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에서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위의 본문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을 때의 일이다. 복중에 있는 쌍둥이 두 아들이 싸우므로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리브가는 여호와께 어떻게 해야할 것을 물었다. 위의 본문은 그때 여호와께로 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이었다. 드디어 두 아들을 낳으매 형을 에서라 했고 동생을 야곱이라 했다. 저들이 점점 자라매 그 성격과 행동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창세기 25:27에 보면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니 장막에 거하였더라"고 했다. 여기에서 보는대로 에서는 남성적이요, 야곱은 여성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두 성격의 차이에 있어서 우리는 그 어느편이 좋고 나쁜 것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의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에서는 그 성격상 늘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 하였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익숙한 사냥꾼]이 되었고 [들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집에 찾아들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에서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결점이 되었다. 즉 그는 그것 때문에 부모의 교육을 받을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쳤다. 그렇게 휼륭했던 아버지 이삭과 그리고 경건한 어머니 리브가의 감화를 많이 받지못하고 자라난 사람이 되었다.
그의 결혼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창세기 26:34-35에 보면 "에서가 사십세에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이 되었더라"고함을 본다. 에서는 단번에 이방인의 딸 둘을 아내로 얻었고, 그로인하여 그 부모에게 큰 근심을 끼친 아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다. 그의 아버지의 부탁 즉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명심하였고 그는 꼭 그대로 순종했다(창28:6~7). 세상에서 부모를 슬프게 하고 근심케 한 아들이 잘 될 수는 없다. 잘 되기를 원하는 아들은 먼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것이다. 에서와 야곱은 우선 이점에 있어서 크게 달랐다.
야곱이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성격은 반드시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부모와 같이 지내는 시간을 자연히 많이 가지게 되었다. 부모에게 좋은 감화를 받을 수 있었고 부모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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