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노래의 서두 32:1-6
1. 모세노래의 위풍당당한 서주(1,2)
(1) 모세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실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패역하고 부패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의 공정함에 대하여 하늘과 땅에서 호소하는 엄숙한 말로 시작하고 있다. 하늘과 땅은 죄인들에 대한 증거자들이 될것이며 또한 그들에게 준 경고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그경고를 받기를 거절한 사실에 대한 증거자들이 될것이다(욥 20:27).
(2) 모세는 그백성들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바에 대한 엄숙한 적용과 더불어 이노래를 시작하고 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2절). "나의 교훈은 배역하는 사람들을 휩쓸어가버리는 비가 될것이다." 갈대아역본의 해설자의 한사람은 이구절을 이처럼 해석했던 것이다. 비는 때때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래서 어떤사람에게는 대단히 신선한,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겐 달고 감미로운 이슬과 같이 될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할수 있다.
1) 이노래의 주제는 교의적인 것이다. 모세는 이미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백성들에게 지어주었었다(출 15장). 그러나 이노래는 훈계의 성격을 띠고 있는 노래이다. 시나 찬미나 신령한 노래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뿐만 아니라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는'(골3:16)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많은 시편을 마스길 즉 교훈을 주는 노래라고 제목이 붙어있는 것이다.
2) 이가르침은 대지가 결실토록 위로부터 내리는 비와 단비로 적절하게 비유되고 있다.
3) 모세는 자기의 교훈이 이슬과 가는비처럼 내려 적시되 조용히 와서 감미롭게 살며시 스며들때 유익한것 같다.
4) 모세는 백성들이 자기의 교훈을 받아들여 마음에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다.
2. 하나님의 크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장엄한 선포(3,4)
(1)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장엄한 선포로 노래를 시작하면서 그사실을 자기의 첫째원리로 삼고 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백성들을 대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셨음을 보이기위한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분의 심판이 큰심연과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렘 12:1; 시36:6).
(2) 모세는 여기에서 자기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라'고 못박고 있다(3절). 이는 이스라엘로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거짓신으로 바꾸는 우를 결코 범하지않도록 막기위한 조치였다. 이렇게 죄를 예방하고 우리자신을 우리의 의무의 길에서 떠나지 않게 하기위해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고결하고 명예로운 생각을 유지하며 모든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한 생각들을 나타내도록 하는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히 유용한 일이 될것이다.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3절).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이나 광대하심을 설명하거나 천상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에 대하여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의 사역의 완전성, 통치하시는 모든손길의 지혜로우심과 공평함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위대하심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비쳐오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실들이 그분에 대하여 계시된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한'(29:29) 것들이기 때문이다.
1) 그는 반석이시니(4절). 하나님께서는 반석이시다. 그까닭은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시고 부동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를 찾아 피난처를 구하는 자들에게 난공불락의 피난처가 되시며 자기를 의지하는 모든자에게 영원한 터전이 되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그 공덕이 완전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 그렇게 완전하였고, 모두 매우 선하였으며, 그분의 섭리의 사역역시 그렇게 완전하며 또는 정한시간에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밀이 끝나는 날 하나님의 사역의 완벽함은 전세계에 드러나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그 어느것도 수정할 필요가 없다(전 3:14).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고 또 그백성들을 위해서 시작하신 일을 그당시에도 완성하고 계셨다.
3) 그모든 길이 공평하며. 하나님의 모든길의 결국은 모두 올바르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방법을 택하심에 있어서 지혜로우시다. 공평이란 말은 신중함과 공의 둘다를 의미한다.
4) 그는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약속에 충실하신 분이셔서 결코 거짓이 없으시며 그분의 경고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우리는 진실하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의지할수 있는 것이다.
5) 그는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를 결코 어떠한사람도 속이신 적이 없는 분이시오, 자기의 공의에 호소해 오는 자에게는 결코 그릇행하지 않으신 분이시며 자신의 자비를 믿고 그자비에 의탁해 오는 자에게 무정하게 대하지 않으신 분이시다.
6)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것 이상의 징벌을 내리시는 부당한 처우를 하지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섬기며 또한 자기를 위해 고난당하는 자들 모두에게 갚아주시는 일에도 결코 실패함이 없으실 것이다.
3. 이스라엘에 대한 심한 질책(5)
본문에는 모든면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품에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심한 질책이 나타난다.
(1)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2)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자들이었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현세의 불완전한 상태속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흠이 있게 마련이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흠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죄는 그러한 죄가 아니었다. 그죄는 그들이 이겨내려고 애를 쓰고 극복하려고 경성하며 간구하던 연약함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르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차있는 그러한 악이었다.
(3) 그들은 '사곡한 종류'였다. 그들은 부정적인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금해져 있는 것은 그것이 금해졌다는 사실때문에 범하려고 했다.
4. 배은망덕한 백성들에 대한 충언(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며 자기에게 붙어있으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던 의무에 대하여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버지가 되셨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우리를 건져내신 구속주에 대한 우리의 의무 그리고 우리를 흠없이 세우시려고 성화시키시는 그분께 대한 우리의 의무역시 똑같이 크고 중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2)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을 말살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는 악을 설명한다. 첫째, 그것은 비열하기 그지없는 배은망덕이요, 둘째 극도의 미친 짓이었던 것이다.
Ⅱ. 하나님의 은혜 32:7-14
모세는 일반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그들의 큰은인으로 제시하면서 이대목에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하심과 돌보심에 대하여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어떤예들은 옛날의 일인데 이옛날의 일에 대한 증거로서는 기록에 호소하고 있다(7절). 옛날을 기억하라. 옛날의 역사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은 쓸모가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특별히 구약교회건 신약교회건 요람기에 대한 여가는 매우 독특한 용도가 있다. 둘째, 다른예들은 거의 최근의 일들인데 그것에 대한 증거로 모세는 아직도 살아서 그들곁에 남아있는 그들의 아비들과 장로들을 들고 있다. 자기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하심에 대한 본보기로서 다음 세가지 사실들이 여기에서 부각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서 가나안땅을 일찍이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이다. 가나안땅은 우리의 천국의 처소내지 분깃에 대한 모형이요 예표로서 하나님의 경륜속에 옛부터 정해지고 예비된 것이었다(8절).
1) 사람의 자손들가운데 땅이 나뉠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중에 두고 계셨던 것이다.
2) 우리 인간세계에 이스라엘이 생기기전에, 그리고 그것을 생각한 수도 없었던 훨씬전에 하나님께서 이백성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신 그이유를 보면 그친절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지 표현을 잊게될 지경이 되고 만다(9절).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백성이라.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이가 찬 상속자로서 성부께서 정해놓으신 때에 이유업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점에 있어서도 가나안은 하늘나라의 유업에 대한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의 유업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입안되고 계획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은 시간이 되면(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그유업을 상속하기에 적합하게 되고 합당하게 되는 것이다(골 1:12). 이백성을 형성시키고 어떤형태로 다듬고 약속의 땅에서 그들을 위해 계획된 큰일들에 대해 그들을 적합하게 만들기위해서 대단히 많은 일들이 행하여졌다.
1)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만나시고(10절). 의심할 것도 없이 이구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까지 이끄실때 통과시켰으며 그들과 더불어 몸소 많은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그광야를 가리키고 있다. 즉 그것은 소위 '광야교회'(행 7:38)라고 불리우고 있다. 거기에서 구약의 교회가 태어나 양육받고 훈육받았던 것이다.
① 이스라엘은 오갈데 없는 신세였다. 애굽은 그들에게 황무지와 같았으며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곳에서 매인 종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②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는 품성도 별로 바람직한 성격이 못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너무나 무지하여 그것에 감화를 받기엔 너무도 우둔하고 꾸물거렸으며 불평이 많고 변덕스러워서, 황무지에서 만났다고해도 좋을만한 백성들이었다.
2) 여호와께서 그를…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10절). 즉 여호와께서 그를 이리저리 인도하시고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만나셨을때, 곧장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라 대단히 오랫동안 이러저리 다니게 하셨으며 그렇게해서 이스라엘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피교육자들이 배우는데는 시간이 걸려야 한다. 이렇게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인내, 하나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시험하셨으며 그들을 광야의 고난에 단련시키셨으며 그렇게함으로써 그들을 훈육하셨다. 매단계마다 그속에는 무엇인가 교훈적인 면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광야의 훈련을 거치지 않고 가나안에 갔었더라면 얼마나 그들이 그땅에 적합치 않았을 것인지 가히 상상할수 있다.
3)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늘과 공중의 해로운 영향과 황량한 광야의 모든위험에서 할수 있는 모든배려와 애정으로써 지키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의 안내자요, 수호자였다.
4) 여호와께서는 독수리가 그보금자리에서 자기 어린새끼들에게 하듯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다(11,12절). 출애굽기 19:4절에는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었도다'라는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타나는데 여기 신명기의 내용은 출애굽기의 이구절을 상술한 것이라 볼수 있다. 독수리는 어린새끼들을 보호하며 양식을 예비하며 교육하고 날기를 가르침으로 자기새끼들에 대하여 강한 사랑을 가지고있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이목적을 위하여 어미 독수리는 어린새끼들이 누워 졸고있는 둥지에서 새끼들을 깨우고, 그위에서 날갯짓을 하여 어떻게 그새끼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날개를 사용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새끼들이 자기들의 날개를 사용하여 새끼들로하여금 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자녀들로하여금 일을 하도록 훈련시킴으로써, 게으름이나 안일함에 빠지지않도록 하고자하는 부모들에게 산 귀감이 아닐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와같이 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상태에 애착을 가져 그상태를 떠나기를 싫어할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용하시사 자유를 열망하도록 그들을 자극하셨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광야로 이끄셨으며 마침내 그광야를 다 통과하게 하셨다.
(3) 이스라엘로하여금 좋은땅에 정착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착시키는 일은 두지파와 한지파의 절반을 행복하게 정착시킴으로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나머지 지파들에 대해서도 온갖 좋은것으로 풍성하게, 속히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 기대되고 있는 터였다.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하시며(13절). 에인즈워드는 가나안에서의 온갖 좋은것의 풍성함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풍성함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천국적인 위로의 풍성함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왕국의 자녀를 위하여 버터와 우유 즉 말씀의 신선한 젖을 주시며, 강건한 자에게는 심령으로 즐겁게하는 포도주와 함께 단단한 음식도 주시는 것이다.
Ⅲ. 이스라엘의 배신 32:15-18
본문에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배교가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배신은 즉시 일어났으며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배신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대목에는 이스라엘의 사악함에 대하여 두가지 큰예가 서술되고 있다.
(1) 안일무사, 정욕, 자만과 교만, 그리고 풍요와 번영에 대한 남용(15절) : 저들은 '발로 찼다.' 교만과 무례가 성장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발뒤축을 들었다.' 이스라엘은 '길들이지 않은 황소'처럼 몰이용 막대기를 차버렸으며, 화를 내며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섭리의 면전에서 도망가버렸다.
(2)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의 배교를 보여주는 큰본보기이다. 앞에 기술한 사실은 저들로하여금 자기들의 종교에 염증을 느끼게하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변덕을 좋아하게 만들어 필경은 우상숭배로 그들을 이끄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나서 어떤신들을 택하여 제사를 드렸는가(16,17절). 이스라엘은 마땅히 참하나님께 드렸어야할 섬김을 다른신들에게 드렸다.
① 그들은 '다른신'을 섬겼다. 이 낯선 다른신들은 이스라엘에게 어떤친절을 베풀었다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② '근래에 일어난 새신'을 섬겼다. 신종의 신이라니 이보다 더 괴상망측한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③ 그러한 신들은 도무지 신이라고 할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명칭은 인간의 공상의 산물이며 그형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작품일 따름이었다.
④ 그것들은 마귀였다. 신들이기는커녕 그것들은 글자그대로 마귀 곧 파괴자들이요, 그렇게 불행을 목표로 삼고있는 못된 것들이었다.
2)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대하여 얼마나 큰모욕이었는가.
① 그런행위가 여호와를 망각한 행위라고 한것은 올바른 해석이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18절).
② 그런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Ⅳ. 하나님의 진노 32:19-25
이노래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앞장에 나오는 예언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기뻐하셨지만 이제 그들을 배격하실 것이다. 죄악의 길에 오염되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께서 더욱 불쾌하게 여기신다(시 106:39,40).
(2)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표시와 그백성들에 대한 호의의 표시를 나타내셨지만 이제는 그것을 거두시고,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하실 것이다(20절). 자기의 얼굴을 가리운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몹시 노여워하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또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늦추어지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고한 자들이었으며 신앙심이 없고 신뢰할수 없는 자들이었다.
(3) 하나님께서는 모든일을 그들을 편케해주려고 하나님께서 하셨으나 이제는 죄에 대하여 징벌하실 것이다(21절).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무지 신이라고 할수도 없고 비천한 잡신들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
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경멸해도 좋을 비천한 적들을 일으켜 그들에게 고통을 줄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위에 올라서서 다스리는 민족들이 비천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야만적일 것이다(말위에 의젓하게 올라탄 거지보다 더 오만불손한 자는 없다).
(4)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좋은땅을 주시고 온갖 좋은것들을 입히셨으나 이제는 모든 위로를 박탈해버리고 멸망으로 몰아넣으실 것이다. 여기에 경고로 사용된 구체적인 심판은 기근, 역병, 짐승들의 독('야수의 이빨과 독사의 독', 24절), 전쟁과 그전쟁으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25절) 등등이다.
Ⅴ.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 32:26-38
받아 마땅한 진노와 복수에 대한 끔찍한 많은 경고뒤에 우리는 여기에서 도저히 받을자격이 없는 자비에 대한 놀라운 통보를 대하게 된다. 이러한 자비는 하나님께서 결코 심판을 즐거워하시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자비로써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죄인들이 돌이켜 생명을 얻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1) 하나님은 자신의 위신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인간에게 그기억이 끊어지게' 하지않으실 것이다(26-28절). 남은자들을 보존하기위해서 그리고 그무가치한 백성들을 전적인 멸망에서 건지기위해서 자비가 나타난다.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27절). 이말은 사람의 표현형식을 빌어다 쓴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어떠한 사람의 분노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그러한 표현을 빌어 마치사람의 분노를 염려하신듯이 표현하신 것이다. 여호수아(수7:9)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걱정하던 소수의 선한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다른 어느 예보다 이런경우에서 그원수의 분노를 염려했었다. 저희가 그점을 두려워하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두려워하였던 것처럼 표현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모세로하여금 자신에게 간구하도록 하실 필요가 없었지만 스스로 그러한 점을 상기하셨다. "애굽인들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수치를 당해 마땅할지언정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보좌가 수치를 입지' 않게하실 것이다.
(2) 여호와께서는 저들의 복지를 염려하사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을 진정으로 열망하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스스로 자멸해가는 것을 즐겨보지 않으시며 죄인들이 스스로 일어나기를 마음속 깊이 원하신다. 그리고 혹시 그들이 그렇게하고자 한다면 즉시 그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죄인들이 자기들의 훗날의 결국이나 미래의 상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그들중 많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것이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언하셨다고 볼수 있으나 이말씀은 보다 일반적으로 적용될수도 있는 말씀이다.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백성들을 완전히 물리치지 않으신 이유로서 이전에 그들을 위해 행하셨던 큰기사를 회상시키신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있는 것처럼 여겨진다(30,31절). "어찌하여 가나안사람 천명이 여태도 그래왔듯이 이스라엘사람 하나를 힘겨워하였겠느냐? 그러나 다른신들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이제 가나안을 위해 싸우셨도다!" 그리고 이내용은 이사야의 말씀과 잘부합하고 있다(사 63:10, 11).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탓에 도리어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즉시 진압해 버리실수 있으시나(시 81:14) 이스라엘의 죄악은 자신들 적의 수중에 넘겨주었다.
(4) 여호와께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압제해온 자들을 파멸시키기로 결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정한 시간에 교회의 원수들을 거꾸러뜨리실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사악함에 대하여 불쾌하게 여기사 그사악함에 주목하시고 그셈을 반드시 치루신다(34,35절). 어떤이들은 이구절을 이스라엘의 죄, 특히 선지자들을 핍박한 죄로 이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을 벌하기위해 쌓여져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악한 자들의 악독이 모두 하나님곁에 차곡차곡 쌓여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측은히 여기사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 비록 그들이 여호와를 크게 격동시켰지만 여전히 그분과 관계를 갖고있으며 그들의 비참함이 여호와의 자비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36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까닭에 이스라엘을 팔아버리셨었으나, 사사들로하여금 이스라엘을 취한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던 구원의 사실과(참조. 삿 2:11-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얼마나 마음에 근심하셨는가'(삿 10:16) 그리고 이스라엘이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때 이토록 슬퍼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수 없을때 그들을 도우셨던 것이다.
3) 여호와께서 하찮은 우상신들을 격하시키고 견책하시기 위해서라도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 (37,38절). 그들의 신들이…어디 있느냐. 이말씀은 두가지 방향으로 이해될수 있다.
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들이 결코 해줄수 없는 것을 해주시리라는 사실로 이해될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들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낼수 없었던 일 즉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쳐부수는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될수 있다. 산헤립과 느부갓네살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구하시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뻔뻔스럽게 도전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대적들을 혼내주시고 그들을 건져 내셨다(사 37:10;단 3:15). 오히려 그신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도우려고 일어나 방패가 되고자 하는 벨과 느보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도전을 하셨으며(사 47:12,13) 그신들은 자기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돕기는 고사하고 자기자신들도 주체하지 못하였으니 저들은 형상에 불과하였으며 그것이 그들이 갖고있는 전부였다. 그것들은 결국 '자기도 잡혀가고 말았다'(사 46:1,2).
Ⅵ. 보응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 32:39-43
이노래는 다음 세가지 사실을 말함으로 끝을 맺고있다.
(1) 하나님께 대한 영광(39절).
1) 위대하신 하나님은 자존자로서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을 처음에 이 이름으로 알게 되었었다(출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있어왔던 자요,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있으리라 약속했던 자요, 있으리라 경고했던 자이다. 누구나 내가 내말에 충실함을 알게될 것이다." 웃질리드(Uzzielides)의 탈굼본은 이구절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놓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자기백성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자신을 계시하실때, 그가 모든백성들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나는 현재의 나요, 과거의 나요, 미래의 나이다." 우리는 이 사실이 사도요한에게 말씀하셨던 그분에게 얼마나 잘 적용되었는지 잘알고 있다. '나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자올 자라'(계 1:18). '나 곧 내가 그'라는 이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건져내실 것이라는 소망을 불어넣어 주시기 위하여 격려하고 있는곳에서 자주 할수 있다(사 41:4;43:11,13,25;46:4).
2) 위대하신 하나님은 유일한 최고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나와 함께하는 신이 없도다. "아무도 나를 거들수 없으며 나와 견줄수도 없다"(사 43:10,11).
3) 절대주권, 보편적인 대권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4) 항거할수 없는 권능의 영광을 요구하신다. 내손에서 능히 건질자 없도다.
(2) 원수들에게는 공포(40-42절) : 진실로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공포이며 마찬가지로 다른신들을 섬기는 자들이나 신성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불복종하여 저항하는 자들이나 여호와의 신실한 종들을 핍박하고 그들에게 악을 행하는 모든자들에게 실로 두려움이 될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제때에 회개하도록 경성시키시려고 하신다.
1) 거룩한 선고가 맹세의 형태로 표시되고 있다(40절). 내가 하늘을 향하여. "즉 그의 거룩함의 본원지인 하늘을 향하여." 내손을 들고 말하노라. 이러한 행동은 옛날에는 맹세할때 사용하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표시였다(창 24:22). 여호와께서는 죄인들이 계속하여 죄중에 빠져있다면 저희의 죄악이 바로 저희의 멸망이 될것이라고 서약하셨으며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2) 형을 집행할 준비를 하신다.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41절). 시편 7:12절을 보라.
3) 그 형의 집행이 매우 몸서리쳐질 것이다.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42절).
(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43절) :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43절). 모세는 이노래를 끝내면서 기쁨의 노래말로 끝내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중에 남은자들이 있을 것이요, 그들이 결국은 평강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침내 기뻐하게 될것이요, 영원히 기뻐하게 될것이다. 기쁨의 사실로서 여기에서 세가지 점이 언급되고 있다.
1) 교회의 영역이 확장될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구절의 첫마디를 이방인의 회심에 적용시키고 있다(롬 15:10). '열방들아(너희 이방인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2) 교회의 대적들에 대한 교회의 탄원에 대하여 복수해주신다.
3) 하나님께서 자기의 교회와 교회에 속한 모든자들에게 자비를 쌓아놓으셨다. 하나님은 '자기땅과 자기백성들'에게 즉 어디에서나 그를 두려워하고 섬기는 모든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Ⅶ. 가나안 입성이 금지된 모세 32:44-52
(1) 이노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엄숙히 전달되었다(44,45절). 모세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들을수 있도록 이노래를 불렀으며 여호수아는 동시에 다른회중에게 그목소리가 미치는한 많은이들에게 이노래를 전달하였다. 비록 그들사이에는 지휘권의 변동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에는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만약 저들이 하나님을 저버린다면 그들에 대한 반대편 증인이 될것이었다.
(2) 이노래와 함께 모세가 그들에게 말해주었던 다른 모든 유익한 말씀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간절한 유시가 내려진다.
1)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한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① 이말씀들에 주의깊게 경청하라는 것이다. "너희는 율법을, 약속과 경고를, 축복과 저주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노래를 마음에 새겨두라."
② 이말씀들을 그들후에 일어날 후손들에게 신실하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착한사람은 자기 자녀도 그와같이 선하기를 바라는 법이다.
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경건을 그들의 주요업무로 삼고 인내하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① 자신이 그들에게 권고한 사실들은 그자체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47절).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요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일이었다.
② 그것이 그들에게 대한 유익이 있다는 점이다. 이 일로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들어가려는 생명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짐해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예표적인 약속이다(마 19:17).
(3) 모세는 여기에서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몇가지 지시를 하달받는다. 하나님을 위한 증인으로 명망이 높았던 이사람이 자기의 증거를 다 끝마친 지금 그는 느보산에 올라가 죽어야 했다. 이명령들은 바로 당일에 모세에게 하달되었다(48절). 자기의 사역을 다 끝마친 지금 그가 하루라도 더 살것을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이전에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갔으면 하고 기도했었으나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그문제에 대하여 더이상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므로 현재는 전적으로 만족한 상태였다.
1)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이전에 그가 지었던 죄에 대하여 그에게 상기시켜주셨는데 이 죄까닭에 그는 가나안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51절).
2)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또한 자기형 아론의 죽음에(50절) 대하여 상기시켜주시는데 이는 모세로하여금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섭섭하지 않게 느끼고 두렵게 생각지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하나님께서는 모세로하여금 가나안땅을 둘러보고나서 죽도록 높은산에 올려 보내신다(49,50절). 자기죄에 대한 회상은 죽음을 무서워하게 만들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보여주신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겨주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화목하셨다는 증거요, 비록 그가 지상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막혔지만, 이세상에서는 다만 눈으로 볼수밖에 없는,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만 볼수 있는 보다나은 땅에 들어갈 자격을 자기에게서 빼앗지 않으셨다는 분명한 표시였기 때문이다.
# 핵심
32:1-47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심판을 주제로 삼아 이스라엘의 미래역사를 예언하는 일명 ‘모세의 노래’이다.
반석이신 여호와(32:4)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방랑했던 광야에는 바위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반석이나 바위들에 익숙했다. 또한 암석이 많은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건설된 요새 성읍들은 대적의 공격을 쉽게 차단할수 있었다. 이같은 배경하에서 바위는 신실하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성도를 든든히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바위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물을 제공했다(출 17:6). 바울은 이같은 이미지를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적용했다(고전 10:4).
# 묵상
모세의 마지막노래 ( 32장 )
모세가 32장의 노래를 지은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인한 멸망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인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범죄의 결과와 하나님의 복이 어떤것인지를 가르쳐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타락을 미연에 방지하자는데 그취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묘사 ( 32:4 )
모세는 자신의 마지막 노래에서 하나님을, 반석이시요, 공덕이 완전하고 모든길이 공평하고 진실무망하며 공의롭고 정직하신 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이스라엘의 배반 ( 32:10-18 )
하나님께서는 황무지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호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하여금 밭의 소산을 먹고 반석에서 꿀과 기름을 빨게 하시고, 기름과 젖과 밀과 포도즙을 풍성히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은 부요하고 윤택해지자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고 마귀에게 제사하면서 하나님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타락의 길을 가고있지는 않은지 오늘 우리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하나님 ( 32:15-27 )
이렇게 이스라엘에 징벌을 내리시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패역한 짓을 계속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기위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로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징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 ( 32:22-26 )
분노의 불이 일어나 땅의 소산과 산들의 터도 삼키게 됩니다. 그리고 재앙을 이스라엘위에 쌓고 하나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쏠것이며, 굶주림에 시달리고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에 쏘이게 될것입니다. 또한 밖에서는 칼에 맞아죽고 안에서는 놀라서 망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재앙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임할 것입니다.
대적들에게 보수하시는 하나님 ( 32:35 )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이 실족할때 그들에게 직접 보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하기위해 대적들을 이용하시기는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느보산의 모세 ( 32:49-52 )
마지막 교훈을 끝낸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된 연유를 다시 상기시키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입었고, 또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결정적인 한번의 실수로 가나안땅에 들어갈수 없게된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아바림산은 사해 북동편, 모압평지에 위치한 산맥으로 사해와 요단강을 동쪽으로부터 내려다볼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느보산은 아바림산맥의 최고봉으로서 팔레스틴 전지역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 해설
모세의 유언 ( 32 )
본장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어부른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긴노래는 그내용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순하게 이스라엘의 패역함과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날에 대한 암울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노래는 이스라엘이 망하게 될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므로 희망찬 내용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1. 모세의 노래
1)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패역한 이스라엘
지난 광야 40년의 세월을 돌아볼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한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한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질과도 같이 이해될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늘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볼때 이스라엘은 망할수밖에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들을 지으셨다는 말씀은 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있으며 유지될수 있었던가를 잘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 대해 한순간도 관심을 돌려본적이 없으십니다.
a.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은혜(시84:11)
b.은혜의 풍성함(딤전1:14)
2) 이스라엘의 과거를 기억하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로 점철된 역사였습니다. 사랑과 긍휼이 한순간도 줄어든적이 없었던 역사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한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진정 자신들의 연약함을 회개하며 잘못을 통해 자복하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태도는 성도들로하여금 힘을 얻게도 합니다. 곧 자신의 생애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기억해보면서 힘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a.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기억함(대상16:13)
b.하나님이 연단시키신 일을 기억함(신8:2)
c.기억의 방법(신11:18)
3) 우상숭배로 은혜를 되갚는 악한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건만 이스라엘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께 패역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될것을 모세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역사를 보아도 시내산 밑에서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특징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기본적인 심성을 말해줍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일반적인 은총도 깨닫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인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서 자신만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오늘날 형상을 갖춘 이방신상만이 우상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돈, 섹스, 권력, 과학기술 등이 모두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실때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배신감은 점점더 깊어지실 것입니다.
a.우상숭배와 원인은 인간의 부패한 마음(롬1:21-23)
b.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시에 우상을 가지고 나옴(수24:14)
4)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우상숭배와 배교에 대해 하나님은 결코 방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격노하시며 질투를 일으키셔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마침내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을때는 엄중한 형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심판을 견딜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이세상 어느곳, 심지어 지옥 깊은곳까지라도 사를 것이라고 모세는 노래합니다. 또한 진노의 화살을 모두다 쏘아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심판에는 백발노인부터 젖먹이까지 예외가 없을것을 보면 그심판의 심각성을 상상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려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기전에, 최소한 경고가 정점에 이르기전에 빨리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a.공의로 심판하심(창18:25)
b.그리스도를 공하여 심판하심(요5:22,30)
c.견디기가 어려운 심판날(마10:15)
5)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회복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노래하던 모세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의 은혜가 있을것을 노래합니다. 그방법에 대해서 모세의 노래는 이런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역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방나라들을 사용하는 것인데, 결국 하나님은 그이방의 열강들에게도 죄를 물어 심판하실 것이므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해방되어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후에 여러차례 이스라엘의 역사에 적용되었습니다. 사사기에도 여러차례 나타나면 바벨론 포로기가 결정적인 증거가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복을 약속해주시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감사의 찬송을 돌려야 했습니다. 결국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재앙은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돌이키게 하여 복주시려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a.용기를 얻고 위로받음(사57:18-19)
b.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음으로 회복하심(슥10:6)
2. 모세의 최후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
1) 모세의 권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 모세의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어주고 가르쳐서 명심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이노래를 가르쳐 경계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이상히 여길것을 염두에 두고 이노래의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허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되는것, 즉 심판후에 회복시키려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a.권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살전2:3-4)
b.연보를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말 것을 권면함(고후9:5-7).
2) 모세의 죽음을 선언하시는 하나님
이미 예고한대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것임을 하나님은 다시금 선언하십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을 바라보고는 조상에게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일을 충실히 감당할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행동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들 역시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a.그리스도만이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원하심(히2:15)
b.육신의 죽음은 흙으로 돌아감(창3:19)
c.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롬14:8)
결론
본장 모세의 노래는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패역함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후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끝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과 생명임도 분명히 합니다. 우리성도들의 삶 역시 이 모세의 노래에서 큰교훈을 얻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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