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에 내릴 심판 15:1-9
본문말씀에 나오는바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이렇게 비장하게 표현한 것은 다른 어느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선지자는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었으며 개중에 그와 함께하는 자들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지만 심판의 유예는 얻지 못하였으며, 심판을 완화시키지도 못하였다.
(1) 이 혹독한 판결이 근거를 두고있는 죄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므낫세때문이며 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일때문이었다(4절). 그일이 무엇이며 그일로인해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것을 우리는 열왕기에서 볼수 있다(왕하24:3,4). 그것은 그의 우상숭배로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음으로' 인함이니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현재의 상태, 곧 회개치 않음을 참작해서였다. 그들의 죄가 묘사되고 있다(6절). 네가 나를 버렸고. "나의 일과 내게 대한 너희 의무를 버렸도다. 네가 내게서 물러갔으며 마땅히 되어져야할 상태와 정반대가 되었도다." 또한 그들의 회개치않음이 묘사되고 있다(7절). 그들이 그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의 강퍅한대로 좇아 행하는 길에서 다시 하나님의 명을 좇는 길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다. 곁길로 나아간 자들이 돌이키기만 한다면 거기에는 자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역을 고수하는 자들이야 무슨 은총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2) 그 내려진 판결은 멸망이었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 내 마음은 이백성을 향할수 없나니(1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앞에서 쫓아내치라. 내가 그들과 더이상 씨름하지 않겠노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혈기가 아닌 공의로운 거룩한 분노로인한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행해지는 어떠한 중보도 용인치않으실 것이다(1절). 모세와 사무엘이 내앞에 섰다할지라도, "나를 그들과 화해시키려는 기도와 제사로 섰다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은혜가운데로 받아들일수 없노라."
3)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멸망의 심판으로 정죄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목전에서 쫓아내치실때 '그들이 어디로 나아가겠는가'(2절).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나아갈지니라. 그것은 다윗이 처했었던 것과 같은 선택이다. 그는 그 선택으로인해 큰곤경에 빠졌었다(삼하 24:14). '포로됨'은 마지막에 나오고 있다. 혹자는 그이유를, 사로잡히는 것이 지속되는 불행이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혹독한 심판이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칼의 심판이 다시 반복되고 있으며(3절) 그것은 다른 네가지의 멸망시키는 것중의 첫째로 되어있다. 칼을 피하는 자들이 역병이나 기근이나 포로됨으로 멸절되듯, 칼로 엎드러지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수하심으로 멸절될 것이다. 성에는 '찢는 개'가 있을 것이며 들에는 '삼켜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공의를 앞질러 달아나리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세계 열방중에 흩어질' 것이다(4절). 이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었던 가인과 같은 처지이다.
4) 그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엎드러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6절). 하나님께서는 한참 숙고하신뒤에 그들을 치실 것이며 매우 깊은 상처를 입히실 것이다.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6절). 그들의 패역한 고백으로 말미암아 무한한 인내심조차도 한계에 이르게된 것이다. 이제 그는 더이상 유예를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조국이 그들을 내쫓고 있으며 그들을 막 토해내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땅의 여러 성문들로, 그들 주변의 열방의 성들로 몰아넣으실 것이다. 그자식을 끊어서. 그들은 다음 세대가 자기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백성을 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왕이 여기에서 '대낮에 훼멸할 자'로 불리워지고 있다. 곧 발각될까 두려워하는 밤도둑이 아니라, 두려움없이 철저히 치고 멸절 시키는 자로 나타난다. "내가 청년, 곧 훼멸할 자를 어미에게로 데려갔노라"(혹자는 이렇게 읽는다). 이렇게 읽는 이유는 느부갓네살이 즉위 원년에 처음으로 유다를 침략하였는데 그때에는 청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편을 택한다. "내가 훼멸할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까지도 치게 하였노라." 다시말해서 수많은 청년들의 가족을 가지고 있은 어미 성 예루살렘을 치게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로하여금 그성을 덮치게 하셨다. 훼멸하는 전권이 그에게 맡겨졌다. 그러자 '졸지에 어려움'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내가 순찰자(단 4:13,23)와 두려움을 그들에게(예루살렘에게) 졸지에 임하게 하겠노라" 갈대아 군사들은 순찰자(watcher, 우리 성경에는 '치는 자'라고 쓰여있음-역주)라고 불리워졌다(렘 4:16). 무서운 살육이 본문에 묘사되고 있다. 아내들은 저희의 남편들을 빼앗긴다. 과부가…바다 모래보다 더많아졌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내앞에 더많아졌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남편들은 그의 공의로우신 칼로인해 멸절되었다고해도 그 가련한 과부들은 그의 자비로우신 팔안으로 모아졌다. 그는 '과부의 하나님'이시라는 그의 명예로운 칭호로 그렇게 하셨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빼앗긴다. 자식들이 살육당했을때 그어미는 '쇠약하여 기절한다.' 어미의 생명은 자식의 생명과 한데 묶여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백주에 그의 해로 떨어져서. 그녀의 해는 아직 대낮일때에 떨어졌다. 혹자는 이 쇠약한 어미를, 가련한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몹시 슬퍼하듯이 그렇게 애절하게 거민들의 죽음을 애곡하는 예루살렘으로 해석한다.
5) 그들은 불쌍히 여김받지 못한채 엎드러질 것이다(5절).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희 하나님께서 그목전에서 너희를 쫓아내치실때 너희 원수도 너희 친구도 너를 동정하지 않을지라. 오, 이스라엘아, 네가 스스로 멸망하였도다."
Ⅱ. 예레미야가 받을 축복 15:10-14
예레미야는 이제 공적인 사역에서 물러나 그의 휴식처로 돌아왔다. 본문말씀은 그와 하나님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이다.
(1) 선지자는 그의 사역중에 부딪쳤던 수많은 좌절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다(10절).
1) 그는 수많은 반박과 반대에 부딪쳤었다. 그는 '다툼과 침을 당할 자'이었다. 성읍 사람들이나 지방 사람들이나 모두 그를 대항하여 싸웠으며 그를 훼방하고자 저희가 할수 있는 온갖일을 다하였다. 그는 평강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툼의 사람이 되었다. 다툼을 거는 사람이 아니라 다툼을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강을 위하여 있었지만 그가 입을 열어 말했을때 사람들은 싸우려고 하였다. 그들이 그와 맞서 싸운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그들의 영혼에 대한 그의 신실함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파멸을 가져오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였고 그파멸을 피할방법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에게 격분하였다. 화평의 복음은 분쟁을 낳는다(마 10:34,35;눅 12:49,51). 그리하여 이러한 것이 예레미야를 아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모친이 그를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았다고 원망하고 있다. 이는 그의 처지에 대한 애절한 통곡이었다. 가장 화평한 자조차도 종종 다투는 사람이 된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이웃들과 화평하게 지낼수 없다고해도 마음의 안정을 잃고 안절부절할정도로 그렇게 동요되어서는 아니된다.
2) 그는 모욕적인 언동과 비난을 수없이 겪었다. 그들은 그를 분쟁을 일삼는 자 내지 불화를 심는 자 그리고 선동자로 낙인찍었다. 그들은 마땅히 그를 축복해야 했으며 그로인하여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를 저주했으며 그사자를 가증스러운 인물로 만들기위해 그들이 할수 있는 온갖행동을 다하였다. 그러나 혹시 예레미야가 어떤일로 그들을 도발시켰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내가 뀌어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뀌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10절). 여기에서 이말은 이세상에서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은 종종 분쟁과 다툼에 휩싸이곤 하게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선지자로 부르심받은 이래로 예레미야가 세상적인 문제들에 스스로 휩쓸리지 않았다는, 그의 신중함에 대한 한 예증이었다. 그는 세상적인 일에 있어서 어떤 이익을 꾀하려했다는 의심을 추호도 받지않고자 했다. 그는 돈을 뀌어주지 않았다. 그는 고리 대금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꾸지도 않았다. 장사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게는 먹여살려야할 아내도 자녀도 없었음을 보게된다(렘 16:2). 그럼에도 그는 그시대의 불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반감을 사고있었다.
(2) 하나님께서 이불평에 대해 답하신다.
1)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가 폭풍을 뚫고 나아갈 것이며 마침내는 편안하게 되리라고 보증하신다(11절). 너로 복을 얻게할 것이며. "만일 내가 너를 보살피지 않거든 나를 결코 신실한 자로 생각지 말라. 내가 진실로 네 인생의 남은 날을 복되게 하리라. 네 여생은 이제까지 지내온 날들보다 훨씬 안락하게 되리라." 갈대아 주석은 "너의 종말이 복되리라"라고 읽는다. 예레미야는 또한 그가 미리보게된 공적인 심판의 임박함에 대해 불안해 했던 듯하다. "나의 친구들도 이같이 나를 핍박하건데 나의 원수들은 어떠할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음의 약속으로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신다.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곧 네 주변의 모든 것이 황폐하게 될때에 그들로 네게 탄원하게 하리라. 이약속은 느부갓네살왕이 도성을 취한후 시위대장에게 예레미야를 선대하며 그가 말하는대로 모든 것을 행하라고 명했을때에 성취되었다(렘 39:11,12). 그다음의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12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레미야를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시겠다고 했던 약속(렘 1:18)과 비교되는 것으로서, 그를 위로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은 계속하여 예레미야와 충돌하였으며 쇠처럼 억세고 단단하였다. 그러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권능과 용기로 무장한 예레미야는 천연적으로 강한 북방의 철과 같았으며 인위적 기술로 연단된 놋과 같았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그를 이기지못할 것이었다(참조. 겔 2:6.3:8,9).
2)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들과 핍박자들이 폭풍속에서 잃어버린바 되어질 것이라고 그에게 보증하신다(13,14절).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선지자에게로부터 백성들에게로 말씀을 돌리신다. 12절 말씀은 그들에게도 또한 적용될수 있다.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그들의 용맹과 힘, 그리고 가장 굳세고 활기있는 그들의 수고라고해도, 북방의 철과 놋처럼 굽혀질수 없으며 공략될수도 없는 하나님의 계획 또는 갈대아 군대와 맞설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에게 저희의 파멸의 운명을 들려주라." 네 사경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할 것이며. 선지자는 가난하였다. 그에게는 탈취당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재산도 보물도 없었다. 그러므로 대적들은 그를 잘 대우해줄 것이다. 그러나 돈으로든 땅으로든 많은 재산을 가진 자들은 저희의 소유로인하여 죽임당하게될 것이다. 이나라의 방방곡곡, 요소요소, 가장 먼곳에 있는 지역조차도 국가적인 범죄에 빠졌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 모두가 셈해지게될 터이었다. 너로 네 대적과 함께 네가 알지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14절). "개선 용사가 된 그들이 너를 자기 땅에 끌고갈 것이며 너는 거기에서 아무런 위안도 기대할수 없으리라."
Ⅲ. 예레미야의 호소 15:15-21
(1) 선지자는 겸손히 하나님께 아뢴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15절). "주께서 나의 신실함을 아시나이다.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나이다. 주께서는 나의 고통을 아시오나 사람들은 이를 경시하나이다."
1)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15절).
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편을 살피시고 염두에 두시기를 기도한다.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나를 선히 여기소서."
②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기를 간구한다. 나를…권고하사.
③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도한다.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아니 나를 박해하는 자로부터 나를 변호하소서." 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보다 지나치게 보복해주시는 것은 바라지않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의로운 사람이며 그가 섬기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세상에 확신시키기 위한 그무엇인가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④ 하나님께서 자기를 아직 살려두시기를 간구한다.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의 오래참으심으로 인하여 나의 날을 길게하소서." 비록 격분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탄생을 탄식하긴 했었지만 선지자는 여기에서 자신의 죽음의 재촉을 원하지 않는다. 생명은 본연의 즐거움이며 유익한 사람의 생명은 은혜로운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2) 그는 그의 원수들과 박해자들, 그리고 중상자들에게 맞서는 자비와 구원을 하나님께 청원한다.
① 하나님의 명예가 이일에 걸려있었다.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당하는줄을 아시옵소서. "또 그일을 알리옵소서." 만일 우리가 선한행위로 인하여 고난당하고, 의를 인하여 온갖 욕을 먹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예와 아울러서 우리의 명예를 변호하시리라고 소망해도 좋다. 같은 의도로 16절에서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② 이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걸려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도록 위임받았으며 그말씀을 자신의 심령으로 체험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사뿐 아니라 은총도 받을만한 자격이 생겼다.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할수 있게되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내가 주의 말씀을 발견하였사오며 그말씀이 나에게 유익하였나이다. 내가 그것을 맛보았을뿐만 아니라 먹었나이다. 즉 그것을 완전히 받았나이다. 주의 말씀을 내가 환영했사오니, 굶주린 자가 음식을 반기듯 하였나이다." 때때로 선지자에게는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명이 주어진다(겔 2:8;계 10:9).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그 어떤것도 이보다 더 즐거울수는 없었나이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그가 전해야했던 메시지 그자체에 대해서이다. 비록 그가 자신에게 소중한 조국의 멸망을 예언해야 했다해도 그또한 조국의 파멸과 깊이 관련되지 않을수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본연적인 조국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열의에 삼켜진바 되었으며, 이같은 진노의 메시지조차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때문에 그에게는 족한 것이었다. 그는 또한 처음에 백성이 경고를 받아들여서 심판을 미연에 방지하게 되리라는 소망으로 즐거워하였다.
둘째, 이메시지를 전하도록 그가 위임받은 임무에 대해서이다. 그가 소명을 받은 일은 어떤 세속적인 유익이 수반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멸시와 박해를 받기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양식은 그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요 4:34).
셋째, 그가 즐거워하는 연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며 그의 일에 있어서 그를 인정하시겠다고 하셨던 약속에 대해서이다(렘 1:8).
③ 후에는 거의 만족을 느끼지 못했을지언정 그는 진지함과 자기 부인으로써 맡은바 임무에 전념하였었다(17절). 그는 많은 시간을 자기 골방에 '홀로 앉아서' 보냈다. 이는 그를 힘있게 감동시키사 그의 일을 행하게 하신 '주의 손을 인하여'서이다(겔 3:14).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언제나 나를 시름에 잠기게 하는, 이백성에 대한 진노의 메시지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그가 자기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즐거움이 거의 없었다는 바로 그것이 그의 불평이다. 그일은 처음에는 마음의 즐거움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는 백성의 완악함과 그들가운데서 자기의 수고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을 괴로워하면서 '홀로 앉아' 있었다.
④ 그는 매우 비감적으로 간언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약속에 자신을 내어던진다(18절).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내게 임재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대하여 속이는 시내같으시리이까? 아니, 나는 주께서 그렇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아나이다.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는 인간이 아니오며 생명의 근원이신 주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해 결코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같지 않으시리이다."
(2) 하나님께서는 이간언에 대하여 은혜롭게 응답하신다.
1)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① 그는 냉정을 되찾고 다시 자기 일을 기꺼이 수행해야 한다. 그는 돌아와야만 한다. 저 불신하는, 불만이 담긴 생각과 격정을 떨쳐버리고 그런 것들이 이끄는대로 좇아서는 안된다.
② 그는 자기 일에 있어서 충실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혀야 한다. 비록 예레미야를 불성실하다고 비난할 이유도 전혀없었고 하나님께서도 그의 마음이 신실함을 아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경고를 그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셨다. "네가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해야 하느니라." 의인은 아무리 비천하고 궁핍한 자리에 있다고하더라도 귀한 자이다. 악인은 아무리 부요하고 권세있는 자리에 있다고하더라도 천한 자이다. 우리의 회중에는 이러한 자들이 함께 섞여있으며 같은 타작마당 위에 밀과 겨가 함께 널러져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름으로써는 구별할수 없다. 그러나 성품으로써는 그들을 분별할수 있다. 그들 각자에게는 받아야될 몫이 있다. 즉 귀한 성도들은 위로를, 비천한 죄인들은 응분의 두려움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19절). 즉, 그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먹이기위하여 그의 설교에서 할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네게서 도망친자들, 그들을 네게로 돌아오게 하라. 그리고 재차 생각하여 타협하라. 그러나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안되니라. 그들을 칭찬하지 말며 그일을 나의 말이 규정한 것이상으로 그들에게 편리하게 해주려고 생각지 말라."
2)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약속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그가 이를 쾌히 입증하면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해주실 것이다.
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평정케하실 것이며 현재의 그의 심령의 동요를 가라앉히실 것이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네 영혼을 소생시키리라"(시 23:3).
② 하나님께서는 그로하여금 선지자의 일을 수행하게 하실 것이다. "주인에게 종이 하듯 내게서 가르침을 받도록 내가 너를 내앞에 둘것이라. 사신이 자기를 보낸 왕의 입이듯이 너는 이백성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나의 입이 될것이라."
③ 그는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당면하는 많은 곤란을 타개해 나갈만한 힘과 용기를 지니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심령은 지금처럼 나약해지지 않게될 것이다(20절). 내가 너로 이 백성앞에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하리니. "폭풍이 몰아치고 격심하게 때려도 네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너는 어떤 죄된 굴복으로도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 은혜로 너를 무장시켜 주는 나, 곧 너의 하나님을 경건한 결심으로 신뢰하라. 겁을 먹지말라. 내가 너를 담대하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자기가 '다툼을 당할 자'로 났다고 불평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렇게되는 것을 각오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너를 칠것이나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④ 그는 그의 전능하신 구원자되시는 하나님을 모시게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있는 자들은 가장 무서운 대적도 능히 다룰만한 지혜와 능력을 지니신 구원자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21절). 겉보기에는 매우 두려운것 같으나 선한 사람에게는 조금도 해를 끼치지 못함이 입증되는 일들은 허다하게 많다.
# 핵심
15:10-21
백성들을 위해 간구한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를 거절하신 하나님이 좌절에 빠진 예레미야를 위로하시는 내용이다.
모세와 사무엘(15:1)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모세가 범죄한 민족을 위해 진노를 거두시도록 탄원했을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며(출 32:11-13; 민 14:13-19), 사무엘역시 백성을 위해 기도했을때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사 진노를 거두셨다(삼상 7:5-9; 12:23).
# 묵상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 15:1 )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앞에 선다고할지라도 이스라엘을 용서할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했을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했습니다. 사무엘역시 하루도 쉬지않고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삼상7:5-11; 12:12). 그런데 이처럼 유명한 중재자가 오더라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치 않겠다고 하신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죄가 돌이킬수 없을정도로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중에 되어지는 최후의 심판은 피할수도, 변경할수도 없으며 행한대로 그심판을 받게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예레미야 ( 15:10 )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욥처럼 자신의 출생일을 저주했습니다(20:14; 욥3:1). 출생일은 본래 가장 복된 날이요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악이 아닌 알수 없는 이유로인해서 고통을 당할때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저주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심판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것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또한 죄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유다 백성의 운명으로인해서 눈물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 15:18 )
팔레스틴에는 겨울에 비가와서 시내가 흐르나 여름에는 물이 말라 그시내가 없어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있던 그시내를 기억하고 찾으려는 사람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신에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같다는 예레미야의 말은, 박해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종이 외치는 애절한 한탄입니다. 선지자에게는 그의 고통이 끝없이 지속되며 도저히 치유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말라버릴 시내가 아닌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간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 세가지 ( 15:20, 21 )
놋성벽이 되게 하겠다는 것, 내가 너와 함께하며 아무사람도 너를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곤고한 상태에 있는 예레미야를 위로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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