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와 홍수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위의 말씀은 노아가 방주를 예비할 동안 얼마나 큰 핍박과 욕을 당했던가 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이다. 신약의 성도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실을 보일때에 받는 비방과 당하는 욕은 마치 구약의 노아가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에 당했던 핍박이나 비방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그 일 자체가 벌써 하나님 앞에 귀한 일이었다. 그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한 행실과 같은 것이라고 신약의 사도는 말씀하셨다. 이제 그러면 그러한 방주가 지니고 있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

1. 노아의 방주의 영적 의미
성경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말하듯이 노아의 방주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그림자(모형)이었다. 우리는 그 방주의 구조를 통해서까지라도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창6:16에 보면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을 옆으로 내라"했음을 본다. 여기서[창]과[문]은 같은 것이다. 출입을 위하여 사용될 때는 문이요,공기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창이 된다.
그런데 그 문은 하나 뿐이었다. 노아의 여덟 식구와 모든 생물들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출입한 그 문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는 그 사실은 복음서의 그리스도의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신 말씀을 연상케 한다. 아무리 홍수가 넘치는 무서운 심판의 날에도 그 방주 안에는 참 평안과 안식이 있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평안과 안식의 예표였다고 본다. 다음 또 방주의 그 창문은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오직 위만 바라보게끔 지어졌다는 것도 특수하다.
창6:16에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했음을 본다. 그 방주 의 높이는 30규빗이라고 했는데(창6:15) 그러한 높이에 위에서부터 한 규빗이라고 한다면 그 문은 높은 지붕 꼭대기 가까이에 달려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노아의 식구들은 밖을 내려다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 "땅에 물이 잦았는지를 알기 위하여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 보냈다"는 기록을 본다. 홍수의 물이 아무리 넘쳐도 그것을 보지 않도록 방주는 지어져 있었다.
그것은 생각컨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위의 것만을 바라볼 것이요, 땅의 것을 생각하며 근심하며 슬퍼할 것이 없음을 상징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홍수가 그치고 물이 잦은후 방주가 아라랏 산에 닿은 그 날은 신비롭게도 7월17일이었다(창8:4). 그날은 곧 이스라엘의 성력으로는 니산월 17일이다. 즉 유월절을 지난 3일만의 날이었다(출12:6). 그렇다면 그날은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로 보여주는 날임이 분명하다. 즉 그것은 이제부터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부활의 세계가 시작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경의 한마디 한마디의 말씀이 이처럼 우리의 깊은 관심을 끄는 것은 그 모든 기록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너무도 오묘하고 신비로운 탓일 것이다.

2. 노아의 방주는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방주가 얼마나 큰 것이었기에 그 많은 짐승들과 새들과 양식들을 실을 수 있었을까? 창6:15에 보면 길이는 300규빗이요,넓이는 50규빗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규빗이란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18피트가 된다. 그것을 계산한 어떤 학자에 의하면(J.P.Free) 그 배의 크기는 약4,300톤 가량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2,500톤급의 배라면 어떠한 큰 바다라도 항해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방주는 오늘날 큰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배들의 갑절의 크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노아는 자기의 마음대로 그렇게 큰 배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준행한 것이라"(창6:22)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큰 배가 되어야만 그 많은 동물들과 그것들이 먹을 양식을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땅위의 짐승의 종류는 2,000종이요, 새는 약 6,500종류라고 한다.
방주의 그러한 크기라면 그러한 동물들과 그것들의 40일간의 양식은 충분히 싣고 남을 것이라고 본다.

3. 홍수의 심판은 역사적 사실인가?
노아의 홍수의 심판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요, 고대 신화의 하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실상 이 땅위에 큰 홍수의 심판이 있었다는 창세기의 기록과 거의 비슷한 전설들은 고대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가진 전설이었다. 고대 바벨론에도 그런 전설이 있었고, 애굽과 인도와 중국에도 있다. 우리 한국에도 그러한 전설이 있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주후1653-1666년간에 한국에 머물렀던 하멜(네덜란드 사람, 기독신자 )이란 사람의 표류기를 읽어보면 거기에 구약의 바벨탑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전설이 수록된 것을 본다. 한국에도 바벨탑의 전설이 있었다면 그와 연관되는 홍수의 전설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어떠하든간에 홍수의 전설이 그처럼 고대 국가에 공통적인 것이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히 그것은 노아의 후손들이 흩어지면서 그 홍수의 이야기가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같은 이야기가 그처럼 전파될 수 있을 것인가.
또 그 뿐만 아니다. 창8:5에 보면 방주는 드디어 아랏산 꼭대기에 머물렀다고 했는데 지금 그 산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알메니아에 위치해 있다.
지금도 그 지방 사람들은 조상때부터 그 산을 가리켜 그 지방 말로 "쿠히 누흐(Kuhi Nuch)"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뜻은 바로 "노아의 산"이라는 말이란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하나의 방증이 된다고 본다.

끝으로 하나만 더 첨가하고 싶은 말은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후에 곧 홍수가 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7일 후에야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창7:9~10) 했음을 본다. 성경에 그 7일이 강조된 것을 우리는 주의할 필요가 있는줄 안다. 
이 7일이란 하나님께서 그때의 사람들에게 주신 최후의 기회였다. 본래 성경에 7이란 수는 완전 수라고 한다. 누구나 방주에 들어올 수 있는 최후의 완전한 기회를 의미한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방주에 들어갈때까지만 해도 홍수가 있으리라는 징조는 물론 없었다.
날은 여전히 맑아 있었고 낮의 해는 솟아 올랐을 것이며 밤의 별도 총총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노아를 비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자기의 사위들도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까지도 안들어온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직 노아의 여덟 식구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
노아는 7일 동안이나 문을 열어놓고 최후의 기회를 저들에게 주고자 했다. 사도 베드로는 그를 가리켜 "끝까지 의를 전파한 노아"(벧후2:5)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노아의 역사와 홍수의 심판의 기록을 생각하면서 다음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말씀을 한번 다시 정리하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마24: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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