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이방인과 유대인 65:1-7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구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준바 있다. 즉 복음의 선포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부름받고 유대인들이 거부되었다는 것이다(롬 10:20,21). 그리고 바울사도는 이예언을 유대인들에게 선포함에 있어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였다'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자기 민족에 대한 큰모욕으로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방인들이 가까이 나아오게 되리라고 예언되고 있다(1절). 바울은 이구절을 이와같이 읽었다.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1) 이세상에서 하나님없이 오랫동안 지내왔던 자들이 이제 그를 찾게될 것이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묻지 아니하던 자들이 그에 대하여 묻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찾아지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회개하면 천국에 큰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대하여 축복을 예비하실 것이다. 나는...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하나님과 이방인들의 세계사이의 이 복된 만남과 교제는 하나님편에서 먼저 시작하신 것이었다. 비록 그들과 교제를 시작한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하는 자에게서 발견될지라도(잠 8:17) 첫번 교제에 있어서는 그를 찾지않은 자들에게서 그가 발견된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고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는 신앙을 고백해 본적이 없는 자들에게도 거룩한 계시를 주셨다.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자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그들은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누려왔던 그대접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라, 믿음의 눈을 가지고 나를 보라. 나를 의지하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2) 여기에서 오랫동안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왔던 유대인들이 버려지고 멀리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 예언되고 있다(2절). 사도바울은 이말씀을 자기가 살았던 그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다(롬 10:21).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1)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거룩한 은혜로 인도하시고자 참으로 애쓰셨었다. 그는 그의 선지자들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사도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종일 손을 벌리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변론하시고 그들을 권면하시고자 당신의 손을 그들에게 펴셨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때 그의 양손은 마치 돌아오는 죄인들을 영접하시려는 것같이 퍼져서 앞으로 향하였다. 그는 은혜롭게 기다리셨다. 그리고 기다리는데 싫증을 내지 않으셨다. 제 11시, 즉 마지막 시간에 온 사람들까지도 거절하지 않으셨다.
2) 그러나 그들은 초청을 대수롭게 여기지않고 무시하였다. 그들은 혼인잔치에 초대되었으나 참석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고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자의 대로만 행하였다. 옳건 그르건 자기들의 마음먹은대로 행하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셨다. 그의 뜻하신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작정하신바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생각을 쫓아' 행하였다. 자기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대로 행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속 그들이 그릇되었다고 여기신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다. 그들은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다.' 마치 그들은 하나님을 저희의 적으로 삼고자 도모하는 듯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과 그들의 '열조의 죄악'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이유이었다(7절). 그들의 열조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장 야기시켰던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로 포로생활을 하게한 죄이었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포로생활에서 무사히 놓여났다고할지라도 그민족의 마지막 멸망이 이르렀을때 이는 다시금 그들에 대한 심판의 원인이 되었다. 그들 자신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이죄악은 포로된이래 오랜후까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버렸다. 그리고 '동산에서 제사하였다.' 그들 자신의 방식대로 그렇게 행하였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을 버렸다. 그리고 '벽돌위에서 분향하였다.' 이제단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해주신 구제단과 비교해볼때 저희 자신들이 고안해낸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술을 사용하거나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일을 하기위하여 그들은 '무덤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냈다. 그들은 음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여겼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으로인하여 없어지기전에, 정한것과 부정한것 사이의 구분을 깨뜨렸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본문에서 '가증한 물건'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것, 즉 급해진 고기로 된 고깃국물이나 고깃덩이리가 그들의 '그릇에 담겨'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금지된 고기가 '가증한 물건'이라고 불리워지며 그것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하여 자기로 가증하게 되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레 11:42,43). 본문의 이말씀은 아마도 모든 금해진 쾌락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볼수 있겠다. 그러나 이와같이 감히 죄가까이 나아가려고 하는 자만심있는 자들은 죄의 심연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 이땅에 거하시던 시대에 유대인들의 죄악은 교만과 위선이었다. 그리스도께 맞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죄가 몇번에 걸쳐서 책망되고 있다(5절). 그들은 말하기를 "너는 네게 속한 무리들과 함께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말라.' 네가 나를 더럽힐까 하노라. 나를 만지지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라고 하였다.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이것은 이내 환하게 활활 불타오르면서 나는 연기가 아니라 젖은 나무를 태울때 나는 연기, 곧 '종일 타는 불'에서 나는 연기를 말한다. 그들에 대한 증거는 자명하다. 보라 이것이 내앞에 기록되었으니(6절). '열조의 죄악' 역시 그들에 대해 정죄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자신의 죄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떠한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마땅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희 열조의 죄악보다 오히려 승하였다. 이것을 그들은 시인하였다(스9:13).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하리니', 그죄악들은 서로 가증되게 만들었다. 내가...그품에 보응하리라.
Ⅱ. 남을 백성의 구원 65:8-10
이말씀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11:1-5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배척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라고 묻고는 "그럴수 없느니라"고 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즉 이와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예언은 선택된 남은 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들가운데 일부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니도록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로 나아오며 그리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구주께서는 이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유대인의 멸망의 날이 단축되리라고, 그리고 그파멸에 제동이 걸리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22).
(1) 이것이 여기에서 한비유로 예증된다(8절). 포도나무가 마르고 시들어서 거기에 생기도 생명도 없는 것처럼 보일때 포도원지기는 그것을 뽑거나 잘라내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혹 포도송이에 조금이라도 즙이 있다면,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이가 말리며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그뿌리에는 생명이 있는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단지 소수의 사람을 위하여 전도시들과 나라들을 보존하신다.
(2) 이 구원되어 남은 자들에 대해 설명되고 있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자기 종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8절). 그리고 그들은 '거기 거할 그의 종들'이다(9절).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은 자기 세대에서 하나님을 섬긴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저희 필생의 기업으로 삼는다.
(3) 여기에는 그들을 위해 쌓아두던 하나님의 자비가 나오고 있다. 남은 자들은 저희의 고국땅에 다시 복되게 정착하게될 것이다. 곧 '야곱중에서 씨를 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으로 복음교회에 연합한 야곱의 남은 자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성이 있고 성전이 세어져있는 거룩한 산이다. 그들은 저희 양떼를 칠 푸른초장을 소유할 것이다(10절). '사론'과 '아골 골짜기'가 다시 가축들로 가득차게될 것이다. 그들은 온땅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할 것이다. 복음에서 꼴을 얻고(요 10:9) 아론 골짜기의 이스라엘 무리처럼(호 2:15) 거기에 눕는(시 23:2) 초장이자 골짜기이다.
Ⅲ. 죄에 대한 심판 65:11-16
경건한 자와 악한 자, 그리고 믿는 유대인들과 여전히 불신을 고집하는 유대인들의 서로 다른 상태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1)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구출된후 우상숭배를 고수하던 자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후 불신앙을 고집하던 자들의 무서운 운명이 예고되고 있다.
1) 파국의 운명이 경고된다. "살륙을 당할 양과 마찬가지로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피할 길이 없으리라. 너희는 그아래 구푸리리라."(12절).
2) 그들을 칼에 붙이는 죄목이 기록되어 있다.
① 우상숭배는 옛날부터 있던 오래된 죄이었다(11절). "너희는 나의 백성으로서 나를 섬기지 않고 나 여호와를 버렸구나. 다른 신들을 섬기기위하여 나를 내던지고 너희 우상들에게 분향하는 산으로인하여 나의 성산을 잊었구나(7절). 그리하여 살아계신 유일하신 참하나님을 버렸구나." 그들은 이방인들이 섬기는 '갓에게 상을 베풀어놓으며' 그수를 이루 셀수 없는 '섞은 술을 가득히 부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으로도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수십수백의 신으로도 만족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② 불신이 그후의 유대인들의 죄이었다(12절).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이말씀은 2절 말씀과 같은 의미이며, 복음을 거부한 자들에게 적용된다.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부르셨으나 ('예수께서 서서 외치셨다' 요한복음 7:37) 그들은 응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좋은 것을 택하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이 악한 것을 따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 회개와 믿음에 이르는 자들의 복된 상태를 고려해보면 이같은 파국의 운명은 더욱 비참해진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축복과 그에게 맞서 대항하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가 서로 비교되고 있다(13-16절). 멸망한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행복을 보고는 슬픔이 더욱 커질 것이다. 특히 저희 자신들의 잘못만 아니었다면 그들도 그축복을 나눌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할때 더더욱 그러하다. 그들의 상태의 차이가 두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1) 위로와 만족이라는 면 : 하나님의 종들은 좋은 것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희 마음을 세상에 두고있는 자들은 굶주리고 목마르며 항상 공허하며 언제나 갈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물리게 되며 만족시켜 주지를 못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이 기쁨으로인해 노래할 것이다. 천국은 현재에 눈물로 씨를 뿌리는 모든 자들에게 있어 영원한 기쁨의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한편으로 하나님을 버린 자들은 스스로 모든 참된 기쁨을 차단시킨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헛된 확신과 자기 자신의 의와 그것에 근거를 둔 소망을 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2) 명예와 신망의 면(15,16절) : '의인을 기념할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우상숭배자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것이다. 즉, 그들에게 경고가 될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택한 자의 이름은 복이 될것이다.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언약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이름 아래서 새로운 언약의 모든 약속들과 특권들이 확보될 것이다. 이 다른이름은 한민족 내지 나라에 국한되지 않을 터이었다. 그이름으로 사람들은 땅에서 곧 온세상에서 축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들마다에 종들을 가지고 계시다. 그들은 '진리의 하나님'안에서 축복을 믿게될 것이다. 기도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충성이다. 우리는 그안에서 축복을 받아야 한다. 즉,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신다면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을 소유한 셈이며 우리에게는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셈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세상 재물을 풍족히 소유한데서 복을 구한다(시 49:18;눅 12:19).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안에서 복을 구한다. 하나님께서 곧 그들에게 무엇이든지 충족히 주실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하나님', '아멘의 하나님'(이러한 의미이기도 하다)이신 그를 영화롭게 할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모든 약속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예와 아멘'이 되는 것이다(고후 1:20). 그들은 이 복된 변화의 주인되신, 곧 그들로하여금 이전의 곤경들을 잊게하신 그분을 영화롭게 할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위안으로 이전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그들에게서 말끔히 제거하였다.
Ⅳ. 새예루살렘의 예고 65:17-25
이약속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포로생활로부터 귀향하여 저희 고국땅에 평화로이 정착하였을때, 그리하여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듯이 여겨졌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복음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와 위로가운데서 새하늘과 새땅을 보아야 한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것은 복음안에서이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여기에 묘사된 것은 강력하고도 복된 변화이다(16절).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그러나 여기에서 그것은 한단계 더나아간다. 이전의 세상은 잊어질 것이며 더이상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해하사 새하늘을 주실때 피조물들 역시 우리와 화해하여 새땅을 주는 것이다.
(1) 그때에는 새로운 기쁨이 있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벗들과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할 것이다(18절).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교회는 즐거워할뿐만 아니라 즐거움의 대상이 되기도 할것이다. 교회의 번영은 하나님께 즐거움이 될것이다. 그는 자기 종들이 번영을 누리는 것을 기뻐하신다(19절).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고통가운데서 그분도 괴로워하시기 때문이다. 이기쁨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이전과 같이 슬프고 고통스런 상황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모든 것은 하늘에서야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눈물이 사라질 것이다.
(2) 그때에는 새로운 삶이 있을 것이다(20절). 또한 칼이나 병으로인한 불시의 죽음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19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은 지상에서의 삶이 아무리 짧다고 할지라도 그에 만족할 것이다. 심지어는 어린애조차 '백세에 죽는 자'로 헤아려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다시 일어나 완전한 수명을 누리게 될것이기 때문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들의 의의열매로 수한을 채우리라고 약속되고 있다. 그들은 '늙어도 결심한 것이다.' 지혜롭고 선하고 유익을 끼치는 노인은 그의 수한을 채운 노인이라고 진실로 말할수 있다. 세상에 저의 마음을 둔 노인들은 결코 저희 수한을 채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수명이 제아무리 길다고 할지라도 저희 삶에 만족하지 못하여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인은 비록 백세를 산다고 할지라도 '저주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긴수명은 단지 긴유예기간일 뿐이다.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길건 짧건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의 삶을 사느냐, 죄인의 삶을 사느냐는 참으로 중대한 문제이다.
(3) 생의 기쁨을 새로이 누리게될 것이다. 이전에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정하였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다'(21,22절). 이방인들이 침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전에 때때로 하였던 것과 같이 그들을 내쫓지 못할 것이다. 나의 택한 자가 그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여. 그것은 정직하게 얻은 것이며, 잘유지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손으로 일한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얻기위하여 수고하였으며 "게으름의 양식이나 거짓의 떡"을 먹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오래도록 즐기면서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선물이다. 그것이 여기에서 약속되고 있다.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즉 상수리나무의 수한과 같을 것이다(6:13). 그 상수리나무는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다.' 그나무는 매년 겨울마다 헐벗을지라도 오랜 세월동안 살아있다. 이는 또한 "생명나무"의 수한과 같다고 해석할수도 있다(70인역에는 그렇게 되어있다).
(4) 그들을 대신하여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 이같은 축복을 유업으로 받고 누리게될 것이다(23절).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왜냐하면 그들은 그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뿐 아니라 그것을 그들 후대에 오는 자들에게 만족하게 남겨주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위안이 되는 자녀들을 주실 것이다. 저희는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녀들을 보는 기쁨을 얻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자녀들이 평온한 세월을 만나게 하실 것이다.
(5) 그들과 하나님사이에 좋은 교제가 있을 것이다(24절). 그들이 부르기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축복으로 그들의 기도에 응하실 것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그가 돌아올때에 기쁘게 맞이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심이, 율법아래서 보다도 복음의 은혜안에서 훨씬더 잘나타난다.
(6) 그들과 이웃사이에 좋은 교제가 이루어질 것이다(25절).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설혹 이리들의 무리가운데 양과 같이 앉아있다 할지라도 다치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전처럼 대적들의 세력을 깨뜨리지 아니하시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리시며 은혜로 그들의 속성을 바꾸실 것이다. 제자들의 핍박자이었던 바울은(그는 베냐민 지파에 속했으므로 이리처럼 물어뜯었다; 창 49:27) 이 제자들에게 결합하여 그들의 한사람이 되었을때 '이리와 양이 함께 먹은' 것이 되는 셈이다. 사람들은 변화될 것이다. 사자는 더이상 먹이를 찾는 맹수가 되지않고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소가 그러하듯이 자기 주인을 알고 자기 주인이 주는 여물통을 알게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부요케 하기위하여 옳건 그르건 강탈과 약탈을 일삼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정직한 수고를 함으로써 살게 되었을때, 다시말해서 더이상 남의 것을 훔치지 아니하며 자기 손으로 좋은 수고를 할때, 이것이 성취되어지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다.' 사단은 사슬에 묶일 것이며 용은 얽어매일 것이다. 왜냐하면 다시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강한 대적은 성도들의 귀한 피를 탐욕스럽게 먹었다. 성도들은 사단의 선동으로인하여 핍박을 받아왔다. 그리고 죄인들의 고귀한 영혼도 게걸스레 먹었다. 죄인들은 사단의 선동으로 스스로 영원히 파멸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단은 선고된 판결에 따라 흙을 먹도록 구속받게 되었다. '네가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왕국에 대한 모든 대적들이 그의 발등상이 되기까지 시온의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이다.
# 핵심
65: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패역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능욕하였으므로 이에 대해 보응하신다는 내용.
새하늘과 새땅(65:17)
옛하늘과 옛땅이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하나님나라를 의미한다. 이 사상은 만유의 회복이라는 주제와 연관을 맺으며(행 3: 21), 벧후 3:13절과 계 21:1절에 다시 나타난다.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는 죄로인해 더러워진 세상에 대한 하나님주권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신약적인 견지에서의 새하늘과 새땅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살게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이다(계 21:1-5).
# 묵상
코의 연기요, 종일타는 불 ( 65:5 )
우상숭배자들의 종교의식은 여호와의 진노에서 일어나는 연기(시18:8)요, 종일타는 불(신32:22; 렘17:4)과 같다는 뜻입니다. 코의 연기와 불은 진노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 비해 거룩하여 사람들이 범접할수 없는 존재라고 착각하며, 그우상에 의해서 은총을 받고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있어서는 다만 순식간에 멸망당할 진노의 대상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 65:6 )
하나님께서는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 유다인들의 죄가 하나님앞에 기록되어졌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갚아주시되 풍성히 갚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지막때 선악간의 심판을 받게됩니다(롬14: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약2:12).
갓과 므니 ( 65:11 )
이들은 운명의 신입니다. 갓은 시리아의 신으로 바알가드(수13:17)나 믹달가드(수15:37) 같은 지명에 그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므니는 이슬람교 이전에 아랍인들이 숭배하던 세 주신(主神)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와같이 포로기이후에도 우상숭배는 백성들에게 만연했던 죄악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이름 ( 65:15 )
죄지은 자들의 더러운 이름은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임을 과신하여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만 영광받으신다는 착각에 빠졌고, 결국에는 그분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호7: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 끝까지 그의 이름을 지킨 그의 참된 종에게는 새이름 곧 저주가 아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리의 하나님 ( 65:16 )
본문에서 진리의 하나님은 “엘로헤 아멘”으로 “아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참하나님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불변의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약속하신 모든 것은 다 지키십니다.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는 이전 것 ( 65:17 )
하나님께서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죄에 물든 옛성품이며,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복역의 때가 지난 자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며 또한 사람과 온 만물을 새롭게하심으로 새사람이 된 우리는 옛것을 기억할수 없게될 것입니다.
수명이 늘어나는 새예루살렘 ( 65:20 )
‘백세에 죽은 자가 아이겠고’라는 말은 사람의 수명이 다시 길어짐을 뜻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장수가 축복의 결과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한과 같이 길어지는 복이 임하므로 백세가 되어도 아이요, 소년이라고 불릴 것입니다(22절).
부르기전에 응답하시는 여호와 ( 65:24 )
이스라엘의 가장 큰슬픔은 바로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호소해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때가 이른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기도전에 미리 아시고 구할 것을 이루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날이 되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므로 기도가 필요없고, 필요한 모든 것을 즉시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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