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앞에 가장 값진 생활 (경한수 목사)

 

[베드로전서 3장 1절~22절]

1절 -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절 -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절 -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절 -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절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절 -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절 -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절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절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절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절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절 -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절 -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절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절 -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절 -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절 -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절 -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절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절 -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절 -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생활중 가정생활과 공동체적인 생활과 개인적인 생활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생활 원리는 선행과 함께 고난을 동반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값진 생활이다. 그럼 우리가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갚진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면 될까?

1. 가정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1-7절)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것이요, 사회의 본단위의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생활을 올바로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가정생활에 있어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의 입장은 주종관계나 계급관계가 아니라 질서의 관계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영원한 길이다. 때문에 순종은 가정을 세우지만 불순종은 가정을 파괴한다.
두려워하며(존경하는 마음) 정결한 행위를 보여야 한다. 아내는 남편을 경외함과 정조를 지킴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린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복하고 있는가? 고쳐야할 부분은 없는가? (시부모와의 갈등, 월급이 적다고 불평, 자녀교육비, 남의 생활과 비교) 남편에게 사과할 일은 없는가?
그리고 몸단장은 외적으로 하지 말며(외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고자하는 욕구를 금하라 - 화려한 복장은 신앙의 인격을 대신할수 없기에) 내적으로 해야 한다.
온유하고 안정된(떠들기를 좋아하지 말고 평온을 사랑함) 성품으로 가꾸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갚진 것이요(하나님은 사람의 외형적인 것을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 하나님이 귀히 쓰신 부녀자들도 다 이와 같이 행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알았기에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단정해야 한다. 그결과를 보자. 우리는 속사람(내면)을 아름답게 꾸미기 보다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가? 옷, 패물, 화장품 등에 너무 많은 돈이 쓰이고 있지 않는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수 있는가?
다음에 베드로는 남편의 본분에 대하여 말한다. 남편은 아내와 동거해야 한다. ‘동거하다는’ 같이 살라는 뜻이다. 

  - 고린도전서 7: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그리고 귀히 여겨야 한다. 귀히 여긴다란 아내에게 합당한 존경을 베풀다, 권위를 유지시켜 주라, 아끼고 사랑하라(내어주는 사랑을 의미)는 뜻이다.
주님은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사랑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못난 자리에서 건져내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우며 점과 흠이 없도록 만드셨다.
그럼 남편들도 아내들을 건져내어 영광스럽게 해야 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아내는 약한 그릇이며 영생을 같이 누릴자이며 기도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런 지식이 없이는 아내를 학대하는 것이다. 아내를 귀히 여기며 도와주며 이해하며 지식을 따라 생활하고 계시는가?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고 기도가 막히지 않으려면 아내를 귀히 여기며 동거해야 한다.

 

2. 생활은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 (8-13절)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생활을 할때 원리를 따라야 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일치는 분신자에게 아름다운것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 분쟁은 피차비극), 체휼하며(남의 고난에 동참함), 형제를 사랑하며(그리스도인들은 한몸, 한지체임), 불쌍히 여기며(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위해 희생제물이 되심)
겸손해야 한다.(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태도, 하나님을 인정,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무지와 무능력을 인정함,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김)

그리고 보복대신에 복을 빌어줘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용서해 주고 복을 빌어줘야 한다. 왜?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가?  여기서 부르심의 목적과 복을 유업으로 받을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38~48) 

우린 성도들끼리 마음을 같이 하고 서로 동정하며 사랑하고 계시는가? 긍휼히 여기며 겸손하며 보복대신에 축복을 하고 계시는가? 이것이 성도의 공동체적인 생활의 원리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다음에는 자아에 대한 생활원리를 주목해 보자. 
금생과 내세에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인내하며 악한 말을 공쳐야 하며(왕사자가 울고 올때 그 사람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 함)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거짓말로 남을 해하거나 아첨하지 말아야 함). 작은 해가 큰 화를 끼칠수 있기 때문이다.

  - 잠언 26:28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 야고보서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그리고 선을 베풀며(주님도 선을 베풀면서 두루다님. 그날그날 의의 씨를 뿌리십시오) 화평을 쫒아야 한다.

  -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우리는 투덜거림, 시기 분쟁, 중오, 미움속에서는 화평을 쫒고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3.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한다. (14-22절)
그리스도인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가 있다. 이때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 성도들을 해할수 없기 때문이다.

  -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이에게 항상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수 있는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박해시에 육신의 고난을 면하려고 진리를 꺽지 말고 선한 양심을(담대함을 가져오고 마음의 평화) 가지라고 한다.
그럼 성도가 왜 이렇게 고난을 받는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고난은 반드시 죄의 결과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고후 12:7-10)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은 축복이 된다.

  - 고린도후서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받을때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바라고 묵상해야 한다.(고난의 의의, 그의 부활, 영에 대한 복음선전, 그의 승천, 지배에 대해)
주님이 고난받으신 것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받으셨으며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육체가 죽임을 당하셨다.
그결과 하나님은 고난 당할 주님을 부활시키시고 옥에 있는 영들에 그리스도를 전하시고 하늘에 오르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모든 천사와 권세, 능력들까지 지배케 하신다.
우리도 고난을 참으면 주님과 같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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