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통치 32:1-8
본문은 번영하는 왕국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장관들과 신하 모두가 준수해야할 훈령집이거나 히스기야에 대한 찬양집으로 생각할수 있다.
(1) 장관들은 자기의 직책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고 또 권세자들은 그권세를 부여받게된 목적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1,2절). 방백들에게는 왕 곧 최고 통치자로서 그들을 다스릴 군주가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방백들은 그를 통하여 연합할수 있다. 그리고 왕은 그수하에 방백들을 두어 관원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함으로써 왕은 그들을 통하여 행동할수 있다(벧전 2:13,14). 그들은 법에 따라 그들에게 부여된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지혜와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공의를 이루도록 통치해야 한다. 그리스도 자신도 규율에 따라 통치하셨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들은 백성들에게 큰축복을 베풀게될 것이다(2절). 공의로 통치하는 자 곧 '그사람은...가리우는곳 같을 것이다.' 방백들이 그들의 도리를 다할때 백성들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행동할 것이다. 이 선한 통치자는 그신하들에게 모욕과 폭력의 풍우로부터 그들을 가리우는 방파제가 된다. 하나님은 가나한 자와 고아를 지켜주시는 분이다. 그는 땅을 서늘하게도 하고 비옥하게도 함으로써 '마른 땅에 냇물같을 것이며' 가난한 여행자가 살인적인 태양의 열기를 피할수 있는 '큰바위 그늘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그의 왕국에 속한 모든 신실한 신하들에게 이와같으리라는 것은 더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가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냇물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곧 그는 여행자가 살인적인 태양의 열기를 피할수 있는 '큰바위 그늘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그의 왕국에 속한 모든 신실한 신하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그분안에서 우리는 의에 굶주리는 자들에게 공급할 냇물과 곤고한 영혼이 구할수 있는 모든 원기 회복과 여행자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는 큰바위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방파제와 바위가 자기들을 통해 피신처를 얻는 사람들을 구하기위하여 몸소 바람과 폭풍을 대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지키기위하여 몸소 폭풍우를 맞으신다.
(2) 신하들은 자기가 맡은 직책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들은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 그들의 통치자들과 교사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진리의 빛과 권능에 복종해야 한다(3절). 이와같이 축복받은 개혁이 수행되고 사람들이 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게 될때 '보는 자' 곧 선지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상을 통해 그들에게 복을 주심으로써 그들로하여금 백성들과 교통하게 하신다. 그때 전파된 말씀을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것이다(4절). '조급한 자의 마음'은 치유를 받아 '지식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이 이해할수 있는 귀를 열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후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이일을 행하셨다(눅 24:45;요일 5:20).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할때마다 더듬거리곤 했던 '어눌한 자의 혀'도 이해를 바탕으로 믿고 말하는 자들처럼 '말을 분명히 할것이다.' 선과 악의구별은 빛을 어두움이라 하고 어두움을 빛이라 하는 자들로인하여 더이상 혼돈되지 않을 것이다(5절).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궤휼한 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를때 '은인'(눅 22:25)으로 불리지만 세상이 더 현명해지면 그공로에 따라 발탁될 것이다. 악한 자들은 더이상 사람들로부터 평판을 얻지못할 것이다. 다시말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재물이나 명예로운 직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끼치는 덕과 유익함과 선행을 통하여 백성들을 복되게 할것이다. 이러한 규율을 강화시키기위하여 여기에서는 궤휼한 사람과 정대한 사람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궤휼한 자와 야비한 자는 권세를 손에 쥘경우 더 큰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영광은 그를 더 악하게 만들 것이다(6,7절). 이처럼 비열하고 악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한 일을 꾸민다. 그들에게는 일말의 관대함도 찾아볼수 없다. 죄안에서 일을 꾸미고 계획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단에게 속한 일이 더많아진다. 그들은 감정이 격해있을때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비열하고 악한 말들을 서슴지않고 내뱉는다. 그들은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림'으로써 불경스런 행동을 한다. '위선'(역주:한글개역에는 '간사'로 번역되어 있음)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렇다. 악을 장려하기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도 없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대신 그들을 더궁핍하게 만든다. 어리석은 자는...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하며. 즉 그들은 주린 자들이 갖고있는 음식조차 빼앗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여. 즉 그들은 어느때보다 더 긴급한때에 늘 해오던 구제마저 끊어버린다. 이처럼 야비하고 악한 사람들은 항상 그주변에 그들의 악한 목적을 돕는 악한 하수인들을 거느리고 있다. 진실로 정대하여 그렇게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그의 힘이 닿는한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푼다(8절).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자선을 베푸는 일은 그릇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해져야 한다.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하나님께서 그섭리를 통하여 그가 안정된 번영을 누리고 확고한 평판을 얻도록 그에게 보상을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은혜를 베풀어 그의 마음을 평안케 해주실 것이다.
Ⅱ. 아름다운 전망 32:9-20
이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궤휼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정대한 자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그들의 정대한 행동에 대해 보상해주시는 내용을 대하게 된다.
(1) 사람들의 행실이 매우 악할때 역경의 시기가 온다. '안일한 부녀들'과 '염려없는 딸들'에게 그 경종이 울리고 있다. 그들의 교만과 사치를 채워주기위하여 그들의 남편들과 아버지들은 가난한 자들을 굶어죽게 하는 시험을 받게된다. "일어나서 정중하고 주의깊게 내 말을 들을지어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쾌락과 방종에 빠져 살고있는 땅에 황폐케하는 심판을 내리려하셨다. 이것은 주로 산헤립의 군대가 유다의 모든 성읍을 포위하고 있을때 그들의 파괴행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러날 여러해'(흠정역)라는 말은 '일년 남짓'(한글개역에는 이렇게 표기됨-역주)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황폐케하는 심판은 일년이상 지속되었다. 앗수르 군대는유다 땅을 침입할때부터 시작해서 이처럼 오랫동안 유다 땅을 황폐케함으로써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려 했다. 너희 염려없는 여자들아...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소작료와 산해진미를 대어주던 그땅이 머지않아 황폐케되리라고 말한다. 포도수확이 없으며. "그렇게되면 너희가 무슨 수로 포도주를 즐기겠느냐? 열매거두는 기한이 이르지않을 것임이니라. 이는거두어들일 것이 전혀없을 것이기 때문이라(10절). 너희에게는 좋은 우유와 좋은 밭과 소산물이 부족하게될 것이라." 그들이 편히 살던 유다의 성읍들이 폐허가 될것이다(13,14절). 형극과 질려(곧 죄와 저주의 열매)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그때에 강함과 웅대함에 있어서 요새와 망대같았던 그훌륭한 집들이 '영영히 굴혈이 될'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이런 광경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떨고 당황하며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신다(11절). 이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옷을 벗기리라는 것을 시사할뿐만 아니라, 환난을 막는 최선의 길은 진실된 자책과 경건한 슬픔으로 하나님앞에 회개하며 스스로를 겸비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환난에 대한 최상의 준비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정욕의 즐거움을 떠나는 것이다.
(2) 자신의 순전함을 지키는 나은 자가 아직 있을동안에는 필경 좋은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기대할만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때를 히스기야 통치 말기에 보았다. 그러나 이 예언은 보다 멀리있는 메시야의 날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메시야는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이다. 이 복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15절).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뿐만 아니라 우리안에서의 하나님의 선한 역사까지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신을 주심은' 누가복음 11:13절과 마태복음 7:11절과의 비교에서 알수 있듯이, 사실상 그들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성신이 그들위에 부어지리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 소망을 가지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은총을 베풀고자 하실때, 그은총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성신을 부어주심으로써 자격을 부여하신다. 메시야의 왕국은 성령이 부어졌을때 임하셨고 세워졌으며(행2장), 또 세상끝까지 존속될 것이다. 광야(메마른 불모지)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그때 땅이 그소산을 낼 것이다. 메시야의 날에는 '산꼭대기 땅의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리라'고 하였다(시 72:16). 어떤이는 이것을 복음의 교회로 이방인이 들어오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성령이 땅에 부어지면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그광야를 '아름다운 밭'이 되게하고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어' 그밭을 더욱 기름지게 할것이다. 목회자들은 율법을 설명하고 재판장들은 그율법을 집행할 것인데, 이들은 악한 자들을 선하게 하고 선한 자들을 더 선하게 할만큼 현명하고 신실할 것이다. 각계각층의 백성들 곧 가난하고 비천하며 무식하여 광야처럼 버려진 자들과 부유하고 훌륭하고 유식하여 아름다운 밭처럼 존경을 받는 자들이 다같이 정확한 사리판단을 하게될 것이다. 내적인 평화(17절)는 의가 내재할때 따라온다(16절). 의자체가 곧 평화이며 그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 곧 마음의 경건한 평정과 안심이다. '모든 경건과 단정함중에' 사는 삶은 고요하고 평안하다(딤전 2:2).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우리는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것이다. 비록 의의 역사가 수고스럽고 우리에게 멸시를 준다하더라도 그것은 평화이다.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산헤립의 침입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자 백성들은 의심할 나위없이 전쟁의 경보로 소란스럽게 되지않은 조용한 거처가 주는 긍휼을 그 어느때보다도 실감하였다. 각가정은 분쟁과 싸움없이 평화로이 지내도록 해야한다. 그리고나서 가정을 하나님의 보호에 맡겨야 한다. 예루살렘은 평화로운 거처가 될것이다(참조. 33:20). 바람을 막도록 심기운 '삼림이 우박에 상하고' 그위에 격하게 부딪히는 폭풍이 임하게 될때에도 예루살렘은 '조용히 쉬는 곳'이 될것이다. 왜냐하면 그성읍은 낮은 곳에 있게될 것이어서 즉 바람보다 낮은 곳에 있어서 노한 폭풍을 맞지않으며 '예루살렘을 두른 산들'(시 125:2)로 보호받는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에서 해마다 좋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수확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지만, 농부들은 부지런해야 하며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려야' 한다. 만일 농부가 그렇게만 한다면 그가 자신의 가축들 곧 소와 나귀를 몰고 들어가 잎사귀를 먹일정도로 곡식이 무성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농부처럼 물가에 그들의 씨를 뿌리러나가는(마 13:3) 사도들의 사역에 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복된 시대를 베푸실때 자기가 가진 것으로 선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향상시키는 자들, 즉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 핵심
32:1-20
의와 공평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왕이 출현할 것을 선포한다.
물가에 씨뿌리기(32:20)
물이 귀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물가는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물가에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둘수 있었고(시 1:3), 심지어 소와 나귀 등의 가축들을 물가의 밭으로 몰고나와 일찍나온 잎들을 먹일수 있었다. 물가의 땅은 비옥하여 식물들이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 묵상
의로 통치할 한왕 ( 32:1 )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고대해온 구세주 메시야를 뜻하는 말로서, 이는 하나님나라를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고명한 자 ( 32:8 )
고명한 자란 히브리어로 ‘나디브’라는 말로, 남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곧 외부적인 강압에서가 아니라 그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봉사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이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자된 성도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돌보는 성품이 되어야합니다.
안일한 부녀들 ( 32:9 )
‘안일하다’라고 번역된 ‘솨아난’은 ‘태평스러운’, ‘오만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일한 부녀들이란 안심하고 나태한 여인들같은 예루살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마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처녀(마25:6-15)와 같이 주의 날의 도래에 대해서 알지못한채 오직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의가 있는 아름다운 밭 ( 32:16 )
구약사상에 따르면 땅의 생산력과 인간의 정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시72편; 사11:1-9). 그러므로 이표현은 의를 이루는 곳에서는 생산력도 풍성해짐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부어짐으로 새로운 삶의 유형이 나타나고 그결과로 자연도 새로운 생산력을 갖게됨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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