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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평화와 기쁨에 대한 약속 31:1-9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보증하신다.
(1)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시 계약관계에 있으실 것을 보증하신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는 자녀들로 인정하실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1절). 즉,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됨을 스스로 나타내리라는 의미이다. 단지 두지파의 하나님일뿐만 아니라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이다. 또한 전체로서의 국가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집안의 가족 하나하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의 산업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아래서 은혜를 입을 것이다. 만일 우리와 우리의 집안이 여호와를 섬기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된다(잠 3:33).
(2)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에서 인도해내실 것을 보증하신다. 그는 옛적에 저희 열조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을때와 같이 역사하실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저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셨을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저희에게 상기시켜 주신다(2절). 그들은 그때에 지금 이들과 마찬가지로 애굽의 칼날아래 목숨이 맡겨져 있었다. 즉, 태어나자마자 사내아이들을 멸절시켜 버리는 바로의 칼날아래에 있었다. 그들은 그때에 '광야에' 있었으며 잃어버려지고 잊혀진듯이 보여졌었다. 곧 지금 이들이 낯선 이방땅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앞에서 은혜를 입어, 그에게 속한바 되고 크게 영예롭게 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가나안에서 '안식을 얻게하려' 하셨었다. 그리고 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신 분이시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저의 열조들에게 하신 일을 하나님께 상기시키신다. 이는 자기들이 그러한 표적을 보지못하고 있다는 뜻을 담고있다. 그들은 기드온이 일찍이 하였던 그물음을 묻고자 하고있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모든 표적이 지금 어디 있나이까?" 옛시절들은 영화로운 시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모습을 감추고 계시는데, 옛적에 우리에게 나타나셨던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사 45:15).
3)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증해 주신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옛적의 사랑으로서 사랑할뿐만 아니라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잠시 그위로를 보류할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시들어질수는 없는 사랑이다. 아무것도 그들을 그사랑에서 떼어놓을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러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그들을 이끌어 자신과 계약관계에 있게 하시고 교제하게 하실 것이되 그의 성령으로 그들의 영혼을 감화시키심으로써 그렇게하실 것이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한민족으로 이루시고 조국 땅에서 기쁘게 정가하게 하실 것임을 보증하신다(4,5절). 그들은 이제 버드나무에 걸어두었던 수금을 다시 연주하게 되며 그것을 켜기위하여 조율을 할것이다. 성읍의 즐거움은 농촌의 산물의 풍성함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약속되고 있다(5절).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사마리아는 유다왕국의 수도와 대립되는, 이스라엘왕국의 수도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은 연합하게될 터이었다(겔 37:22). 그리고 그곳에는 사람들이 땅을 경작하는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수 있을정도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것이다. 심는 자가 심고 그과실을 먹으리라. 그들은 자기들이 심은 것의 산물을 취하러 군대가 올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유로이 마음껏 '그과실을 먹을'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에 따라 예배하는 자유와 기회를 갖게되리라고 보증하신다(6절). 날이 이를 것이라. 그날은 영화로운 날이 될것이다. 적군의 침입을 경계하기위하여 파수보도록 세워진 '에브라임 산위의 파숫꾼'이 주위가 고요하며 어떠한 위험의 기식도 없으므로 교대할 시간만 기다리게될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들이 '시온에 올라가서' 공중의 안녕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이것이니, 곧 '에브라임 산위의 파숫꾼'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재촉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전에 그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었다'(호 9:8). 그리고 시온에 올라가자고 사람들을 청하기는커녕 예루살렘을 앙모하는 자들을 비웃었었다(호 5:1).
(5)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며, 그복된 변화의 영예와 위로인 교회가 서게될 것이라고 보증하신다(7절). 야곱을 위하여 기뻐노래하며. "이스라엘의 모든 친구들과 우방들로하여금 이스라엘과 함께 즐거워하게 하라"(신 32:43).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롬 15:10).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소식을 전함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찬양하라. 또한 그둘 모두를 영화롭게 하라."
(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국땅에서 복된 정착을 하기위하여 포로된 땅에서부터 기쁘게 귀향하리라고 보증하신다(8,9절).
1) 비록 그들이 아무리 먼원방으로 흩어져있다고 해도, 그들은 '북편 땅에서, 곧 땅끝에서부터' 함께 모이게될 것이다.
2) 비록 그들가운데 많은 무리가 여정길에 오르기에 어려움이 많을지라도, 그장애 요소들이 그들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소경과 절뚝발이'가 올것이다. 그들 모두는 그러한 선한 의지와 선한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르게될 것이다. 그들의 눈먼 것이나 다리저는 것이 그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되지못할 것이다. 동무들이 그들을 도와 소경에게서는 눈이 되며 절뚝발이에게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이와같이 선한 그리스도인들도 하늘로 가는 여정길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욥 29:15).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실 터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자들은 자신이 소경이라고 탄원하지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주시는 자들은 자신의 절름거림을 하소연하지 않을 것이다. '잉태한 여인'은 몸이 무거워 그와같은 여행길을 떠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해산하는 여인" 역시 그에 못지않게 부적합하다. 그렇지만 시온으로 향하는 귀향길에 오를때, 어떠한 장애요소도 어려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실때 우리는 가지못한다는 어떠한 하소연거리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시는 바로 그분이 우리를 도우시며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들은 포로생활로 신음하고 있을때보다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되는때에 죄로인한 더큰 쓰라림과 온유함으로 울게될 것이다. 기도는 항상 눈물을 닦아주는 힘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혜로 그들을 인도해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통과해야할 땅이 마르고 건조한 땅인가? 내가 그들로...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이것은 여름철에는 메마르곤 하는, 그러한 물가가 아니다. 그들이 지나가야 할곳이 길도 없는 광야인가? 내가 그들로...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길을 잃지않게될 것이다. 그곳은 거칠고 바위투성이인 땅이던가? 하나님은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않게'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분명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곳이며 어디로 부르셨든지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길을 찾으시거나 혹은 예비하여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왜 그의 백성을 이모든 배려로 돌보시는지 그이유가 주어지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그러므로 저를 돌보실 것이다(시 103:13).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아이라고 불리울 자격도 없는 에브라임이 특별한 총애를 받을뿐 아니라 야곱의 축복을 유업으로 얻을 '장자'로 인정되어질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실때에 주어졌던 같은 이유가 바벨론에서의 그들의 해방에 대해서도 역시 주어지고 있다. 그들은 자유자로 태어났으며 그러므로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 태어났으므로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는 아니되었다(출 4:22,23).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 아들을 내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Ⅱ. 슬픔의 종식에 대한 약속 31:10-17
자기 백성에 관한 하나님의 사랑의 취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열방이 들어야만 하는 '여호와의 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역사하심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세계에 퍼지게될 소식중의 한부분일 것이었다. 예언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흩어져있는 자들이 그흩어진 곳에서 모두 다시 돌아오게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10절). 그리고 그가 그들을 무리로 모으실때, 다시는 흩어지지않도록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실' 것이다.
(2) 팔려가 따로 떨어져있는 자들이 구속되어 다시 돌아오게될 것이다(11절). 비록 대적이 저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할지라도 '그들보다 강한' 여호와께서, 즉 만유중에 가장 강하신 그가 저를 '속량하시고 구속하실' 것이다. 이는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권능으로 하시는 것이다.
(3) 그들은 자유로이 풍요와 기쁨을 누리게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12,13절). 그들은 고국 땅으로 돌아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할' 것이다. 그거룩한 산의 꼭대기에서 하나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기위하여 노래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성전의 토대가 닦여졌을때 그들이 그렇게했음을 읽게된다(스 3:2). 여호와의 은사...에 모일 것이라. 즉, 여호와의 선하심, 다시말하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선을 베푸시는 성전에 큰무리를 이루어 양떼같이 그리고 물줄기가 흐르는듯한 큰기쁨으로 모일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인하여 찬양하고, 그선하심을 지속시켜 주실 것을 기도하기위하여 경건한 회중과 함께 모일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과 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주시는 여호와의 선하심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기위하여 올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단위에 드리기위하여 제물로 가져오는 첫열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성령과 은혜라는 이슬로 흠뻑젖은 동산과도 같다. '그들이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귀중한 약속이다. 이는 오로지 '모든 눈물이 그눈에서 씻겨지는' 새예루살렘에서의 일이다(계 21:4). 하지만 귀향한 포로들은 그들이 예전에 가졌던 그러한 슬픔의 요인들을 더이상 갖지않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때문에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4) 사역자들과 그사역의 대상자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것에 풍성한 만족을 얻게될 것이다(14절).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하며. 즉 제단으로 생계를 의지하는 자신의 들이 안락하게 살수 있을정도로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제물이 풍성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제사장들과 그가족들은 '기름으로 흡족케'될 것이다.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하리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즐기는 영적인 축복들에도 적용된다. 그것이야말로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보다도 궁극적으로 더귀중한 것이다.
(5) 특별히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감으로써 그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는 자들은 그자녀들이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리라고 예고된다(15-17절). 라마에서...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모두 포로로 잡혀갔던 그때에는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만이 가득하였었다. 라마의 통곡소리가 다른 곳보다 더심했던 것은 그곳이 느부사라단이 포로들을 집결시킨 집결지였던 까닭이다. 이것은 40:1절에 나타난대로인데, 거기에서 예레미야는 석방되었었다. 본문에는 '라헬이 그자식을 위하여 애곡'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지파가운데 하나인 베냐민과 열지파의 우두머리되는 에브라임은 둘다 라헬의 후손이었다. 그녀는 단지 이들 둘을 두었을뿐이며 그둘가운데 맏아들은 그부친이 슬퍼하여 '위로를 받기'를 거절한 아들이었다(창 37:35). 다른 아들도 어머니가 '베노니'라고 이름지었었는데, 이는 나의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라마에 거하는 자들은 같은 방식으로, 포로로 잡혀간 '각기의 자녀를 위하여 슬퍼하고' 있었다(삼상 30:6). 마음이 모질지 못한 부모들은 위로받기조차 거절하고 있었다. 이는 자식들이 대적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자식들을 다시는 볼수가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것을 복음서 기자들은 베들레헴에서 헤롯이 어린아기들을 학살함으로 일어난 큰애곡에 적용한다(마 2:17,18). 그리고 그말씀은 그때 성취되었다고 말해진다. 비록 우리가 슬프다하더라도, 속으로 속삭이듯 하지는 말아야 한다. 큰슬픔을 누르려면 종국에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고난이 끝까지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소망, 복된 결말로 끝나리라는 소망, 다시말하여 종말은 평안이라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 설혹 한세대가 광야에서 죽는다고해도 다음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다.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역경을 주신 날수만큼 기쁨을 허락하신다. 그리하여 기쁨과 슬픔사이에는 수고와 보상의 관계처럼 균형이 있다(8;18). 죽음으로인하여 떠나간 자녀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경내로 돌아오리라'는 소망이 있으니, 이는 부활로 주어지는 복된 몫이다. 곧 하나님의 성소를 경내, 하늘의 가나안 땅으로의 귀향이다.
Ⅲ. 회개와 용서에 대한 약속 31:18-26
(1) 에브라임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에브라임 곧 그의 백성은 회개함에 있어서 한사람인양 일심으로 단합할 것이다. 에브라임은 여기에서 죄로인하여 울고있다. 아마도 그들이 에브라임이라는 명칭을 따온 조상 에브라임은 다정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그는 그의 자녀를 위하여 '여러날 슬퍼하였었다'(대상 7:21,22). 그리고 죄로인한 슬픔은 독자를 잃은 슬픔에 비유되고 있다. 그는 징계받는 고통가운데서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다.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내가 멍에아래 있사오며, 그벌을 받아 마땅하나이다. 내게는 그것이 필요하나이다. 나는 공의로이 징계받았으며 송아지같이 징벌을 받았나이다. 송아지가 멍에를 매지않으려고 처음에 반항하지 않았다면 매를 맞지 않았으리이다." 이것이 지금 그가 깨닫고 있는 자신의 죄이다(19절). 그뿐만 아니라 그는 젊은 날에 지었던 죄까지 기억한다. 곧 '어렸을때의 치욕'이다. 그는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에 대해 스스로 분개하여 화내고 있다. 그는 세리가 가슴을 쳤듯이 자신의 '볼기를 쳤다.' 그는 자신의 우매함과 완고함에 놀라기까지 하고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부끄럽고 욕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도 없음을 안다. 그는 하나님께 반역하였었으나 이제는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이렇게 기도한다.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렘 17:14). 그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의 복된 결과를 체험하게 되었음을 기뻐하고 있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후에 뉘우쳤고. 우리 심중에 있는 하나님께 향하는 모든 경건한 역사들은 우리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신 결과이다. 죄인들은 올바른 지식을 알게되었을때 비로소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된다. 에브라임은 징계를 받았었으나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 아니하였었다. 그것으로 끝났을 뿐이었다.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의 교훈이 섭리하사 징벌로 바로잡는 일을 수행하셨을때 회개의 역사는 이루어졌다.
(2)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을 긍휼히 여기시며 에브라임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이 용납하심을 깨닫는다(20절). 비록 에브라임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불충한 자녀요 탕자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녀로 인정하신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이제 에브라임은 회개하고 돌이켰다. 내가...그를 깊이 생각하노라. "저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강의 생각이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역경가운데 놓으실때, 그는 그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그가 그들을 고국땅에서 내쫓을때, 그는 그들을 보지않으신바도 아니요, 잊어버리신바도 아니었다. 에브라임의 징벌을 완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연민이었다. '내 마음이 내속에서 돌아선다'(호 11:8,9). 그리고 이제 같은 연민으로 그는 에브라임의 회개를 받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에게 선을 베푸시리라고 결심하신다.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국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는 은혜로우신 격려가 주어진다. 그들은 두려워 떨며 정신잃은 사람처럼 행동해서는 아니되었으며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도 아니되었다. 오로지 굳게 결심하고 전념하여 귀향길에 오를 준비를 하느라 권면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21,22절). 처녀 이스라엘아...돌아오라. "너희 하나님과 다시 정혼하게된 처녀 이스라엘아."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비록 그성읍들이 황폐해지고 부서져 폐허같이 되었다고 하나, 그것은 '네 성읍들'이라.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성읍들이라. 그러므로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라." 그들은 사로잡혀왔던 그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전의 슬픔을 기억하게될 것이며 그들의 부친이 무슨 말을 해주었었는지를 회상하게 될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저희의 구속에 대하여 더욱더 감사하지 않을수 없게될 것이다. 죄의 멍에를 메고 떠나갔던 자들은 저희가 소홀히 간과하였던 임무로 돌아와야 한다. 곧 '대로에 착념해야' 한다. 바벨론에서 시온으로 가는 길, 죄의 구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는 길이 곧 대로이다. 그렇지만 그'길에 착념하지' 않고는 누구도 그길을 걸을수 없을 것이다.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길을 잃을 위험이 있는 곳마다 그러한 것을 세워두도록 하라. 그길을 가장 잘아는 자들을 먼저 앞서보내고, 뒤따라 올 자들을 위하여 그같은 표지판을 세우게 하라."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때까지 방황하겠느냐. 그들의 마음이 변덕스럽거나 불확실해서는 아니된다. 근심과 두려움으로 곁길로 나아가서는 아니되며 자신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저희의 마음을 하나님께 흔들림없이 붙들어 매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보증을 통하여 이일을 행하도록 격려받고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새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것이다. 여자처럼 약하고 힘이 없어 군사로 부르심받기에 부적합한(사 54:6) 하나님의 교회가 강한 남자를 포위하여 승리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교회는 여자에 비유되고 있다(계 12:1). 그리고 '성도들의 진을 두르는'(계 20:9) 군대들에 대해 보게되거니와 이제 성도들의 진이 그군대를 두르게될 것이다. 많은 유명한 성경해석자들은 이 '새일'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해석한다. 이에 대한 징조가 때때로 그들에게 주어지곤 했었다(사 7:14;9:6). 한여자, 곧 동정녀 마리아는 자신의 태로 '전능자'를 둘러 쌌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 게베르(Geber)는 전능자를 뜻하며, 하나님은 기보르(Gibbor), 곧 '능하신 하나님'(렘 32:18)으로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9:6절에서 그리스도 또한 그렇게 불리우고 있다. 그는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4) 그들이 고국땅에서 다시 복되게 정착하리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모든 이웃들이 그들에게 좋은 권면을 줄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해줄 것이다(23절). 비록 유다와 예루살렘이 오랫동안 조롱거리가 되어왔지만 '그들은 유다땅과 그성읍들에게 다시 이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이다. 이것은 그들이 많이 개선되어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이 개선된 변화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할만큼 그렇게 현저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약탈자의 소굴이었던 그성읍들은 '의로운 처소'이자, 이스라엘의 산이 될것이며, 특히 시온산은 '거룩한 산'이 될것이다. 그들가운데 넘치는 풍요함이 있으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24,25절). 유다가 지금은 오랫동안 황폐해져 있지만, 옛적에 가인과 아벨의 명예로운 직책이었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유다에 함께 거하게될 것이다(참조. 창 4:2). 이는 내가 그피곤한 심령을 만족케하며 무릇 슬픈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포로생활가운데 오랫동안 슬픔으로 지내왔던 자들이 이제는 넘치는 풍요를 누리게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진정한 회개자들을 위하여 예비해두신 영적인 축복에도 적용되어진다.
(5) 선지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기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26절). 내가 깨어보니. 즉 "기쁨에 넘쳐서 저절로 깨어나게 되었노라. 또 내 꿈을 곰곰 생각해보니 그러한 꿈으로 말미암아 '내 잠이' 달았노라." 그리고 깊은 수면을 취한 자들과 같이 상쾌하게 되었다.
Ⅳ. 후손의 번성과 새언약에 대한 약속 31:27-34
또다른 약속들이 여기에서 주어지고 있다.
(1) 하나님의 백성은 수가 번성할뿐만 아니라 번영을 누리게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인구와 가축 모두가 풍성하게될 것이다(27절). 이것은 복음교회가 놀랍게 증진할 것에 대한 예표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시고 심으실 것이다(28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기위하여 '경성하실' 것이다. 오랫동안 만사가 그들에게 불리하게 전행되었었고, 그것은 마치 여호와께서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그들의 이익을 복되게 강화시켜 주고 증진시켜줄 것이다.
(2) 그들은 저희 조상들의 죄로인하여 더이상 헤아림 받지않게될 것이다(29,30절).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의 때에 살던 당시의 악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의 죄로인하여 징벌받으리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그죄를 고집하였기 때문이다(마 23:35,36).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들의 조상의 죄로인한 벌을 내리지않으시며 저희 조상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언약대로 선을 베푸시리라는 약속이 여기에 주어진다. 이제까지 불평해 왔던대로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그는 자신을 진노케하는 사람들 개개인에게만 벌을 내리실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계약을 다시 맺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모든 축복들을 받게될 것이다. 그러나 이계약은 장차올 훗날, 즉 복음시대를 가리킨다. 사도는 이를 복음의 은총으로 이해했었다(히 8:8,9등). 히브리서에서는 이 전체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자들과 맺어질 은혜의 계약의 요점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계약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곧 복음교회요, 평강이 있을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과 더불어 맺어질 것인데,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함은 곧 믿음의 아브라함과 기도의 야곱을 잇는 영적인 자손들을 말한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분리된 두왕국을 이루고 있었으나 돌아온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로운 결합으로 하나가 될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도 복음의 교회와 언약안에서 하나가 된다. 이것은 '새언약'이며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한' 것이다. 규례와 약속은 더욱 영적이고 신성해지며, 나타나는 일들은 더욱더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그들이 소경이요 절름발이요 연약한 자이기나 하듯이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때에 한언약을 세우셨으나, 그들은 그'언약을 파하였다.' 그언약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요, 그것을 파기한 것은 백성들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며 우리의 죄와 멸망할 것은 우리 자신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그의 언약의 구체적인 항목 하나하나는 모두 영적인 축복들을 담고있다. "내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고 갖가지 축복들을 허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용서와 평안과 은혜와 선한 생각과 선한 마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저희 의무를 기꺼이 수행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두며 그마음에 기록하여. 그는 그들로하여금 자신과 관계를 맺게하겠다고 하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에게 온전히 충족하신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그들은 그에게 충성하며 순종하는 백성이 될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아는 자는 그를 찾고 섬기며, 그를 의뢰할 것이다(34절). 그들이 '다 나를 앎이니라.' 모든 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초대를 받고 그를 아는 방법을 깨닫게될 것이다. 오랫동안 하나님이 유대에만 알려졌었지만 이제 하나님을 아는 길이 온땅에 알려질 것이다. 제사장들은 이따금 성전에서 비교적 적은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쳤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들이 빈번히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집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되거나, 알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여러 기관내지 부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들이 가르쳐질 것이다. 간략히 말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이전보다 더욱 밝히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딤후 1:10).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엡 1:17,18). 죄는 용서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다른 축복들의 이유가 된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즉 "용서하고 잊어버리라."
Ⅴ. 예루살렘의 재건에 대한 약속 31:35-40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증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세상이 존속되는동안 하나님께서 이세상에 교회를 유지하시리라는 것이다. 설혹 때때로 교회가 아주 열세에 처하게 된다고할지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며 교회의 권익이 새롭게 확립될 것이다. 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진 연고로 음부의 권세가 그것을 이기지못할 것이다.
(1) 세상을 지으신 것과 그세상의 확고함은 자기 교회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신실함에 대한 증거가 된다.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자연계라는 왕국의 지속성은 은혜의 왕국의 영광의 지속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해준다.
1) 자연의 왕국의 영광 :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35절). 그는 처음에 그렇게 되도록 지으셨을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게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태양의 빛과 열, 그모든 영향력을 계속적으로 그것을 만드신 위대한 창조주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그들의 움직임이 '규정'되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그것이 규칙적이며 법칙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욥 38:31-33). 바다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그 드센파도를 저지시키는 힘을 기억하자. 여호와께서 '바다를 격동시켜 그파도로 소리치게 하며' 그파도가 요동할때에 잠잠하게 하신다(혹자는 이렇게 이해하기도 한다). 하늘의 광대함과 그궁창의 이루 헤아릴수 없는 광범위함을 주목하자. '위로 하늘을 측량할수 있는' 자가 없다(37절). 그무한한 궁창을 하나님께서만 충만하게 채우신다. 우리의 운명이 속한 이창조의 세계의 신비를 주목하자. 이모든 것들이 불변하는 확고함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주목하자(36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된 연고니이다'(시 119:90,91). 하늘에는 종종 구름이 끼며 해와 달은 자주 구름에 가리우기도 한다. 땅은 흔들리기도 하고 바다는 요동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제자리를 고수하면서 움직이며, 그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2) 은혜의 왕국의 확고부동성 : "이스라엘의 자손이 폐하지않고 영영히 나라를 이루리라"(참조. 벧전 2:9). 육에 속한 이스라엘이 더이상 나라가 되지못하면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롬 9:8). 그리고 설혹 그들이 매우 악하게 행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37절). 교회를 보전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의 이름에 있으며, 그는 무엇이든지 하실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돌보실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자신이 영광받으시도록 계획하셨다. 그가 영광을 받으시는 길은, 이세상 가운데 교회를 두시고 그의 이름을 찬양할 백성을 확보하시는 것외에 달리없다. 만일 창조의 질서가 태초에 확고하게 세워졌기때문에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리고 변경될 어떤 필요성도 없기때문에 변경되지 않고있다면, 같은이유로 은혜의 방법도 처음에 정해진대로 변치않고 지속될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교회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확고함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스스로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다.
(2) 지금 황폐한 예루살렘의 중건은 하나님께서 복음교회, 곧 하늘의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실 위대한 역사에 대한 확실한 전조 혹은 보증이 된다(38-40). 비록 오래걸릴지는 몰라도, '날이 이를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예전과 같은 크기로 완전하게 다시 세워지는 때이다. 과연 느헤미야가 세운 성벽은 이예언을 정확하게 성취하여, 여기에서 언급된대로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느 3:1). 그리고 비록 본문에서 '모퉁이 문과 가렙산'이라고 일컬어진 곳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라고 결론내릴수는 없지만 여기에서 언급된만큼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성전이 하나님께 봉헌되고 예배드릴수 있도록 완성되었을때(38절) 그주위와 인접한 들까지도 '여호와의 성지'가 될것이다. 이전과 같이 온성읍이 곧 성전이 되며 거룩한 곳이 된다. 새예루살렘은 이같이 성자체가 곧 성전이므로 별도로 성전이 필요없게 된다. 이성읍은 오래지속될 것이다. 옛성읍이 다윗왕때로부터 포로되기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었듯이 새성읍도 그들의 귀향때로부터 이대로 마지막 멸망 때까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약속은 복음의 교회에서 온전히 성취되어졌다. 그교회는 영적인 이스라엘이며,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멸하지 않으신다. 또한 교회는 거룩한 성이므로 인간의 모든 힘에 의해서도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할' 것이다.
# 핵심
31:1-40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회복에 관한 약속, 그리고 메시아로 말미암아 도래할 새언약의 시대를 계시하는 내용이다.
라헬(31:15)
‘암양’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라반의 딸이자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아내. 라헬은 오랫동안 자녀가 없어 비통에 젖었던 여인이다(창 30:1). 후에 아들 요셉을 얻은 라헬은 야곱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도중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으며, 에브랏 부근에 장사되었다(창 35:16-20). 라헬은 레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세운 여성으로 언급된다(룻 4:11).
새언약의 탁월성(31:31-33)
모세언약은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이 돌판에 새긴 율법을 지키고 언약백성의 표로서 할례를 행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옛언약은 끊임없는 죄의 속박과 권세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하지는 못했다. 이일을 위해 하나님은 새언약을 세우사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성취하셨다(히 9:12-15). 새언약은 사람안에 있는 부패한 죄성을 제거하고 변화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 묵상
광야에서 은혜를 얻은 이스라엘 ( 31:2 )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다는 말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 할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을 말합니다. ‘은혜를 입는다’는 표현은 출33:12-17절에서만도 5번 나오는데, 이구절을 이사야의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곧 새출애굽의 전조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파수꾼 ( 31:6 )
파수꾼은 성벽위의 망대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적의 침략에 대해서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파수꾼은 하나님의 구원소식을 전하는 사자입니다. 그는 주권의 날이 언제 이를 것인가를 고대하며 깨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날이 이르면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외치며 백성들에게 시온에서의 참된 예배를 요청하는 자입니다.
시온으로 몰려오는 사람들 ( 31:8, 9 )
북편 땅과 땅끝에서부터 모여드는 사람들중에는 소경, 절뚝발이,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들이 울며 올것이라는 말은 통회, 자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는 자나. 소경, 귀머거리들에게 복음이 전파될때,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될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라헬의 통곡 ( 31:15 )
라헬의 무덤은 유다가 바벨론으로 잡혀갈때 집결지였던 장소인 라마에 있었는데, 이 일때문에 라헬이 무덤에서 우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한편 그자녀를 위해 울며 위로를 거절하는 라헬은 반역하는 백성때문에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한편 마태복음의 기자는 라헬이 자기 자녀로인해 통곡한다는 이내용을, 예수님 탄생시에 헤롯에 의해 강제로 아이들의 목숨을 빼앗긴 베들레헴 어머니들의 슬픔을 묘사하는데 인용하고 있습니다.
패역한 딸 ( 31:22 )
본문에서 패역한 딸이 가리키는 대상은 처녀 이스라엘로, 그는 바람난 딸이었습니다. ‘패역’이라는 말은 ‘돌아서다’라는 뜻으로, 여호와를 배신하고 우상숭배를 범한 것을 의미합니다. 탕자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않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새일을 이루시기까지 그 고통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릴 날 ( 31:27 )
멸망으로인해서 인구와 짐승의 수가 감소되었으나 이제 회복의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하늘의 별이나 바닷가의 모래처럼 그들의 수를 많게할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창22:17). 즉 포로생활로인해 많은 사람과 동물들이 죽었으므로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나라에 이스라엘 민족이 불어나게 하실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언약 ( 31:31 )
새언약이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마음에 기록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새출애굽 사건을 약속하시며 돌비에 새겨주셨던 하나님의 법을 그마음에 새겨서 영영히 잊지않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세우신 새언약(고전11:25)의 예표가 됩니다.
새언약의 폐지시기와 그가능성 ( 31:36, 37 )
새언약의 폐지시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법칙이 깨어질 때입니다. 즉 다시 세운 이 새언약은 영원히 파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늘을 측량하거나 땅의 기초를 달리할수 있을때 이스라엘이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버리리라고 하셨는데, 이역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언약이 파기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의 앞길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성의 재건시기 ( 31:38-40 )
예루살렘성의 재건은 에스라, 느헤미야의 시대, 곧 주전 445년경 바사왕 아닥사스 1세는 느헤미야를 유대총독으로 임명하고 물자를 지원해주어 예루살렘성을 재건하게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을 재건함으로써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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