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제사장 에스겔에게 환상이 임함 1:1-3
에스겔이 보았고 또 그가운데서 사명을 위임받았던 환상에 대한 상황설명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기록이 사실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에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는가를 기록해두는 것은 대단히 쓸모있는 일이다.
(1) 에스겔이 이환상을 본시기는 '제삼십년'이었다(1절). 어떤사람들은 이 삼십년이라는 말이 에스겔의 나이 삼십세 되는해라고 생각한다. 즉 에스겔이 한사람의 제사장으로서 제사장직을 완전히 수행할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때라고 생각한다. 다른사람들은 이 삼십년이 느부갓네살의 부와 나보폴라살의 재위 삼십년째 되는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대아역본에는 다른시대로 봐서 '요시아왕 시절에 한밤중 달이 뜬후에 제사장 힐기야가 성소에서 율법서를 발견한 해로부터 삼십년째 되는해'라고 말하고 있다. 에스겔이 이환상을 본때는 6월에 해당하는 사월 오일이었다(2절). 이날은 아마도 안식일이었던것 같다. 이는 3장 16절에 칠일의 마지막날(한글개역은 '칠일후'-역주) 즉 다음 안식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그에게 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존귀케 하셨을때 그는 음울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발강가 사로잡힌자 중에 있더니...여호야긴왕이 사로잡힌지 오년 그달 오일이라.
1) 당시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많은사람들이 갈대아인들의 땅에서 포로가 되어있었다. 유대국가의 몸체는 여전히 유대땅에 존속하고 있었지만 이사람들 초기에 포로가 된것이다. 이들중에는 매우 우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교훈의 말과 시정의 매는 서로서로 보완해가며 우리에게 큰도움을 준다. 교훈의 말은 매의 까닭을 설명해주며, 매는 훈계를 보강하여 주는것이고 이둘은 공히 지혜를 가져다준다. 그들이 포로있는 동안에는 그들 심령을 위한 일반은총이 결핍될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특별은총을 그들에게 베푸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막히게 되면 다른방법으로 교육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조국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예레미야가 있었으며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는 에스겔이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흩어져있는 어느곳에서나 하나님께서는 마땅한 선생님을 세워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선지자는 그발강가의 포로들가운데 있었다. 성경학자들도 이 그발강이 어떤강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가장 선량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들이라할지라도 죄악때문에 당하는 공적심판, 혹은 국가적인 심판을 함께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죄악을 전혀 짓지않은 사람들도 그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자기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같이 슬픔을 나누는 사람의 훈계는 잘 받아들일 것이다. 어느곳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할수 있다. 사도바울이 갇힌자가 되었을때도 복음은 자유로이 갈길을 갔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폐되어 있었을때 그리스도께서는 그곳까지 그를 방문하셨었다.
(3)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여기에서 선지자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바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1절). 하나님을 직접보고 살아남아 있을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상, 곧 교훈을 주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시는 많은사람들이 볼수 있었다. 에스겔의 임무는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일이었으므로 하나님의 이상을 보아야만 했다. 그러한 일을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 감동된 사람들, 즉 다른사람들을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가 그이상을 볼수 있도록 '하늘이 열렸다'. 즉 그가 그이상을 가리고 있던 흑암의 격의(distance)가 물리쳐진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3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분명하게 임하였다. 그리고 그가 본것은 앞으로 들을내용을 위하여 그를 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말씀', 곧 본질적인 말씀이요(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자체가 말씀이신 그분이 에스겔에게 사명을 주어 보내시기 위하여 임하셨다.
3) 환상을 보도록 두눈을 여시고 말씀을 듣도록 두귀를 여시며 그모두를 깨달을수 있도록 마음을 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그는 느꼈다.

Ⅱ. 네생물의 환상 1:4-14
이환상의 모습과 의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지자가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보다 높고 존귀한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선지자가 보고있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28절)이었다. 이와같이 크신 하나님은 경건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섬김을 받으심이 마땅하다.
둘째, 시온에 남아있거나 이미 바벨론에 잡혀왔으나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는 죄인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환상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은 43장 3절로 미루어보아 분명히 알수 있다.
셋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권능의 손아래 자기를 낮추는 자들에게 위로를 말씀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비록 바벨론에 잡혀와 포로의 신세가 되어있지만 하나님께서 저들과 가까이 계심을 알릴지니라. 즉 성소가 저들에게 없지만 성소의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계심을 알릴지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이방땅에 세워져 있는때라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세우셨을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의 한가운데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 환상의 첫번째부분은 하나님의 일꾼인 수많은 천사들이 명령을 이행하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면서 하나님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시중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1) 천사들에 대한 이환상이 도입은 장엄하며 눈이 번쩍뜨이게 한다(4절). 선지자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바라다 보았다. 그가 보니 앞에 가리우고 있는 안개를 내몰듯 길을 훤히 내기위하여 '북방에서부터 폭풍이' 몰려왔다.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사용하시사 하늘과 공기를 깨끗케하시며 우리가 하늘과 교제를 나누기에 필수적인 마음의 청아함을 주실수 있다. 이폭풍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위하여 에스겔에게 다가왔다(엘리야에게도 이일이 일어났었다, 왕상 19:11).
(2) 환상의 내용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안식하고 계시는 궁창, 즉 하나님께서 타고다니시는 병거는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시 18:11;104:3)이다. 구름에는 불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구름사이에 거하고 계셨던 시내산 정상에도 불이 나타났었다. 그여호와의 영광은 '맹렬한 불'과 같았다(출 24:16,17). 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셨을때에도 불타는 떨기나무의 불꽃가운데 나타나셨던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시는 불이시기 때문이다. 그불은 영광으로 둘러싸여 있다. 빛이 그사면에 비취며(4절). 우리가 비록 그 불속을 들여다보지도 못하며 완전하게 하나님을 발견할수도 없으나 그 불주위에 밝은빛은 볼수 있다. 모세도 하나님의 등을 볼수 있었지만 얼굴은 뵙지 못하였었다. 하나님을 느끼기는 매우 쉽지만 그분이 어떠하시다라고 묘사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불가운데에서 나온 생물들은 스랍(태우는 자)들로서 실제로 생물이 아니고(천사는 영이기때문에 볼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인도하시기에 적절한 형상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 불가운데...에서 네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이환상에 대하여는 선지자가 직접 해설해놓은 부분이 있다. '그들이 그룹들인줄을 내가 아니라'(참조. 겔 10:20). 그들은 생물, 곧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손으로 직접 만드신 것들이었다. 태양은 불덩어리로 둘러싸인 화염이지만 생물은 아니다. 선지자는 그들이 하늘의 사방으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것임을 깨달았다(참조. 마 24:31). 스가랴는 동서남북을 향해 나아가는 네대의 병거를 보았다(슥 6:1). 하나님께서는 세상사방에 보낼 심부름꾼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이들은 이성과 지성을 갖추었고 여호와의 등불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의 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자들 즉 천사들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나타난다. 이는 때라 이르렀을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그형상으로 나타나실 뿐만아니라 그러한 속성도 지니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네생물 모두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있었다(5절). 그러나 그외에도 사자, 소, 독수리의 모양을 하고있었다. 이들은 각각 종류별로 가장 뛰어난 것으로서 사나운 짐승에서는 사자를, 유순한 짐승가운데에서는 소를, 날짐승가운데에서는 독수리의 모양을 하고있었다(10절). 지상의 생물들이 가지고있는 부분적인 완전함이 하늘의 천사에게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천사들은 사람의 명철을 갖고있으나 실상은 훨씬 능가한다. 천사들은 또한 부드러움과 인간성에 있어서 사람과 비슷하다. 사자는 그힘과 용감함에 있어서 사람을 능가한다. 따라서 이점에 있어서 사자와 비슷한 천사들은 사자의 얼굴을 하고있다. 소는 자기가 해야할 일을 수행하는 근면과 끈기에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는 천사들은 소의 얼굴을 하고있다. 독수리는 날렵함과 꿰뚫는듯한 눈길, 치솟는 그높이에 있어서 사람들을 능가한다. 따라서 위에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깊은신비를 멀리까지 보는 천사들은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있는 것이다. 각각 네얼굴과 네날개가 있고(6절). 신앙과 소망은 영혼의 날개로서 영혼은 그날개로 치솟아 오른다. 또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랑은 앞으로 전진해 나아갈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날개이다. 그들의 날개는 완전한 연합과 일치를 표시하기 위하여 연결되어 있었다(9-11절). 그들의 날개중 두개는 그들의 몸 즉 그들이 입고 있던 영의 몸을 덮는데 사용하였다. 그들의 다리는 곧았다(7절). 즉 그들은 바르고 확실하며 굳건하게 서있었다. 그들의 발은 날아다녔다(70인역은 이렇게 되어있다). 즉 그들은 너무나 신속하여 마치 날아다니는것 같았다. 그들은 움직이기 위한 손도 가지고 있었다(8절). 그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그손은 봉사를 하기에 적합하도록 놀랍도록 잘 만들어졌고 이성과 명철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송아지의 발은 그들의 동작이 신속함을 의미한다. 그생물들은 활동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봉사해야할 일이 있으면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였다(9,10절). 만약 우리의 눈이 이와같이 단하나라면 우리의 몸전체는 빛으로 가득하게될 것이다. 눈이 하나라는 이야기는 마음의 진실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사람들은 일제히 자기의 일을 향해 앞으로 곧게 나아갈뿐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행할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9,12절). 그것들의 마음은 분산되는 법이 없었다. 그것들은 돌이키지도 아니하였으며, 옆으로 비키지도 아니하였다. 신이 어느편으로 가려면 그생물들이 그대로 가되(12절). 하나님의 신이 가라고 하는곳으로 그것들은 나아갔다. 선지자는 그생물들을 그것들 자체의 빛으로 말미암아 보게되었다(13절). 그것들은 마치 불타는 '숯불'같은 모양이었다. 선지자는 '그 생물들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매우 밝은 불을 보았는데, 그빛으로해서 생물들을 볼수 있게 되었다. 광명의 천사들은 언제나 빛가운데 있으나 우리는 그들과 그들이 행하는 일들을 등불에 의해서 즉 그들사이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등불의 희미한 빛에 의해서 볼수 있을 뿐이다. 날이 밝고 어둠이 사라지는 날이오면 그때 우리는 그들을 분명하게 보게될 것이다.

Ⅲ. 하나님의 병거 1:15-25
1. 바퀴의 환상(15-21)
하나님의 영광은 윗세상의 광채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결같이 통치하고 계시는 여기 이 아랫세상에서도 나타난다. 선지자가 그생물들을 바라보고 그영광을 바라보고 있을때, 이환상이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시행되는 방식들이 여기에서는 바퀴들, 즉 병거의 바퀴에 비유되고 있다. 바퀴는 그생물들같이 제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움직일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바퀴들이 그생물들 곁에 있다고 기룩되어 있다. 생물들과 바퀴사이에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함께 움직이고 함께 멈춘다. 생물들이 움직이면 바퀴가 그곁에서 함께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일을 하실때에는 제2의 원인들 즉 부수적인 것들이 모두 그일을 돕게끔 하신다. 만일 그생물들이 땅에서 위로 올라가면 즉 자연의 추세를 뛰어넘어 어떤일을 하려한다면, 바퀴도 그생물들과 함께 움직여 그뒤를 따라 올라간다(19-21절). 그까닭은 그 '생물의 신'이 바퀴에 있기 때문이었다. 즉 천사들을 이끌고 통어하시는 하나님의 지혜, 권능, 성결이 아랫세상에 있는 피조물들의 모든 움직임도 똑같이 규율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영혼으로서 윗세상과 아랫세상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시사, 마치 육체의 상체와 하체가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듯,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운행하도록 하신다. 그리하여 '어디든지 신이 가려하면'(즉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원하시고 뜻하신 것이면 무엇이든지) '생물의 신'도 그곳에 가도록 하신다. 바퀴는 각기 네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네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쓰여있다(15절).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동서남북 어느쪽에서도 행사되며, 가장 멀리있는 구석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 에스겔은 그것을 하나의 바퀴 곧 하나의 구체로 보았다. 그러나 곧 그것이 네개이면서도 모두 같은모양을 하고있음을 알았다(16절). 이것은 다양한 사건이 한가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나타내준다. 바퀴들의 형상과 구조는 '황옥'같았다. (어느역본에는 '다시스의 색깔'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바다색을 의미한다). 이세상 만물의 본성은 바다와 같다고 할수 있다. 즉 끊임없이 유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고 밀려나가듯, 섭리도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우리의 안목은 좁아 전체를 보지못하고 극히 일부밖에 보지못하기 때문에 하늘이 푸르게 보인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수가 없다(전 3:11).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심히 세미한 소리'밖에 들을수 없으므로(욥 26:14) 그너머에 있는 모든것을 단지 푸르게만 보일 뿐이다. 그행사는 우리가 볼수 있는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그형상과 구조는 바퀴안에 바퀴가 있는것 같으며. 이것은 감히 수치적으로 묘사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방법은 언뜻 보기에 복잡하고 난해하며 헤아릴수 없는듯이 보이지만 결과를 보면 모두 지혜롭고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었음을 알게될 것이다. 이바퀴들의 동작은 변동이 없고 지속적이다. 행할때에는...돌이키지 않고 행하며(17절). 이는 그바퀴들이 결코 일을 그르치는 적이 없을것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면전에서 일을 처리하시며 계속 진행시키신다. 심지어 우리가 보기에는 뒤로 후퇴하는 것같이 보일때라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바퀴들은 신이 지시하시는대로 행하기때문에 돌이키는 법이 없다. 만일 우리가 오로지 신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의 지시를 따른다면 뒤로 돌이키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 것이고 어긋난 길로 갔을때라도 회개함으로 다시 바른길로 향하게될 것이다. 생명의 신('생물의 신'을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이 바퀴가운데 있어서 바퀴들을 용이하고 평탄하게 움직였다. 바퀴주변에는 '눈'이 가득하였다. 이말은 하나님의 섭리는 무한한 지혜로 일일이 지시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만물의 결국은 눈먼 운수, 즉 행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온땅을 두루다니시며 모든장소에 거하시면서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 여호와의 눈동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2. 생물들의 머리위에 있는 궁창(22-25)
선지자는 그생물들의 머리위에 궁창이 있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하늘아래서, 즉 하늘의 감시와 영향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정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그는 그궁창의 광대함과 밝음으로인해 크게 놀라 심히 큰경외심을 갖게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궁창위 지극히 높은곳에 계시며 천사들은 궁창아래에 있다. 이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는 또한 천사들의 날개짓소리를 들었다(24절). 이는 선지자로하여금 하나님께서 궁창에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소리였다(25절). 선지자는 궁창에서 나오는 소리, 즉 보좌위에 좌정하신 이로부터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25절). 무감각한 세상을 일깨워 놓은뒤에 천사들은 깊은 고요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보다 잘들리도록 하기위하여 '날개를 드리웠다.' 하나님께서 미리 섭리하시는 이유는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Ⅳ.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1:26-28
에스겔이 본 환상의 다른부분들은 이부분에 대한 서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수 있다. 다른부분들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천사들의 주시오, 이 아랫세상의 제반사에 대한 최고의 주재자로 나타내셨었다. 지금 선지자에게 신성한 계시가 주어지고 있다. 우리는 생물들이나 바퀴들보다 더 위의 것들을 바라야하고 영원한 말씀이신 분으로부터 계시받기를 소원해야 한다. 에스겔은 궁창에서 음성이 들려오자, 사도요한이 그랬듯이 자기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쳐다보고 저기에서 '인자같은 이'를 보았다(계 1:12,13). 선지자가 본 그리스도의 이 영광은 생물들의 머리위에 있던 궁창의 위에 있었다(26절). 구세주가 성육신하기 이전에 가지셨던 이 엄위과 권세는 성육신하시고 난후의 그의 겸손을 훨씬 돋보이게 하고있다. 그가 처음에 본것은 '보좌'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는 왕의 권위를 지니고 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보좌위에 앉아계신 것을 볼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한다. 사도요한이 그의 환상가운데에서 처음 본것도 하늘에 있는 보좌였다(계 4:2). 그보좌는 영광의 보좌, 은혜의 보좌, 개선의 보좌, 통치의 보좌 그리고 심판의 보좌이다. 선지자는 그 보좌위에서 사람같은 형상을 보았다. 궁창위에 있는 보좌에 곧 그렇게 지고한 상태에서조차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기를 부끄러워 하지않는 이가 앉아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기쁜소식이 아닐수 없다. 선지자는 인간의 영광을 능가하는 왕이시며 심판자되신 이께서 보좌에 계신것을 보았다(27절). 하나님께서는 빛가운데 거하시며 옷을 걸치듯 빛으로 옷을 입으신다. 허리이상의 모양을 단 쇠같아서 그속과 주위가 불같고. 불이 속에 감싸여져 있었다. 허리아래에 있는 불은 밖으로 비쳐나왔다. 어떤사람들은 단쇠(흠정역에는 호박이라고 나와있다) 모양안에 감추어져 있는 전자의 불이, 아무도 본적이 없으며 볼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것을 보는사람들에게 영광이 되었던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름아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 1:14)인 것이다. 보좌는 무지개로 둘러싸여 있다(28절). 이는 사도요한의 환상에서도 그러하였다(계 4:3). 무지개는 위엄의 현시이면서 동시에 자비의 보증이다. 무지개는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확증인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이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때도,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시고 그언약을 기억하신다(레 26:42). 이환상의 결론이 나온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처음부터 그랬듯이 선지자는 신중하게 하나님께 온갖 인간적인 상상을 배격하고 있다. 선지자는 '이것이 바로 여호와이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영광'이라. 여호와께서는 그영광 안에서 자신이 영광스런 존재임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한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아니며, 그영광을 미미하게 반사하고 있는 '영광의 형상'이라. 아니 '그영광의 형상'도 부적절하며, '그형상의 모양' 즉 '참형상'이 아니요 그형상의 '그림자'라"(히 10:1).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선지자는 그영광의 형상의 모양에 압도되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이 거룩한 경외감으로 가득찼다는 표시로 땅에 엎드렸다. 그가 본 이모든 것은 앞으로 들어야할 내용을 위해 그를 준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교훈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 핵심
1:1-28
네생물의 이상, 네바퀴의 이상, 궁창의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묘사한다.
에스겔(1:3)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의 이름. 바벨론의 그발강가에서 유대인 포로들과 함께 살았고(3:15), 예루살렘멸망 7년전부터 예루살렘멸망 15년후까지 예언활동을 했다. 그가 받은 계시의 내용은 예레미야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테면, 끓는가마(11:2-11; 24:3-14; 렘 1:13-15), 패역한 자매(23:1-49; 렘 3:6-11), 죄에 대한 개인적 책임(18:2-32; 렘 31:29,30) 등이 그러하다.
여호와의 영광과 인생의 존재목적(1:28)
하나님의 영광이란 인생에게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본성을 계시하심과 관련된 말로서, 양면성을 지니는 관계의 개념으로 이해될수 있다. 즉 하나님은 먼저 당신의 영광을 인생에게 계시해주시며, 다음에는 인생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존재목적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타락한 인생으로하여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 묵상
에스겔 ( 1:1-3 )
에스겔은 사독계열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 부름받았던 바벨론 포로초기의 대예언자입니다. 소망의 선지자라고도 불리는 에스겔은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가 갈대아땅 그발강가에 있는 델아빕에 거하면서 22년간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네생물에 관한 환상 ( 1:4-10 )
에스겔은 폭풍과 큰 구름속에서 네생물의 형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각각 네얼굴과 네날개가 있는데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네생물의 형상에 대해서 ‘네개의 우주’, ‘인간의 네가지 감각’ 또는 인간의 네가지 기본 심리기능, 곧 생각, 느낌, 직감, 감각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사자’는 땅의 왕이신 그리스도, ‘소’는 섬기러 오신 고난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 ‘사람’은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리고 ‘독수리’는 하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보는 것입니다.

# 해설
이상을 보이신 하나님 ( 1 )
에스겔서의 첫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본장은 에스겔이 언제, 어디서 소명을 받았는가 하는 인적, 시대적, 지리적, 역사적 배경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스겔에게 소명을 주기위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을 에스겔이 본 그대로의 형상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본장은 에스겔서라는 하나님의 큰말씀의 집에 들어가는 대문을 열어주는 부분입니다.
1. 여호와의 영광을 본 상황에서의 여러배경
1) 시대적, 역사적 배경
저자가 밝히고 있는 시기는 여호야긴왕이 사로잡힌때로부터 오년입니다. 여호야긴왕은 바벨론 제2차 침입때 느부갓네살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제2차 침입은 B.C. 597년이었으므로 그로부터 5년뒤는 593년입니다. 따라서 본장의 시대적 배경은 주전 593년입니다. 한편 바벨론 제2차 침입으로 말미암아 유다백성들은 제1차 침입때(B.C. 605년)와 마찬가지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었습니다. 에스겔도 그러한 포로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볼때 본장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있던 당시였습니다.
a.여호야긴의 항복(왕하24:12)
b.여호야긴의 바벨론 이송(왕하24:15)
2) 지리적 배경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침공하여 유다를 점령하였습니다. 유다를 점령한 그는 유다백성을 자기나라 바벨론으로 끌고가 그발강가에 정착시켰습니다. 에스겔도 그 포로가운데 한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발강가에 거주하였고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a.갈대아땅(겔1:3)
b.사로잡힌 백성들이 거하는곳 그발강가(겔3:15)
3) 인적 배경
에스겔은 레위의 후손인 부시의 아들이었습니다. 레위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에스겔은 제사장직분을 감당하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에스겔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편 이같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이상을 본 나이는 삼십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삼십세에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a.삼십세(민4:3)
b.삽십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눅3:23)
2. 네생물의 형상
1) 전체모양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북방으로부터 나타납니다. 북방은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방향입니다. 따라서 본장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한편 그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운데는 하나님을 보좌하는 네생물, 곧 그룹들이 있는데 그 그룹의 전체형상은 사람과 같았습니다(참조, 겔1:5). 이것은 하나님을 보좌하는 그룹들이 지혜로운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a.북방에서 오는 심판자(사41:25)
b.하나님의 지혜(고전1:25)
2) 네얼굴
하나님을 보좌하는 네생물은 각각 네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얼굴은 사람, 사자, 소, 독수리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사자의 얼굴은 용맹함과 왕의 지도력을, 소는 순종과 인내를, 독수리는 고상함과 날쌤을 의미합니다. 네생물은 하나님의 속성을 본받은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형상으로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보좌하였습니다.
a.스랍(사6:2)
b.네생물의 네얼굴(계4:7)
3) 네바퀴
네생물 밑에는 네바퀴가 있었습니다(참조, 겔1:15). 여기서 바퀴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섭리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바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섭리가 그권능에 의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나타내줍니다. 한편 네 생물사이에 섬광을 발하는 불이 있다는 것(참조, 겔1:13)은 하나님의 영광이 형용할수 없이 크다는 것과 하나님의 공의 역시 지극히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바퀴(단7:9)
b.여호와의 눈(슥4:10)
3.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1) 큰소리
네생물이 움직일때에 그 날개소리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군대의 소리와도 같이 크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이 비교할데 없이 크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본서에서는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묘사할때 이와같이 표현하고 있으며(참조, 겔43:2), 계시록의 기자역시 같은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참조, 계1:15).
a.많은 물소리같은 하나님의 음성(겔43:2)
b.많은 물소리같은 예수의 음성(계1:15)
2) 아름다운 형상
네생물의 머리위에는 수정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고(참조, 겔1:22), 궁창위에는 각양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좌가 있었습니다(참조, 겔1:26). 하나님의 발등상이 되는 궁창이 그처럼 아름다운 수정으로 되어있고 하나님이 앉아계시는 보좌가 그와같이 수려한 보석들로 꾸며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름답고 거룩하며 순결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찬란한 보석의 형상(계4:3)
b.수정같은 유리바다에 둘러싸인 보좌(계4:6)
3) 인자의 형상
에스겔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진 보좌형상 위에 사람의 모양같은 형상을 한 거룩한 존재를 보았습니다(참조, 겔1:26). 그존재의 속성들은(참조, 겔1:27-28) 계시록의 기자가 묘사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속성과 같습니다(참조, 계1:13-16). 이로보건대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영광은 성자 하나님의 영광이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a.인자같은 이(단7:13)
b.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마24:30)
결론
삼위 하나님의 제2위 되시는 성자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또한 그들에게 새로운 은혜의 말씀을 주시기위하여 거룩하신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거룩한 영광가운데서 제사장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의 말씀을 전달할 대언자로 소명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일은 오늘날에도 믿는자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오심과 부르심에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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