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예레미야의 투옥과 밭의 매매 32:1-15
갈대아 군대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 점차로 임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고 나아오실때에 회개로 그를 맞으려고 하지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황폐하게 되기까지 심판을 진행하셨는데 그멸망은 시드기야 11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된 사건은 제 10년에 이루어진 일이다. 바벨론 군대의 왕이 예루살렘을 이미 침략하였고 강력한 기세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1) 예레미야는 도성과 궁성 모두가 바벨론왕의 수중에 떨어지게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는 이 성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성을 그들에게 내어주시며 아무런 보호도 하지않으시리라고 그들에게 말한다(3절). 그리고 설혹 시드기야가 도피하려고 하여도 그는 사로잡힐 것이며 느부갓네살의 손에 죄수로 넘겨지리라고 말한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왕이 자기에게 운명의 심판을 내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크게 분노하며 자기를 내려다 보는것을 보게될 터이었다. 눈이 서로 볼것이며(3-5절).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권고할때까지 비참한 포로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자연적인 죽음을 통하여 거두어 가시기까지 계속 그곳에서 살게될 것이다. 이는 느부갓네살이 그보다 앞서 그의 눈을 뽑아 빛을 뺏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2) 이 예언으로인하여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곳은 일반적인 감옥이 아니라 '유다왕의 궁중에 있는' 감옥이다. 그곳에서 그는 좁은 공간에는 갇히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그곳에서 그는 군중들의 공격으로부터 차단될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그것은 감옥이었으며 시드기야는 그가 한 예언으로인하여 그를 그곳에 가둔 것이었다(2,3절). 그는 예레미야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대하 36:12)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 비록 그가 예전에는 '자기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해'주기를 바라면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인정하였을지라도(렘 21:2), 이제는 예언으로인하여 그를 징책하고 있다(3절). 그는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었으며 아마도 더이상 예언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하였을 것이다.
(3) 감옥에 있으면서 예레미야는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아나돗에 있는 토지를 구입한다(6,7절 이하). 전국토가 이제 황폐해지며 갈대아인들의 수중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예레미야가 토지를 구입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리고 비록 돈을 내버리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그는 그뜻에 순종하였다. 그의 친족이 그에게 와서 그땅을 사도록 제안하였다. 그것은 예레미야 자신의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기업을 무를 권리'가 그에게 있었다(8절). 그리고 만일 예레미야가 거절한다면 그것은 친족의 임무를 행하지않는 것이 된다. 그땅은 제사장들의 성읍교외에 있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사기를 거절한다면 그같은 혼란의 틈바구니속에서 다른 지파에게 매매될 위험도 있었다. 그것은 율법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가 그땅을 사는 것은 그의 친척에게도 자비로운 행동이 될것이었다. 아마도 그친척은 그때에 대단한 돈이 필요했던 듯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미리 말해주심으로써 하나멜이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알았을때,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것을 구매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에 대해 더이상 생각함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그밭을 샀다. 그는 돈을 지불함에 있어서 매우 정직했으며 정확하였다. 그는 '은을 저울에 달아주었다.' 그것은 '은 칠십세겔'이었다. 만일 우리가 그당시에 돈이 대단히 귀중하였고 토지는 매우 헐값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액수가 적은 것에 그리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그증서를 보전하는 일에 대단히 신중을 기하였다. 그들은 '증인의 앞'에서 기록하였으며 매매증서 한부는 '인봉하였다.' 그리고 또다른 한부는 '인봉치 아니하였다.' 매매행위는 증인들앞에서 바룩의 손에 맡겨졌으며, 바룩은 '많은 날동안 보존할'수 있도록 '토기에 담아'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예레미야의 후손을 위한 것이었다. 이거래의 의도는 비록 지금은 예루살렘이 포위당해 있고, 전국토가 황폐하게 될것이었으나 기한이 되면 '이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15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로하여금 결혼하지않고 살게함으로써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하였다는 자기의 예언이 틀림없음을 깨닫게 하셨고, 이제는 그로하여금 토지를 사게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장래의 회복에 대한 그의 예언의 확실성을 깨닫게 하셨다. 루키우스 플로루스(Lucius Florus)는 제 2차 포에니 전쟁때의 로마 시민들의 용감성에 대한 훌륭한 예증으로서 그것을 연관짓고 있다. 즉, 한니발이 로마를 포위하여 곧 로마의 주인이되리라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에 그의 군대가 점령하고 있던 토지의 일부를 주인이 팔려고 내어놓자 한시민이 즉시 그것을 샀다는 것이다. 그것은 로마 군대가 포위를 뚫고 일어서리라는 확신에서였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전부를 내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아니한가.
Ⅱ. 예레미야의 간구 32:16-25
하나님께서 이나라를 무너뜨시리시며 시간이 지난후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로 계획하셨음을 알게되었을때 선지자는 다소 곤혹을 느끼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하긴했어도 그내용을 곰곰히 생각해보고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크게 난처해 했다. 그는 이 난감함가운데 처하여 하나님앞에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쏟아놓는다.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있었다. 그는 고통중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섭리의 뜻에 대하여 알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창조주로서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린다(17-19절).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뜻에 대하여 문제를 느낄때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좋다. 예레미야가 여기에서 하고 있는대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1)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능력과 생명과 동력과 온전함의 근원이시다. 그는 '큰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다.'
2) 그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에게는 능치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3) 그는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주께서는 자비로우실뿐만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곳저곳의 한두사람에게가 아니라 천만인에게 베푸시는 분이니이다."
4) 그는 공평무사하시며 불변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5) 그는 우주를 지배하시며 명령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크신' 하나님이시오,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시니 그것이 그의 이름이다.
6) 그는 만사를 최선의 상태로 이루신다. 그는 '모략에 크시며 행사에 능하시며,' 그의 지혜의 계획은 참으로 깊고 광대하시다.
(2)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행위들을 돌보신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인정한다(19절). 주는...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즉, 그들이 어느곳에 있든지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주목하시며, 그들의 '모든 길'에 대하여 무관심한 방관자가 아니라 관찰하시는 심판자로서 주목하신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발견하셨듯이 그들도 하나님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3)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예전에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크신 일들을 열거한다.
1) 하나님께서는 억압당하던 애굽에서 '징조와 기사로' 그들을 인도해내셨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매년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주변국가들이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높인 기사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이 오늘과 같이 된것이라고 말한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이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그는 그것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열조에게 맹세하셨었다.' 그리고 맹세하신대로 그것을 그자녀들에게 주셨으므로(22절) '그들이 들어가서 차지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전에 자기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이들을 자주 상기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특히 그교회를 처음에 어떻게 세우셨는지, 그경이로운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4) 예레미야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하여 반역하였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반역에 대해 내리신 심판을 애통해 한다. 그는 여기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행한 배은망덕한 행위를 슬픈어조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기로 약속하신 모든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하신 일을 행치 아니하였다'(23절).
1) 예레미야는 현재 예루살렘이 당하고 있는 상태를 하나님의 경고와 비교해 본다. 그리고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일에 대하여 전에 경고하신바가 있으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경고에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멸망은 방지되었을 터이었다.
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현재 당하고있는 상태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뢰한다(24절). 대적들이 이 성을 치기위하여 토산 흙은 흉벽을 쌓고 기관을 설치한 것을 보시라고 의뢰한다. 보옵소서...주께서 보시나이다. "이것이 주께서 주의 이름을 두시기위해 택하신 그성이니이까? 그것이 이와같이 버려진바 되어야 하겠나이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하여 결코 불평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해 주셔야할지 명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저희의 처지를 바라보시기를 바랄 따름이다. 우리가 어떠한 역경에 처해있든지 우리는 이로인하여 스스로를 위로할수 있으니, 곧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며 그 치료법을 알고계신다는 사실이다.
(5)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친척의 밭을 사도록 명하신 뜻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는듯이 보여진다(25절). "비록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바 되었음에도, 그리하여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소유를 즐길수 없을듯이 여겨짐에도 주께서는 내게 밭을 사라 하셨나이다." 그는 그렇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자 곧장 그대로 행했었다. 그러나 그일을 행한 그는 왜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하도록 명하셨는지 좀더 알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적인 복종으로 따르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그복종이 보다더 헤아려 깨닫는 복종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규례와 심판에 대해 논박할수 없다. 그러나 물어볼수는 있으며 또 물어보아야만 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신 6:20).
Ⅲ. 멸망과 구원의 메시지 32:26-44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그의 마음을 평정시키기위하여 주어진다. 여기에는 현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목적과 장차올 세대에 대한 그의 자비의 목적이 완전히 밝혀지고 있다. 예레미야는 자비와 심판이 어떻게 병행할수 있는지 알지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두가지의 병행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 예레미야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도록 명령받았을때,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로 포위를 풀게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대답하신다. "언도된 판결은 집행되리라. 예루살렘은 황폐해지리라."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가 이밭을 사라는 명을 받은 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모든 자비를 보류해 두셨으며, 그들은 귀향후에야 다시 저희의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의미임을 알게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매매는 그때에 그들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진 영적인 축복들의 상징에 불과함을 알려주신다. 그영적인 축복들은 밭이나 포도원과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더귀중한 것이었다. 예레미야에게 임하신 이 '여호와의 말씀'에서 우리는 얼핏 위협적인 경고를 보게되나, 다시보면 그것은 구약성경 다른 어느곳에서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귀중한 약속인 것이다.
(1)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 여기에서 선포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과 권능을 확증하신다(27절). 나는 여호와요. "나는 자존하며 스스로 충만한 자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온인류의 하나님이라."
2)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지키신다. 내가 이 성을...바벨론왕...의 손에 붙일 것인즉 그가 취할 것이라(28절). 갈대아인이 와서 이성읍에 불을 놓아(29절). 그성읍은 불에 탈것이며 거기에 있는 집들도 모두 불에 탈것이다. 하나님의 집도, 왕의 집도 예외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3) 이 성에 대하여 이처럼 혹독한 심판이 집행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이 성을 멸하게 만든 것은 죄이다. 그들은 철면피하게 죄를 범하고 죄에 애착을 가졌다. 그들은 '바알에게 분향하였다.' 사람들이 볼까봐 부끄러이 여기며 귀퉁이에서 분향한 것이 아니라 '집 곧 그지붕에서' 그리하였다(29절). 그들은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일을 행하였다(29절). 이스라엘 자손은 그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케한 것뿐이니라(30절). 그리고 다시한번 말씀하신다. 그들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음이니라'(32절). 그들은 그의 질투를 유발하고 감히 그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예루살렘 '성이 오늘까지 나의 노와 분을 격발하였다'(31절). 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였다. "그들은 처음에 한백성을 이룬이래로 예로부터 내 목전에 악만 행하였느니라(30절). 그들이 광야에서 행했던 불평과 반역이 이를 증거하느니라. 그리고 예루살렘성은 '거룩한 성'임에도 불구하고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와 분을 격발하였느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공적인 범죄에 가담하였으므로 공적이 멸망에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였다. 성전으로부터 반역한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성전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유다 자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번 되풀이하여 그들을 회개하도록 부르셨으나 그들은 안하무인격으로 그에게 등을 돌렸다. "내가 그들을 부지런히 가르쳤도다. 일찍이 일어나 가르쳤으며 저희의 능력에 알맞게 가르치고자 고심하였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도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대한 불경한 모독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집을 더럽게 하였기' 때문이다(34절). 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극도로 비정상적인 잔인한 죄를 지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다'(35절). 그들은 '유다로 범죄케하였다'(35절). 온나라가 가증한 우상숭배와 예루살렘의 죄악으로 오염되었다.
(2)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복이 여기에서 약속되고 있다(36절 이하). 하나님께서는 심판중에도 자비를 기억하시기때문에 시온에게 은총을 베푸시기로 정한때가 올것이다. 이백성은 오랫동안 절망에 빠져있었다. 심판이 앞서 경고되었을때 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심판이 그들을 덮친 지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수 없게되었다. 그들은 이 성에 관하여 말하기를(36절).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인하여 바벨론왕의 손에 붙인바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 나라에 대하여 애를 태우며 이와같이 말하였다.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어떠한 위안도 없고 치료책도 없다. 이땅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바 되었다'(43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로운 희망을 주신다. 비록 그들은 포로생활가운데 죽을 것이지만 그들의 자손들은 이 복된 땅을 보게되며 그땅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될 것이다. 그들은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와 이땅에 와서 다시 정착하게될 것이다(37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뿔뿔이 흩으셨으며 '모든 지방'으로 쫓아보내셨었다. 도망한 자들은 스스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적군의 수중으로 떨어진 자들은 그적군에 의하여 분산되었다. 그들이 결속하는 것을 막기위한 정책에 의해서였다. 하나님의 손은 그 두경우 모두에서 역사하셨었다. 그러나 율법에 약속했던대로(신 30:3,4)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낼' 것이다. 개심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때문에, 안으로 저희 자신의 양심이나 밖으로 대적들이 그들에게 결코 두려움이 되지못할 것이다. 그는 '내가 정녕히 그들을 이땅에 심으리라'고 약속하신다(41절). 그들은 그곳에서 거룩한 안전과 휴식을 누릴터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뿌리박고 확고하게 심기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새로이 계약을 맺으실 것이며, 그것은 은혜의 계약, 곧 영적인 축복의 언약이 될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영영한 언약'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40절). 이는 하나님께서 그언약에 대하여 영원히 신실하실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언약의 효과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약속은 육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그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곧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보증된 것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약속을 자기 자신들에게 적용할수 있으며 그언약으로 하나님께 간청할수 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안에서 역사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으로서의 특성과 기질을 부여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들을 참되고 완전하게 만들기위하여, 영원히 복되게 하기위하여,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마음을 그들에게 허락하신다(39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신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들이 자기의 위엄을 경외하며 진노를 두려워하고 자기의 권위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서서 경의를 표하고 자기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40절).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다시말해서 은혜로운 원리와 특성으로 그들가운데 역사하여 그것으로 그들의 모든 생활에 감화를 주고 다스리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교사는 우리의 머리에 좋은 지식을 넣어줄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을 넣으실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그는 우리로하여금 뜻을 품게하시고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효과적으로 그들을 은혜가운데 보전하시며 자기와 그들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지속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세상의 치리자들은 변덕스럽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히 불변하시다. 하나님께서 이백성에게서 돌아서신 것으로 생각될수도 있다(사 54: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에라도 그들에게 선을 행하시고 계획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확고불변하심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믿지못할 것은 단지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잠 23:17). 그는 그들의 자손에게 은혜를 허락하실 것이다. 이는 그들과 그들 '후손의 복을 위함'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하여 저희 후손에게 손해가 끼쳐졌던 것과 같이 이제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있으므로 그후손들에게 유익이 미칠 것이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예배를 확실히 자리잡게 하는 것보다 더좋은 재산을 우리는 생각할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것은 어쩔수 없이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포기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그들을 회복시키신다. 그는 즐거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즐거이 순종하는 종을 사랑하신다. 마지막날에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인데 그때에 그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신 수고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보살피시기위하여 온갖 배려를 하셨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앞서 위협된 경고가 성취되었듯이 이약속들도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거룩한 공의를 따라서 '내가 이백성에게 이 큰재앙을 내린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이는 약속을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모든 것들에 대한 확실한 전조로서 유다와 예루살렘이 있는 집과 토지들이 제값에 다시 매매될 것이다(43,44절). '이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다른 곳에 있는 땅보다도 이땅을 더사고자 할것이다.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이스라엘 성읍들, 나라의 모든 곳에서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할' 것이다. 매매가 다시 이루어지고 농경이 다시 일으켜질 것이다. 법도 이제 제역할을 하게된다. 왜냐하면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말씀은 예레미야가 새로 땅을 산 행위를 감수하도록 하기위하여 언급될 것이다. 비록 그가 토지의 한구획을 샀을뿐이고 그것을 보러갈수도 없었지만 이것은 수많은 매매에 대한 보증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가나안에서의 소유와 어렴풋한 유사점에 대한 보증이 된다. 하늘의 가나안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 핵심
32:1-44
예레미야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나돗의 밭을 샀다. 예레미야의 이같은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고도 분명하게 실현될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전능성(32:27)
인간은 이미있는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든다. 그러나 전능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그의지대로 결정한 것을 다 실현하실수 있는 능력이다(창 18:14; 욥 42:2; 마 19:26; 눅 1:37). 하나님은 이같은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며, 이권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창 1:1), 만물을 통치하신다.
# 묵상
하나멜의 아나돗땅을 산 예레미야 ( 32:7 )
예레미야가 아나돗땅을 살때 예루살렘성은 포위당했고 그자신은 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런상태에서도 땅을 산것은, 하나님이 유다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게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결국 유다가 바벨론에서 돌아온후 그들의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는 정상적인 매매행위가 이루어졌습니다.
토기에 담아 보존할 매매증서 ( 32:14 )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시점에서 예레미야로하여금 토지 매매증서를 토기에 담아 보관하게 하신 것은,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이 유다땅을 회복시켜 주실 약속을 믿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속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구속받을수 있습니다.
바룩 ( 32:16 )
바룩이라는 이름에는 ‘축복받은 자’라는 뜻이 담겨있는데, 그는 네리야의 아들이며 예레미야의 서기였습니다. 예레미야를 도운 그는 애굽에도 함께 잡혀갔습니다. 예레미야는 옥중에서 받은 계시를 바룩에게 기록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서의 핵심부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애절한 기도 ( 32:16-25 )
예레미야는 이미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위험한 상태속에서 토지를 매입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하게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수 없다는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 기도의 시기와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예레미야 기도의 핵심 ( 32:20-25 )
하나님은 은총을 베푸셨으나 이스라엘은 은혜를 받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않으므로 갈대아인들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즉 눈앞에 둔 멸망은 하나님께 순종치않음으로 인해서 야기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애굽에서 베푸신 징조와 기사 ( 32:20 )
주의 크신 능력과 기사를 통해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결코 흉내조차 낼수 없는 재앙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 32:26-35 )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예루살렘을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멸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기때문인데,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토를 재건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자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워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지않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육체의 하나님 ( 32:27 )
하나님은 모든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으로,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삼고 그분만을 섬겨야합니다. 종말의 날이 이르면, 모든 죽은 자들은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게 되며 산 자로서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 32:36-44 )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계속으로 심판에 이어 장래의 회복에 관한 내용으로 바꾸어집니다. 하나님은 징계의 목적이 성취되었을때 징계의 막대기는 버리시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인 동시에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다시금 유업을 얻게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로하여금 어려움을 극복케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복을 얻게하실 것입니다.
한마음과 한도 ( 32:39 )
본문에서 한마음과 한도라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계명, 즉 율법을 가리킵니다. ‘하나의 도’란 ‘하나의 길’, 또는 ‘하나의 목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새마음과 새영혼을 의미합니다(겔18:31; 26:20). 즉 여호와를 섬기는 것만이 인간이 가질수 있는 진정한 마음이며, 그의 계명만이 인간이 따르고 지키며 걸어야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할수 있는 비결 ( 32:40 )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할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조차도 인간 스스로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그분이 그마음을 지켜주셔야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없습니다. 믿음은 스스로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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