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성의 재건과 죄의 용서 33:1-9
1. 이 예언의 시기(1)
이 위로의 예언이 주어진 시기는 전장의 사건의 연속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을때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두번째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이말씀은 두번째 임한 것이다. 이는 그의 백성을 격려해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의무를 행하기위하여 경계에 경계를 필요로할만큼 그렇게 불복종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위안을 받기위하여 약속에 약속을 필요로할만큼 그렇게 불신으로 가득찬 자들이다. 이말씀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가 아직 갇혔을때에' 그에게 임하였다.
2. 예언의 내용(2-9)
(1) 이 위로를 그들에게 확증해주시는 분이 누구인가(2절)? 그분은 여호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시다. 그는 천지를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다. 그는 예루살렘, 곧 시온을 지으시고 형성하신 분이시다. 그가 처음 그 성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그가 다시 성을 재건하실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찬양을 받기위하여 그성을 지으셨으며, 그러므로 이제 다시 지으실 것이다. 그는 이약속을 만드시고 세우신 분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셨고, 약속을 하신 그가 수행하실 것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가 약속을 이루실때 그는 그이름으로 알려지신다(출 6:3). 그는 곧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다. 천지가 만들어졌을때, 창조주는 여호와로 불리워지고 있다(창 2:4).
(2) 이 위로는 오로지 기도에 의해서 얻어진다(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그리스도께서도 구하여야 했으며 그가 그렇게함으로써 그에게 주어졌다(시 2:8). (부분적으로는 이미 나타났을지라도) 네가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제 약속들이 기도를 대신해서가 아니라 기도를 일깨우고 격려하기위해서 주어졌다(겔 36:37).
(3) 예루살렘의 상황은 이러한 위로를 받기를 필요로 한다(4,5절). '유다 왕궁'을 포함하여 '이 성읍의 가옥'들이 흉벽과 칼, 혹은 기관과 도끼 혹은 망치에 의하여 부숴진다. 가장 강한 요새일지라도 부서져 평평한 땅과 같이 된다. '갈대아인을 막아 싸우려'한 자들은 유익보다 해를 더욱 초래하였다. 대적들로하여금 더욱 흉맹하고 포악하게 공격하게끔 유발시켰으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가옥들은 '그시체로 채워졌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였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대적들의 칼은 곧 그의 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죽임당한 사람들은 더욱 두드러지게 행악하였던 자들이었던것 같다. 바로 그사람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셨다.'
(4)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하여 예비해두신 축복들이 그들의 모든 슬픔을 치료해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병이 치명적이고 치유될수 없는듯이 여겨질지라도 치료하여 주실 것이다(렘 8:22). '온머리는 병들었고 온마음은 피곤하였다'(사 1:5). 그러나 '내가 치료하며 고쳐 낫게할' 것이다(6절). 내가 죽음을 저지하고 병을 물리치며 모든 것을 정상으로 회복시킬 것이라고 하신다(렘 30:17). 예루살렘의 죄가 그병의 원인이었다(사 1:6). 그러므로 개혁하는 것만이 회복할수 있는 길이었다. 내가...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평강은 성실한 신앙, 평강과 하나님께 대한 진실된 예배를 가리킨다고 말할수 있다. 즉, 이는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멀리있게 하였던 수많은 거짓과 미혹과 반대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다 일반적으로 적용할수 있다. 평강과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위대한 본질이다. 여기에 있는 이약속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과 진리를 나타내셨다. 진리로 우리를 지시하시며 평강으로 우리를 안식하게 하신다. 은혜와 진리의 풍성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 평강과 진리는 영혼의 생명이며 우리로 그생명을 얻게하되 더욱 풍성히 얻게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능력으로 다스리시며(요 18:37), 그것으로 '평강의 풍성함'을 주신다(시 72:7;85:10). 평강과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믿음으로 그것을 받는 자들 모두에게 치유와 건강을 준다. 그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종이 되었었는가? 그들의 나라가 황폐하게 되었었는가? 내가...포로를 돌아오게 하며(7절).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포로 모두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모든 역경을 야기시킨 원인이 죄인가? 그죄는 용서받게될 것이며 정복될 것이다(8절). 의식법상 깨끗하지 못한 자들은 성막에서 내쫓김 당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으면 다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시면' 그들은 고국 땅에 들어가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죄와 고난이 하나님을 명예롭지 못하게 하였던가? 그들의 개혁과 회복이 그를 찬양하게될 것이다(9절). 인근 나라들이 유대 나라가 날로 커지는 것을 진정 두려워함으로 주목할 것이며 그들을 적으로 삼는 것을 두려워하게될 것이다. 교회가 달처럼 아름답고 해처럼 맑을때, 기치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Ⅱ. 풍요와 메시야에 대한 약속 33:10-16
유다와 예루살렘이 포로생활로부터 영광스럽게 귀향한후에 누리게될 그복된 상태에 대한 예언이 계속하여 주어진다. 이예언은 마침내는 메시야의 왕국에서 영광스럽게 실현될 것이다.
(1)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있던 백성들이 다시 기쁨이 넘치게 되리라고 약속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 나라가 영원히 멸망하였으며 유다땅에서는 짐승도 찾아볼수 없고 '예루살렘 거리에서'는 거민을 볼수 없으리라고 결론지었었다(10절). 그러나 비록 울음이 한동안 계속될지라도 기쁨이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평상시와 같은 기쁨이 있게될 것이다.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 예전과 같이 다시 혼인식이 축가를 부르며 거행될 것이다. 또한 종교적인 의식의 기쁨도 누리게될 것이다. 성전의 노래, 이방땅에서는 부를수 없었던 여호와의 노래가 다시 불리워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찬미할뿐 아니라 '선하시며 그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찬양하게될 것이다. 비록 옛노래일지라도 이 새로운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불리워지므로, 새노래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할때 문자그대로 이일이 성취됨을 본다(스 3:11). 모든 희생제물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 이말씀은 겸손한 찬미와 기쁨의 감사로 드리는 영적인 제사를 의미하는 듯하다. 이것이 호세아서에서는 수송아지보다 여호와를 더기쁘시게 하는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린다'고 표현되어 있다(호 14:2).
(2) 오랫동안 황폐해있던 나라가 다시 번성하게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베냐민 땅과...유다 성읍들에서 양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아래로 지나리라(12,13절). 그나라는 저들이 귀향한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방랑인들의 거처가 되지않을 것이며 목자들과 농부들의 거처가 될것이다. 야곱의 후손들은 본래의 생업이 목자였다(창 47:3).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시 그생업을 얻을 것이다. 그 양무리를 눕게하면서 맡은 직무에 온전히 전념할 것이다(12절). 그리고 또한 양무리로하여금 자기아래로 지나가게할 것이다(13절). 혹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그수를 계수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수가 감소된 백성이 이 양무리와 같은 번성함과 평강함으로 영영히 회복되리라는 약속이 믿을수 없을 것이기때문에 여기에 이약속에 대한 일반적인 인준이 첨가되고 있다. 내가...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14절).
(3)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축복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 여기에 있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며, 그가 실현하실 영원한 의이다(15,16절).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마지막때에 이루어질 '선한 말', 즉 가장 큰선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으므로 그는 이 약속대로 이루실 것이다. 이 약속가운데 그들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향과 고국땅에서의 정착이 예고되었다.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주목되는 시대중의 하나이다(마 1:17). 메시야에 대한 이약속은 앞에서도 주어진바 있다(렘 23:5,6). 거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위에 세우실 목자들에 대한 약속을 확증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여기에서는 목자들과 양무리들까지 포함하는 약속으로 여겨지며 비유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예고되고 있다.
1) 의로운 왕이다. 그는 찬탈자가 아니라 '의로운 가지'이다. 이는 그가 다윗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2) 의의 왕이다. 법을 정하시고 전쟁을 행하시며 심판을 하심에 있어 그는 의로우시다. 억울함을 당하는 자들을 변호하시며 잘못을 행하는 자들을 징벌하심에 있어 그는 의로우시다. 그가 이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3) 온갖 위해를 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왕이다. 그로 말미암아 진노와 저주로부터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그렇게 구원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안전히 거할 것이다.' 이평강의 왕을 의지함으로, 악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떠나 평화롭게 마음의 평정을 즐기게 된다.
4) 자기 백성들에 의하여 찬양을 받으실 왕이다. 16절 하반절을 "이것이 그들이 그를 부를 이름이다"라고도 읽는다(갈대아 역본, 아랍어 역본, 라틴어 역본). "그의 이 이름을 그들이 찬양할 것이며 이 이름으로 그들이 기도할 것이라." 그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이는 그들이 저희의 의로써 여호와를 찬양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해진 것이 여기에서는 메시야의 성읍, 곧 그리스도의 교회인 예루살렘의 이름이 되었다. 이성에 의를 전하신 이가 바로 그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이름을 지님으로써 예루살렘성은 온전한 의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것은 스스로 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온 의이다.
Ⅲ. 하나님의 언약과 확실성 33:17-26
하나님의 언약 세가지, 곧 다윗과 그의 후손과 맺은 왕권에 대한 언약, 아론과 그의 후손과 맺은 제사장과의 언약,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과 맺은 언약들이 포로생활동안에 완전히 깨어지고 잊혀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언약들의 참된 취지와 의도가 신약시대의 축복들에서 풍성하게 응답될 것이 약속되고 있다. 이것은 포로생활에서 귀향한후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진 것들에 의해 예표되었다.
(1) 왕권에 대한 언약은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17절). 이스라엘의 왕위는 포로됨으로 말미암아 끊겨졌었다. '이스라엘 집위에 앉을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온후, 다윗의 위는 다시 대를 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집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된 것은 메시야에게서였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영화로운 머리이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한, 또한 그가 거룩한 산 시온에서 통치하시는 왕인한, 다윗의 후계자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와 맺은 언약은 파기되지 않는다. '주 하나님께서 그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노릇하실 것이요'(눅 1:32,33). 다윗과 맺은 언약은 천체의 운행만큼이나 확고부동한 것이다. 본문에서 '낮에 대한 약정과 밤에 대한 약정'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연에 대한 언약이 나오고 있다(20,25절). 이것은 자연에 대한 언약의 한 항목이다. '주야로 그때에' 있게 하리라는 약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셨으며 각각에게 통치권을 세워주셨다. 태양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창 1:4,5,16). 아침과 저녁으로 정한때에 교차되게 하셨다(시 65:8). 태양으로하여금 그 떠오를 장소와 시간을 알게하셨고, 땅 그림자가 지는 시각도 이같이 운행되게 하셨다. 그리고 세계가 지속되는한 이경로는 변경되지 않을 것이며 이언약은 파기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같이 구세주, 곧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왕이었던 다윗과 맺은 구속의 언약도 확고부동할 것이다(21절). 그리스도는 세상끝날때까지 지상에 교회를 유지시키신다. 곧 시간과 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교회를 소유하신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세상은 끝날이 이르겠지만 그나라는 끝나지 아니하며 아버지되신 하나님께로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세상에서의 교회의 상태는 낮과 밤이 서로 교차되듯이 번영과 고난이 항상 교차될 것이다. 오늘 태양이 지지만, 내일 아침 다시 떠오를 것이 확실하듯이, 우리가 살아서 그것을 볼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나 이세상에 있는 구속자의 나라가 잠시 부패와 박해로인하여 구름에 가리듯 흐려질지라도 정한때가 되면 다시 빛을 발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윗의 자손은 '하늘의 만상'처럼 셀수 없이 많을 것이다. 즉 메시야의 복음과 또 그안에 함께 역사하는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출생하는 메시야의 영적인 자손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씨들은 다윗의 씨와는 달리 그의 후계자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백성들이며 때가 이르면 그와 함께 다스리게될 것이다(22절).
(2) 제사장직에 대한 언약은 확실히 보증될 것이며 그에 대한 약속 역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포로생활을 하는동안에는 제사장들이 섬길 제단도, 성전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세워질 것이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즉시로 '번제를 드리려'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다'(스 3:2,3). 똑같은 내용이 본문에서도 약속되고 있다(18절). 그러나 그제사장직은 이내 부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레위의 언약이 패하여졌다(참조. 말 2:8). 그리고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그제사장직은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아론의 직을 대체하고 있다. 아론의 직이 그림자에 불과한반면 그리스도의 직은 사실상 그 본질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고백의 대상이신 위대한 대제사장이 항상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앞에 계신한, 레위인 제사장은 끊어지지 아니하였다고 확실히 말할수 있다(히 7:3,7). 그는 영원하신 제사장이다. 충실한 사역자들이 신앙적인 모임을 계속 주관하며 기도와 찬양이라는 한 영적인 제사들을 드리고 있는 제사장들, 레위인들은 후계자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가장 훌륭한 후계자를 얻은 것이라고 할수 있다. 사도바울은 복음전하는 자들을 제단을 모시는 이들에 비교하고 있다(고전 9:13,14). 참된 성도들은 모두 '거룩한 제사장'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다(벧전 2:5,9).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왕과 제사장들로 삼아진' 자들이다(계 1:6). 그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영적인 제사를 드리며, 무엇보다도 그들자신이 '산 제사'이다. 레위인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리라고한 본문의 약속은 바로 이들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22절).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이요, 영적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계 5:9;7:9,15).
(3) 선택의 언약도 마찬가지로 보증되며 그언약에 대한 약속들도 복음의 이스라엘에게서 완전히 성취되게 된다. 이언약은 포로기간동안 파기된 것으로 간주되었었다(24절). 이스라엘의 원수들, 혹은 믿지않는 이스라엘인들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신실하게 대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리하였다.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마치 그것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특권이라는듯이 내 백성이 되는 특권을 멸시하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은 낮과 밤의 약정만큼이나 확실하게 선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손을 버리시느니' 차라리 주야의 약정이 깨어지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육적인 야곱의 자손을 가리키는 말일수 없다. 그들은 버려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모든 약속이 거기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는 사도바울의 설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롬 11:1이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지배하에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복속은 낮과 밤이 계속되는한 계속될 것이다.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이끌어낸 다음에는 '긍휼히 여기리라.' 이약속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는 갈라디아서6:16절에 나타나 있다. 곧 복음의 규례를 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그들에게는 '평강과 긍휼이 있을 것'이다.
# 핵심
33:1-26
유다의 회복이 다윗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보증된다.
부르짖는 기도(33:3)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파하다 감옥에 갇혀 고난을 당하고 있을때,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하라고 명하셨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했을때,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자각하고 그분의 뜻을 깨닫기위한 특별기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가정이나 교회, 조국이 위기에 직면했을때, 부르짖는 기도가 절실히 요청된다.
# 묵상
크고 비밀한 일 ( 33:3 )
본문에 언급된 ‘알지못하는 일’이란 의미의 히브리어 ‘베추로트’는 성이나 요새에 ‘도달하기 어려움’을 의미하며, 비슷한 히브리어인 ‘네추로트’는 ‘감추어진’, ‘보호된’, ‘예비로 남겨둔’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이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수도, 도달할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기쁜 이름이 될 성읍 ( 33:9 )
세계 열방앞에서 하나님께 기쁜 이름이 될 성읍은 바로 새예루살렘입니다. 그때가 되면 낡은 예루살렘 곧 죄악이 만연했던 그도시는 파괴되고 새예루살렘이 건설되는데, 이 새예루살렘은 열방앞에서 찬양과 기쁨의 근원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곳이 될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상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모든 일들을 듣고 부러워하고 또 두려워하게될 것입니다.
다윗에게서 날 한 의로운 가지 ( 33:15 )
다윗가문의 왕위는 바벨론 침공시 시드기야로 끝났지만 예레미야는 다윗 후손에서 새왕 곧 메시야가 나오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가지’라는 말 ‘체마흐’는 죽은 가지에서 새로 돋아난 가지를 가리킬때 사용하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이말을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했습니다(사4:2; 슥3:8).
새성읍의 이름 ( 33:16 )
유다가 구원을 얻는 날, 예루살렘성에 세워질 새성읍의 이름은 바로 여호와 우리의 의입니다. 이는 그성에서 공평과 정의가 행해질 것임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예전에 그성에는 불의와 음란과 우상숭배가 만연했으나, 때가 이르면 그성의 이름과 똑같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을 평강과 공의로 통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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