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주의 강림에 대한 간청 64:1-5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볼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을 위하여 놀라웁게 나타나시기를 청하고 있다(1,2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위하여 어떤 특별한 일을 하실때에는 '빛을 발하사' 스스로를 강하게 나타내 보이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기'를 기도하신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곧 주께서 환호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그때에 적용될수 있다. 그들은 '주의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주의 진노의 불이 바위산을 녹이듯이 대적들을 사르시며 용광로에 있는 금속과 같이 그들을 녹이시기를 바란다. 불이 섶을 사르며(2절). 교회를 사랑하셔서 영광스러운 개혁을 하도록 모든 것을 들끓게 하시리라는 의미이다. 불이 물을 끓임같게 하사.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잘드러내고 '주의 이름을 알게'하기를 바랐다. 그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그의 대적들까지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앞에서 두려워 떨기를 원하였다. 만일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가 달려들어가 안전을 구하는 요새가 되지않는다면 그때에는 우리를 대항하는 요새가 된다. 그것은 우리가 달려들어가 안전을 도모할수 없는 우리의 범위밖에 있는 강력한 요새일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예전처럼 그의 백성을 위하여 놀라웁게 나타나시기를 청하고 있다.
1) 그들은 주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을때 행하셨던 일을 들어 간청한다(3절). 그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인들에게 역병을 내리심으로 그들의 '생각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셨다.' 그때에 그는 두려운 모습으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산들로 주의 앞에서 진동하고 양처럼 뛰게 하셨다(시 114:4). 혹자는 이말씀을 산헤립의 강한 군대의 패퇴에 연관시킨다. 이군대는 바위와 산을 녹일수 있을만큼 놀랄만한 신적인 힘을 나타내 보였었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예비하셨던 일을 들어 간청한다.
① 이 예비하심은 매우 풍성하다(4절). 사람들은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들은적도 없고 본적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이자 선하심이다(시 31:19). 그 대부분이 이전시대에는 감추어져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알지못했었다. 왜냐하면 측량할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하나님안에 감추어져 있고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에게 숨겨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그것은 복음에 의하여 드러나게 되었다. 사도바울도 그렇게 적용하고 있다(고전 2:9). 왜냐하면 바로 그다음 절에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태초이래로 듣지못했던 것을 마지막날이 되기전에 들어야 했다. 그것은 인간의 지각으로는 완전히 이해될수 없다. 그것은 영적인 것이며 우리의 기대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믿는 자들의 장차의 축복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현재의 평강조차도 모든 표현이 미치지 못한다(빌 4:7).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역사뿐 아니라 그의 경이로운 은혜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그가 행하신 위대한 일들에서뿐 아니라 그의 자비로운 일들에서까지도 "그와 같은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을 추론해 내야만 한다.
② 그것은 매우 준비가 잘되어 있다(5절).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즉 저희를 위해 예비해둔 자비로 저희에게 응하신다(4절).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은혜로운 영혼사이에는 진정한 교제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기를 기뻐해야 하며 '기쁘게 의를 행해야' 한다. 스스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우리의 일을 즐거워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허락하신 우정과 교제와 친밀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선한 축복으로 그들에게 응하실 것이며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들을 선대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은혜롭게 기다리실 것이다. 그는 돌아오는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와 같이 회개한 자기 백성을 용서함으로써 만나신다(눅 15:20). 그는 백성들이 아직 구하고 있는동안 기도하는 백성에게 평화로운 응답으로 응하신다(55:24).
3)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불변함과 그의 약속의 확고함을 들어 청원한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우리는 주의 진노와 표징아래 있나이다. 그러나 주의 길, 곧 우리가 주를 기억하는 자비의 길에서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그길에서 주는 항상 같으시니이다. 그리고 이언약의 동일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될 것을 바라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니이다."

Ⅱ. 죄의 고백 64:6-12
여기에는 갈대아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파멸된 것에 대한 이사야의 애곡과 그파멸을 초래한 이스라엘의 죄가 언급되고 있다.
(1) 하나님의 백성은 곤경에 처하여 저희의 죄를 고백하고 슬퍼한다. 이제 그들은 죄로인한 하나님의 질책아래 있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이외에는 아무것도 의뢰할 것이 없다.
1) 그들가운데 전반적인 타락이 만연하여 있었다(6절).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즉 거처에서 쫓김당한 문둥병걸린 사람과 같이 되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같으며. "우리중 가장 선한 자도 그러하거니와 우리도 모두 타락하고 부패하였도다. 우리의 가장 선한행위도 역시 마찬가지로다. 일반적 도의가 타락했을뿐 아니라 예배를 행함에 있어서도 전반적으로 그릇되었도다."
2) 그들은 전반적으로 신앙에 대하여 냉담하였다(7절). 기도는 어느면에서 소홀히 여겨졌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아무도 주께 우리를 고쳐주시도록 은혜를 구하지 않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죄로인하여 초래된 심판을 주시도록 자비를 구하는 자도 없나이다." 만일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었다면 그것은 기도에 대해 아주 무관심하였다는 것이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씨름하는 상대편을 붙잡듯이 그를 붙잡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았을때 그것은 마치 선원이 선창에 닻줄을 매어 해변을 끌어당기는 듯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해병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으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그에게 내어놓는 것이다. 기도로써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하는 자는 스스로 그렇게하도록 유발되어야 한다. 우리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의무를 이행하는 일에 사용해야 하며 우리의 생각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고 우리의 애정이 불타오르도록 해야 한다.
(2) 그들은 저희가 당하는 고난이 저희 자신의 죄의 대가이자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임을 시인한다.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절). "우리는 시들고 우리의 미쁨을 잃어버렸을뿐 아니라 떨어져서 구르게 되었나이다(이렇게도 읽을수 있다). 가을철의 낙엽과도 같이 우리의 신앙고백은 메말랐으며 점차 시들과 활기없게 되었나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고 우리를 재촉하여 포로가 되게 하였나이다. 곧 가을에 바람이 불면 굴러가 시들고 마르는 잎사귀와 같이 되었나이다"(시 1:3,4).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저희의 하나님되심을 이유로 들어 겸손하게 그에게 청원한다(8절).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어리석고 분별없는 자들이며, 대적들로인하여 비천하고 경멸받게 되었나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 우리가 회개함으로 주께 돌아가나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그들을 존재하게 하셨으며 한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그들을 이루셨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빚으신 주께서 새로이 우리를 지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비록 우리가 완성되지 않았고 스스로 훼파되었을지라도 우리를 새로이 지어 주시옵소서.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으나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 우리는 주의 백성이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8:19). 우리는 '주의 것이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시 119:94).
(4)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돌이키시고 저희 죄를 사하시기를 끈덕지게 간청한다(9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저희와 화해하시기를, 그리하여 저희의 고난이 계속되든지 사라지든지간에 평안을 누릴수 있기를 기도한다.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긍휼히 여기심으로 노를 누그러뜨리시옵소서."
(5) 그들은 비참한 지경에 처해있다.
1) 그들의 집들이 황폐하게 되었다(10절). 유다 성읍들은 갈대아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으며 거민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유다의 성읍들은 '거룩한 성읍'이라 일컬어졌었다. 그백성들은 하나님께 있어 제사장들의 나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성읍들의 황폐함을 애통해하고 있다.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다윗의 성은 폐허가 되었으며 아름답던 '예루살렘이 황폐하여' 온세상의 조롱거리와 비웃음거리가 되었나이다. 거룩한 성읍이 이제 쓰레기더미가 되었나이다."
2) 하나님의 집도 폐허가 되었다(11절). 그들이 무엇보다도 애통해하는 점은 저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이 불에 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성전의 거룩함이 성전의 가장 큰아름다움이었다. 그렇기때문에 성전에 대해 가해진 모독은 다른 모든 황폐하게 된것가운데 가장 큰슬픔이었다. 그곳은 제사와 노래로 저희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곳이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저희나라의 영광이었던 것이 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그들의 모든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다.' 이모든 것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성전 기구와 재단, 탁자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쁨으로 고수하던 안식일과 모든 신앙의 절기들까지 다 황무하게 되었다.
(6) 그들이 현재의 황폐함에 대하여 겸손히 하나님과 변론함으로써 끝맺고 있다(12절).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하시리이까. 해를 입었을때 우리는 잠잠하다. 이는 보복이 우리에게 있지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예를 손상당하셨을때에 그가 그것을 보수하시리라고 마땅히 기대될수 있다. 그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셔야할지 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도를 드린다(시 83:1).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주의 대적들에 대한 징벌을 말하소서. 주의 백성들에 대한 위로와 구원을 말하소서." 주께서...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족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은 저희의 고난이 극도에 달하지도 아니할 것이며 영원하지도 아니하리라는 것을 믿을수 있다. 저희의 고난은 잠시 비추는 빛인 것이다.

# 핵심
64:1-4
하나님의 강림으로 악인에게 심판이 임하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이다.

# 묵상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신 주님 ( 64:7 )
얼굴을 가리운다는 것은 자비를 베풀지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백성의 죄로인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으므로, 그들에게는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굽어 살피시고 그분의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실때,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그분의 은혜안에서 구원받을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용서를 구하는 근거 ( 64:8 )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자요, 창조주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민족이며, 또 그들의 열조를 위해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구속하신 사실에 호소했던 것입니다. 우리역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과 창조주되심에 인류전체의 희망을 두어야합니다. 우리의 의로써는 도저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수 없으나, 그분은 우리의 아바 아버지이시므로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면 돌아온 자식과도 같이 받아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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