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 시민권
사도 바울은 분명히 길리기아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채찍질하려는 군병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인임을 말하고 있다. 이 짧은 본문속에서 몇가지 의문점들 즉 유대인인 바울이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지닐수 있었고 그 혜택이 무엇이길래 천부장조차 두려워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1) 역사적 배경
초대교회 당시 로마는 지중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 로마는 어느 지역을 정복하든지간에 공공 사업을 벌였으며 행정 관리들을 임명했다. 때때로 정복 지역들의 유지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기도 하였다. 이는 로마 지배에 순순히 복종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로마 제국 전체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2) 취득과 특권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은 물론 국가 유공자에게 주어졌으며 금전으로 살수도 있었고, 세습되기도 하였다. 천부장은 돈을 주고 산 경우이고, 바울은 세습받은 경우이다.
한편 로마 시민권을 지닌 사람들은 투표권을 가질뿐만 아니라 시민권이 부여한 모든 보호를 받을수 있었다. 만약 어떤 시민권자가 지방 통치자에게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못하였다고 생각되면 그는 로마 황제에게 항소할수도 있었다. 따라서 당시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그 막강한 혜택때문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2. 바울의 로마 시민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때나 그것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다만 복음 전파시 위기에 몰렸을때 자신의 안전만이 아닌 복음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그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한 것은 빌립보에서와 예루살렘에서의 두번이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2년 동안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할수 있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참수당해 죽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대신한 것으로 로마 시민으로서의 최후의 특권을 누린 것으로 볼수 있다.

3. 바울을 심문했던 사람들

1) 벨릭스(Felix)
A.D.52-62년까지 유대 주재 로마 총독이었던 벨릭스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때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자이며, 당시 로마 정부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팔라스의 동생이다. 벨릭스는 잔인한 폭군이었다. 그는 로마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으며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요나단을 살해하였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앞에서 변론하면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강변했을때 그가 두려워했던 이유도 자신의 강포함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행24:24,25). 그러나 벨릭스는 바울에게 뇌물을 받기위해 계속해서 심문하는 음흉한 자였을뿐만 아니라(행24:26)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귀위해 자신이 총독 임무에 대한 실책으로 네로 황제앞에 소환될때까지 약 2년간에 걸쳐 바울을 구금해 두었다(행24:27).

2) 베스도(Festus)
A.D.60-62년까지 네로 황제에 의해 벨릭스의 후임으로 유대 총독이 된 베스도는 전임자에 비해 매우 능률적으로 유대를 통치한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임자 벨릭스의 실정으로 인해 부임 초기에는 매우 고전 했으나 주민들을 약탈하고 살해했던 반란자들을 성공적으로 진압함으로써 통치에 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그는 그렇게 덕망있는 정치가로 평가받지 못했으며 정치적인 출세욕때문에 비굴했다고 한다.
베스도가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바울의 청을 수락하여 그를 로마로 호송케 한것(행26:32)도 할수 있는한 로마인들에게 호의를 보임으로 인기를 얻고자 했던 그의 출세욕의 한 반영이라 볼수 있다.

3) 헤롯 아그립바 2세
아그립바는 '독자'라는 뜻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 헤롯 대왕의 증손으로 로마 황실에서 교육받았다. A.D.1세기 후반경에 주로 활동하였는데 이 시기의 유대에는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에 대한 유대 민중들의 거센 반발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대한 로마 제국의 대처도 만만치않아 유대 지역은 매우 혼란하였다. 결국 A.D.70년 유대는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헤롯 아그립바는 유대의 직접 통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고 대제사장의 임명 및 파면 권한 등을 부여받았다. 그는 복음에 대한 바울의 확신있는 설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되기를 거부한 것으로 보아 매우 굳은 마음을 소유한 자였다(행26:27,28).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으로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실상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되었음을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적 편견때문에 또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때문에 인정하기를 거부했다(행26:1-29).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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