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바벨론의 포로들에게 쓴 편지 29:1-7
(1)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거기에는 여고니야가 항복하여 포로로 잡혀가 있었고 국모인 그의 어머니, 그리고 본문에 '환관들'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시종, 가속들과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 또한 포로로 잡혀가 있었다. '목공들과 철공들'도 마찬가지로 잡혀가 있었는데 그이유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이 성을 요새화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을 박탈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온순하게 항복했으므로 느부갓네살왕이 누그러졌으리라고 기대되었었다. 하지만 그 오만하고 전제적인 정복자는 더 큰양보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이 먼저 포로된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났을'때, 그는 다시와서 더많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을 잡아 갔다(1절). 이 포로들의 처지는 매우 암울하였다. 이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로부터도 더 큰죄인들인양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위로하고 있다. 이 예레미야의 편지는 시드기야왕이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사절단 편에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보내졌다. 이사절단은 아마도 느부갓네살에게 시드기야의 공물을 바친다든지, 아니면 복종의 서약을 갱신한다든지 하는 목적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그와같은 사절단 편에 이메시지를 보내기로 예레미야가 마음먹은 것은 이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2) 편지의 내용이 여기에서부터 24절까지 이를정도로 길게 실려있다.
1) 예레미야는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쓰고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 자신은 단지 기록자 혹은 필경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포로생활 중에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저희를 구원하실수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듣는 것은 저희에게 큰위로가 될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저희와 계약을 맺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도 또한 큰위로가 될것이다. 이것은 바벨론에서 우상숭배의 온갖 유혹과 시험에 맞서 스스로를 굳게 지키라는 권면일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편지를 보내심은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것이었다. 이는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으며 징계를 가하시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들을 버리지는 않으셨으며 상속권을 박탈하지도 않으셨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포로됨이 자기의 주관아래 되어진 일임을 인정하신다. 내가...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한 모든 포로(4절과 7절). 설사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로잡혀 가게 하셨다고해도 그가 그들에게 그릇되이 행하거나 혹은 어떤 해를 가하고자 의도하신 것이 아님을 그들은 확신해야 했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벨론에 정착하는 것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말도록 명하신다. 즉 그곳에서 할수 있는 최선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그들에게 명하신 것이다(5,6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그들은 자기들이 포로생활에서 속히 해방되어 되돌아가리라는 희망을 품지않아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할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여 그생활에 적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그곳이 저희 자신들의 고향 땅인양, '집을 짓고 전원을 만들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야 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바벨론에서 안락하게 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물론 그들은 때때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지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느라고 밭을 경작하는 일이 방해받아서는 아니된다. 인생의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든지, 그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의 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가지기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소유하지 않았다고해서 현재 누릴수 있는 위로마저 내던지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에 대한 본연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다. 만일 섭리가 우리를 어떤 다른나라로 옮겨가게 한다면, 그곳에서 평안히 살고자 마음을 굳혀야 한다. 만일 온세상이 여호와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어디로 가든지 그곳이 곧 아버지의 땅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는 결국 아버지의 땅을 떠나지 아니한 것이다. 그들은 포로생활의 견디기 힘든 역경과 고난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동요해서는 안되었다.
4)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포로로있는 나라의 유익을 구하라고 지시하신다(7절). 그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들이 바벨론왕에게 종속되어 있는동안 공공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기도하지 않도록 금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건함과 정직함으로 그의 치하아래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저희의 멍에를 벗어나려는 음모를 꾸미지 말며, 자기들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신때에 하나님께서 그렇게하시도록 인내심있게 맡겨야 한다. 이는 그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이와같이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한 신앙심의 성향을 따라서, 저희를 지배하고 있는 권세자들이 핍박하는 권세자들일지라도 그러하였다. 배에 승선하고 있는 모든 승객들은 그배의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Ⅱ. 경고와 하나님의 약속 29:8-14
(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그릇된 기초위에 세운 건물에서 백성들을 끄집어 내신다(8,9절).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포로생활은 곧 끝날 것이므로 바벨론에 정착할 생각을 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그들이 너희를 미혹하고 있도다"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들이 내이름으로 예언하기는하나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고 있도다. 그러니 그들에게 혹하지 말며 그들이 너희를 미혹하도록 스스로를 내맡기지도 말라."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꿈에도 신경쓰지 말라고 권면하신다. 여기에서 꿈이라고 한것은 백성들이 스스로 꾸고 즐거워하며 관심을 쏟는 꿈과 환상을 말할뿐 아니라 선지자들이 꾼 꿈, 즉 그들의 예언의 근거가 되는 꿈도 포함된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꿈을 꾸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그꿈을 근거로하여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미혹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백성들은 선지자들이 부드러운 말만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사30:10). 그들이 하는 말들은 그들의 꿈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소망을 둘만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비록 그들이 속히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나 상당 기간후에, 곧 '칠십년이 차면' 되돌아 가게 되리라고 약속하신다. 그는 그들의 포로생활을 끝맺게 하실 것이다. 설혹 그들이 일부는 이나라에, 또다른 일부는 저나라에 뿔뿔이 흩어져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보내었던 모든 곳에서 모으실' 것이며, 다시 하나로 합하실 것이다. 그들은 저희 자신의 고향땅으로, 곧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곳으로' 다시 돌아오게될 것이다(14절). 이렇게하여 그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어질 것이다(10절). 내가...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이말씀이 있기때문에 그들의 포로생활에서의 귀향은 안연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귀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한 말씀의 성취, 은혜로운 약속의 실현이 될것이다. 이렇게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도하셨던바 목적들이 실현될 것이다(11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하나님의 생각은 의도하였던바 목적을 향하여 역사하며 정한때가 되면 그가 이루신다. 열매가 무르익을때까지 참고 견디며 인내하면 그들은 그열매를 얻을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장래의 소망,' 곧 목적(원래 의미로는)을 허락하시려는 것이다. 사태가 최악에 이르면 그들은 회개하고 수정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저희의 구속의 영광스러운 완성을 보여주실 것이다. 태초에 그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삼라만상의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을 자기 백성에게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도중에서, 중간쯤에서 멈추시는 일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망, 곧 저희가 바라던바 결국을 보게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장래의 두려워할 소망이나 저희 자신의 환상으로 말미암은 소망도 허락하지 아니하실 것이요 오직 믿음의 소망만 허락하실 것이다. 이일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될것이다(12-14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구원이 다가오고 있을때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그구원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말씀을 의뢰할수 있다. '찾으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우리가 좌우명으로 삼을 말씀이 여기에 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Ⅲ. 남은 자들의 파멸 29:15-23
예레미야는 여기에서 자신이 전했던 계획과 위로의 말을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들을 의뢰했던 자들에 대해 말머리를 돌리고 있다. 예레미야에게서 온 이편지를 받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왜 그렇게 자청하여 분주하게 구는가? 누가 자기더러 우리에게 충고하라고 하였는가?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하여 선지자들을 일으키셨지 않은가(15절)? 우리는 그 선지자들로 충분히 만족하며 그들을 의뢰할수가 있노라.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선지자들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노라." 그들이 믿고있는 그선지자들은 백성들이 더이상 포로로 잡혀가지 않을 것이며, 현재 포로되어 있는 자들도 이내 돌아가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이 완전히 패망하게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다윗의 위에 앉은 왕과 그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이 너희가 돌아갈때에 너희를 반가이 영접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생각일 뿐이라. 그들은 칼과 기근과 염병의 심판을 차례로 받게될 것이며, 마침내는 허다한 수가 멸절되고 남은 자들은 곤궁하고 비천하게 되어 세계 열방중에 흩어짐을 당할 것이라."(16,18절). 이렇게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무화과'로 만드실 아니 그렇게 취급하실 것이다. 이말씀은 우리가 24장에서 보았던 환상과 예언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그에 대해 같은 이유가 주어지고 있다(19절).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듣지 아니함이니라. 즉, 그들을 불렀으나 그들이 듣기를 거부하였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라고 자랑하고 있는 포로된 모든 자녀들을 부르신다(20절). "잠잠히 서서 너희가 그처럼 좋아하는 선지자들의 운명이 어떻게될지 들으라." 여기에서 두명의 선지자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으니, 곧 '아합과 시드기야'이다(21절). 그들이 질책받고 있는 죄는 불경과 부도덕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였으며(21절), 하나님께서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그의 이름으로 말하였다(23절). 그들은 내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자신들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진리인척 꾸몄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더나빴다. 여기에 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그들을 죄가운데 지내게 하였는지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저희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는 백성들을 질책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왕이 너희가 보는앞에서 그들을 죽이리라. 그가 그들을 비참한 방법으로 죽일 것이니, 곧 불살라 죽이리라"(23절). 우리는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이렇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은 그들의 불경과 부도덕때문이 아니요, 공공의 안녕을 깨뜨리는 불온한 정신들을 획책하고자 기도하고 선동하며 반란과 반역을 일으키도록 백성들을 동요시켰기때문임을 추측할수 있다. 그들의 이름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가운데서 저주거리가 될것이었다(22절). 사람들이 자기들이 싫어하는 자를 가장 나쁜 말로 저주할때, '여호와께서 너로 시드기야와 아합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나쁜 저주는 없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Ⅳ.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편지 29:24-32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의 내용에 크게 격분하였다. 그들중의 한사람, 스마야는 예레미야에 대하여 적의를 표하였다.
(1) 이 다망한 친구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 곧 꿈꾸는 자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가 꿈꾸는 자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모든 예언을 꿈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자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포로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편지 사본, 혹은 그것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그를 극도로 화나게 만들었다. 그는 그편지에 응수하려 하였다. 그는 어떻게 응수하였는가? 그는 자신의 일을 정당화함에 있어 예레미야에게 편지를 쓰지않고, 제사장들에게 썼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핍박하도록 그들을 부추겼다. 스마야는 마치 자신이 온인류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라도 된양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쓰고있다. 그러나 이편지는 주로 스바냐를 상대로하여 쓴것이었다. 스바냐는 마아세야의 아들이든지, 아니면 마아세야가 선조내지 우두머리인, 제사장 반열의 제 24번의 서열에 속해있는 자였다. 그는 대제사장이 아니었고, 대제사장에게 속한 부제사장이었거나 바스훌과 같이 성전에서 상당히 중요한 어떤 직책을 맡은 자이었던 듯하다(참조. 20:1).
1) 스마야는 스바냐와 다른 제사장들에게 그들이 맡은바 직책의 임무를 상기시킨다(26절). 여호와께서 너로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혹자는 여기에서 이 여호야다가 요아스 시대의 위대한 개혁자이었던 저 유명한 여호야다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 이 여호야다는 스바냐의 바로 전임자이었던 다른 사람으로, 아마도 제사장들가운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사람이었던 듯하다(1절). 스바냐는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빠르게 신망있고 권세있는 이 자리에 올랐다. 따라서 스마야는 스바냐에게 그가 하나님의 섭리로 선지자들을 핍박하기위해 그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설득하려고 하였다. 즉, 그렇게하여 이와같은 시기에 권력을 잡게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제사장들의 임무는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색출해 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선지자들이 여기에서 자칭 선지자, 직무 찬탈자, 그리고 훼방꾼, 무뢰한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행동하는 미친 사람들내지 광포한 사람 혹은 정신착란자들로 간주되고 있음을 볼수 있다.
2)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쓴 편지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한다(28절). 거짓 선지자들은 예전에 결코 포로로 잡혀가지 않으리라고 말했었다(렘 14:13). 반면에 예레미야는 그들이 포로생활을 하게되리라고 말했었으며 현재의 상황은 예레미야가 옳았음을 이미 입증하고 있었다.
3) 스마야는 예레미야를 '미친 자'요, '자칭 선지자'로 몰면서 그에게 형벌을 내릴것을 주장한다. 그는 그들이 예레미야를 '차꼬에 채우며 칼을 메우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이 예레미야의 영향을 받지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그는 스바냐를 태만하다는 이유를 들어 꾸짖기까지 하고 있다(27절). 이제 네가 어찌하여...아나돗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에 둔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셨었다. 그말씀이 그들에게 '임한'것이다(슥 1:6). 그러나 예레미야가 자기들이 바라는바 부드러운 말을 예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를 선지자의 직무에 합당히 부르심받은 자로 보려고 하지않았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들을 비웃고 선지자들의 예언을 선용하지 않았기때문에 비참한 노예상태로 전락하였다. 고난이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켜 치유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과 함께하셔서 역사하시지 않는한 그러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고난은 오히려 그멸하기로 의도되어진바 부패함을 가중시킬 뿐이다(잠 27:22). '미련한 자를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주었다. 스바냐는 예레미야를 존경하고 있었다(우리는 21:1절과 37:3절에서 그가 선지자로서 예레미야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임무를 맡은 사실을 볼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예레미야를 보호하였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이편지의 내용을 알려주었고, 그렇게함으로써 그에게 포로들중에조차 그의 대적들이 있음을 알게하려고 했다.
(3) 이같은 편지를 쓴 스마야에게 어떠한 형벌이 내려질지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응답의 전갈을 스마야에게 보내지 말고, 스마야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이기나 한양 격려하고 부추긴 '모든 포로에게' 보내라고 명하셨다(31,32절). 스마야는 그들을 우롱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평화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신 일이 없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위임을 날조하고 백성들로하여금 '거짓을 믿게하였다.' 즉 거짓 위로를 전함으로써 그들에게서 참된 위로를 박탈하였다. 그는 또한 그들을 반역자로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여' 반역을 가르쳤다. 이는 하나냐가 했던 행동과 같다(렘 28:16). 그는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될'것이다(17:11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이름과 가문은 세상에서 잊혀지게될 것이었다. 이 백성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그와 그에게서 나온 후손도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하는 선한 일을 보지 못하리라.'

# 핵심
29:1-23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통치(B.C.597-586)초기에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다백성에게 보낸 편지이다. 예레미야는 이서신을 통해 70년이 차야 회복될 것이며, 그때까지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하는 말을 경계하고 인내로 기다릴 것을 권고한다.
그마랴(29:3)
요시야왕 당시 율법책을 발견하여 요시야의 종교개혁 운동을 촉진시켰던 대제사장 힐기야(왕하 22:8-13)의 아들이다. 그는 시드기야왕이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사신들가운데 한사람이었고, 포로지의 유다백성에게 예레미야의 편지를 전했다. 한편 사반의 아들 그마랴도 예레미야의 사역을 도왔으며(36:10), 여호야김에게 예레미야의 예언 두루마리를 불태우지 말라고 담대히 권고하기도 했다(36:25).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29:25)
스바냐 선지자와는 다른 인물. 유다 왕국의 마지막 부제사장이었다(왕하 25:18). 시드기야왕의 명령으로 예레미야를 두번 만나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간청했다(21:1; 37:3). B.C. 586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처형되었다(52:24-27).

# 묵상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내진 예레미야의 편지 ( 29:4-6 )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포로된 백성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바벨론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바벨론에서 정착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편지를 통해 70년이 지나면 그들이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간 ( 29:10 )
유다의 바벨론 포로기간은 70년으로, 이는 바벨론의 지배력이 3대동안 계속되리라는 말씀의 성취였습니다(27:7).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주전 612년)에서 바벨론 멸망까지는 73년이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던 해(주전 605년)부터 바벨론 멸망까지는 66년입니다.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 29:12 )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의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며, 장래에 소망을 두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의 생각은 참으로 깊고 크십니다.
전심으로 찾아야할 여호와 ( 29:13 )
전심으로 찾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즉, 목숨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처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찾고 찾으면 만나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악하여 먹을수 없는 무화과 ( 29:17 )
악한 무화과란 상하고 짓이겨져서 먹지 못하는 부패한 무화과를 가리킵니다. 24장에 따르면, 악하여 먹을수 없는 무화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예루살렘성에서 끝까지 바벨론에게 저항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포위가 3년동안 계속되자 예루살렘성에는 칼과 기근과 염병이 들끓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상 ( 29:20 )
바벨론에 포로로 있는 유다의 백성들로서, 이들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입니다. 그들의 수는 대략 4,600명 가량(렘52:28-30)이었습니다.
느헬람 사람 스마야 ( 29:24 )
스마야는 여호야김과 함께 제2차 포로유수때 바벨론에 끌려간 선지자입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미친 자, 자칭 선지자라고 불렀으며 그를 가둘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오히려 그의 집이 멸망당했습니다.
미친 자로 비방당한 예레미야 ( 29:26 )
예언자의 황홀경상태는, 의심할 여지도없이 때때로는 억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난폭한 광란의 상태를 야기하기도 했습니다(삼상19:20-24). 여기서는 참예언자인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인 스마야가 비방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를 미친 자로 몰아 착고에 채우라고 주장했습니다.
백성에게 행하려하는 선한 일 ( 29:32 )
이는 70년후에 있을 포로귀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됨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장래의 소망만이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생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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