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4절)
세상과 성도의 영적 투쟁 - 본장의 주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로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와 성도의 영적 투쟁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의 추상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현실, 곧 가정과 직장과 사회 각처에서 구체화된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하나의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사랑과 복종의 관계로 화합된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이 세상의 다툼과 분쟁을 조장하는 사탄의 세력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교회가 사탄의 세력과 끊임없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의 빛으로서의 교회, 역사와 사회의 중심으로서의 교회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기력하고 안일한 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용기와 힘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임을 알 수 있다. 본장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1) 가정 생활의 하나 됨 (1~4절)
2) 직장 생활의 하나 됨 (5~9절)
3) 하나 됨을 이루는 영적 전쟁 (10~20절)
4) 맺는 말 (21~24절)
(1~3절)
자녀들의 의무 -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 가정에서 자녀들의 순종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우리는 여기에서 유교적 효(孝) 윤리와 기독교 효 사상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녀가 부모를 불순종하는 것은 가지가 뿌리를 무시하는 것과 같이 자연법적인 측면에서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적인 측면에서도 큰 죄악이다. 이처럼 유교나 기독교는 모두 효를 자연법과 사회법 측면에서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효를 윤리적 차원에서 다루고, 기독교에서는 그 효의 기원을 하나님께 둠으로써 종교적인 차원의 성격을 띤다.
1) 기독교에 있어서 자녀의 순종은 주 안에서의 순종이다. 이 말씀은 자녀의 순종이 단순한 윤리 의식이 아닌 주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함을 보여 준다.
2) 기독교에 있어서 자녀의 순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출 20:6; 신 5:16). 이 말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이 우리의 사회적 의무와 관련된 계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뜻으로, 효는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와 같이 유교에 있어서 효 윤리는 인본주의적 성격을 띠나, 기독교에 있어서 효 사상은 분명히 신본주의(神本主義)에 기초하는 것이다.
(5~9절)
고용인과 고용주 사이의 관계 - 본문은 종이나 주인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깨우쳐 준다. 따라서 종은 하나님 앞에서 주인을 섬기며, 주인은 하나님 앞에서 종을 후대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 모든 직업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약 2:1~5)<살후 3:7~9,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5절]
두려워하고 떨며. 이 말씀은 어떤 일에서도 실수하지 않도록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하여 예민한 감각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으로서, 이는 비굴한 노예 근성이 아니라 육체의 상전이 주님의 권위를 대표하고 있음을 깨달아 주님을 대하듯 하는 경건한 자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아니하고 그 환경 속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7절]
마음. '친절한', '자비로운'이란 뜻. 곧 기쁜 마음.
[8절]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성도의 모든 선한 일은 마지막 심판 때에 공정하신 하나님에 의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이는 고통당하는 종들에 대한 바울의 격려이다(눅 6:35; 고후 5:10; 골 3:23~25; 계 22:12).
[9절]
이와 같이란 말은 상전의 의무 또한 본질적으로 종의 의무와 같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종들이 상전의 재산과 복지를 증진시켜 주는 것과 같이 상전도 그들의 유익을 도모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노예 경제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자유 경제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소득 분배, 고용인들의 복리 증진에 대하여 고용주가 가져야 할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0~20절)
성도의 영적 전쟁 - 본문은 성도의 영적 전쟁에 대하여 언급한다. 성도의 영적 전쟁은 보다 본질적인 면에서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려는 하나님과 그 일을 방해하려는 사탄과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1) 전쟁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악한 영들로서, 첫째 이들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행 19:13~17). '정사와 권세'라는 두 칭호는 그들의 힘과 권위를 암시해 준다. 또한 이들은 전세계를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불린다(마 4:8, 9; 요 12:31; 요 14:30; 요일 5:19). 둘째, 이들은 사악하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도덕적 원칙이나 고상한 감정이 전혀 없다. 셋째, 이들은 교활하다(고후 2:11). 따라서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 11:14).
2) 전쟁의 성격상 승리는 최종적으로 성도들에게 있다. 왜냐하면 이 악한 영들의 권세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격퇴당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바로 부활의 그 능력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미지의 불확실한 승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확보된 승리를 바라보고 싸우는 것이다(롬 8:35; 빌 4:13).
3) 전쟁에 필요한 장비는 검이나 창과 같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요 18:10), 진리, 의, 평화, 믿음, 구원, 말씀 등과 같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인간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제공해 주시는 영적 무기로서(사 59:17), 이는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을 의지해야함을 강조하는 말이다(삼상 17:45~47).
4) 전쟁의 시기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의 모든 기간이다. 사탄은 항상 성도의 헛점만을 노리고 있으므로(창 9:21, 22; 삿 16:19; 행 20:9) 성도의 경계 상태는 계속되어야 한다.
[10절]
종말로는 '남은 것으로는'이란 의미로서 이는 곧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남은 일들을 말한다. 성도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노력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응답하는 인간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15절]
평안의...신을 신고. 이 말씀에서 '예비한 것'은 '준비된 기초'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네가 확고한 발판을 소유하기 위해 평안의 복음이 네 발의 신이 되게 하고'로 번역될 수 있다.
[20절]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전권 대사가 되었다는 말씀으로, 언뜻 보기에는 쇠사슬에 매여 있는 그의 형편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고난의 종을 통하여 로마가 복음으로 정복당했으니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진정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딤후 1:8).
[24절]
바울의 맺는 말이다. 변함없이는 문자적으로 '썩지 않는'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사랑하는이란 말을 수식한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자신의 소원을 나타내고 있다.
# 해설
부모와 자녀의 생활 (1~4절)
가정의 온전한 일치를 위한 비결로서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순종의 의무와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책임을 아룰러 보여 주고 있는 바, 전제적이고 일방적인 타문화권의 자녀 교육 방법과는 달리 성도된 부모들은 자신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녀들을 사랑, 징계, 교육해야 한다(신 6:4~9; 딤전 3:4, 5).
종과 상전의 관계 (5~9절)
본문은 사회 생활에 있어서 계층 구조간의 일치를 위한 말씀으로 종(고용인)과 상전(고용주) 모두가 하나님 앞에 동등한 존재임을 밝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목전에서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주지시킨다. 당시 근동에 수 백만의 몸종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바울의 이같은 인간 평등 사상은(몬 1:16) 실로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평등을 대변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성도의 영적 싸움 (10~20절)
성도로서 교회, 가정, 사회 생활 속에서의 일치된 삶을 위한 비결들을 언급한 후에 곧이어 바울은 그러한 일치된 삶을 파괴시키고 성도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탄의 권세와 영적으로 싸울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으며, 우리는 그 영적 차원의 생활에서도 승리해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본문은 영적 싸움의 필요성, 시기, 자세, 무장 등이 실제 전투에 임하는 병사의 모습에 비유되어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끝맺는 인사 (21~24절)
에베소서는 옥중 서신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옥중 상황에 대한 묘사와 암시가 적다. 이를 역으로 생각할 때 옥중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이와 같이 힘과 용기와 교훈이 담긴 서신을 쓴 사실에서 우리는 신앙의 무한한 잠재력을 새삼 깨닫는다.
# 핵심
1~9절
부부 관계에 이어 부모와 자녀, 고용주와 피고용주간의 올바른 관계에 관한 교훈이다.
노예 제도에 대한 바울의 입장 (5~9절)
기독교 정신과 상반되는 반인륜적 제도인 노예 제도를 바울이 인정하고 있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그가 이 제도를 옹호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로마 제국 당시, 노예 수는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했다. 그 상황에서 노예 제도를 폐지하려면 로마 당국과의 무력 충돌과 엄청난 인명 희생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종과 상전을 불문하고 성도로서 사회적 신분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구현하라고 권면했다. 그렇게 하면 실제로는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가 된다.
# 묵상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1~4절)
자녀는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육적, 영적인 양육의 책임을 지고 주의 훈계로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자세 (10~17절)
그리스도인이 마귀의 세력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허리에는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가슴에는 의의 흉배를 붙이고, 발에는 복음의 신발을 신고, 손에는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들고,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에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과 이유 (13~14절)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은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들을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 이유는 악한 날에 이들을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굳게 서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와 의로써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진리'는 내부의 정직과 복음의 진리를, '의'는 정의와 진실을 각각 의미합니다.
영적 전쟁의 수행 방법 (18~20절)
영적 전쟁의 수행 방법으로써 바울은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함께 은혜를 나누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때로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여 권력에 복종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힘을 다해 이웃을 격려하고 그들이 믿음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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