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3절)
신앙의 성장 - 성도의 개인 생활에 관한 베드로의 첫번째 권면의 결론 부분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될 것을 가르친다.
[1절]
개인 및 교회가 거룩해지기 위하여 척결되어야 할 사항이 제시되어 있다(고전 5:3~5, 13). 악독. 남을 해하려는 여러 가지 악한 마음을 가리킨다. 궤휼.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계획을 말한다. 외식<막 7:1~23, 외식에 대하여>.
[2절]
갓난 아이들같이...사모하라. 거듭난 자들도 하나님의 신령한 영적 양식을 사모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라는 말씀이다.
[3절]
신자가 영의 양식을 사모해야 할 이유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강렬한 표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만이 말씀을 사모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4~10절)
신령한 제사의 결과 - 본문에서 베드로는 불신자와 대조시켜 순전한 말씀을 섭취한 자는 하나님의 집의 구성원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장이 되며, 영적 축복을 받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교훈하고 있다.
[4~5절]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셔서 하나님의 교회의 초석이 되신다는 점에서 산돌이시다(엡 2:21, 22). 여기서 우리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삼아야 하며, 신자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서(요 15:4), 교회를 떠나서는 온전한 신앙 생활이 불가능함(히 10:24, 25)을 깨닫게 된다.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이는 구약의 성도와는 달리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다른 인간적인 중보가 필요없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위 '만인 제사장주의'의 증거 구절이다(히 7:27, 28).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인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사건(마 27:51)에서도 명백히 증거되었는데 여기서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리스도의 찢긴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뜻한다(히 10:19, 20). 그러므로 이제 자기 몸으로 성전을 삼으신 그리스도(요 2:19) 안에 거하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의 구별 없이 직접 하나님을 뵐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갈 3: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아직도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중보자로 신부를 내세우고 있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신부에게 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은 이에 과감히 맞서 성경적 가르침을 수호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도 영원토록 고수해야 할 성경 진리이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6절]
모퉁이돌.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결시키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가리킨다(슥 4:7; 행 4:11; 엡 2:20).
[7~8절]
유대인들은 예수를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으로 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의심하여 대항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머릿돌, 곧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는 유일한 근거로 삼으셨음을 의미한다(시 118:22; 사 28:16; 막 12:10~12).
[9절]
택하신 족속. 신약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의해 선택된 무리임을 시사해 준다(출 19:5, 6; 사 43:20).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으며, 동일한 신분의 이웃에게 봉사할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성별된 그리스도인을 뜻한다(사 61:9; 계 19:8).
(2:11~3:12절)
성도의 복종 - 개인에게 요구되는 삶의 자세를 교훈한 베드로는 이제 사회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신자들이 취해야할 행동에 대하여 언급한다.
[11~12절]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님을 시사해 준다(빌 3:20).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인간에게는 영적인 자아와 육적인 자아가 있으며, 그중 육적인 자아는 인간적인 욕망을 일으켜 부도덕한 행동에 이르게 한다(롬 7:18~25). 이 땅에서 나그네요 행인인 신자가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덧입어야 한다. 이는 항상 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신자들이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됨(엡 6:13)을 의미한다.
[12절]
권고하시는 날. 이는 눅 19:44절을 반영한 것으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위로와 해방을 주시는 날'(출 3:16; 삼상 2:21), '심판과 형벌의 날'(출 32:34)을 의미했다. 이러한 '권고하시는 날'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이방인들이 회개하는 날

2) 마지막 심판 날

3)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방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편(方便)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 첫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13~17절)

세상 권력에 대한 성도의 의무 -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이지만(빌 3:20), 이 땅의 나그네와 행인인 이상 이 땅의 질서를 위해 주어진 의무 이행에 충실해야 될 것을 말한다.

[13절]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세상 질서 및 권력에 대한 성도의 태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영역 주권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영역 주권론의 정의 : 하나님께서는 세상 통치를 위한 자신의 대리자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이를 위해 인간 사회에는 각기 독특한 기능과 역할을 갖는 각종 단체 및 제도가 존재한다. 이러한 제도와 단체는 하나님 안에서 고유한 독립성과 더불어 긴밀한 유기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주권하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단체나 제도가 다른 것을 예속시키거나 지배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2) 기원 : 중세 사회 때 성직자들은 세상 권력에 대한 교회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반면 세속적 군주들은 교회에 대한 세속 권력의 우위를 주장하여 이 양자간에는 끊임없는 충돌과 반목이 야기되었다. 이에 대해 19C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영역 주권론'이란 말을 상용하여 교회와 세상 권력은 서로 지배, 예속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건설적으로 견제, 비판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해야 하는 유기적 관계에 있음을 선포함으로써 이들의 잘못된 논리를 지적하였다.

3) 특징 : ① 독립성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제단체 및 제도들은 주 안에서 각자의 독립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침해하거나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잘못된 시도는 하나님이 뜻을 거스르는 것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까지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케 한다. 또한 이러한 독립성은 비단 정권과 교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가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된다. ② 유기성 - 한편 독립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각 제도간의 조화롭고 공동적인 선의 추구는 실상 불가능하며 사회 발전을 저해하여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각 영역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되 한편으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결손과 부족을 보완하며 비판, 협력 등의 방법을 통해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건설해 가야 한다.

[14절]

징벌하고...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 하나님이 세속 정부를 세우시는 근본 목적을 보여 준다<잠 24:21, 그리스도인의 국가관>.

[16절]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롬 14:1~15:13, 아디아포라의 이해>.

(18~25절)

고용주에 대한 성도의 의무 - 당시 교회에는 많은 노예 계층의 신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신앙을 빙자하여 주인의 신분을 무시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교회를 박해하는 구실이 되었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여 주면서 주인에게 순복할 것을 가르친다. 베드로가 이처럼 강조한 것은 단순히 노예 제도 자체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 전파가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며,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 성심성의껏 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성의 근본적인 변혁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목표로서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이며,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의 근본 열쇠는 사랑과 성실, 참된 관용의 정신임을 깨달을 수 있다.

[18절]

범사에 두려워함으로...순복하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시 31:19)으로 주인의 유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힘써 일하라는 의미이다.

[19~20절]

선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여기신다. 애매히. 당시 헬라의 사고 방식으로는 하인에 대한 학대가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학대를 '애매한'(헬, 아디코스, '불의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참된 가치와 존엄을 귀중하게 여기심을 깨닫게 된다.

(21~25절)

고난의 인내 - 그리스도의 수난과 인내를 제시하여 성도의 인내를 강조하고 있는 본문은 첫째, 성도는 선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둘째, 고난은 신앙적 성숙과 사랑의 실천의 원동력이 되며 셋째, 고난은 고난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의 전제 조건이 됨을 교훈해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당하신 것처럼 고난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4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한 정죄에서 벗어나(롬 8:3, 4)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가리킨다(롬 8:33).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성도들 역시 형제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함(마 16:25; 요 15:13; 고전 10:24)을 깨닫게 된다.

 

# 해설

성도의 영적 성장 (1~10절)

앞에서 성도의 경건과 사랑의 당위성을 강조한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러면 '어떻게?'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는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도의 영적 양식으로 삼아야 함(1~3절), 세상이 경히 여기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삶과 신앙의 주춧돌로 삼아야 함(4, 6~8절),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봉사할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는 점을 항시 기억해야 할 것(5, 9, 10절) 등이 그것이다.

성도의 대사회적 의무 (11~25절)

본문에서는 성도가 천국 시민이면서도 아직은 이 땅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들임을 들어(11, 12절) 대사회적 의무를 교훈한다. 특히 당시의 불신자들은 성도들을 가리켜 반사회적이며, 국가와 가이사에게 불충하는 자요(요 19:12), 주종 관계의 질서를 무시하는 자들이라 비난하였다. 따라서 성도들도 이 땅에 살 동안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땅의 질서를 준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지 않게 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모범(21~25절)을 들면서 국가의 법과 제도에 대한 순복(13~17절) 및 주인에 대한 종의 순종(18~20절)을 강조하고 있다.

 

# 핵심

1~10절

성도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일러주고 있는 부분이다.

만인 제사장 (5, 9절)

구약 시대에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희생 제물과 제사장의 중보 사역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으므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배하며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신약 성도들이 구약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사실을 가리켜 '만인 제사장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아직도 사제들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내세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묵상

성화의 방법 (1~2절)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영적 갓난아이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갓난아이인 성도가 말씀의 신령한 젖을 먹고 성장하면서 점차 과거의 죄악된 행위를 버리게 되는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성도는 이 성화의 과정을 통해 세워지는 성전이며 택함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부도덕에 오염되지 않도록 힘쓰며 아름다운 언행을 유지하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모퉁이 돌 (7~8절)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을 '산 돌' 또는 '모퉁이 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는 자에게는 모퉁이 돌이 보배로운 돌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장애가 되며 그들을 다치게 하는 올무가 됨을 뜻합니다.

종의 자세 (8~25절)

종은 고용주의 호악(好惡)을 불문하고 인내하며, 주님을 본받아 선을 행하고 고용주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는 사회 제도와 신분을 초월해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함으로써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있으며, 주의 종들을 통해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대한 성도의 자세 (12~17절)

성도는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 권세와 질서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신적인 섭리에 따라 세워진 국가는 상선징벌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여 하나님의 공의 유지 사역을 대행하는 기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이 세상 나라는 단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성도들의 목적이 될 수는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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