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음 2:1-8
엘리야의 생애와 그에 관한 사건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그렇듯이 조금밖에는 기록되어 있지않다.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볼길이 없고 그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합의 통치 몇년인지, 그가 사라진 것이 여호람의 통치 몇년인지도 알지못한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동안이나 활동했는지에 대해서도 추측할수가 없다. 다만 약20년쯤 활동하지 않았나 추정해볼 뿐이다.
(1) 하나님께서는 회오리바람으로 그를 하늘로 데려가시기로 결정하셨다(1절). 하나님께서 왜 다른선지자들과는 달리 엘리야에게만 그런 특별한 영광을 베푸셨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수 없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즉 우리와 마찬가지로 죄를 안 사람이었으나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 여기서 다음내용을 추측해볼수가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그의 크고 특별한 헌신을 돌아보셨다.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고 선지생도들로 하여금 그의 열심과 충실을 본받아 그들이 살고있는 타락한 현실에 대하여 올바로 증거할수 있도록 힘을 주기위해 이것을 작정하셨다.
2) 하나님께서는 현재 교회의 어둡고 부패한 상태를 굽어보시사 이세상의 삶뒤에 또다른 삶이 있음을 매우 분명한 증거로 나타내시고 또 신실한 소수의 무리들의 마음을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희구로 향하게 하시고자 이와같이 작정하셨다.
3) 하나님께서는 복음적인 섭리를 의도하셨다. 따라서 엘리야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모든 믿는자들에게 열려있는 천국문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며 상이었다. 엘리야는 믿음과 기도로 하늘과 많은 교제를 나누다가 이제 그곳으로 올리워지는 것이다. 이는 비록 짧은 삶이지만 이땅에 사는동안 우리가 하늘과 교제를 가진다면 그영혼(즉 그사람)은 그곳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2) 엘리사는 엘리야가 이땅에 있는한 그와 함께 있으며 결코 그를 떠나지 않을것을 결심하였다. 엘리야는 그를 떨어지게 하려고 했던것 같다. 즉 그는 엘리사를 길갈, 벧엘, 여리고에 머물게 하려했다(2,4,6절).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시려는지 알고있었으나 그는 그와같이 영화롭게 되는것을 보이고자 하지않았다. 어떤이들은 이것을 그의 겸손으로 생각한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어느곳이든 머무르게 하려고했으나 허사였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가기까지 결코 그를 떠나지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2,4,6절).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엘리야가 살아있는동안 그와 거룩한 천국의 대화로 교훈을 얻고자해서 였다.
2) 엘리야가 떠나는 것에 대해 만족하기를 바램에서였고 또한 그가 들려올라가는 것을 보고자해서 였다. 그렇게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굳게하고 보이지않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3) 엘리야는 승천하기전에 선지학교를 방문하여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에 그러한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 사마리아에도 있었던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의 생도들'을 볼수가 있는데 두개의 금송아지중 하나가 세워져있는 벧엘에서조차 그수효는 상당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무시한채 최근에 건설된 여리고에서도 많은 생도들이 있었다. 예루살렘과 유다나라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성전봉사자가 있었으나 이스라엘나라에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이학교들을 만드셔서 훈련을 시킴으로서 그곳에서도 종교의식을 행하게 하셨다.
(4) 선지생도들은 이제 엘리야가 곧 이세상을 떠날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었다.
1) 그들은 엘리사에게 그사실을 말했는데 벧엘뿐 아니라(3절), 여리고에서도 그러했다(5절).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위로 취하실줄을 아나이까(3,5절). 엘리사도 그것을 잘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으며'(같은경우에 처한 주의 제자들처럼;요16:6) 따라서 그는 그것을 재삼 들을필요가 없었고 귀기울이지도 않았다.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3,5절). 그는 엄숙한 침묵으로 사태를 받아들이면서 말하였다. 나도 아노니 잠잠하라(슥2:13).
2) 선지생도들은 비록 가까이 있지는 않았으나 멀리 떨어져서 그일의 증인이 되고자 그뒤를 따라갔다. 오십인이 가서 멀리서서 바라보며(7절). 그들은 호기심때문에 그렇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멸시받은 선지자를 하늘이 존귀케하는 것을 직접 보게함으로써 그들을 증인으로 삼으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5) 엘리야가 요단강을 가른 이적은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그의 승천의 서곡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땅의 가나안에 들어갈때 나타났던 이적과 같은 것이었다(8절). 엘리야는 승천하기위해 요단저편으로 가야만 했다. 이는 그곳이 그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그곳에 간것은 모세가 죽은 장소에 더가까이 이르기 위함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이렇게함으로 가장 멸시받던 그지역을 존귀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때 요단강을 가르심으로 그를 높이셨던것 같이 이일을 통해서 올리워지려는 엘리야를 높이셨다(수 3:7).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들을 데려가실때 죽음은 곧 요단강이 된다. 즉 그것은 승천하기 바로전에 있는 것으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한길, 곧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그강을 갈랐는데 이는 주의 속죄함을 받은자들로 하여금 건너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Ⅱ. 엘리야의 승천 2:9-12
1. 자기대신 엘리사를 세움(9,10)
엘리야는 처음 엘리사를 만나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을때보다 훨씬 진지한 마음으로 그를 후계자로 삼을 결심을 했다(참조, 왕상 19:19).
(1) 엘리야는 엘리사의 한결같은 애정과 시중에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즉 마지막 떠나기전에 어떤축복을 내려주기를 원하는지 구하라고 말하였다.
(2) 가장 좋은것으로 부하게 될수 있는 좋은기회를 가지게된 엘리사는 여기서 갑절의 영감을 구한다. 그는 부도 영광도, 그리고 위험에 처하지 않기를 위해서도 구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과 그세대를 섬기기 위한 자격을 갖추게 해달라고 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구하였다.
1) 영감 : 그가 구한것은 엘리야의 능력안에 있는 영의 은사나 은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내게 영감을 주소서"라고 하지않고(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잘알고 있었다) "영감이 내게 있기를, 즉 나에게 이것이 있어지도록 하나님께 구해 주소서"라고 구했던 것이다.
2) 엘리야의 영감 : 이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을 선지자였기 때문이었다. 즉 그의 사역을 수행하고 선지생도들의 아버지가 되고 적들과 상대해야 하고 그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어려움들을 헤쳐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3)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 : 그는 엘리야가 가진것의 두배를 말한것이 아니며 다른 일반선지자들이 가진것의 두배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선지자들에게서는 엘리야밑에서 배웠던 엘리사에게 주어졌던 그러한 큰영감을 기대할수 없었다. 엘리사는 엘리야밑에서 배웠던 것이다.
(3) 엘리야는 두가지 단서하에 엘리사가 구한것을 약속하였다(10절).
1) 엘리사가 그것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엘리야는 그것을 '어려운 일'이라고 부름으로써 엘리사에게 할바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기에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너무 큰것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2) 그가 마지막까지 자기와 함께하고 자기의 마지막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나를 내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10절).
2. 엘리야가 승천함(11)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승천했다. 카울리(Cowley)의 말처럼 그는 모든인류가 빠지는 도랑을 뛰어넘어 하늘로 올라간 두번째사람이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알수 있는것으로만 만족하자.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셨을때 엘리야는 일하고 있었다. 그는 엘리사에게 교훈을 주고 용기를 주며 앞으로 수행할 사역에 대해서 지시하고 일깨워주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는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함이었다. 그는 이제 그가 가게될 저세상에 푹빠진 사람처럼 묵상하거나 기도하고 있지않았으며, 사람들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진자로서 가르침에 열중하고 있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를 호송할 것들을 보내셨다. 불수레와 불말들(11절). 이는 그를 왕처럼, 승리자처럼, 아니 승리자보다 더존귀한 자처럼 당당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성경에서 천사들은 '그룹'과 '스랍'으로 불리운다. 여기에서의 것들은 비록 그들의 위엄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이름들에 합치되는 것들이라고 볼수 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랍'이 '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화염'으로 자기사역자를 삼으신다고 했다(시 104:4).

둘째, '그룹'이(많은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수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병거'로 불리기도 했다(시 68:17). 수레와 말들이 불처럼 나타났는데 이는 불사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밝혀주기 위한 것으로 엘리야를 불사르거나 고통스럽게 하지않았으며 그장면을 멀리서서 보는자들에게 분명하고 찬란하게 그의 승천을 보게 해주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열심으로 불탔었다. 그리고 이제 하늘의 불로 정련되고 승천하게 된것이다.
(3) 이 불수레와 불말이 엘리사와 엘리야를 갈라놓았다.
(4) 엘리야는 어디로 옮기워졌는가.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11절). 엘리야는 한때 격정에 못이겨 죽기를 바랬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엄청난 특전을 베풀어주실만큼 지극히 자비로우셔서 그는 죽음을 보지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경우와 에녹의 경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것을 보여주셨다.
1) 하나님께서는 만일 인간이 죄를 짓지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될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곧 죽음에 이르지않고 승천하게됨을 가르쳐 주신다.
2)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의하여 분명히 드러난 또다른 생명과 그것의 불멸성에 대해서, 그리고 엘리야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늘나라가 열려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보여주셨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의 한모형이기도 했다.
3. 엘리사가 슬퍼함(12)
엘리사는 위대한 선지자를 잃게된 것을 비통해하였다.
(1) 그는 엘리야의 마지막을 보았다. 이로써 그는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이 있기를 구한 자신의 요구가 허락되었음을 확신했다. 그는 끝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는 주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기로부터 은사가 있기를 바래서였다(행 1:10). 그장면은 잠깐동안 보였다. 그리고 곧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다.
(2) 그는 자신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손실인 이일을 슬퍼하는 표시로 자신의 옷을 찢었다. 비록 엘리야가 승리자로서 하늘로 갔지만 그를 잃는것이 세상으로서는 좋은것이 못되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고 유용한 자들을 데려가실때 슬퍼하지도 애통하지도 않을만큼 눈물이 마른자들은 필시 마음조차 굳어있는 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엘리야가 떠나가는 것이 엘리사가 뛰어나게 되는 길이었으나 그는 엘리야의 떠나감을 슬퍼하였다. 이는 그를 사랑했기때문이며 언제까지라도 섬기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3) 그는 엘리야에게 매우 존경스러운 호칭을 부여하였다. 그자신으로서는 젊은날의 지도자를 잃어버린 것이기에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라고 하고 백성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수호자를 잃어버린 것이기에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마병이여'라고 했다. 아마도 엘리야는 만일 그들이 죄만 짓지않았더라면 모두를 그수레로써 하늘에 데려가고자 했을 것이다.

Ⅲ. 엘리야를 이은 엘리사 2:13-18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의 승천이후 곧바로 나오는 내용을 보게된다.
1. 엘리사의 능력(13-15)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사와 함께하신다는 증거와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은 것을 증거하는 표적이 언급되어 있다.
(1) 엘리사는 엘리야의 직무를 상징해주는 그의 겉옷을 받았다. 그는 엘리야를 위하여 그옷을 입었을 것이다(13절).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을때, 그는 자기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남겨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영감이 임했다는 증거이므로 수천의 은금을 물려받은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었다. 엘리사는 그옷을 자신이 입어야할, 귀중한 의미가 있는 옷으로 여겨 집어들었다. 그옷으로 인해 기꺼이 부름에 순종하여 엘리야의 종이 되었던 그는 이제 그옷으로 존귀케되어 그의 후계자가 된것이다.
(2) 그는 요단강을 가르는 엘리야의 능력을 받았다(14절). 그가 그의 아버지(엘리야)와 헤어진후 선지학교의 생도들에게 돌아올때 요단강이 그들사이에 놓여있었다. 그강은 엘리야가 영광으로 나아갈때 길을 내주기위해 좌우로 갈라졌었다. 이제 그는 사역을 위해 나아가는 자신에게 길을 내주기위해 그강이 또 갈라질지의 여부를 시험할 참이었다. 엘리야의 마지막 이적이 엘리사의 첫번째 이적이 될것이다. 강을 가르는데 있어서 그는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엘리야의 겉옷을 사용하였다(8절). 이는 그가 자기선생의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자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께 구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14절). 그는 "엘리야는 어디 계십니까"라고 하지않았다. 그의 말은 곧 이러한 뜻이었다. "엘리야를 인정하시고 보호하시며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고 여러가지로 그를 영화롭게 하시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특별히 그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여호와여 나는 엘리야의 영감을 약속받은 자가 아닙니까? 그약속을 이행하여 주십시요." 뒤이어 나오는 말은 원문으로 aph-his로서 "그도"라는 뜻인데 우리는 그것을 다음의 절, 즉 '저도 물을 치매'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이것이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의 응답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는 여전히 계시다. 그것도 가까이에 계시다. 우리는 엘리야를 잃었지만 엘리야의 하나님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즉 그는 불변하시어서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다." 자기선임자의 경건하고 충성된 정신과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은 틀림없이 그선임자들이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은혜를 경험할 것이다. 엘리야의 하나님역시 엘리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경건한 선지자들의 하나님이셨던 여호와께서는 어저께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만일 우리가 앞서간 경건한 자들의 영감, 즉 그들의 하나님을 가지고 있지않다면 그들이 남기고간 옷이나 거처 또는 저서 등이 우리에게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3) 그는 선지생도들에게서 엘리야와 같은 존귀함을 받았다(15절). 일어나는 일을 보려고 요단강 부근까지 따라갔던 여러 선지생도들은 엘리사가 돌아올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위에 머물렀다'는 확실한 증거로 삼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가 안전하게 물과 불을 지난것과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영광을 축하하고자 왔다. 그앞에서 땅에 엎드리고(15절). 그들은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반면에 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또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존귀케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을 알았을때 선지생도들은 마치 모세가 죽었을때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하였듯이(수1:17) 기꺼이 자기들의 우두머리이자 아버지로서 엘리사에게 복종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귀케하시는 자에 대해서 그가 누구든 복종할수 있어야 한다.
2. 선지생도들의 헛된 수색(16-18)
선지자의 생도들은 불필요하게도 엘리야를 찾고자 했다.
(1) 그들은 엘리야가 떨어져서 어떤산이나 계곡에 살아있거나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다(16절). 아마도 그들중 몇몇은 엘리사가 선택받은 것에 대한 저항감에서 이것을 주장했을듯 싶다. "엘리야가 정말로 사라졌는지 먼저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2) 그들이 끈질기게 간청하자 결국 엘리사는 허락을 해주었다(17절). 그들은 엘리사가 더이상 반대하기가 민망하기까지 주장을 하였다. 엘리사가 허락을 한것은 그가 자기의 선생을 존경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다시 그겉옷을 내어주고 싶지않아서 그렇다는 오해를 받지않기 위해서였다.
(3) 그결과는 그들로하여금 자신들이 제의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게끔 만들었다. 수색자들이 헛되이 지쳐서 돌아오자 엘리사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나무랐다. 내가 가지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18절). 산과 골짜기를 가로질러 찾아다니는 것이 결코 우리를 엘리야에게 이르게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경건한 신앙과 열심을 본받는 것이 때가되면 우리를 그에게 이르게 해주는 것이다.

Ⅳ. 수질을 좋게함과 아이들을 저주함 2:19-25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더많은 이적들을 행했다. 어떤이들은 그이적들이 숫자상으로 정확히 갑절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본문에는 두가지의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여리고에 자비를 베푼 이적이고 하나는 벧엘에 재앙을 내린 이적이다.
1. 여리고의 수질을 좋게함(19-22)
여기에 여리고의 물이 좋은물로 바뀐 축복이 기록되어져 있다. 여리고는 명령에 불순종하여 세워진 곳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성이 불법으로 세워진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안에서 경건의 노력들을 찾아볼수 있다. 엘리사가 이곳에 온것은 엘리야의 승천을 멀리서 본자들보다 더상세히 설명을 해줌으로써 생도들의 믿음을 굳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십인이 엘리야를 수색하는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1) 여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불평거리를 말했다(19절). 그들은 엘리야에게는 그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었다. 이는 아마도 엘리야는 엘리사만큼이나 그들과 가까이 있지않았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그주변은 좋은곳으로 멋진 전망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물은 마시지 못하는 것이었고 토양도 열매를 맺지못하는 것이었다. 어떤이들은 여리고의 전지역이 메마른땅과 나쁜물은 아니며 단지 어떤지역만 그랬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2) 그는 곧 그들의 불평거리를 고쳐주었다. 선지자들은 각처에 다니며 하나님말씀을 정확히 적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메마른 영혼을 풍성한 결실을 맺는 영혼으로 바꾸는 여러모로 애쓰는 자들이었다. 엘리사는 그들의 물을 고쳐줄 것이다.
1) 그들은 새그릇에 소금을 담아 그에게로 가져와야 했다(20절). 만일 소금이 물을 좋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렇게 적은양으로 무엇을 할수 있었겠으며 또 새그릇에 담아야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겠는가? 그러나 그것들은 도움이 될것으로 반드시 행해져야 했으며 이로써 그들의 믿음과 순종은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법칙을 준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2) 그는 소금을 물근원에 던졌다. 그러자 물줄기와 그물이 닿는 토양이 고쳐졌다. 이와같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하는 것이다. 그마음이 은혜의 소금으로 고쳐져야 한다. 이는 거기부터 생명이 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결케하라. 그리하면 손도 깨끗해질 것이다.
3)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것을 행하는체 하지않았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물을 고쳤으니(21절).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는 말로 자비를 베품으로서 그들은 이후에, 꼭 같은 서두로 시작하는 그의 교훈과 책망과 명령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4) 그고침은 단지 그당시에만 효력을 나타냈던 것이 아니라 영속적이었다. 그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22절).
2. 벧엘에서 아이들을 저주함(23-25)
벧엘에 또다른 선지학교가 있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이어 그곳에 가자 그곳 생도들은 그를 극진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 우상중 하나가 벧엘에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자랑했으며 따라서 그들을 책망하는 자들을 미워하였다. 선지자들이 길을 다닐때 그들의 별명을 부르며 조롱한다든지 혹은 가능하면 그들을 자기들의 성읍에서 쫓아내는 것이 그들의 상투적인 행위였던것 같다. 만일 엘리사에게 행해진 욕설이 처음있었던 일이라면 그처럼 심하게 벌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하 36:16절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선지자를 능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중의 하나였다.
(1) 그러면 그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벧엘의 '젊은아이들', 즉 길에서 놀고있던 남녀아이들이 그를 보러나와서는 그를 둘러싸고 마치 그가 바보이기라도 한양 놀려대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23절). 그들이 모욕을 주고자 했던것은 선지자라고 하는 그의 특성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영예롭게 높이셨다는 사실은 충분히 그의 대머리를 가리울만하였고 그러한 조롱을 받지않도록 할만한 것이었다. 이아이들은 배운대로 말하였다. 그들은 특별히 선지자들에게 더러운 별명을 부르고, 욕설을 내뱉는, 우상을 숭배하는 부모들에게서 그런것들을 배웠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이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따라서 울었던 것이다.
(2) 이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능욕한 이스라엘에 마침내 임하게될 파멸의 전조로서 그것을 경고하기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엘리사는 한동안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조롱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드디어는 '돌이켜 저희를 보았다.' 이는 혹 근엄하고 엄한 표정을 지으면 그들이 당황해할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하나님께 행한 그불경을 벌하기위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던' 것이다. 그의 저주는 즉각 이루어졌다. 즉 두마리의 암콤이 수풀에서 나와서 그자리에서 42명의 아이들을 찢어죽였던 것이다(24절). 선지자는 분명히 정당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신의 감동에 의해서 그것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는 그아이들의 부모를 벌하고자 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하고자 했다. 자녀들에게서 위안을 얻고자하는 부모들은 그들을 잘 교육해야 한다. 우리가 교육을 태만히했던 자녀들에게서 선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일이며 막을수 있었던 불행에 대해서 비탄해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 핵심
2:1-25
엘리야의 승천과 그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된 엘리사의 첫번째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의 생도(2:3,5)
이스라엘에 처음 선지자학교가 세워진때는 사무엘시대였다(삼상 19:20). 엘리야 당시는 그때로부터 이미 200여년이 흐른뒤였지만, 여전히 선지자운동은 활발하게 계속되었다. 이들은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종교의 개혁을 주도했던 세력이다.
무자비하신 하나님(2:23-25)
“젊은아이”(23절)는 철부지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다자라 사리판단이 분명한 젊은청년을 가리킨다(비교, 창 41:12─당시 요셉의 나이는 30세였다). 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하다가 저주를 받아 죽은것은 일견 지나친 보복으로 생각될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의 조롱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당연한 심판의 결과였다.

# 묵상
스승에 대한 엘리사의 태도 ( 2:1-10 )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받고 스승을 따르기위해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할때에 자기들이 다칠까 염려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마26:56).
엘리야의 승천사건 ( 2:1-4 )
본문은 바알종교와 일생동안 투쟁했던 엘리야사역의 최종적인 완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또한 여호와신앙의 최종적인 승리와 하나님의 구속사의 궁극적인 성취를 예표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온세상의 죄와 싸워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일꾼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기쁨으로 성역에 동참케 하십니다. 성도들은 신앙선배의 삶을 통해 구속사역에 동참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하겠습니다(고전4:16).
엘리야에게 구한 엘리사 ( 2:9, 10 )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그의 요구는 더위대하기를 구한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따를만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신21:17).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가장좋은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고전14:1).
죽음을 보지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 ( 2:10 )
에녹,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사람은 사탄의 권세에 내버려두시지 않고 직접 자기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장차 영광스러운 주님품으로 성도가 승천하게 될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옷을 취함 ( 2:12-14 )
이는 엘리사에게도 그와같은 능력이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승천하신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행2:1-4). 주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의 영을 보내사 교회와 세계를 지키십니다.
엘리야의 몸 ( 2:15, 16 )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의 몸을 찾음은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서는 거룩한 하늘나라에 올라갈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면서 어느지점에 이르러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승천하고 육신은 마치 허물처럼 벗겨져 지상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변화하여 영광의 몸을 덧입은 사람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고전15:51-53).
하나님의 심판 ( 2:23-25 )
하나님은 어린아이까지도 당신의 의에 기준하여 심판하십니다. 또한 아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조롱했다는 것은, 그들의 가정교육상태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을 배반하고 욕하며 증오하면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어른과 같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 해설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사역 ( 2 )
엘리야는 아합에서부터 아하시야 재위기간동안 무수한 고난속에서도 의연하게 맡은바 사명에 충실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이제 본장에는 엘리야가 승천함으로써 비게될 그의 자리를 엘리사가 계승하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지도력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극적으로 승계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엘리야의 승천
1) 벧엘에 온 엘리야와 엘리사
자신의 맡은바 사명을 완수한 엘리야는 이제 자신이 이세상을 떠나야할 시점에 다달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의 제자인 엘리사도 감지할수 있었습니다. 벧엘북쪽의 길갈에 있던 엘리야는 승천하기에 앞서 선지자의 생도들이 있는 벧엘로 가고자 했습니다. 가기에 앞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길갈에 머물러있으라고 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와 떨어질수 없다고 결심한터였기에 엘리야의 명을 거역하고 엘리야의 뒤를 따랐던 것입니다. 결국 이 두사람은 함께 벧엘로와서 선지자의 생도들을 만났으며, 엘리야는 깊은 감회속에서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하였습니다. 물론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엘리야의 승천을 알고있었던 것입니다.
a.예배와 희생의 장소인 벧엘(삼상10:3)
b.우상숭배 장소인 벧엘(왕상12:28-29)
2) 여리고에 온 엘리야와 엘리사
벧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난 엘리야는 다시금 엘리사에게 이곳에 머물라고 제의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사는 정중히 거절하면서 충성을 다해 엘리야를 섬기며 함께 동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다시 두사람은 함께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생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 있는 생도들도 벧엘의 생도들과 마찬가지로 엘리야의 승천을 알고선 이를 엘리사에게 알고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알고있으니 잠잠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편 엘리야는 요단을 향해가면서 똑같은 요구를 엘리사에게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역시도 똑같은 대답과 행동을 취하면서 요단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a.여리고성에 대한 저주(수6:26)
b.여리고에서의 죽음(왕상16:34)
3) 승천하는 엘리야
요단강 기슭에 도달한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그것을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겉옷으로 요단강 물을 쳤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요단강물이 갈라지고 강바닥이 말라서 두사람은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널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출애굽당시 홍해가 갈라졌고, 또한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넜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동일하게 임하심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하라고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계승자로서 사역을 감당할수 있는 영감을 갑절로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엘리야의 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신의 승천을 엘리사가 볼때에 이요구가 이루어지리라 말하였습니다. 이러던중 갑자기 하늘로부터 불수레와 불말이 다가와 두사람을 격리시키더니 회리바람이 엘리야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리하여 엘리야는 에녹이후 두번째로 육신의 죽음을 보지않고 영광스럽게 승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a.겉옷을 던진 엘리야(왕상19:19)
b.불수레와 불말(왕하6:17)
2. 엘리사의 능력
1) 요단강을 가르는 엘리사
엘리야의 승천을 직접 목격한 엘리사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영적인 아버지요 스승인 엘리야와의 이별도 가슴아픈 일이었고, 이제 엘리야의 뒤를이어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책임또한 엘리사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엘리야의 계승자로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승천할때 벗겨진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여 요단강물을 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했던것처럼 요단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이로써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a.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수3:17)
b.나아만이 고침받은 요단강(왕하5:14)
2) 엘리야를 찾는 무리들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들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엘리야의 모습과,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는 모든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이은 영적지도자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엘리사 앞에와서 땅에 엎드려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먼곳으로 옮겨졌으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사에게 엘리야를 찾기위한 수색대를 보내도록 간청하였습니다. 엘리사는 필요없는 일이라 말렸으나 이들이 하도 간청하기에 수색대를 보내 찾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수색대들은 3일동안 엘리야를 찾았으나 헛수고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엘리사의 말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욱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왕상19:19)
b.지도자에 대한 존경(히13:17)
3. 엘리사가 행하는 이적들
1) 물을 정켤케하는 엘리사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영적지도자로 엘리사가 세워졌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곳 여리고의 가장 큰문제인 좋지않은 물문제를 엘리사에게 가져왔습니다. 엘리사는 물의 근원지로 가서 소금을 뿌리는 상식밖의 일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물에 소금을 넣으면 더나빠지는게 상식적인 일인데 놀랍게도 소금을 넣었더니 물이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은 지금까지 바알을 섬기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새삼 깨닫도록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울러 엘리사의 선지자적 정통성을 만방에 알리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a.소제물에 뿌리는 소금(레2:13)
b.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창19:26)
2) 저주받은 젊은아이들
엘리사는 여리고를 떠나 벧엘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벧엘은 여로보암이래로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엘리사가 길을 가고있는데, 젊은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하면서 엘리사를 조롱하였습니다. 이 젊은아이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를 무시하고 있었고, 자연히 여호와의 선지자인 엘리사에 대해서는 경멸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들을 저주하였습니다. 비록 어린나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무례한 태도는 용서받을수 없는 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저주로 암콤이 나타나 이들중 42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젊은아이들의 죽음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상을 숭배한 그들부모들에게 임한 형벌이기도 하였습니다.
a.포로를 대머리로 만듦(신21:12)
b.심판의 상징인 대머리(사3:24)
결론
엘리야의 승천과 함께 엘리사라는 새로운 영적지도자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처럼 요단강을 가르는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과 함께함을 확신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이제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암흑기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과 동거동락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사명자의 첫발을 힘차게 내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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