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백성에 대한 책망 58:1,2
우리 주 예수께서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뒤 '그가 와서 책망하리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요 16:7,8). 이는 책망은 위로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기위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임명하셨다(40:1).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를 임명하신다.
(1) 그는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악한가를 그들에게 말해주어야 했다(1절).
첫째, 그는 신실하고도 솔직하게 그들을 대하여야 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나 야곱의 집안으로 불린다해도 그들에게 아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범한 죄를 보여주어야 했다. 즉 그는 그들이 범한 죄가운데 그들이 죄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들은 어떤 점에서는 개혁되었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전과 같이 악했다.
둘째, 그는 '크게 외치고 아끼지 말아야' 했다(1절). 즉 그는 큰소리로 외쳐서 그들의 악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로부터 욕설을 듣는다해도 그렇게 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얼마나 선하게 보였는지를 인정해야만 했다(2절).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그들은 그들의 죄를 알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무엇을 더얻고자 하시는가?
1) 그는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신다. 외식하는 자들이라해도 선한 일을 하는한 그것에 대한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경건의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① 그들은 교회에 참석할뿐 아니라 기도시간을 준수한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② 그들은 선한 가르침에 귀기울이기를 좋아한다.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헤롯도 세례요한의 말을 기쁘게 들었다.
③ 그들은 종교행사를 기뻐하는듯이 보인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이는 그들이 가까이 가고자했던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즐거운 분위기나 교제나 축제를 위한 것이었다.
④ 그들은 자기의 의무에 관하여 알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관하여 알기만을 바랬던것 같다.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때 지켜야할 경건한 규례와 사람을 대할때 가져야할 공정한 규율은 모두 의로운 판단에 속한다.
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의무이행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처럼 보인다.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같아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와같이 오인했고 그들역시 스스로 그런 사람임을 자처했다. 천국을 향하여 큰길로 가다가 도달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 즉 사람들중에는 좋은 평판을 얻고도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 있을수 있다.
2) 그는 이것이 결코 그들의 죄를 은폐시키지 않으며 실제로는 그죄를 더악화시키는 것임을 암시하고 계시다.
Ⅱ. 참된 금식의 특성 58:3-7
(1) 하나님께 대항하려는 이위선자들의 욕구(3절) :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이처럼 그들은 가인의 길을 갔다. 가인은 자기의 제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을 큰모욕으로 생각하고 분개하여 하나님께 화를 냈던 인물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과장한다. "무리가 금식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였나이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찾았을뿐 아니라 무엇보다 엄숙하게 헌신의 시간을 지켰나이다." 이것이 매년 행해지는 금식일(속죄일로 불린다)로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임의적으로 행해지는 금식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말하기를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한다'고 했다(눅 18:12). 그들은 자기들의 헌신으로인하여 하나님께서 크게 주목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의하고 편파적인 분으로 비난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내던지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이며 이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아무런 유익을 얻지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시킨다(욥 21:14,15;말 3:14).
(2) 하나님께서 그들의 금식을 열납하지도 않고 금식일에 드렸던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도 않았던 참된 이유 : 그것은 그들이 올바로 금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금식을 한것은 사실이었지만 니느웨 백성들처럼 각자가 그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금식하는 날' 계속 '오락을 찾아'다녔다. 여기에서 오락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무엇이든 자기들의 눈에 옳게 보이는대로 행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들 자기들의 기분을 법으로 삼았다.
1) 그들은 여전히 탐욕스럽게 무자비하였다. "너희는 너희 종에게 온갖 일을 시키면서도 율법에 따라 그들을 풀어주거나 혹독한 종살이를 완화시켜 주려하지 않도다." 혹자는 이에 대해 "너희는 너의 모든 대여금 곧 너희가 받아야할 빚을 강요하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는 매년 모든 것을 면해주기로 정해진 금식때가 다가오는데도 과거와 다름없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엄하고도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도다."
2) 그들은 다투기를 좋아하며 경멸적인 사람들이었다(4절).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을 격동케하는 죄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통하여 이세벨이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거짓으로 고소했던 것처럼(왕상 21:12) 그들역시 특별한 사람들을 거짓으로 고소했을 것이다. 이처럼 금식일을 맞아 마땅히 자신의 죄를 자복한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를 정죄하는데 급급했다. 금식일을 맞아 가장 보기좋은 모습을 보여야할 그들이 악한 마음을 품고 금식을 하여 다투기까지 했다. 그들은 이처럼 죄를 계속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룩한 의식을 악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너희가 오늘과 같이 너희의 목소리를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자 한다면 내가 너희로 금식하지 못하게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이상 이 공허하고 소란스러우며 헛된 제물을 내게 가져오지 말라"(1:3).
(3) 경건한 금식의 참된 특성에 관한 교훈들.
1) 일반적으로 금식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② 우리 자신을 겸비케 하기위한 것이다. 금식일은 '그마음을 괴롭게하는 날'이다. 그러나 만일 금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진정으로 죄에 대하여 슬픔을 나타내지않거나 실제로 죄에서 떠나지않는다면 그것은 금식이라 할수 없다.
2) 그러므로 우리는 금식일을 맞아 하나님께 열납되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① 본문에서는 부정적인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금식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우울한 모습을 보이는것 즉 시들고 상한 갈대처럼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외식하는 자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을 내며 얼굴을 흉하게' 한다(마 6:16). 반면에 진실로 겸비한 마음을 갖고있는 자들은 세리처럼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한다'(눅 18:13). 그러나 이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마땅히 웃음거리가 되고말 것이다. 그것은 '그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둘째, 고행을 하는것 다시말해서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않고 신체를 약간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네가 어찌 이것을 금식이라 하겠느냐?" 그것은 결코 금식이 아니라 금식의 모습에 불과하다.
② 본문에서는 긍정적인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5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금식은 하루동안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전생애에 걸쳐 해야만 할일이다. 이를 위하여 이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요구되고 있다.
㉠ 우리는 우리가 가혹하게 대했던 사람들을 정당하게 대해주어야 한다(6절).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이결박은 우리가 악한 마음을 품고 묶었으며 또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속하는 결박을 나타낸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죄인에게는 빚을 탕감해 주고, 남을 괴롭히는 행동을 중단하며, 정해진 기간보다 종살이를 더하도록 강요받은 종은 풀어주는 등 모든 멍에를 끌러주라. 곧 부당한 방법에 의해 멍에를 메고있는 자들을 가게할뿐 아니라 노예제도 자체의 멍에를 없애라."
㉡ 우리는 자비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7절). 즉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고있는 자들을 구하고 속량하는 일 곧 포로된 자들을 풀어주고 가난한 자들의 빚을 상환해주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것이다.
첫째, 양식이 부족한 자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 : 금식은 바로 굶주린 자에게 자기의 식물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정직한 방법을 통하여 자기 몫으로 얻은 식물이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필요를 느끼는 자에게 베풀어 줄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굶주린 자에게 자기의 식물을 주되 부스러기로 주지않고 덩어리채로 주는 것이 참된 금식이다.
둘째, 숙소를 원하는 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일 : 금식은 바로 '유리하는 빈민을 자기 집에 들이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공연한 고생을 한다면 그들에게 적당한 숙소를 제공하라.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너의 집으로 안내하라. 이것은 단순히 숙소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 큰친절을 베푸는 것이라. 나그네 대접하는 일을 잊지말라. 왜냐하면 너는 이런 일을 통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대접할수도 있기 때문이라.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때에 네가 나를 영접하였다'고 말씀하셨다"(마 25:35).
셋째,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히는 일 :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말이 친척에게 베푸는 자선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이말을 더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골육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한 아버지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Ⅲ. 참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격려 58:8-12
이본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값없고 즐거운 잔치를 베풀어주겠다는 귀한 약속들이 언급되고 있다.
(1) 위에서 언급된 것들이외의 의무들이 나타나 있다(9,10절).
1) 우리는 난폭하고 부정한 모든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모든 행동들은 '너희중에서' 곧 너희의 마음, 인격속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즉 "너는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삼갈뿐 아니라 네안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고자하는 모든 성향도 버려야 한다." 혹은 "네 백성중에서 그러한 행동들을 삼가게 하라." 권세자들은 자기들의 관할 구역내에서 어떠한 압제도 생겨나지않도록 가능한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들은 '멍에를 꺾을'뿐 아니라(6절) 그 멍에를 제거해버려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공갈을 그치고'(엡 6:9) '손가락질'을 하지말아야 한다. 손가락질은 가난한 불쌍한 사람들을 지적하여 그들로하여금 수치스럽게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들은 허망한 말을 함으로써 서로를 기만하거나 아첨하지 말고 모든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어야 한다.
2) 우리는 자비와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 값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야하며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근본정신에 따라 주어야 한다. 우리는 '주린 자에게 우리의 심정을 동해야 한다.' 즉 우리는 돈을 꺼내줄뿐 아니라 이러한 행동을 할때 비참하게 보이는 자에게 인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구제할때에는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도 수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구제하는 자를 사랑하시며 도움을 받는 가난한 자 역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도 수많은 무리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먹을 것을 주셨을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애타게 하지않고 '만족케'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풍족하게 주어야 한다.
(2) 이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축복과 은혜가 여기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큰고통을 겪게한 다음 다시 자비를 베풀어주심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난 다음 비치는 햇살처럼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8절). 네 빛이 흑암중에서 발하여(10절).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을 행하는 자들로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선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전 2:24).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들은 그들이 고난을 당할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선한 일은 선한 명성을 통해 보상받을 것이다. 이것은 '흑암중에서 발하는' 빛속에 포함되어 있다. "너의 의는 전위에 서서 너를 향하여 돌격해오는 적들로부터 너를 보호하는 선도자의 역할을 할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은 너의 뒤를 지켜주실 것이다. 그는 피곤하여 낙오하는 자들을 끌어모아 아말렉과 같이 네 후미를 치려는 적들로부터 너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어느 면으로도 안전하다. 그들을 방어해주는 것이 그들의 의라면 여호와의 영광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후미를 지켜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우리의 죄가 우리를 추적하여 잡으려 할때 의지할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정한대로 금식일에 네가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 응답하사 네 간구하는 것들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너는 어떤 고통을 당하거나 갑작스러운 두려움을 느낄때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여기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서 기도하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내가 듣고있다. 나는 너희가운데 있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다(신 4:7).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우리는 이세상이란 광야에 머무는동안 하늘로부터 끊임없는 지시를 받아야 한다. 선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뿐 아니라 기쁨도 주신다. 그는 자기 자신속에서 양심의 증거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통하여 만족을 얻는다. 이러한 것들은 아무리 괴로울때에도 영혼을 만족시키며 마음을 기쁘게 할것이다. 이들은 '네 뼈를 견고케'하며 몸속에 있는 뼈처럼 힘이 될 기쁨을 네게 줄것이다. "너는 물댄 동산같이 은혜가 충만하며 가뭄이나 서릿발에도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과 같을 것이다. 물샘은 물이 흘러나와도 항상 가득차 있듯이 자비로운 사람역시 선행을 많이 하면서도 선이 충만하며 아무리 도움을 베풀어준다해도 결코 가난해지지 않는다. "네가 너의 세대에게 도움을 주듯 장차 네게서 날 자들 곧 너의 후손도 그들의 세대를 위하여 유익한 자들이 될것이다." 그들은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이 유다의 성읍과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을 다시 세움으로써 성취되었다. 그들은 오래전에 시작된 선한 일을 계속 수행하여 끝낼 것이다. 그들은 오래전에 기초를 놓고 여러 세대동안 쌓았던 건물을 꼭대기까지 세워 완공시킬 것이다. 이것은 성전 건축이 여러해동안 정지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을때 성취되었다(스 5:2). 그들은 그것으로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과 찬양을 받을 것이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것이며. "너는 길 곧 안전하고 조용한 길을 수축하여 여행뿐 아니라 거주할수도 있게 하는 자가 될것이라. 그길은 너무도 안전하고 조용해서 사람들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길가에다 집을 지을 것이라." 결론적으로 말해서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한다면 그는 다시 그들에게 이전의 화평과 번영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느누구도 그들을 두렵게 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Ⅳ. 안식일 성수 58:13,14
여기에서는 안식일 엄수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히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인들에게 요구되고 있다. 왜냐하면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기위하여 그날을 지킴으로 그들은 자신들과 천지를 창조하지 않은 신들의 숭배자들을 구별했기 때문이다(참조 61:1,2).
(1) 안식일은 어떻게 성별되어야 하나(13절). 이 안식일법은 우리가 지키는 주일을 통하여 아직도 우리에게 구속력을 지닌다.
1) 안식일을 경멸하는 어떤 일도 행해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의 발을 금하여 안식일을 범하지말아야 한다. 즉 우리는 그거룩한 날에 우리의 발을 금하여 오락을 행치말아야 한다. 즉 우리는 양심의 통제나 절제없이 안식일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마음대로 행해서는 안된다. 안식일에 우리는 우리 길로 행치말며(생업에 종사하지 말며) 우리 자신의 오락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운동이나 오락을 해서는 안된다). 아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말을 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안식일에 신앙적인 일만 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에 있거나 밖으로 나다닐때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언행에 있어서 안식일과 그외의 다른 날을 구별해야 한다.
2) 우리는 안식일을 고된 날이나 부담스러운 날이 아닌 '즐거운 날'로 불러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생각할뿐 아니라 그렇게 부르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안식일에 대해 감사를 드리기위하여 그날을 즐거운 날로 불러야 한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안식일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하기위해 그날을 즐거운 날로 불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속에서 안식일이 빨리지나 곡식을 팔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않도록 하기위하여 그날을 즐거운 날로 불러야 한다.
(2)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얻는 보상(14절).
1) 우리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그자체로서 삯이 된다. 만일...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그는 더욱더 그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의무를 행하면 우리는 그의무로부터 만족을 얻게될 것이다.
2) 우리는 영광을 얻을 것이다.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이는 확고한 안전뿐 아니라 큰위엄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님과 그의 안식일을 존귀하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이처럼 존귀하게 하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우리로하여금 세상의 방해를 받지않도록 세상을 초월하여 살며 세상을 다스릴수 있도록 하신다면 그것은 곧 그가 우리를 '땅의 높은 곳'에 올려놓은 것이 될것이다.
3) 우리는 유익을 얻을 것이다. 내가...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이것은 다시말해서 언약의 모든 축복과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의 모든 귀한 산물들로 기르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바로 야곱의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 핵심
58:1-14
이스라엘이 회개해야할 대표적 죄악이라고 할수 있는 외식적인 금식과 안식일 경시 풍조를 책망하고, 참된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금식(58:6)
음식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필수요소이다. 금식은 일정기간 음식물을 먹지않음으로써, 자신이 책임져야할 모든 일에 대해 전적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다. 즉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전폭적 신뢰의 뜻이 담긴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대속죄일을 거국적인 금식일로 지켰다(레 23:27-32). 이날에는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뿌리며,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했으나 점차로 금식의 근본정신이 변질되어 형식적, 위선적인 금식이 만연했다(렘 14:12).
# 묵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 58:5-7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과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숨지않는 금식입니다. 이는 곧 의를 행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금식은 곧 우리의 소유와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도적인 행위를 하기위해서는 자기 포기, 자기 부정 곧 십자가를 지는 삶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백성중에서 제해 버려야할 것 ( 58:9-12 )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 등입니다. 멍에란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는 행위를 말하며, 손가락질은 멸시와 조소의 표현으로 아람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면 그것은 곧 불행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허망한 말은 악한 말, 거짓예언 혹은 싸움과 다툼 또는 허위선전 등의 중상모략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표현은 불의와 미움과 거짓 등 사회정의를 문란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식일 성수의 축복 ( 58:13, 14 )
안식일을 성수할때,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땅의 높은 곳에 오르며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안식을 얻게되고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게 되며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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