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축의 이유

[역대하 6장 1절~11절]
1절 -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2절 - 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3절 -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4절 -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5절 - 내가 내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였으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될 사람을 아무도 택하지 아니하였더니
6절 -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 또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7절 -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8절 -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9절 -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허리에서 나올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10절 -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 이스라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11절 - 내가 또 그 곳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넣은 궤를 두었노라 하니라

1. 하나님이 다윗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성전 건축을 그의 후손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7 ~9절)
직접적이고 외적인 원인은 다윗이 전쟁을 통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대상 22:8; 28:3). 또 간접적이고 내적인 원인으로 성전을 지어 봉헌하겠다는 다윗의 마음이 마치 그가 하나님을 도와드린 것처럼 여기는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에, 성전 건축을 아들 대로 보류하셨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신 것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선지자 나단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며 동의했으니 나단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아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도 당연히 기뻐하실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매우 확신있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단언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의외였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그 일이 아무리 가치있는 일이라도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속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비록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시려는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다윗의 아들이 왕으로 굳건히 선다는 보증도 됩니다. 구속 역사 가운데 평화의 왕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장차 메시아를 통해 이뤄질 교회 설립의 모델이 됩니다.

2.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고 있습니까?(9절, 비교 사무엘하 7:12~14)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낳을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2~14절에 따르면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립니다. 사람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중적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다윗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삼하 7:14). 이러한 예언은 히브리어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가능합니다. 솔로몬이 다윗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요셉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벤’입니다. 영어나 한국어에서는 아들과 손자, 그리고 그 이후의 자손에 대한 이름이 각기 다르지만 히브리어에서는 1대 자손이나 100대 자손 모두를 ‘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이가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는 솔로몬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장차 다윗의 아들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고 성전을 세우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3.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4, 10절)
성전을 짓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기 원하였던 다윗에게 주신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성전은 인간을 위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소원을 보류하시고 솔로몬을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철저하게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짓도록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중심의 왕이었습니다. 적어도 그가 우상숭배로 타락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왕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눈에 보이는 건물에 불과합니다. 건물이 신성한 것이 아니라 건물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신성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드려지지 않으면 다른 건축물과 다를 바가 없는 건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을 때 하나님은 성전을 가차없이 무너뜨리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건물을 성스럽게 여겼을 때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예배당 자체를 신성시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건물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일 뿐입니다.

4.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께 두 가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곧 나를 죄에서 건져주신 분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만났어도 주님으로 만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 만나는 것은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날마다 주권을 내어 드릴 때 가능합니다. 성도들 중에 직장 생활을 내려놓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거기에는 위험이 있습니다. 자신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하는 이원론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소유자는 주어진 모든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기며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삶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명심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5. 하나님이 지금 나를 통해 하시는 일 때문에 장차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감을 품고 있습니까?
믿음은 현재를 너머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현실 너머의 꿈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소원을 이루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하기 원하시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계획을 보여주시고 그 일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소망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한 사람만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자녀와 후손들을 통해서도 그분이 계획하신 일을 이뤄 가실 수 있습니다. 믿음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자신을 통해 이뤄지지 않더라도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기초를 놓는 일에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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