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비스가 산상의 모세 34:1-4
1. 산을 오르는 모세(1)
모세는 하늘을 향해 위로 올라가서 비스가 산정상에까지 이르렀다. 그곳은 그가 죽을장소로 정해진 곳이었다(32:49,50).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평원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명령에 따라 모세는 그평지에서 느보산의 정상인 비스가에 이르렀을 것이다(1절). 비스가란 그렇게 우뚝솟음, 또는 탁월함을 일컫는 보통명사이다. 비스가 정상까지 모세는 "아무 도움없이 홀로" 등정해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추측컨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을 마치고 여호수아, 엘르아살을 비롯한 몇몇 동지들과 숙연한 작별을 고했던것 같다. 어쩌면 이들이 산발치에까지 배웅하러 나왔었겠지만 모세는 아브라함이 다른산에서 자기종복에게 말했듯이 올라오지 말라는 권고를 그들에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라. 나는 저곳으로 가서 죽으리라." 비스가 산정에 홀로 올라가는 그의 행동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1) 자기가 죽음도 기꺼워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기가 죽을자리를 알고 결코 그것을 피하지않고 그자리에 이르기위하여 기꺼이 가파른 산을 올라갔다.
(2) 자기가 자신의 죽음을 승천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영혼, 착한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남기고 위로 올라간다(전 3:21). 하나님께서 그종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실때는 이와같이 "올라와서 죽으라"는 소환장이 내려오는 것이다.
2. 땅을 굽어봄(2-4)
자신이 결코 그땅을 밟아보지 못하게된 지상의 가나안을 살펴보기 위하여 모세는 다시 이땅을 내려다 본다. 그렇지만 이제 즉시 그는 믿음으로 대망하고 있는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것이다.
(1) 비록 그가 비스가 꼭대기까지 홀로 올라갔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성부께서 그와 함께계셨기 때문이다(요 16:32).
(2) 보다나은 나라에 대하여 현재 우리가 품고있는 모든 즐거운 기대는 하나님의 은혜덕택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영'과 더불어 '지혜의 영'도 주시며, 사물과 더불어 그것을 볼수 있는 눈도 주신다.
(3) 그는 멀리서 가나안을 바라보았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장래의 상태의 지복과 영광에 대하여 은혜를 통해서 멀리서 바라보듯 한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말씀과 규례는 비스가 산정이 모세에게 주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4) 그는 그것을 보기만했지 결코 누릴수는 없었다. 장차있을 그리스도 왕국의 영광스런 것들, 그왕국의 발전과 확장 그리고 융성한 상태에 대해서 우리는 듣고 그사실을 내다볼수는 있으나 그러한 사실들을 목격하기까지 살것 같지는 않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후세대들이 그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바랄뿐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5) 가나안은 임마누엘의 땅이었다(사 8:8). 그래서 그는 그땅을 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축복을 보았던 것이다.

Ⅱ. 모세의 죽음 34:5-8
1. 모세의 죽음(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죽어. 광야의 그수많은 역경을 뚫고 나왔음에도 목적지인 가나안이 주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은 모세자신에게 있어서 큰괴로움이었다. 그러나 "그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일을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는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1) 여기에서 그는 '여호와의 종'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는 그가 선한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모든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대단히 쓸모있고 유용한 인물로서 여호와의 종이라 칭함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광야를 통과하도록 이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2) 그런데도 그는 죽는다. 그의 경건도 그의 유용함도 죽음의 손길을 면케할수 없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수고에서 쉬고 그보상을 받으며 다른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세상에서 더이상 그를 섬기지 않고 떠날때 그들은 더훌륭하게 그분을 섬기기위하여 그리고 '주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섬기기위하여 가는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 글자 그대로는 '여호와의 입에서'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입술의 입맞춤으로"라고 말한다. 여호와의 종들은 할일을 모두 마쳤을때 그주인에게 순복하여 마침내 죽어야하는 법이며 그주인이 그들을 부르러 사람을 보낼때면 기꺼이 본향으로 돌아와야 한다.
2. 그의 장례(6)
하나님께서는 자기종들의 시신을 돌아보신다. 그들의 죽음이 가치있듯이 그들의 주검도 가치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검과 함께 언약은 기억되어야 한다. 모세는 '벧브올 맞은편' 계곡에 묻히게 되었다. 영혼이 하나님곁에서 안식하고 있다면 그몸이 어디에서 쉬든지 그것은 큰문제가 못된다. 우상숭배의 성향이 깊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민족의 위대한 기초자요 아버지인 모세의 사체를 봉안하여 절하는 일이 없도록 그 구체적인 지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3. 그의 나이(7)
(1) 그의 수명은 노령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나이는 120세에 이르렀는데 이는 비록 그의 선조들의 나이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그당시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은 나이였다. 모세의 생애는 사십년을 단위로 세등분할수 있다. 그 첫 사십년동안 그는 왕족의 일원으로 바로의 궁궐에서 편하게 위엄을 부리며 살았으며 두번째 사십년동안은 미디안광야에서 가난하고 소망이 없는 목자로 생활하였다. 세번째 사십년동안 그영예와 권세에 있어서 여수룬의 임금과 같이 생활하였으나 심려와 수고로 대단히 힘이 들었던 생활을 하였다.
(2) 그는 늙어서도 건강을 누렸다. 그의 눈은 침침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이삭과 야곱의 눈은 쇠했었다. 창 27:14;48:10).
4. 모세를 위한 애곡(8)
애통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으며 그들이 곡을 한 기간은 '삼십일'이었다. 그러나 모세를 위하여 울고 애곡하는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은 비록 우리의 손실이 대단히 클지라도 무한정 슬퍼해서는 안되며 시간이 되어 치유가 될때까지 그상처를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만일 우리가 기뻐하며 하늘나라로 가기를 소망한다면 왜 굳이 애곡하면서 무덤에 가려고 한단 말인가?

Ⅲ. 모세의 탁월성 34:9-12
여기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 대하여 매우 명예스런 찬사를 아끼지않고 있다. 두사람은 모두 찬사를 받고있는데 이는 받아 마땅한 것이다. 두사람 모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1) 여호수아는 소명받은 사역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을 매우 잘 구비하고 있는 사람으로 칭찬받고 있다(9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국경지역까지 이끌고와서 율법으로는 아무것도 온전케 될수 없다는 사실을(히 7:19) 나타내기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남겨놓은 채로 죽었다. 율법은 사람을 그에 대해 판결하는 광야로는 인도하지만 안식과 안정된 평안의 가나안으로는 인도하지 못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것을'(롬 8:3) 우리를 위하여 하는것은 여호수아(즉 우리주 예수, 여호수아는 그의 예표이다)를 위해 예비된 영예인 것이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안식 즉 양심의 신령한 안식과 천국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이 위대한 과업에 대한 여호수아의 소명을 분명히 하기위하여 두가지 사실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1) 하나님께서 그를 그일에 적합케 만드셨다.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9절). 한사람의 장수에게 있어서 지휘능력은 용기와 함께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2)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그에게 그사명을 이양하였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가 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고 그를 불러내어 맡기시고자 하는 사명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을 그에게 부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2) 모세도 칭송을 받는다(10-12절).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 그는 실로 매우 위대한 인물이었다. 특히 두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① 그는 하나님과 친밀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신 자요. 그렇게해서 그도 하나님을 알았다(참조. 민 18:8).
② 자연세계에서 그는 영향력과 권능이 있었다. 그가 애굽에서 바로앞에서 행하였던 심판의 기적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앞에서 행하였던 자비의 기적들은 그가 하늘의 친밀한 총애를 누린 자요, 이땅 위에서 나타내 보였듯이 그러한 일을 할수 있는 비상대권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임을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게는 모세보다 더 사랑해야 할만한 자가 없었으며,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 두려워해야할 자가 없었다.
2) 그는 구약의 다른 어떤선지자들보다 더 큰자였다. 물론 그들역시 하늘에 큰세력이 있고 지상에 큰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중 어느누구도 이 위대한 인물에 필적할수 없으며 모세가 했듯이 하늘로부터 받은 직권을 증명하고 행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는 구절로 미루어보아 모세에 대한 이칭찬은 그가 죽은지 오랜뒤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는 율법을 수여하시고 유대교회를 만들고 형성시키셨지만 선지자들로는 단지 소소한 꾸지람이나 지시, 처방, 예언 등을 주셨던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중 최후의 선지자는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훈계로 끝을 맺고있다(말 4:4). 그리스도께서도 종종 모세의 글에 호소하셨으며 모세가 멀리서 그리스도의 시대를 바라보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얘기해던 증인임을 보증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의 집맡은 아들로 충성하셨다(히 3:5,6). 모세의 역사는 모세를 모압평원에 장사지낸 것으로 통치기간을 끝맺는데 비하여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주님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도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편에 앉아계신 구주예수의 통치와 평강이 끊임없이 임할 것을 확신한다.

# 핵심
34:1-12
모세의 죽음과 장사를 기록하고, 생전에 행한 모세의 업적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모세의 사망기사를 쓴사람은?(34장)
모세의 사망기사를 쓴사람은 아마 눈의 아들 여호수아(9절)인 듯하다. 성령의 인도와 영감에 따라 여호수아가 존경하는 스승의 죽음과 장사에 관한 기록을 첨가하고 책의 말미에 유창한 찬사를 첨부했을 것이다. 어떤저자의 책의 말미에 그의 사망기사가 삽입되었다고해서 그의 저작사실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상당수의 보수주의 학자들도 사망기사는 모세가 쓴것으로 보지않고 있다.

# 묵상
모세가 얻은 복 ( 34:1-4 )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 전역을 바라보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론처럼 모세도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곳의 풍요함과 아름다움을 눈으로 목격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천국의 아름다움과 풍요를 미리 맛보는 복을 얻었습니다.
모세의 장례 ( 34:5-8 )
모세는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모압땅에서 죽었지만, 이는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의 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그릇된 숭배의 여지를 없애고 올바른 신앙의 대상으로 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리스도의 좌우편에서 엘리야와 함께 하늘나라의 비밀을 논의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마17:3).
모세의 후계자 ( 34:9 )
앞에서 이미 예정된대로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안수함으로써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습니다. 여호수아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 ( 34:10-12 )
모세가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라고 불리워진 것은 그가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기때문이며(10절),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모세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1, 12절). 그렇지만 성도들은 모세보다 더위대한 우리의 사도요, 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해설
모세의 최후 ( 34 )
신34장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임종을 기록한 장입니다. 모압평지에서 감동적인 율법설교를 마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채 최후를 마쳐야 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모세가 남겼느냐 하는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두가지로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창조의 기사까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모세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자신의 죽음에 관한 기사도 썼을 가능성입니다. 둘째,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같은 사람이후에 이모세의 죽음기사를 첨부했을수도 있습니다. 이가운데서 어떤가능성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대명제에는 위배되지 않습니다.
1. 모세의 죽음
1) 모세의 죽음
모세는 최후의 유언적 축복을 마친후에 모압평지에서 느보산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의 온땅을 모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땅이 바로 과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임을 상기시키셨습니다(참조, 창12:1-3).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그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할 것을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일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할일을 다했으므로 모압땅에서 죽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죽음은 우리성도들에게 있어서 사명이 무엇인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성도들을 이땅에 보내어 생을 살게하신 것은 반드시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사명을 다할때에 죽게될 것이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가 처한 어떤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a.자기백성에게서 거부되어 미디안으로 도망한 모세(출2:15)
b.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와 만나를 제공하는 모세(출16:13-15)
c.제사장들에게 기록된 율법을 맡김(신31:9,26)
2) 묘지를 알지못함
모세는 모압평지에서 죽었고 벧브올 맞은편 모압땅에 있는 어느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묘지를 아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1500년쯤후에 유다서의 기자는 이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유다서 기자가 말하는 그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사지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체를 인간이 알지못하는 어떤곳에 장사지낸 것입니다(참조, 유1:9). 그이유는 모세의 묘지가 사람들의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혹은 변화산사건에서 예수님에게 나타났던 사람이 엘리야와 모세였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없이 승천한 사람이고 예수님역시 그렇게 승천하실 분이라면 모세도 그런 특이한 몸이 아닐 것인가 말입니다. 다시말해 모세의 무덤이 밝혀지지 않고 천사장 미가엘이 그의 시신을 가지고 마귀와 시비한 것은 그가 부활체로 승천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a.엘리사의 묘실에서 기적이 일어남(왕하13:21)
b.유다의 선한 왕들만이 다윗성 열왕의 묘실에 매장될수 있음(대하24:16)
3) 모세를 위하여 애곡함
모세가 죽은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평지에서 30일간을 애곡했습니다. 광야생활 40년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애굽을 물리치고 출애굽한 감격적인 사건때에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슬픔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죽을때 그의 나이 일백이십세였으나 그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다고 하는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모세가 아직 죽을때가 안되었는데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모세는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데 대해 하나님의 징벌로 죽음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접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광야생활동안 자기의 부모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으로인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던 사건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사명을 다시한번 기억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결심은 가나안입성과 더불어 시작되는 전투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용기와 믿음을 더해주었을 것입니다.
a.슬퍼하는 모든자들이 애곡에 참여함(삼상25:1)
b.애곡이 영영한 희락으로 바뀜(사35:10)
c.베옷을 입고 애곡함(창37:34)
2. 모세에 대한 회고
1) 후계자 여호수아
모세는 죽기전에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고 여호수아에게는 여호와의 지혜의 신이 충만했습니다. 과거 모세의 지도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아 가나안정복에 나설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인도하셨듯이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정복의 역사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어느시대에나 하나님은 적절한 지도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a.가나안을 정탐하러간 여호수아(민13:1-3)
b.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민27:18-23)
c.이스라엘 모든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한 여호수아(수19:51)
2) 위대했던 하나님의 선지자
신명기를 마감하면서 신명기의 기자는 모세에 대해 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시던 자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을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행하던 자였습니다. 신명기 기자는 말하기를 모세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모세보다 나은 선지자는 우리의 영원한 중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중요한 한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셨습니다.
a.선지자의 선포는 은혜와 구원을 내포함(벧전1:9-12)
b.이스라엘의 파수꾼(겔3:17)
결론
신34장은 모세의 최후를 기록하면서 아울러 이제 새로운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전개될 가나안 정복전쟁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한지도자의 죽음으로 중단되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생활 가운데서도 한지도자의 교체와 같은 일로인해 교회전체가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성도들에게 전하여 함께 나아가자고 권면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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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1-4
(1) 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정직히 행치 아니하고(2절). 그는 성전에 대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윗의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의 수치였으며, 그러므로 사실상 자신에게도 수치가 되었다.
(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3절). 그들은 모두 송아지를 숭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여러왕들은 우상숭배가 그들의 국가의 정책이며 대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와같은 구실을 댈수 없었다. 그들은 아하스의 적이었으며, 그들의 우상숭배로인하여 더적대적으로 되어왔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들의 길을 행한 것이다.
(3) 그는 쓰레기같은 잡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또한 우상에 대한 헌신의 표로 자식들을 불에 태우고(대하 28:3), 다른아들들을 두개의 불사이로 지나가게 하거나, 불한가운데를 지나게 하였다.
(4)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3절).
(5) 또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4절). 만약 그의 아버지가 좀더 열심을 내어 산당까지 제거해버렸더라면 아들의 방탕을 방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후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올무를 놓는 행위인지 알지 못한다.

Ⅱ. 앗수르에 도움을 청함 16:5-9
(1) 이웃나라 아람과 이스라엘의 왕이 동맹을 맺고 아하스를 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이계획은 실패하였지만, 아람왕은 홍해에 위치한 주요항구 도시인 엘닷을 회복하였다. 이도시는 아마샤가 아람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24:22).
(2)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아하스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때문에 적에 대항하여 고개를 들 용기도, 능력도 없었으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죄는 그자체가 형벌이다. 앗수르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도우려 다메섹에 내려와서 아람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을 가하였다(9절). 그리고 아람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길'로 끌고감으로 아하스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때 아하스는 그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손해나는 거래를 하였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첫째,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7절). 나는 왕의 심복이요, 둘째, 스스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곳간에서 은과 금을 꺼내 앗수르왕에게 보내었다(8절). 왕이 국고를 이렇게 처리할수 있는 무슨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하나의 죄를 지어서 스스로 협곡에 빠진 사람들은 통상 또다른 죄를 통하여 헤어나오려고 한다.

Ⅲ. 하나님의 전을 더럽힘 16:10-16
비록 아하스 자신은 산당에서 희생을 드렸지만(4절), 그때까지 하나님의 제단은 원장소에서 원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악한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옮기고 다른제단, 즉 우상의 제단을 그장소에 놓았다.
(1) 이 새제단의 모양은 왕이 직접 다메석의 제단을 본따 만든 것이었다(10절).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칠때, 아하스도 그곳에 가서, 그를 축하하고 그의 명령을 받았다. 다메섹에서 그는 그를 꼭 만족시켜 주는 제단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제단의 모형을 똑같이 본땄음에 틀림없다.
(2) 제사장 우리야가 그제단을 만들었다(11절). 왕이 어떤구실을 제시하더라도 대제사장인 그가 사악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제단을 제작한 행위는 가장 형편없는 악한 짓이다. 그는 스스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권위를 매음하듯이 팔아치웠으며, 대제사장의 명예를 더럽혔고, 자기신의를 저버렸다.
(3) 그제단을 봉헌하였다. 우리야는 그것을 놋단옆에 놓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고, 그위에 번제를 드렸다(12,13절). 그희생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우상들에게 드려진 것이다.
(4) 새제단을 놓기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치웠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뜰 북쪽, 외진구석으로 옮기고, 대신 성소에 자신의 제단을 놓았다. 아하스의 미신적인 착상은 우선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충돌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제도를 밀어내었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여기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는자들은 곧 하나님을 무시해버리고 말것이다. 아하스는 감히 하나님의 놋단을 아주 없애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제단을 하나님의 제도위에 두려고 하였다. 놋단은 하나님께 묻기위하여 제작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는 후에 그놋단의 놋을 가지고 '아하스의 일영표'(참조, 20:11)라고 불리워지는 유명한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Ⅳ. 아하스의 죽음 16:17-20
(1) 아하스는 성전을 마구 바꾸었다. 성전건물 자체는 아니지만 성전의 여러기물을 오용한 것이다.
1) 그는 물두멍의 받침을 떼어내고(왕상 7:28,29), 놋바다를 내려놓았다(17절).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을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2) 그는 '안식일에 쓰기위하여 성에 건축한 낭실', 즉 안식일을 기념하기위하여, 아니면 제사장들이 다른날보다 안식일에 많은 직무를 행하였기때문에,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하여 세운 낭실을 옮겼다.
3) 그는 왕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었던,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왕의 낭실(아마 솔로몬이 만든 당시 시바의 여왕이 보고 경탄한 층계일 것이다)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가 더이상 하나님의 전에 자주 출입하지 않을 생각임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2) 아하스는 중년기인 3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치고, 훨씬 훌륭한 자기아들 히스기야에게 왕국을 넘겼다(20절). 히스기야는 자기아버지가 성전에 대적했던만큼 성전의 친구가 되었다.

# 핵심
16:1-20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폈으며,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는 유다의 역대왕들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왕이다.

# 묵상
아하스의 사람됨 ( 16:1-9 )
요담의 아들로 유다의 왕입니다. 또한 그는 이교도의 영향으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행한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습니다(신18:21).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전쟁에서 아하스의 행동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동맹국에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능력의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힘의 근원이십니다(시18:1). 그러나 그힘을 의지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화를 입습니다.
지도자의 실책 ( 16:2 )
지도자의 실책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 전체와 더나아가 그후손들에게까지 악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점에서 지도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큰 심판을 받게됩니다(약3:1). 권리보다 책임을 더욱 통감하는 자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수 있습니다.
아하스의 죄악 ( 16:10-20 )
그는 아람수도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세워진 우상에 미혹되어 예루살렘 성전내에 아람우상을 섬기는 단을 만드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침해하는 중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악한 범죄를 행하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말씀의 중요성 ( 16:16 )
그어떤 권력자의 불같은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것임을 알면서도 보이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여 인간만을 기쁘게 하는것은 크나큰 죄악이 아닐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도리입니다(마6:33).

# 해설
아하스의 유다통치 ( 16 )
다윗왕조를 계승한 유다의 왕들은 비교적 선한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듯이 아하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결과로 온유다는 앗수르가 지워준 멍에를 메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의 우상과 제사의식들을 유다에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성전의 기구들과 구조들도 변경시킨 죄악을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1. 아하스의 악한 통치
1) 유다왕 아하스의 즉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즉위한 해는 이스라엘의 베가가 17년째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하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아하스는 유다의 왕들중 가장 사악한 왕으로 꼽힐정도로 많은 악행들을 일삼았습니다.
a.아하스의 즉위(대하28:1)
b.아하스의 일영표(왕하20:11)
2) 우상숭배를 장려하는 아하스
아하스는 다윗왕조의 훌륭한 선왕들보다는 이스라엘왕조의 사악한 왕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에 깊이 탐닉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자기아들을 불태워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암몬족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큰나무 밑에 산당을 지어놓고 백성들에게 경배할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런 산당이 너무 많았기에 본서의 저자는 모든 푸른나무 밑에는 다 산당이 있고 제사가 행해진다고 말할정도였습니다.
a.자녀를 제물로 바침(시106:37-38)
b.몰렉신(레18:21)
2. 앗수르의 속국이 된 유다
1) 유다를 공격하는 연합군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앗수르에 대항코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였기에 저들의 동참요구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연합군들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이사야선지자는 연합군들이 유다에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로하여금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여 도움을 청하도록 했으나, 아하스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참조, 사7:3-7). 결국 이사야의 예언대로 연합군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람의 르신이 항구도시인 엘랏을 탈환했습니다. 유다는 이후로 엘랏을 되찾지 못했고, 에돔족속이 훗날 이곳을 훼파하였습니다.
a.르신과 베가의 살육(대하28:5-6)
b.아사랴가 건축했던 엘랏(왕하14:22)
2)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아하스
아하스는 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기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명령도 거절한채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앗수르의 지배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물리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대가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안에 있는 은과 금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앗수르왕은 기쁜마음으로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은 먼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공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왕 르신을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아람사람들은 앗수르의 격리수용 정책에 따라서 '길'이라는 지역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했던 아하스의 책략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로부터 연합군들은 물러갔지만 이제부터는 앗수르라는 새로운 멍에가 유다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아하스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a.앗수르왕에게 예물을 바치는 아하스(대하28:21)
b.다메섹의 공격(암1:5)
3. 아하스의 우상숭배
1) 이방의 제단을 만들도록 시킴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다메섹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람의 것인지, 아니면 앗수르가 새롭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제단을 보았습니다. 아하스는 이제단의 구조와 제도를 똑같이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어, 이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왜 이제단을 만들도록 시켰는지는 잘모릅니다. 다만 아람신의 도움을 얻기위해서거나(참조, 대하28:23), 또는 앗수르가 만든 제단으로 생각하여 앗수르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또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보다 화려해서 이렇게 멋있는 제단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도록 시켰을 것이라 여러모로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명대로 제단을 만들었으며, 다메섹에서 돌아온 아하스는 이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a.제사장 우리야(사8:2)
b.민족신 앞에 제사함(대하28:23)
2) 성전의 기구들을 변조시킴
아하스는 제사장에게 명하여 이제부터는 드리는 모든제사의 제물을 저 새제단에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없애버렸고, 놋바다의 놋받침을 없애고 돌판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또한 안식일날 왕이 성전을 방문할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낭실을 헐었고, 오직 왕만이 성전을 들어가는데 사용되던 낭실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전의 모형과 제사의식을 아하스 임의대로 변조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앗수르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아하스의 아부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께 대한 반항이자, 불순종의 극치를 이루는 악행이었습니다. 진실로 유다의 왕들중에 아하스처럼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왕은 없었습니다.
a.놋받침(왕상7:27-28)
b.놋바다(왕상7:23)
3) 아하스의 죽음
때가 이르매 아하스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단순히 그가 죽어서 다윗성에 그열조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하28:27절에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다른 경건한 왕들과 같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는 못하고 단지 예루살렘성에 장사되었다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하스의 지난 행적들을 살펴볼때 그의 악행이 심했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a.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한 아하스(대하28:27)
b.히스기야의 즉위(왕하18:1)
결론
아하스의 악정은 유다에서는 보기드문 예입니다. 그는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민족적인 위기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생각만을 고집하여 작은악을 물리치기위해 더큰 악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가 빠진 깊은 우상숭배의 늪과 여호와앞에서의 신전의식의 결여는 수많은 악행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하스는 한마디로 여호와를 무시한 패역한 자였습니다. 피조물에 지나지않은 인간이 창조주인 여호와를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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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사랴의 즉위 15:1-7
(1) 아사랴는 어려서 왕위에 올랐고 오랫동안 다스렸다(2절). 그리고 열심과 용기를 내어 산당을 없애지 못한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옳은일을 행하였다(3,4절).
(2) 5절의 특별한 기록(하나님께서 문둥병으로 그를 치심)은 역대하 26:16절이하에 그이유와 함께 훨씬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거기에는 아사랴통치 전반기의 영화로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후기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나와있다.
첫째로 그는 문둥병 환자였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그가 제사장직무에 대하여 뻔뻔스러운 월권행위를 했던 죄를 벌하시려고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
세번째로 그는 '죽는날까지' 문둥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사람에 대한 경고로, 끝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네번째로 그는 별궁에 거하였다. 문둥병은 율법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규정되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굴복하고 율법을 준수해야만 했었다.
다섯번째로 궁중일과 국사를 그의 아들이 대신 통치하였다. 그리고 아사랴에게 이처럼 자리를 대신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는 위안이 되었고, 나라에는 복이 되었다.

Ⅱ. 이스라엘의 다섯왕들 15:8-31
이스라엘왕국의 전성기는 예후가 정권을 잡고있을 동안이었다. 예후와 그의 세명의 후계자들이 치세할동안, 이스라엘에는 타락이 계속되고 비참한 재난이 많이 있었지만, 왕위는 순조롭게 계승되고, 왕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며, 국사도 어느정도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시대는 끝나고,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약 33년간의 역사는 상상할수 있는 최대의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정을 묘사하고 있다.
(1) 여러차례에 걸친 불행한 혁명으로 인하여 정말로 악한세대라고 불리울만한 시기였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과 자비 두가지로 시험하셨으며,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설득을 하시고 강권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합당한 재난을 주셨다.
2) 하나님은 예후에게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기쁜약속을 하셨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어느왕가에도 보여주지 않은 전무후무한 큰은총이었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와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의 충성을 이와같이 보상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집에 악이 가득찼을때, 하나님은 그집을 '이스르엘의 피'라고 불리우는 피흘림으로 보수하셨다(호 1:4).
3) 이 다섯왕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모두 같지는 않았으나 우상을 보존하는 일에는 한결같았으며, 백성들도 그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였다.
4) 이들은 한명만 제외하곤 전부 선왕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살해하였다. 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 이들은 모두 반역자와 살인자로서 왕이 되었다. 악한자는 다른 악한자에게 채찍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스스로 멸망한다.
5) 국가요인들의 야심은 그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한성읍 디르사가 나타난다. 이도시는 그주변에 있는 모든마음들과 함께, 이 반역자들중 한사람에게 잔인하게 파괴당하였다(6절).
6) 이스라엘이 국내의 문제로 이와같이 분열되어 있을때 앗수르의 두왕이 차례로 올라와서는(19,29절) 마음대로 약탈하였다.
7) 이것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일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통치자 호세아 9년에 일어났다. 만일 그들이 이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더라면, 이최후의 멸망은 방지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이들의 치세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여로보암의 아들 사가랴는 유다왕 아사랴, 혹은 웃시야 38년에 통치하기 시작하였다(8절). 명망있는 역사학자 가운데 몇사람은, 이스라엘 국내의 혼란과 불화로인하여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사가랴사이에 22년 혹은 11년동안 왕위가 공석이었다고 주장한다. 사가랴는 왕위를 제대로 굳히기전에 폐위되었다. 그가 불과 6개월동안 다스렸을때, 살룸이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를 '백성앞에서 쳐' 죽였다. 이것은 사가랴가 백성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예후의 가계는 끝났다.
2) 그후 선왕을 살해한 살룸은 평화롭게 다스렸는가? 아니다. 그렇게하지 못하였다(13절). 그는 한달정도 통치하고 살해되고 말았다. 므나헴은 살룸의 모반에 분격하였든지, 아니면 그의 전례를 보고 용기를 얻었든지 몰라도, 살룸이 전왕에게 행한대로, 살룸에게 행하였다. 즉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4절).
3) 므나헴은 십년간 그나라를 다스렸다(17절). 그는 자기백성중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굴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하여, 그들의 성을 칠뿐만 아니라 '그가운데 아이밴 부녀를' 가를 정도였다(16절). 그는 이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앗수르의 왕이 그를 치러왔을때, 그는 첫째, 백성들을 거의 신뢰하지 못했기때문에 감히 앗수르왕을 대적할수 없었다. 따라서 막대한 대가를 치루고 평화를 살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는 '나라를 자기손에 굳게 세우기위하여' 도움이 필요하였기때문에, 자기를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에 앗수르왕이 돕는다는 것을 조약에 포함시켰다. 이렇게하여 그는 이번에는 앗수르왕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앗수르군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기때문에 용기를 얻어, 머지않아 다시와서는 모든것을 약탈해 버린다.
4) 므나헴의 아들, 브가야는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나, 두달을 다스린후 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5) 베가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20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27절). 그의 폭력행위는 오랫동안 그의 머리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결국 오고야 만다. 르말랴의 아들인 베가는 이 왕들중 누구보다도 국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유다왕국에게는 큰두려움의 대상이었다(사 7:1절이하). 그러나 그는 앗수르왕에게 왕국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했던 것을 벌하신 것이다. 그는 이일후에 곧 분노한 방백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베가가 유대를 침공하는동안, 자기나라를 다른 외국군대에게 노출시켰다고 그를 미워하였던것 같다. 호세아는 이것을 이용하여 베가를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확실히 왕위에 대한 야심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같은 때에 왕관을 얻기위하여 반역자들처럼 모험을 감행하셨다. 아마 현자라면 왕관이 길거리에 있어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왕관을 얻기위하여 모든것을 내걸고 모험하였고 그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Ⅲ. 유다왕 요담의 치세 15:32-38
유다왕 요담의 치세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는 아주 선하게 다스렸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4절). 요세푸스는 요담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경건하였으며,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아주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산당을 헐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을 거기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가까이 하게하기 위하여 성전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성전대문을 더높게 건축하였다. 집권자들이 죄악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고싶은 모든일을 할수 있을때는, 경건과 미덕을 중진시키고 장려하는 일을 그만큼 더많이 해야한다. 즉 그가 죄악의 산당을 헐어버릴수 없을때 하나님의 집의 '윗문'을 높이 쌓고, 더아름답게 하였다.
(2) 요담은 중년기에 죽었다(33절). 이 기록을 볼때 다윗의 년수, 즉 70만큼 산 유다의 왕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아사의 나이는 모르지만 웃시야는 68세까지 살았고, 므낫세는 67세, 여호사밧은 60세를 살았다. 이 세왕은 최장수한 자들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50세도 살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요담왕은 41세에 죽었다.
(3) 그의 시대에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르말랴의 아들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였다. 이동맹은 아하스 원년의 유다에 큰위협이 되었다. 이것을 본 왕의 마음은 동요되고, '그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사 7:2).

# 핵심
15:1-7
유다왕 아사랴의 통치가 간략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는 에돔, 블레셋, 암몬을 정복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비슷한 위세를 떨쳤지만, 말년에는 스스로 교만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대하 26장).
앗수르의 1차 침략(15:19)
앗수르왕 불(Pul)은 디글랏빌레셀 3세를 바벨론식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통치하에 점차로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최강국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앗수르에서 발굴된 디글랏빌레셀의 통치연대기에는, 그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을 비롯하여 여러왕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묵상
아사랴의 통치 ( 15:1-7 )
아사랴는 웃시야라고도 불리며 아마샤의 뒤를이어 52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했으나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문둥병의 상징 ( 15:5 )
인간의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 질병입니다. 문둥병원균은 육체를 서서히 허물어버리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은 인간을 절망과 사망으로 서서히 이끕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십니다(민23:19). 아사랴가 문둥병을 얻은이유도 제사장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26:16-21). 나라가 부강해지고 모든일이 잘되자 아마샤는 교만해져서 제사장을 무시하고 여호와께 분향하려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무시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 개개인이 제사장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공통점 ( 15:18, 24, 28 )
그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처럼 우상숭배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을 기준으로하여 평가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계속적으로 죄를 향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옛사람을 따라사는, 썩어질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을 좇는 생활을 해야합니다(엡4:22). 또한 유다의 왕들에 비하여 볼때, 계속적으로 왕가가 바뀐것을 알수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 왕들이 살해되어도 살해자들이 처형되고 다윗왕가의 후계자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왕을 살해하고 그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유다왕 요담의 통치 ( 15:32-38 )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 16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주변의 왕들이 악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을 행했습니다. 곧 전에는 우리가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엡5:8-9).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자의 삶은 주변에 어떤 악영향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담의 주요업적 ( 15:35 )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심의 증표로 성전윗문을 건축했고, 여러성읍들을 증·개축했으며, 외적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 다방면에서 공적을 들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않고 자기가 할수 있는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할때 하나님께서는 일한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계22:12).

# 해설
몰락하는 이스라엘 ( 15 )
여로보암 2세가 죽은이후에 이스라엘은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이후의 통치자들의 지도력 부재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혁명은 이스라엘 왕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멸망의 그늘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왕조를 계승하는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상황이 호전되어 갔습니다.
1. 아사랴의 유다통치
1) 아사랴의 즉위
유다는 아마샤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27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샤는 '웃시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을때부터 시작하여 총 52년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a.아사랴의 즉위(대하26:3-4)
b.아마샤의 살해(왕하14:19)
2) 문둥병에 걸린 아사랴
아사랴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참조, 대하26:16-21). 결국 그는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사랴는 자신의 교만한 행위로 평생을 탄식속에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문둥병으로인해 나라는 그의 아들인 요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a.아사랴의 교만(대하26:16)
b.부정한 병인 문둥병(레13:46)
3) 아사랴의 죽음
문둥병으로 후회와 탄식속에 살던 아사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사랴는 유다의 왕들중 많은 업적을 지닌 영향력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하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엘랏을 건축하고 암몬족속에게는 조공을 받았으며 블레셋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군대를 재조직하고, 여러지역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뒤에는 이웃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도 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제사장의 사역에까지도 손을 댄 교만으로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말년에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된 것입니다.
a.별궁에 홀로 살았던 아사랴(대하26:21)
b.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함(대하26:23)
2. 몰락하는 이스라엘
1) 스가랴와 살룸의 통치
여로보암 2세의 뒤를이어 그의 아들 스가랴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동안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가 4대만에 끝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왕하10:30).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결국은 한달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므나헴은 왕으로 즉위한후 디르사와 사마리아 근처의 딥사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므나헴을 왕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므나헴은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떤형벌이 내리는지 본을 보이기위해 임신한 부녀자들까지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7:9)
b.예후왕조에 대한 예언(왕하10:30)
2)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통치
므나헴은 유다왕 아사랴 39년에 왕이되어 10년동안 악한통치를 하였습니다. 그의 배교행위는 조상들 못지않게 악했던것 입니다. 어느날 앗수르의 강력한 지도자들중에 한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불'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사실을 안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각각 은 오십세겔씩을 토색하여 은 천달란트를 불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대가로 므나헴은 왕위를 지속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므나헴은 죽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하였는데, 그역시도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브가히야는 50명의 병사를 이끌고온 베가에 의해 왕궁호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왕자인 아르곱과 아리도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베가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앗수르왕 불의 공격(대상5:26)
b.왕궁호위소에서의 죽음(왕상16:18)
3) 베가의 통치
베가가 즉위하던 때는 유다왕 아사랴가 52년째 통치하던 해였습니다. 그도 선왕들처럼 하나님앞에서 사악한 일들을 계속 행했습니다. 베가는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위해 이용한 세금제도 등을 비방하면서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는 곧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의 공격을 야기시켰습니다. 앗수르왕은 많은땅을 빼앗았고, 또한 백성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이러한 패배로인해 호세아는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이될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물론 호세아는 앗수르에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a.디글랏빌레셀왕(대하28:20)
b.아벨 벳마아가(삼하20:14-15)
3. 요담의 유다통치
1) 요담의 즉위
유다는 아사랴(웃시야)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2년째 베가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요담은 선한 왕으로 16년간을 통치했으나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요담은 특별히 성전의 윗문을 개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요담이 계획한 건축과 암몬족속의 정복은 대하27: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요담의 즉위(대하27:1)
b.성전윗문의 건축(대하27:3)
2) 요담의 죽음
요담이 유다를 다스릴때 이스라엘은 베가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당시의 국제정세는 앗수르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가왕은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람왕 르신과 협약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동참을 강요하기위해 르신과 연합하여 요담이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요담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담을 이어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아람왕 르신(왕하16:5)
b.르신과 베가(사7:1)
결론
이스라엘의 왕조는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해지고, 주변강대국들 특히 앗수르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왕들을 언급할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왕들도 여호와앞에서 선하게 나라를 다스렸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인해 유다도 여러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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