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여호람의 통치 3:1-5
여기서 아합의 아들이자 아하시야의 형제인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다. 비록 그가 악한사람이긴 했으나 그에 대해 칭찬할만한 일이 두가지 기록되어 있다.
(1) 그는 자기아버지의 우상을 없앴다. 그는 여러가지 악을 행하였으나 아버지 아합이나 어머니 이세벨같지는 않았다(2절). 아마도 여호사밧이 아합의 집과 동맹을 맺은것이 그자신의 가문을 욕되게 하긴했으나 아합의 집을 개선하는데에는 어떤영향을 미쳤던것 같다. 여호람은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숭배하고 그의 선지자들과만 상의하기로 결의하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다'(2절). 그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합가문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다.
1) 그는 단지 '그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을 뿐이었다. 그는 백성들사이에 만연해있는 바알숭배를 제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후때에 가서야 이루어졌다(10:19). 자기집을 개혁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개혁시키는 일에 자신의 권력을 사용했어야 했다.
2) 그는 바알의 주상을 없애고 여로보암이 정책적으로 저지른 죄인 금송아지의 숭배를 좇았다(3절). 저가…그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는 그것에 의해서 두지파와의 분리가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진실로 돌이키지 않는자들은 단지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죄를 떠날뿐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죄에 대해서는 계속 애착을 가진다.
3) 그는 단지 바알의 주상을 치웠을뿐 반드시 그것을 파괴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않았다.
(2) 그는 자기형제 아하시야가 잃은것을 할수 있는한 회복하려고 힘썼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에 대해 그의 아버지보다 더훌륭하였듯이 왕의 면모에 있어서도 그의 형 아하시야보다 더훌륭하였다. 모압은 아합이 죽자 곧바로 이스라엘을 배반했었다(1:1). 그리고 우리는 아하시야가 그들을 징벌하기 위한 어떤시도라도 했던것을 보지못했다. 모압왕이 바친 공물은 이스라엘왕의 수입으로는 매우 상당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새끼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이었다(4절). 그당시 세금은 돈보다는 그지방의 특산물로 바쳤다. 모압의 배반은 이스라엘에게 대단한 손실이었다. 그런데도 아하시야는 나태하고 안이하게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나 궁전의 다락이 험준한 산만큼이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1:2). 결과적으로 난간의 무너짐은 왕좌에, 그보다 더뛰어나고 활동적인 자를 앉게해 주었다.
Ⅱ. 세왕이 모압을 치러감 3:6-19
여호람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 모압을 진압하려 한다.
(1) 이원정을 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왕 여호람과 유다왕 여호사밧이 서로 협력을 한다. 여호람은 군대를 소집하고(6절) 유다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에게 협력을 구한다.
1) 그는 여호사밧을 설득해서 그의 동맹자가 되게한다. 당신은 나와 함께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7절). 이렇게해서 그는 여호사밧을 끌어들였다. 유다와 이스라엘, 이 둘은 비록 불행하게 서로 나뉘어 있었지만 공동의 적인 모압을 치기위해 하나가 될수 있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을 자매국가처럼 대하였다. 마음속으로 옛날의 상처를 잊지못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서로의 평화와 힘을 위한 친구가 될수 없다.
2) 그는 여호사밧과 신뢰할만한 친구로서 서로 의논하였다(8절). 그는 자기보다 더지혜롭고 경험많은 여호사밧에게 모압을 치기위해서 어느길로 가야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그들을 치기위해 가장 가까운 길인 요단을 건너 행군해서는 안되며 '에돔광야 길'로 둘러가야 한다고 일렀다. 이는 유다에게 공물을 바치는 에돔왕을 설득하여 자기들과 합세케 하기 위해서였다.
(2) 이 원정중에 동맹군은 큰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적과 대면하기도 전에 물이 모자라 전멸될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9절). 이스라엘왕은 현재 처한 곤경과 임박한 위험을 몹시 애통해 하였다. '이 세왕을 불러 모을'자는 바로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으며 현재상황을 몰인정한 처사로 여기고 있다.
(3) 이 위급한 상황속에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묻자는 선한제안을 한다(11절). 그들이 지금 있는장소는 그들에게 선조들로부터 전해오던 이적을 어쩔수 없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즉 그곳은 바위로부터 물을 낸 장소였다. 추측컨대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여호사밧으로하여금 이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묻게끔 고무하였을 것이다. 여호사밧이 이제 여호와께 물으려 했다는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길을 행하기전에 그리했더라면 더좋았을 뻔하였고 만일 그랬더라면 이러한 곤경은 막을수 있었을 것이다.
(4) 엘리사가 그들이 의논할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추천되었다(11절). 엘리사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즉 하늘로부터의 특별한 지시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왕의 신복중 한사람이 왕도 모르고 있을때 엘리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는 아합왕 시대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던 오바댜같은 자였을 것이다. 엘리사는 왕이 아닌 그러한 사람에게 자신을 알게하였다.
(5) 왕들이 엘리사에게 간청한다. 그들은 직접 엘리사가 있는곳으로 내려갔다(12절). 스스로를 낮춘 그는 이와같이 높여졌으며 크게 되었다. 즉 세왕이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였던 것이다.
(6) 엘리사가 그들을 맞는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1) 사악한 이스라엘왕에게는 매우 직선적이었다. "내가 당신과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13절). 그들은 당신이 잘될때에 당신을 지지하던 자들입니다. 이제 그들로하여금 곤경에 처한 당신을 돕게 하십시오. 당신을 지배하는 이세상과 육신으로하여금 당신을 돕게 하십시오. 어찌하여 하나님께 물으려 하십니까?"(참조. 겔14:3) 엘리사는 그의 사악함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그를 마주하거나 보고싶지도 않다고 맞대놓고 말한다(14절). 왕으로서 여호람은 존대받아야할 자이고, 엘리사는 신하로서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할 것이나 선지자로서 그는 왕으로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여호람은 이 가혹한 대우를 잘 참아낼만큼 자제력이 있는 자였다. 그는 지금 바알선지자들에 관한 말을 듣고자 하는것이 아니고 매우 통탄할만한 현재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드러내놓고 그처지를 선지자의 동정어린 배려에 겸손하게 내어맡기는 탄원자인 것이다. 그는 자신을 무가치한 자로 인정하였지만 다른왕들이 자기때문에 파멸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2) 유다의 경건한 왕에게는 큰존경을 표했다. 따라서 엘리사는 '그의 낯을 보아서' 즉 그로인해서 그들 모두의 문제를 여호와께 물었다.
3) 엘리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시하심을 받기위하여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잠시 흥분한 것으로인해 기도가 되지않아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그는 거문고를 타며 시를 노래하는 경건한 악사 한사람을 청했다. 이 거룩한 음악에 의해서 엘리사의 심신이 새로와지고 그의 마음의 격정이 가라앉게되자 여호와의 손이 그에게 임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세왕이 찾아온 것보다 그를 더욱 존귀케 해주는 것이었다.
4)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서 현재 그들이 처한 곤경이 잘해결될 것이며 또한 영화롭게 될것임을 확신케 해주셨다.
① 그들은 즉시 물을 공급받게될 것이다(16,17절). 그들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기위해서 그는 '이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명한다. 엘리야는 기도로 구름으로부터 비를 내렸지만 엘리사는 아무도 알지못하는 곳에서 물을 끌어내고 있다. 이물의 근원은 나일강의 수원만큼이나 비밀한 곳에 있었다. 하나님은 제2의 원인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산업을 견고케하시는' 것은 대개 흡족한 비를 통해서(시68:9)이나, 여기서는 비없이, 적어도 이곳에서만은 비없이 행하셨다.
② 물의 공급은 승리의 징표가 될것이다(18절).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일이라. "당신은 단지 멸망할 자리에서 구원받을 뿐만아니라 승리를 얻고 돌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그반역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될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Ⅲ. 이스라엘 연합군의 승리 3:20-27
1. 양편의 전쟁(20-25)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약속하신 물과 승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을 보게된다. 더우기 물은 승리의 징표일뿐만 아니라 그수단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1) 그물은 거의 전멸할뻔했던 군대를 살려냈다(20절). 이구원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에서 아침소제를 드리는 시간에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잘 상당될만한 어느특정한 시간을 정할수는 없다.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항상 우리를 위해 그의 희생제물을 드리며 간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시되어온 매일의 제사시간을 귀하게 하기위해서 그시간을 축복의 시간으로 정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녁소제를 드릴때 즈음'에 다니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단9:21).
(2) 적들은 에돔광야를 가로지르는 오랜 행군으로인해 지친 동맹군과 싸우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며, 자만하여 거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1) 그들은 쉽사리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첫째, 그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골짜기에 물이 있는것을 보았으며 그것을 피로 착각했다(22절). 왜냐하면 그들은 골짜기가 마른것을 이미 알고있었기 때문에 설마 그것이 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해가 떠올라 그것을 비쳤는데 아마도 하늘이 붉었고 날씨가 좋지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물이 붉게 보였고, 결국 그들은 '이는 피라'고 믿었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즉 만일 그들의 진영이 이와같이 피가 가득하다면 필경 그들은 '서로 죽인것'(23절)이며 왕들은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모압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23절).
2) 운명적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멸망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경솔하게도 이스라엘의 진영을 약탈하기 위해서 쳐들어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은것을 알았을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사가 승리를 확인시켜 준것에 힘을 얻어 강력하게 그들을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영토에까지 추적을 해서(24절). 그땅을 황무케했으며, 성읍들을 파괴하고 우물을 메우고 나무를 베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단지 왕성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것마저 파괴하는 장비를 사용하여 성벽을 무너뜨렸다.
2. 모압왕의 최후의 발악(26,27절)
우리는 본장의 마지막인 이대목에서, 마지막 정복될 위기에 처한것을 안 모압왕이 어떤일을 행했는가 하는것에 대해 보게된다.
(1) 그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일을 시도했다. 즉, 그는 특별히 뽑은 칠백명을 거느리고 에돔왕의 진지를 급습하였다. 그의 생각에 에돔왕은 대가를 바라고 이원정에 출정하였기때문에 만일 세차게 공격한다면 크게 버티지 못할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되면 그길로 도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되지 않았다. 에돔왕조차 그에게는 너무 벅찬 상대여서 그를 물러나게 할수가 없었던 것이다(26절).
(2) 이것이 실패하자 그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짓을 행했다. 즉, 그는 자기의 아들, 곧 자신과 백성들에게 가장 귀한자인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될 맏아들을 취하여 그를 '성위에서 번제로 드렸다'(27절). 그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일을 행한 것이었다. 자기의 신 그모스의 은총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신은 피와 살인, 그리고 인간의 멸망을 기뻐하는 마귀였다. 포위한 자들을 두렵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제사를 '성위에서', 즉 그들이 보는앞에서 행했다. 이는 그가 항복하기보다는 지키기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싸울것인가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성과 생명을 내어주는 값을 얼마나 비싸게 요구할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 핵심
3:1-27
여호람의 통치와 모압의 반란에 대한 진압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나무를 베리라는 예언(3:19)
엘리사의 예언이 가나안땅의 과목을 베지말라는 신 20:19,20절의 말씀에 어긋난다는 점을 근거로, 이예언이 참된 계시라기보다는 엘리사의 민족주의적인 신념에서 나온것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모압땅은 엄격한 의미에서 가나안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은 본장 24,25절이 보여주는대로 정확히 성취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하였다.
# 묵상
여호람의 개혁 ( 3:1-3 )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로 아하시야와 형제입니다. 그는 바알의 주상은 제하였지만 악한길에서 돌이키지는 않았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그의 전인격과 삶의 완전한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지음받은 새피조물이기에 옛것은 완전히 버려야합니다(고후 5:17).
위험에 처한 두사람 ( 3:8-12 )
곤경에 처한 두왕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입니다. 여호람은 절망에 빠져 곤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원망했고,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뜻을 알기위해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신앙은 어려움이 닥쳐올때 그힘을 발휘하며 그속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욥5:17; 벧전1:7).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어려움에서도 결코 굴하지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담대한 신앙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곤경속에서의 하나님 ( 3:13-20 )
하나님을 의지할때만이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수 있습니다. 연합군이 물이 없어 난처해 할때, 엘리사는 여호사밧에 대한 배려로 물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오직 구원자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세상에 구원을 줄만한 다른이름은 없습니다(행4:12).
대리구원 ( 3:14 )
구약에서는 종종 다른사람을 통해 구원이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창19:29).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보여주기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서 구원은 개인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대리구원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믿는이들의 역할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갑옷 입을만한 자 ( 3:21 )
전쟁에 참전할만한 자라는 뜻으로, ‘싸움을 예비한 자’, ‘방패와 창을 함께한 자’라는 유사한 표현들이 있습니다(대상12:24, 34).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에 참전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을 남자의 고유한 존재가치로 보았습니다. 한편 성도의 고유한 존재가치는 하나님나라 건설에 적극 동참하고, 또 사탄과의 영적전투에 부름받아 열과 성을 다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딤후1:8; 2:3, 4).
전쟁승패의 주관자 ( 3:26 )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삼상17:47). 이세상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한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인간의 힘과 지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모든 사건들과 인격들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위기가 닥쳤을때 기도해야 합니다(시50:15).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제사 ( 3:27 )
번제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제사로 제물로는 소나 염소 등의 동물을 드립니다(레1장).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계십니다(레18:21).
# 해설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는 엘리사 ( 3 )
엘리야의 선지자직을 승계한 엘리사의 위대한 사역이 본문속에 계속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리고와 벧엘등지에서 이적을 행하고 사마리아에 돌아온 엘리사에게 여호람왕이 찾아옵니다. 이왕은 모압정벌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완승을 예언합니다. 엘리사는 이제 민족을 위한 공적인 사역에도 힘쓰게 되는 첫출발을 하게된 것입니다.
1. 여호람의 모압정벌
1) 여호람의 이스라엘통치
아하시야왕이 죽고, 그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는 아하시야의 동생이자, 아합의 둘째아들인 여호람이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의 결과로 심판을 받아 죽게된 아하시야를 목격하였기에 부분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악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도 훼파시켰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이 펼쳤던 종교정책을 계속하여 이어받았기에 완전하게 죄악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습니다.
a.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왕하1:17)
b.바알의 우상을 훼파(왕하10:26-27)
2)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
모압은 오므리때에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모압족속은 많은 양들과 양털을 이스라엘에 조공으로 바쳐왔습니다. 그러던중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즉위하자, 모압왕인 메사는 이스라엘을 배반하여 스스로 독립코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호람은 이러한 모압족속을 징벌해야하는 사명감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는 이를위해 유다의 여호사밧에게 원조를 부탁하여 동맹군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에돔족속은 이스라엘의 속국이었기에 이동맹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을 징벌하기위해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족속이 힘을 규합하였던 것입니다.
a.롯의 자손인 모압족속(창19:36-37)
b.모압의 배반(왕하1:1)
3) 낙심에 잠긴 여호람
모압을 징벌코자 함께모인 동맹군들은 에돔광야를 통하여 공격하기로 하고 그쪽으로 행군하였습니다. 그런데 행군한지 7일만에 먹을 물이 다떨어져 버렸습니다. 행군길에 물이 없다는 것은 다시말해 행군을 할수 없다는 말이고, 모압정벌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전주곡과도 같은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여호람은 낙심에 잠길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실망에 잠기기보다는 주의 선지자를 찾아 여호와의 뜻을 물어보아야 한다고 희망적인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때 여호람의 신하중 한사람이 엘리사를 소개합니다. 여호사밧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찾아가자고 제안을 하였고, 이에 세명의 왕이 함께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a.여호수아의 낙심(수7:7)
b.여호와의 선지자(왕상22:7)
2. 엘리사의 승리예언
1) 여호람과 대면한 엘리사
여호람을 위시한 세명의 왕이 엘리사앞에 당도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여호람을 보자마자 당신의 부친이 믿던 바알신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하라는 가시돋힌 말을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람에게 바알신의 무력함을 강조하면서 바알신 숭배에서 떠나지않는 여호람의 죄악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호사밧을 보아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a.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함(왕하5:16)
b.거문고 탈 자(삼상10:5)
2) 승전을 예언하는 엘리사
엘리사는 먼저 특별하신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해주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동시에 모압에 대해 이스라엘 군대가 완승을 거두리라는 승전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군대가 모압의 좋은나무를 베고, 모든 샘들을 틀어막고 밭에 커다란 돌들을 놓아 모압인들의 생활환경을 무참히 파괴시키게 될것이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속에는 살아계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로 깨닫기 원하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신 사랑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a.견고한 성읍을 황무케 하심(사25:2)
b. 물의 심판(계17:1)
3. 이스라엘의 완승
1) 착각에 빠진 모압군대
모압의 군대들은 이스라엘 동맹군들의 공격소식을 접하고 철통같은 수비태세를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계곡으로부터 붉은피가 흘러내려 오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압진영에서는 생각하기를 3개국의 연합군이 서로 불화를 일으켜 서로 살육을 했을것으로 판단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미 전쟁은 끝난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전리품이라도 취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본 피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로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행하신 물이었던 것입니다. 모압군대는 한번도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못보았기에 그만 착각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전쟁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전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a.악인들의 착각(신32:27)
b.여호수아의 착각(수9:15)
2) 처절하게 패배한 모압
착각에 빠져 적진을 향해 돌격한 모압군대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연합군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하였습니다. 기세가 오른 연합군들은 모압을 침략하여 많은사람들을 죽이고 엘리사의 예언대로 나무와 샘, 그리고 밭 등을 황폐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모압의 가장 주요한 성이라 할수 있는 길하레셋은 빼앗을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은 사해남단 동쪽의 계곡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강력한 성읍이었고, 저항도 거셌기에 정복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a.모압에 관한 경고(사15:1)
b.모압의 슬픔(렘48:31)
3) 이스라엘의 완승
모압의 메사왕은 길하레셋에 은신하고 있다가 동맹국들중 가장 약하다고 생각한 에돔을 향해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자 메사왕은 자신들의 민족신인 그모스신이 자신들에 대하여 진노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메사왕은 그모스신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자신의 맏아들을 성위에서 인간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메사왕의 행위를 보고서 동맹군들은 모압에서 철수하여 각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비록 길하레셋을 점령치 못하였고, 메사왕을 사로잡지는 못하였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로 완승을 거두게된 것입니다.
a.모압의 죄(암2:1)
b.맏아들을 제물로 드림(미6:7)
결론
이스라엘과 모압과의 싸움은 우상숭배의 허구성에 대조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앞으로 더욱 나아갔습니다. 한편 완승에 대한 예언의 성취는 엘리사의 선지자적 위상을 이스라엘 민족위에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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