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11절)
영적 성장의 요청 - 고난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 기록된 본서는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환난, 즉 배교와 거짓된 가르침에 대해 주로 언급하고 있다. 본 서신은 특별히 지식(知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영지주의나 이단 사설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적 지식을 의미한다. 한편 본문에서 베드로는 거짓 교사에 대한 본론적 경고에 앞서 거짓 교사의 미혹을 피하기 위해 수신자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성결한 생활로 점진(漸進)할 것을 권면한다. 즉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신자는 이에 대한 합당한 반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결한 삶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결정적 증거이며, 신자의 성결은 인간적 수양과는 전적으로 상이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1절]
종(헬, 둘로스). 이는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미미한 신분적 위치와 절대 충성의 사역적 위치를 시사한다.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믿음. 믿음의 출처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임을 가리킨다(엡 2:8, 9). 우리. 이에 대하여선 ①유대인 신자, ②베드로가 당시 목회하던 교회, ③사도들, ④각지에 흩어진 모든 그리스도인과 본서를 기록한 저자를 가리킨다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그중 ④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2절]
앎(헬, 에피그노시스). 본 서신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로서, 당시 교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던 영지주의의 지식(헬, 그노시스)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근원적이고 체험적인 지식이란 점에서 '완전한 지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이러한 지식이 있을 때 우리가 보다 많은 은혜와 평강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3~4절]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신령한 특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중 생명은 인간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원동력(요일 5:11, 12)을 의미하며 경건은 변화된 자가 지니게 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성을 의미한다. 주셨으니. 완료형 시제로서 신자들은 이미 위의 것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성도들은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인격적 교제를 통하여(2절)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선물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당신의 형상을 회복게 하시기 위함이다(창 1:26; 엡 4:24).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이것은 성도 개인이 현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새 하늘과 새 땅(3:13)에서의 영원한 삶을 아울러 가리킨다.
(5~11절)
영적 성숙의 요소 -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혜를 받은 신자들이 영적 성숙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언급되어 있는 본문은 기독교 윤리는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신앙 윤리로서, 모든 것은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하며, 신앙 윤리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화될 수 있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
[5절]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엡 2:8, 9) 모든 신앙 생활의 기본임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덕'(헬, 아레테)은 신자에게 기본적으로 요청되는 사항(고전 6:20)이 갖춰진 상태를 의미하며 '지식'(헬, 그노시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장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가리킨다. 이것이 결핍될 때 맹목적 광신자가 될 수 있다.
[8~9절]
믿음에 일곱 가지 덕목이 충만히 채워진 사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더욱 많이 체험할 수 있는 생동적 신앙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죄의 은총을 망각하며 현재 누리고 있는 영적특권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다. 따라서 미래에 주어질 축복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 진보치 못하는 신앙인에게는 퇴보만이 있을 뿐이며 둘째, 침체된 신앙인의 특징은 영적 무감각임을 깨닫게 된다.
[10절]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굳게'로 번역된 헬, '베바이안'은 의사(意思)를 확인한다고 할 때 쓰는 법률 용어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리스도인 된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항상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고후 13:5).
[11절]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 이 땅에서 열심으로 거룩을 추구하며 산 신자에게 보다 큰 상급이 있을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성도의 최종적인 영적 목표가 구원만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화된 삶임을 깨닫게 해준다.
(12~21절)
재림의 대비 - 노년에 접어들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안 베드로는 이제 비장한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에게 전파된 복음을 마음에 깊이 간직할 것을 권면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이 가르침이 신적 권위를 갖는 확실한 것이라고 말한다<행 6:6, 사도직에 대하여>.
[12절]

이미 있는 진리.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리로서 이미 수신자들이 알고 있는 진리이다(행 1:11). 내가...생각하게 하려.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이다(벧전 1:13).

[13절]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베드로는 자신의 육신을 장막으로 비유한다. 이것은 이 세상의 삶은 일시적이며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나타낸다(14절).

[1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죽음에 대하여 예언하신 일을 가리킨다(요 21:18, 19).

[16절]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초대교회 당시 유행하던 신화들 가운데는 신들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의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몰아붙였다(딤후 2:17, 18).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17~18절]

베드로는 변화산상의 사건의 목격자로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재림에 관한 가르침이 확고한 진리임을 주장한다<눅 9:28~36, 예수 생애의 5대 사건>.

(19~21절)

예언의 권위 -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변화산 사건의 예증보다 구약 예언을 신임한다는 점에서 구약 예언의 신적 권위와 이것을 해석하는 신자의 합당한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본문은 예언의 참된 권위와 그 역할을 밝히면서 성경 말씀의 영감설과 신적 기원을 강조함으로써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만이 이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는 진리의 보고(寶庫)임을 교훈해 준다.

[19절]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재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은 암흑과 같은 세상에 사는 성도들에게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시 119:105). 날이 새어...떠오르기까지. 학자들 중에는 본절을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교제를 뜻하는 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너희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재림으로 말미암은 신자들의 내적 변화와 연관지어 이해됨이 더 타당하다.

[20절]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여기에 대해 ①개인이 아닌 교회만이 해석권이 있다는 로마 가톨릭의 견해, ②구약의 모든 예언은 예언자 자신의 해석이 아니라는 견해, ③성경을 해석자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③의 견해가 합당하다(3:16).

[21절]

본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중의 저자를 가진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즉 원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성경 기록자를 인도하고 죄의 영향에서 보호하심으로써 성경을 기록하신다(삼하 23:2; 렘 1:7, 9; 딤후 3:16).

 

# 해설

인사말 (1~2절)

본단락은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발신인과 수신인의 명기(1절), 축복(2절)의 순으로 본서를 시작하는 부분이다. 특히 베드로는 인사말에서 주 예수에 대한 앎을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이는 베드로전서가 교회 외부의 탄압에 대한 대처가 주제인 반면, 본서는 내부의 적인 이단주의자들에 대한 대처가 그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앎은 당시의 이단적 지식과는 다른, 성령으로 말미암아 체득게 되는 완전하고도 신령한 지식을 가리키는데(고전 2:6~16) 기독교를 일컬어 '계시 종교'라 함은 이 때문이다.

영적 성장의 요청 (3~11절)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남이 도와주는 것은 일시적 방패일 뿐 영구 대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베드로는 여기서 성도들에게 각자의 영적 성장에 힘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중생함으로 단번에 구원을 얻지만 신앙 인격은 각자에 따라 다른 것으로서 부단한 진보를 요청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의 공로로 단번에 의인으로 인정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끊임없이 예수의 의를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에 있는 이중적 상태가 바로 성도의 상태인 것이다(고전 3:1~3).

믿음의 근거 (12~21절)

본 단락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재확인시킴으로써, 즉 신앙은 예수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구약 예언이라는 초월적 계시에 근거한 것임을 이단 사설의 유혹에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유의시키고 있다. 특히 13절에서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언급하면서까지 이 말씀을 당부하는 노사도의 절절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 핵심

1~11절

문안 인사와 함께 성도들이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확고한 믿음에 입각한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한다는 교훈이다.

신의 성품에 참여함 (4절)

후기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신성하고 불멸하는 것이므로 부단한 자기 수련에 의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인간의 내면에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으므로 참선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의 타락 이래 모든 인간의 본성이 부패해졌다고 한다(롬 3:10~8).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성도가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성화의 단계에 따라 점차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을 뜻한다.

 

# 묵상

'하나님을 안다'는 것 (2절)

'하나님을 안다'라는 표현의 의미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인식을 말합니다. 이 인식을 통하여 천국에 관한 잘못된 사실을 구별할 수 있고 거짓 교사와 유혹자들에게 담대히 맞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덕목 (5~7절)

성도의 덕목은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같은 덕목이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믿음을 통해서 그 외의 덕목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의 확신 (10~11절)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이것들과 함께 실족지 아니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넉넉히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실족이란 영적인 범죄를 가리키고 부르심과 택하심의 보장은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이 약속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지켜야만 성취됩니다.

베드로가 말한 예언 (21절)

베드로는 예언에 대해서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 없이 기록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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