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받은 약속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아브라함은 두번에 걸쳐 거듭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처럼 거듭받은 약속의 내용은 곧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시리라는 것과 또 그 후손들은 능히 셀 수 없으리만큼 번성하리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그 두번의 약속은 내용이 동일한 것이지마는 그 약속을 받을때의 환경이 달랐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약간 다른 점이 있다고 느껴진다. 이제 그것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첫번째 약속을 받을때의 환경
창세기 13:14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란 말로써, 첫번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시작된다. 위에 기록된 본문이 바로 그것이다. 창세기 13:1-13까지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무엇때문에 서로 갈라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것을 본 아브라함은 그러한 부끄럽고 비참한 꼴을 이방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창13:7).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선 골육 형제(삼촌과 조카)가 얼마 안되는(?) 풀밭 몇평을 놓고 이방인들 앞에서 서로 다툰다는 것은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이었던가. 아브라함은 슬픈 마음으로 롯을 불렀다. 창13:8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것은 아브라함이 롯에게 한 말이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얼마나 처량한 말이었던가. 롯은 물이 넉넉한 기름진땅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떠났다. 슬픈 마음으로 롯을 떠나 보내고 쓸쓸히 돌아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셨다. <바로 그후에(창13:14)> 하나님께서는 온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이러한 약속을 주신 것은 바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창13:14)의 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재명심 할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을 양보했을때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주시는 하나님, 적은 것을 양보했을때에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었다.
2. 두번째 약속을 받을때의 환경
창세기 15:1에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로써, 또 두번째 약속은 시작된다. 즉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것이 두번째 약속의 말씀이었다. 첫마디의 "이 후에"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은 첫번째 약속을 받을때의 "롯이...떠난 후에"란 말과 잘 호응되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한 후에 크신 상급으로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또 다음 어떤사건 후에 그에게 크신 상급을 약속하셨을까. 이제 그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창세기 14장은 롯이 소돔땅에 가서 거할때에 시날왕 아므라벨의 연합군이 소돔과 고모라를 쳐들어 왔을때에 되어진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왕이 패하였을때 그곳의 모든 재물과 양식은 빼앗기고 롯도 포로가 되었고 그 재물과 가족들도 다 빼앗겼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르던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원수들을 쫓아가서 그들을 치고 롯을 구원했다. 모든 "재물과 부녀와 친척들을 다 찾아왔다(창14:16). 이 때에 구원을 받은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사례하여 하는 말이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창14:21)고 했다. 이러한 소돔왕의 제안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그것을 깨끗이 거절했다.
창14:22~23에 보면 "천지의 주재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이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했다. 아! 이 얼마나 깨끗한 거절인가. 본래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세상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부귀와 영화는 세속적인 향약의 상징이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오는 기쁨을 원치 않았다. 그는 그것을 깨끗이 거절하였다.
거절한 이유인즉 그것을 취하여 내가 부자가 되면 소돔왕 네가 나로 부자되게 하였다는 그런 말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부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아브라함의 신앙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귀히 보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거절했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그의 상급이 되셨다고 선포하셨다. 창15:1의 [이 후에]란 바로 그러한 일들이 있어진 [후에]를 가리킨다. 아브라함이 소돔왕의 제의를 거절한 바로 그 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약속이 있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고 하셨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은 원수들을 이긴 후에 오히려 두려워했음을 본다.
그들이 대오를 다시 정비하여 쳐들어 올 것을 무서워했던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격려했다. 두려워 말라고 했고, "나는 너의 방패"라고 하셨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캄캄한 하늘을 우러러 보게 했다. 하늘의 저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 그리고 가나안을 그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을 삼게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본 바와 같이(창13:1-13) 아브라함이 이방 사람들 앞에서 골육이 서로 다투게 된 것을 슬프게 알고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첫약속을 상급으로 주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제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그리고 또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악된 소돔의 부귀를 거절했음을 보았을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방패가 되시며 또 지극히 크신 상급이 되심을 확약하시면서 두번째의 약속을 주셨던 것이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했었고, 계속해서 가나안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을 삼게 하셨다.
그러면 그 첫번째과 두번째의 약속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먼저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13:14)는 말과 "하늘을 우러러...보라"(창15:5)는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첫번째 약속의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녀에게 주리라"는 것과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으리라"는 것이 육신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고 거기에서 그의 후손들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이라면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는 말은 영적 가나안의 영적인 신령한 믿음의 자녀들이 별과 같은 창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육신의 가나안의 기업을 말하때는 그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했고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그 자손도 셀 수 있으리라" 하셨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면(왕상4:20) 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있어질 아브라함의 영적 신령한 자녀들을 가리킴이 아닐까. 창15:5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는데 여기 "네 자손"이란 원어는 복수가 아닌 단수이다. 그것은 여럿을 가리킴이 아니요, 곧 한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갈라디아 3:16에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킴이라고 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했음을 본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캄캄한 하늘의 뭇별을 우러러 보았을때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 생겨질 영적 후손들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같은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15:6)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감사하자. 본래는 이방 백성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그저 "땅의 티끌 같은 후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라 생각할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위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받은 언약 즉 "내가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이 하리라..."는 것과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그러나 여기서 굳이 구별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이 두번째 언약이 주어진 직후였다(창15:56)는 사실과 둘째는 "땅의 티끌 같으리라"는 그 첫약속은 열왕기상4:20에 보면 벌써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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