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피난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야곱은 고향을 떠났다. 하란의 외숙부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의 고향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 땅 하란까지는 장장 1,500리의 먼 길이었다. 그가 집을 떠나 한 곳에 이르니 해가 졌다. 그곳은 곧 벧엘이란 곳이었다. 거기는 야곱의 고향 땅 브엘세바에서 250리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해가 지기까지 250리를 걸었던 것이다. 야곱이 하루에 그렇게 먼 길을 걸어갔다기보다 오히려 뛰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것으로 형을 피하여 가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던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창세기28:11에 보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진지라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했음을 보는데, 250리를 달려온 그는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그가 뛰어온 길은 황막한 광야 길이요, 산 길이었을 것이다. 몸을 감출만한 덮을것 하나없이 산길 들길에 쓰러져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던가. 맹수가 덮칠지도 모르고, 에서가 추격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없이 잠들었다. 사람이란 본래가 잠든 때가 하루 중에 가장 위험한 때가 아닌가.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잠자는 시간은 문을 닫고 빗장을 잠그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야곱은 위험한 산길에 쓰러져 홀로 깊이 잠들었다. 바로 그때 그는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며 어떻게 축복하시는지를 환상으로 보았다.

창세기 28:12이하에 "야곱이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계시를 본후 그는 잠에서 깨어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시고 계심을 알고 감격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베고자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제단을 쌓아 기름을 부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 처음 한 말이 무엇이었던가.
창세기 28:16에 보면 "야곱이 잠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계기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야곱이 잠들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 된다. 사실 그때까지의 그의 마음은 공포와 불안과 고독과 눈물로 싸여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자들을 보내셔서 밤새도록 지키셨다. 하늘과 땅에 사다리가 놓여지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고 [그 위에 여호와께서 서서] 계셨다는 것을 암시하여 주시는 말씀이다(행7:55 참고).

우리가 여기에서 배우는 진리는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깊어졌을 그때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입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와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사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찾아주시고 지켜주심을 우리는 야곱에게서 새삼 배우게 된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지 못하고 피곤에 지쳐 쓰러졌으나 하나님은 밤새도록 그를 [서서] 지키셨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야곱은 일어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돌기둥을 세워 기름을 붓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그가 다시 그곳을 떠날때 그 마음은 기뻤고 그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웠는지 모른다. 창세기 29:1에 보면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한 말씀이 있는데 여기 [발행하여]란 원문 [이ㅆㅑ ]는 공중에 들이어 간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말하자면 날아간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워 졌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공포와 불안에 떨며 가던 그의 무거운 발걸음은 가볍고 주님을 모신 그 마음은 즐거운 법이다.

어느덧 그는 목적지인 밧단아람 땅 하란에 이르러 어떤 우물가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기에 라반의 딸 라헬이 양떼를 몰고 나타났다. 그는 그의 외삼촌의 딸이요, 후일에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창28:2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면서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했는데 바로 그가 야곱의 아내가 될 라반의 딸이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도하심이 이처럼 신비스러웠다. 어찌 그뿐인가. 창세기 29:13에 보면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의 집으로 인도하여 하는 말이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라" 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영접인가. 하나님께서 야곱의 앞길을 형통케함이 이러했다. 야곱은 너무 감격하여 소리내어 울었다(창29:11). 그러나 야곱의 가는 길이 늘 평안할 수만은 없었다. 그는 고난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눈먼 아버지를 속였고, 형을 속이고 도망친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인간의 속임수로 이루려했던 간교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제 많은 곤고한 날을 통하여 그의 그러한 성품은 반드시 변화를 받아야할 사람이었다. 그의 간사한 성품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결해져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부터 그의 앞길에는 고난이 닥쳤다. 먼저 그가 라반의 집에서 겪은 고생을 생각해 보자.

그는 20년 동안 들에서 양치는 사환이 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친절했던 외삼촌 조차도 점점 그 마음이 변했다. 그도 야곱을 이용하려 했지 도우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곤고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창세기 31:40에 보면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여 눈 붙일 겨룰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했는데 이것은 라반의 집에서의 그의 20년 동안의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그는 진실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참으며 밤낮을 양떼들 곁에서 지새워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라반의 집에서의 부당한 대우를 그는 계속 받아야 했다.
창세기 31:41에 보면 "내가 외삼촌 집에 거한 이 20년 동안에...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번이나 변역하였나이다" 이렇게 기록되었음을 보는데 참으로 처량한 일이었다. 삼촌에게 열번이나 속아야 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였던 그는 이제 심은대로 그 값을 치루어야 했던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는 심은대로 거두어야 했다. 먼 후일의 일이었지만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까지도 속아야 했고 그로 인하여 슬픈 날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창37:31-34).

또 잠언 13:15에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하신 말씀 그대로 야곱의 인생길은 참으로 험악했던 것이다(창47:9 참고). 그가 그렇게 일평생을 험악한 날들로 보내야 했던 것은 그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마침내 그는 그 모든 고난을 겪은 후에 거룩한 족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밧단아람에서의 곤고한 20년 생활에 드디어 고향 생각이 간절해졌다.
창세기 30:25에 보면 그는 라반에게 드디어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에 가게 하소서" 이렇게 애원했으나 그는 여러 말로 그를 머물게 했다.
야곱은 사실 마음대로 떠날수 있는 자유스러운 몸은 아니었다. 그도 매어있는 사환이었다. 허나 마침내 때는 왔다. 창세기 31:2에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않더라" 했고 그 아들들도 그에게 대하여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았다"는 말로 험하게 수근거렸다(창31:1).
그의 신변에 어떠한 해가 닥칠지도 모를만큼 환경은 험악해 왔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다. 그는 역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택한바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는 가만히 도망하여 라반의 집을 벗어났다. 그리운 고향 땅 가나안을 향하여 그러나 그의 앞길에는 여전히 곤고한 날들이 복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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