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의무의 권면 56:1,2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우리에게 오실때 우리는 의무적으로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해주고 계시다(1절). 나의 구원이 가까워왔고. 산헤립 혹은 바벨론으로부터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될 큰구원을 예시해주는 것이다.
1) 복음적인 구원은 여호와의 구원이다.
2) 그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 이 하나님의 의를 사도바울은 자기 자랑의 근거로 삼고있다(롬 1:17). 율법은 모든 죄인들을 정죄하는 하나님의 의를 계시했지만 복음은 그죄로부터 모든 성도들을 면제케하는 것을 계시했다.
3)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원의 날이 오기 오래전부터 그날이 오고있음을 알고있었으며 또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주시했다.
(2)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의 의무를 통하여 그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계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서는 안된다. 곧 "우리는 구원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고있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고싶은대로 살아도 좋노라. 왜냐하면 이제는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구원에 이르지 못할 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 행위이다. 오히려 구원이 가까이 왔을때는 이와 반대로 죄에 대한 경계심을 배로 늘려야 한다. 여기에서 다가오는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갖추거나 준비해야할 것으로 요구되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정직하고 공정해야 한다.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1절).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로 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에게 진실로 대해야 한다.
2) 우리는 안식일을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2절).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 못된다. 공의와 심판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결과라고 할수 있는 둘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의무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일 성수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과라고 할수 있는 첫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의무들을 대표한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날과 다른 날을 구별함으로써 이교도와 그들 자신을 구별했을 것이다.
3) 우리는 죄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말아야 한다. "그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말은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명예로나 자기 이웃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더나아가서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자기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어떤 일도 하지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다. 안식일을 가장 잘지키는 것은 일주일내내 선한 양심을 잃지않는 것이다. 거룩한 대화를 함으로써 우리의 얼굴이 사람들앞에서 빛난다면 이것은 우리가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나타낼 것이다.
Ⅱ. 진실한 자에 대한 격려 56:3-8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면서도 큰실망을 안고 수고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있다.
첫째,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망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 연합'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는지에 대해 의혹을 품고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인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3절). 그들은 약속의 언약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방인들이었기때문에 아무런 분깃이나 몫도 얻지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그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며 나를 그들중 하나로 인정하지 않으시거나 나로하여금 그들과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
둘째, 이스라엘에 속하여 있으나 자녀들을 낳지 못하기때문에 낙담을 한 사람들도 있다. 고자는 스스로 '나는 마른 나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식이 없거나 자식을 결코 얻을것 같지 않기때문에 아무쓸모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더욱더 슬픈 일은 고자들은 제사장이 될수 없었고(레 21:20) 회중에 들어갈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신 23: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자들로하여금 그들이 복음 교회와 영적인 제사장이 되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생각을 하지않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규례속에 있는 간막이 벽을 제거하심으로 이방인들을 허용했듯이 의식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배제되었던 사람들도 허용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격려를 베풀어주신다.
(1) 교회와 언약의 자손이라는 영예를 얻었으나 자기의 자식이 없는 사람들.
1) 그들의 성품은 얼마나 선한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령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킨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다. 은혜의 언약은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공언된다. 따라서 그의 언약을 굳게 잡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을 포기하여 그의 백성이 되라는 제의를 진정으로 수락하는 것이다. 우리는 범죄자가 도피처인 지성소로 달아나 제단의 뿔을 굳게 잡는 것처럼 그언약을 굳게 잡아야한다.
2) 비록 그들이 가족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이 선한 성품에 부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다음의 약속을 받게될 것이다(5절).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자들에게는 내가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줄것이라." 인간은 아들과 딸로부터 안식처와 가문의 이름을 얻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들은 그보다 더좋은 안식처와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전자의 결핍을 메꾸고도 남는다. 비록 그들에게 가정의 음악이 되게하는 자녀들은 없지만 그들은 안식처와 이름을 얻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그들에게 안식처와 이름을 주실 것이다. 즉 그는 몸소 그들의 안식처와 이름이 되어주실 것이다. 그는 그의 집안에서 그들에게 안식처와 이름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안식처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있는 관계와 그리스도에 대해 갖고있는 관심과 영생에 대해 품고있는 소망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받는 축복된 장소와 축복된 이름이다. 그것은 결코 '끊치지 않는 영영한 이름'이 될것이다.
(2) 이방인의 자녀들.
1) 여기에 그들이 이제 교회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언급되고 있다(6,7절).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나올때 그들은 그들의 이웃을 데려와도 상관없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의 집안에 그들 모두를 수용할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주실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이방인의 아들들도 다음과 같이 행할때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집안에서 안식처와 이름을 얻게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첫째, 그들이 다른 신들을 버릴 때이다.
둘째, 그들이 왕을 대하는 신하와 장군을 대하는 군병들처럼 충성과 순종의 맹세로 하나님께 나아올 때이다.
셋째,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친구로서 즉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는' 친구로서 그에게 연합될 때이다. 그를 섬기고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요일 5:3). 그들이 하나님께로 올경우 그들에게 세가지가 약속되고 있다.
① 도움 :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7절). 이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들이 올때 환영을 받도록 명할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부추켜 그들을 오도록 할것이며 그들에게 나에게로 오는 길을 보여주어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
② 열납 :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되리니. 비록 그들이 이방인의 아들이라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개의치않고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받으신다.
③ 위로 : 그들은 영접을 받을뿐 아니라 그기쁨까지 누리게될 것이다. 내가...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것이며. 슬픔에 젖은 영혼이 기도하는 집에서 기쁨을 얻는 예는 매우 많다.
2) 여기에서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교회로 나아오리라는 내용이 약속되고 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것임이라. 이제 이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약속되고 있다.
① 이집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집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 될것이다.
② 이집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직접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세상에 전함으로써 성취되었다. 곧 '각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행 10:35). 율법에는 가까이 오는 이방인들이 죽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제 더이상 나그네와 타국민들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엡 2:19). 그리고 여기에서(8절) 암시하고 있는 것은 부름을 받은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한몸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요 10:16) '한무리가 되어 한목자에게'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인도될 것이다. 교회는 성장하는 몸과 같다. 우리는 신비로운 몸이 완전하게 될때까지 더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인도되리라는 소망을 가질수 있다.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요 10:16).
Ⅲ. 신자들에 대한 책망 56:9-12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껏 위로의 말을 하다 갑자기 여기에서부터 다음 세장에 걸쳐 책망을 하고있다. 그러므로 그가 여기에서 새로운 설교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백성들에게 적당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포로생활을 하고있는 그들을 구해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켰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본문을 통하여 그들이 어떤 죄를 범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도발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 황폐케하는 심판을 명하신다(9절). 하나님의 목초지에 거하는 양들은 이제 도살장에 있는 양과 같이 되어 그의 공의의 희생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들의 짐승들'과 '삼림중의 짐승들'은 양들을 잡아먹으러 오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이것은 주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유대인들이 멸망을 당하고 재난받은 것을 가리키겠지만 훗날 로마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나라가 파멸을 당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수도 있다. 로마 군대는 양들을 파멸시키려는 삼림의 짐승들처럼 유대인들에게 밀어닥쳐서 그들의 안식처와 나라를 아주 없애버렸다.
(2) 이러한 심판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설명되고 있다. 양무리의 파숫꾼들이 되어야할 목자들이 배반을 하고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했다. 그래서 양들은 쉽사리 야수들의 제물이 되었다. 이것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이나 그들을 이용하여 통치하던 제사장들을 가리킬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악한 방백들,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던 요시아의 아들들이나 그들 밑에서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할뿐 아니라 여호와를 더욱더 진노케했던 악한 관원들을 가리킬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구주께서 활동하던 시대에 나라의 파숫꾼이었던 자들, 곧 메시야의 임재를 백성들에게 알려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배척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킬수도 있다. "화있을진저 땅아! 너의 안내자들이 그와 같구나!"
1)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할 일에 대하여 무지할뿐 아니라 스스로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하여 가르치기에 부적합한 자들이다. 그파수꾼들은 소경이요(10절). 그들은 파수꾼이 되기에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 표현하신다(마 15:4). 들의 짐승들이 양을 마구 잡아먹으러 와도 파수꾼들은 소경들이라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다 무지하며'(10절) '몰각한 목자들'이라(11절) 양에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한다.
2) 그들은 위험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눈먼 파수꾼들인 것처럼 그위험을 경고하지도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향해 짖을뿐 아니라 물기까지 했다. 곧 그들은 양들로 걱정케하면서도 늑대나 도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항도 하지못했던 것이다.
3) 그들은 게으르고 안일에 빠져있으며 잠자기를 좋아했다.
4) 그들은 탐욕스러웠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못하는 자요(11절). 그들의 관심은 단지 그들이 해야할 일에 있지않고 그들이 얻게될 것에 있었다. 그들은 어느누구 할것 없이 자기의 길만 바라보고 자기의 사욕을 채우는 일에만 관심을 쏟으며 공공의 복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선전하고 자기의 편을 유리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공공복지에 대해서는 소홀히하거나 아예 제쳐놓기 일쑤다.
5) 그들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주연을 벌여 흥청망청하는 일에만 몰두했다(12절).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그들은 백성들을 유혹하여 자기들과 함께 술을 마시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책망했어야 했던 자들을 더악하게 만들었다. 술꾼이랍시고 그 스스로 백성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술취하게 하는 자들이 어떻게 술을 취하는 것을 해롭다고 생각할수 있겠는가!
6) 그들은 자기들이 계속해서 번영을 누리며 안락한 생활을 할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우리는 오늘같이 내일도 향락을 즐길수 있을만큼 많은 것을 얻게될 것이라."
# 핵심
56:1-12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선포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책망하는 대목.
# 묵상
자녀보다 나은 기념품 ( 56:5 )
자녀보다 나은 기념품이란 말씀은 자녀를 얻는 것보다 더좋은 이름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름을 남기고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자녀를 얻는 것보다 좋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공동체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좋은 이름을 얻게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이 기억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 ( 56:7 )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게된 이후로 제사보다는 말씀과 기도가 예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인에게 알려진 성전은 제사드리는 곳이라기보다는 기도하는 곳으로서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율법주의자, 교권주의자들의 외식 등으로 타락하고 장사꾼에 의해 더럽혀졌을때 숙정을 통해서 기도하는 집이요, 내면의 신앙행위를 드러내는 곳으로서의 성전의 역할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요2:13-19).
파수꾼 ( 56:10 )
파수꾼은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파수꾼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직시하지 못함으로인해 경고의 소리를 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의 역할은 짖는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는 거짓을 볼때 죄를 지적하고, 불의를 볼때 대항하여 싸워야합니다. 주의 종들은 이시대의 불의와 거짓을 막아야합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6:19)인 우리 몸이 세상 것으로 더러워지지 아니하도록 날마다 정결케하여 기도하는 집으로 손색이 없어야합니다. 성도는 이시대의 파수꾼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을 지키며 또한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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