌다. 그와같이 이세상의 재물도, 그것이 저절로 썩지않으면 처음익은 열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게걸스럽게 먹히기 쉽다.
(2) 선지자는 그다음에, 열지파에 비해 두지파 밖에 되지않기 때문에 '남은 백성'(5절)이라고 부르는 유다 왕국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1) 이사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약속하며, 에브라임의 아름다움이 짓밟히고 먹히게 될때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5,6절).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황폐시킬 그날에 하나님은 그의 남은 백성에게 그들이 필요로하고 바랄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주실 것이다. 유다 왕국 뿐만아니라 자신의 순전함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러하실 것이다.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안에서 시끄럽게 두들겨대는 '쏟아지는 우박같고, 파괴하는 광풍같으며, 큰물의 창일함같은' 때(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주께 굳게 매달림으로써 자신을 구별한 자기 백성들을 특별한 은총으로 구별하실 것이다.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5절). 하나님은 그들이 새로워진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위해 그들에게 그와같이 나타나실 것이며, 새로워진 그형상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화관이 될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혜와 은혜를 주실 것이다.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상담자들은 지혜롭고 사려깊게 지도할 것이고 재판관들은 공의와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난관을 극복하기에 필요한 모든 용기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즉 그들이 포위하고 있는 성읍들의 문, 혹은 그들이 자기들을 포위하고 있는 적들을 치러나갈때 그성읍 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힘이 되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 두가지, 곧 군대의 힘과 재판장의 지혜를 주실때 그는 그백성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되신다. 이말은 그리스도와 관련있는듯 싶다. 갈대아 역본도 이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날에 메시야가 영화의 면류관이 되실 것이라.'
2) 선지자는 타락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 한탄한다(7절).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인하여 옆걸음치며. 에브라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도 술취한 자들이 있다. 에브라임에 있던 죄가 유다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에브라임과 같이 파멸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포도주로인하여 옆걸음을 쳤다. 과음하는것 자체가 실제적인 잘못이다. 그들은 판단력이 흐려져서 술로 건강을 지키고 소화력을 촉진시키려고 생각하나 오히려 술때문에 몸을 망쳐 질병과 죽음을 재촉한다. 그들의 지각은 흐려지고 그들의 양심은 술로인해 마비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타락된 관념을 신봉하고 정욕을 즐기는 마음을 갖게된다. 다음의 세가지 사실이 이죄를 더욱 악화시킨다.
① 더나은 모범을 보였어야할 자들이 이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인하여 옆걸음치며. 그들은 술마시느라고 그들의 직무도 잊어버렸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치는 자이므로 특별한 법에 따라 금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레 10:9). 선지자들은(아모스 2:11절에 나타난대로) 나실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책망할 죄를 가능한한 멀리 피하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중에 이죄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이 있었다.
② 이죄의 결과가 매우 해로웠다. 즉 그들의 행실이 나쁜 영향을 끼쳤기때문만이 아니라 선지자가 취해서 '이상을 그릇 풀었기'때문에 매우 해로웠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재판할때 실수하고'(7절) '법을 잊어버렸다'(잠 31:5). 그들은 육체만큼이나 정신적으로 비틀거렸다.
③ 그병이 전염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상에는 토한...것이 가득하고(8절). 술취한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하여금 구역질나게 만들만큼 역겹다. 그들이 음식을 먹은 식탁은 그들이 토한 것으로 더럽게 얼룩졌던 것이다.

Ⅱ. 유다의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죄 28:9-13
선지자는 본문에서 이백성의 불행한 어리석음 즉 그들이 말을 듣지않는다는 사실을 한탄한다.
(1) 선지자들과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뜻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하려고' 하였다(9절). 먼저 진리의 지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고, 그리고나서 그들의 감동을 얻고 그들의 의지로 율법을 준수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이다.
(2)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유익을 끼치기위해 온갖 방법을 하나도 빼놓지않고 다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 즉 품에서 떨어져나와 이제막 책을 대하는 아이에게처럼 가르쳤다(9절).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은 흔히 자기 자녀들을 취학 연령인 세살이 될때까지 젖을 먹였다. 그들은 아이들이 배울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때 그들에게 여호와의 선한 지식을 가르쳤으며 심지어는 바로 얼마전에 젖을 뗀 어린아이들조차 가르쳤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읽기를 배우듯이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씩' 배웠다. 이처럼 여러번에 걸쳐 조금씩 배웠으므로 그들은 기억하는데 무리를 느끼지 않으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경계에 경계를 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경건의 교훈에는 공의의 교훈을 더해야 하고 공의의 교훈에는 사랑의 교훈을 더해야 한다. 또 동일한 교훈과 동일한 경계가 자주 반복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배우는 자들의 능력에 맞게 가르치며 그들이 가장 필요로하는 것을 여러번에 조금씩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신 6:6,7). 그들은 백성들을 구스르고 설득하여 배우게 하려고 하였다(12절). 하나님은 자기 선지자들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너희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것이 안식이니라." 너희는 곤빈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그안식은 너희 영혼의 '상쾌함'이 될것이며 오랫동안 전쟁으로 시달려온 너희나라를 전쟁으로부터 쉬게하리라."
(3) 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배우려고 하지않았다(9절). 그들은 자신들에게 안식과 상쾌함을 주는 이것을 '들으려고 하지않았다'(12절). 선지자의 가르침을 듣는 옛습관을 그대로 유지하였기때문에 가르침은 끊임없이 그들의 귀를 울렸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했다.
(4) 하나님은 이점에 대해서 그들을 아주 엄하게 벌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명백한 가르침을 들을수 있는 특전을 그들에게서 빼앗고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들에게 말하려고 하신다(11절). 위안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채찍의 두려운 소리를 듣게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불경스럽게 멸시함은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고 무르익게 할뿐이다.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13절).

Ⅲ. 심판의 예고 28:14-22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난다음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한 자들을 책망한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서 치리하는 경만한 자들,' 곧 예루살렘의 관원들에게 말을 한다(14절).
(1) 경만한 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마음대로 해보시라고 대들었다(15절).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도처에서 심판이 내려질때도 폭력에 의해서 죽지않고 수한이 차서 죽도록 죽음과 계약을 맺은 것처럼 자신의 생명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 있다면 사실 우리는 죽음이 언제 오든지간에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이 되지못하고 우리에게 실제적인 아무해도 끼치지 못하도록 죽음과 언약을 맺은 것이 된다(고전 3:22,23).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원수로 만들고 있으면서 죽음을 친구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것은 이를데없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 경만한 자들이 "우리 땅에 '넘치는 재앙이 유행하여' 다른 사람들은 그재앙을 당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할때 그들에게는 맹목적인 자만심이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무슨근거로 이러한 확신을 가졌는가?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하나님의 채찍,' 곧 넘치는 재앙인 원수에게 거짓과 허위가 된것들을 피난처로 삼아 그들의 전략이나 평화협정에 거짓 항복하여 적들을 속임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치리자들은 자신들이 지방 정치가들보다 더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위험이 지나가면 곧 자기들의 멍에를 떨어버리려는 속셈을 가지고서 앗수르 왕에게 예루살렘성을 내어주거나 그의 속국이 되겠다는 약속으로 아첨하려고 한다. 속임수와 거짓으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은 그 목적을 달성할수는 있으나 거기서 위안을 기대하지는 못한다.
(2) 하나님은 이사야을 통해서 그들의 이확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이신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근거할수 있는 기초를 보여주시기 전까지는 그들의 거짓된 확신을 방해하시지 않는다(16절). 보라 내가 한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그기초는 다음의 두가지로 이루어졌다.
첫째,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믿음을 세우기에 적합한 견고하며 영구한 기초석이다. 그것은 '시험한 돌'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가 그것을 의지해왔어도 결코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말씀이 신약에서 명백하게 그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벧전 2:6-8). 그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바로 그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놓으신 기초이다. 그는 시험한 돌이며, 건물의 모서리에 있는 모퉁이돌 곧 '모퉁이의 머릿돌'이시다. 이약속들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여라"하고 말하면서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지금 의지하고 있는 기초는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17절).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이말씀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1) 그가 교회를 세우시리라는 것 : 하나님은 기초를 놓은(16절)다음에 건축자들이 하듯이 줄과 추로써(슥 4:10)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공평이 추가되고 의는 줄이 될것이다. 그리스도를 기초로하여 세워진 교회는 성경에 의해 형성되고 개혁될 것이다.
2) 그가 교회의 원수들을 벌하시리라는 것 : 하나님은 정확한 규례를 가지고 그들을 고소하실 것이다. 이 조롱하던 자들은 헛된 소망을 가지고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 소망으로인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거짓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는 자들은 모래위에 집을 세우는 자들이다. 그집은 폭풍이 몰아치면 무너지고, 그것이 무너질때 그것을 세운 자도 그속에 함께 묻힐 것이다. 그들은 넘치는 재앙이 그땅을 휩쓸고 지나갈때 자기들에게는 가까이 미치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들에게 그들이 먼저 그재앙으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19절). 그것이 유행할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마치 그것이 너희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온것처럼 너희가 결코 안전하지 못하리라. 흑암중에는 역병이, 한낮에는 파멸이 돌아다니리라." 멀리서 들려오는 그소식이 그들을 두렵게할 것이다. 악한 소식이 조롱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나 하나님을 신뢰하여 마음이 확정된 자는 그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에 '넘치는 재앙이' 올때 조롱하던 자들의 모든 위안과 확신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것이다(20절). 참을성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못하며. 그들은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들을 지켜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조롱하는 자들과 다투려고 오실때 세상의 의로운 재판관처럼 '자기 일을 행하시며 자기 공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에 자기 백성의 원수들을 대적해서 그일을 하신 것처럼, 이제는 자기백성을 대적해서 그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시대에 블레셋 사람들을 대적하여 브라심산에서 일어나시고(삼하 5:20) 여호수아시대에 가나안 사람들을 대적하여 기브온 골짜기에서 일어나신 것처럼 이제는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일어나실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인 지체라고 고백하면서도 교만과 조롱으로써 스스로 블레셋 사람과 가나안 사람처럼 되는 자들은 그들처럼 다루어지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그의 비상한 일'이 되고 '기이한 공'이 될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자기 백성들에게 행하시던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신다면'(63:10) 그것은 실로 기이한 일인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의 적용은 바로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말라(22절). "하나님의 말씀이나 심판에 의한 책망을 감히 조롱하려고 하지말라.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말라. 너희 결박 즉 너희를 죄의 지배아래 묶어두는 결박과 너희를 묶어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주는 결박이 우선할까 하노라." 이 경만한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멸망을 피할수 있겠는가?

Ⅳ. 심판의 제한 28:23-29
농사일을 들어 설명한(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신 여러가지 비유처럼) 이비유는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엄숙한 선언과 함께 시작된다(23절).
(1) 본문에 나오는 비유는 아주 평이하다. 즉 농부는 수고와 신중함을 기울여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그일의 방법과 순서를 지킨다.
1) 밭갈고 파종하는 일에서 그렇게 한다.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는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갈며 소망을 가지고 파종한다'(고전 9:10). 그땅을 개간하며 그르게만 하겠느냐. 그는 그땅이 씨를 받기에 적당하도록 하기위해 그렇게 한다. 그가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그토양에 적합한 씨를 뿌리지 않겠는가? 농부는 진흙땅에는 어떤 곡식이 적합하고 모래땅에는 어떤 곡식이 적합한지를 알고있다. 따라서 그는 각각의 씨를 제자리에 뿌린다. 그는 소맥은 가나안 땅의 주요 산물이었기때문에(겔 27:17) 제일 좋은 곳에 뿌리고(어떤 역본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대맥은 정한 곳에 뿌린다.'
2) 타작하는 일에서 그렇게한다(27,28절). 농부는 곡식을 타작하는 일도 정해놓는다. '소회향과 대회향'은 껍질이나 이삭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때문에 '작대기와 막대기'로 떨기만해도 된다. 그러나 '곡식'은 겨에서 낟알이 쉽게 빠져나오지 않으므로 '도리깨'로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농부는 알곡을 겨에서 떨어내기에 필요한 시간이상으로 '늘 떨기만 하지않는다.' '그는 곡식을 부수려고 하지않는다.' 즉 '수레바퀴로' 곡식을 으깨거나 '말굽으로 부수려고 하지않는다.' 곡식을 가는 일은 다른 작업에 의해서 행해진다. 생활비를 버는것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마련하는데도 많은 수고가 따른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결국 '썩는 양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더욱더 수고하기를 마다하겠는가? '곡식은 부수어진다.' 그리스도께서도 부수어지셨다.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도록 하시기위해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다'(53:10).
(2)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더나아가서 이비유를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하는 자들에 대한 답변으로 본다. "농부가 언제까지나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씨를 뿌리듯이 하나님도 언제까지나 경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죄인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심판을 내리시리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기위해 지혜롭게 그일을 하실 것이라." 그러나 우리는 이비유를 더폭넓게 생각해 볼수 있다.
1) 농부에게 '그의 하나님'으로서 '적당한 방법을 보이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26절). 농부들에게는 일의 순서를 정할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농경술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때문에 사람에게 내리신 선고를 실행하시고자 사람으로 땅을 경작하도록 내보내셨을때 사람에게 아주 유리하게 땅을 경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은 그선고의 무게를 다소나마 덜어준다. 사람들에게 그일을 할수 있는 능력과 그일을 하고자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일에서 기쁨을 갖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섭리를 직접적으로 의존하기때문에 그일을 위한 분별력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곡식을 타작하는 농부의 일에 대한 다른 예를 보면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것이라'고 한다(29절). 사람들이 일을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가 '생각이 지혜로우시고 행사가 뛰어나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다(고전 3:9). 그리스도는 참포도나무요 그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 15:1).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규례로써 끊임없이 밭을 경작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통해서 묵은땅을 파 일구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자기 종들의 손으로 그의 말씀을 뿌리신다(마 13:19). 마음의 토양이 어떻든지간에 말씀속에는 토양에 적합한 이런저런 씨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막대기도 그와같이 지혜롭게 사용된다. 고난은 우리를 세상에서 떼어내고 우리에게 있는 겨를 우리로부터 분리시키기위해 계획된 하나님의 도리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실 것이다. 즉 막대기와 작대기로 그목적을 달성하시면 하나님은 수레바퀴와 말굽을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다.

# 핵심
28:1-5
교만한 에브라임에 임할 심판을 예언한다.
에브라임의 방탕과 사치(28:3)
에브라임, 즉 북왕국의 왕들은 ‘겨울궁과 여름궁’을 따로 만들었고(암 3:15), ‘상아궁’을 가졌으며(왕상 22:39),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할정도로 호사스럽게 생활했다(암 5:11). 또한 그들은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과 살만에셀의 발흥으로 말미암아 외부의 정세가 긴박해지고 전운(戰雲)이 감도는때에도, 그들은 술과 노래에 탐닉하며 사치를 즐길만큼 어리석고 교만했다(암 6:4,5).
타작법(28:27,28)
팔레스타인의 타작법중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막대기를 가지고 곡식이 떨어지도록 줄기를 때리는 것이었다. 이는 비교적 가볍고 깨지기 쉬운 곡물을 타작하는데 사용된 방법이다(삿 6:11). 두번째 방법은 가축들의 발밑에 곡식을 두어 밟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교적 단단한 곡식을 타작할때 사용되었다. 만일 이방법을 택한다면, 주인은 소가 곡식을 떠는동안 그곡식을 주워먹는 것을 금할수 없었다(신 25:4). 세번째는 곡식위로 수레를 끄는 것이었다. 이수레는 나귀나 소가 끌고다녔다.

# 묵상
여름전에 처음익은 무화과 ( 28:4 )
무화과는 여름실과로서, 6월쯤 익은 무화과는 이른 무화과라고 불리는데(렘24:2; 호9:10; 미7:1) 특히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의 아름다움은 쇠잔해가는 꽃이요, 누구나 발견하는대로 금방 따먹어버리는 이른 무화과같이 아무런 방비가 없이 허술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 역시 이른 무화과였는데(마21:18-20; 막11:12, 13), 이는 열매를 맺을 징조조차 보이지않는 유대인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경계와 교훈 ( 28:10, 13 )
‘경계’는 계명이며, ‘교훈’은 널리 알려진 말 곧 규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0절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교사처럼 늘 재앙이 임하리라는 말만을 하며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는 이사야의 행위를 악인들이 비웃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은 들어도 듣지못하고 보아도 보지못하여 재앙을 깨닫지 못하리라는 말씀처럼(사6:10), 그들이 알지못하는 말씀을 전함으로써 그들로하여금 멸망케하시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험한 돌 ( 28:16 )
모퉁이의 돌을 가리킵니다. 이돌은 시온산에서 계시된 율법 또는 여호와께 신실한 사람들의 피난처인 시온산 위의 성전, 혹은 다윗의 이상국가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돌은 여호와께서 시온산에서 시작하신 구원활동,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신앙공동체 혹은 신앙을 상징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돌은 ‘산위에서 뜨인 돌’(단2:45)이요, 흔들리지 아니하는 영원한 구원처소이며 그를 믿지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시험하시는 돌이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거짓의 피난처 ( 28:17 )
거짓이란 주로 이방신, 우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표현은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이나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공평과 의로써 죄를 멸하시는때에 거짓 것으로 즉 우상숭배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모든 사람들은 결코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깨끗이 제거되리라는 것입니다.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 ( 28:18 )
‘사망’이라는 단어 ‘마웨드’는 지하의 신, 스올의 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가나안 신화에 나오는 지하의 신 ‘몰’이나 애굽의 신 ‘오시리스’와 맹약했다고 하는 뜻입니다. 또한 이표현은 인간이 범죄하여 죽음이 이세상에 들어왔고 인간은 어쩔수없이 죽음에 이르게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사망과 음부와 맺은 언약은 그들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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