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4절)
지도자들에게 임할 심판 - 첫 번째 설교의 결론부인 이곳은 신 지식(神知識)을 결여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임할 심판이 제시되었다. 지도자는 특권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책무를 깊이 통감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약 3:1).
[1절]
들으라...깨달으라...귀를 기울이라. 이것은 다가오는 심판의 중대성과 필연성을 환기시키는 3중 강조 명령이다. 미스바와 다볼은 4:15절의 '길갈'과 '벧아웬'처럼 우상 숭배의 중심지인데, '미스바'는 길르앗의 미스바(삿 10:17; 삿 11:11, 29)로 길르앗 라못(신 4:43; 수 20:8; 와하 9:1, 4, 14)이라 불리기도 하고, '다볼'은 납달리 지역의 숲이 무성한 곳이다(삿 4:6).
[2절]
패역자.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방신을 따라간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3절]
내가 알고.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어떠한 죄도 숨길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네가 행음하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전히 아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음란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몰두하는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출애굽 당시 모압 여인과의 음행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죽어간 사실을 연상시켜 주는 구절이다(민 25:1~9).
(5:5~6:3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자는 결국 교만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축복이 모두 자신의 노력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에게서 출발하지 않은 것이 없다(롬 11:36).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지도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법을 떠나 영육의 간음을 일삼았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사실(잠 16:18) 및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예외는 있을 수 없음(5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심령을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계신다. 회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는 유일한 방책이다(시 34:18; 시 51:17).
[5절]
이스라엘의 교만은 군사, 경제적인 힘에 도취되어 그들의 참 영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다.
[6절]
양떼와 소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기 위해 풍부한 재물을 동원하였으나 하나님은 모두 거절하셨다. 공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배제된 자의 제사(예배)는 하나님께서 결코 받지 않으신다(사 1:10~17).
(5:8~6:3절)
심판의 이중적 성격 - 하나님의 심판에는 악인에 대한 징벌과 의인의 보존 및 각성 촉구라는 2중적 성격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공의의 실현인 동시에 구원과 사랑의 완성이다.
[8절]
나팔과 호각은 전쟁과 재화(災禍)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용 악기이다(렘 4:5; 암 3:6).
[9절]
필연 있을 일. '확실한 일' 또는 '오래도록 지속될 일'을 가리킨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이 매우 길어질 것을 예언한 표현이다.
[10절]
지계표를 옮기는 자. 이스라엘의 각 지파와 족속들에게 할당된 땅은 기본적 삶의 터전으로서, 매매될 수 없었다(민 36:7). 따라서 지계표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변경될 수 없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민 27:1~11, 토지의 사유 재산과 세습 제도>. 물같이 부으리라.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의 편만함을 강조한다.
[13절]
야렙 왕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되지만, 야렙의 어근이 '전쟁'(strife)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전쟁 영웅 앗수르 왕을 일컫는 호칭으로 보는 견해와 히브리어의 띄어쓰기('멜렉 야렙'이 아니라 '멜레키 랍')에 따라 '대왕'(Great King)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데 후자의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그가 누구든지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다.
[14절]
사자와 젊은 사자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며, 앗수르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5절]
내가...돌아가서...기다리리라. 이것은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시던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멀리 서 계시면서(시 10:1)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행위이다(시 4:6; 시 27:8).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변치 않으시고 그들이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신다.
# 해설
지도자 호출 (1절)
하나님의 쟁변이 끝나고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언하시기 전에 이스라엘 타락의 주범이요 일차 책임자인 지도자들(제사장들, 관리들, 왕족들)을 심판 선언을 들을 피고의 대표자로 소환하는 내용으로서 그 심판 내용은 14절까지 이어진다.
심판 선언 (2~14절)
이스라엘의 영적 음란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의 고통(6절) 및 전쟁으로 인한 파멸을 초래한다(8~14절)는 선고이다. 이는 B.C. 722년 앗수르에 의한 사마리아의 멸망으로 성취되었다(왕하 16:7~9).
이스라엘 최후의 회복 (5:15~6:3절)
본문은 하나님의 쟁변(4:1~19)과 심판(5:1~14)에 이어 이스라엘의 구속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2:2~23절의 구속사적 순환을 반복.확대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엄청난 타락의 강조와 아울러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에서 비롯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심도 있게 보여 준다.
# 핵심
1~7절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또한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넘어졌음을 묘사한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마음과 생활의 실제적 변화를 의미한다.
# 묵상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장애물 (1~15절)
음란과 교만함으로 여호와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증거한 것과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결국 심판에 이르게 함으로써 이미 그들의 죄악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태임을 가르치셨고, 남유다에게는 변경할 수 없는 최후의 형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 (4~7절)
이스라엘이 음란한 행위에 빠져 하나님께 죄악을 범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못한 것은 음란한 마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음란한 생각과 우상 바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세상의 재리나 쾌락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회복 (15절)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음으로 해서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히스기야 때(주전 728-725)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앗수르로부터 멸망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왕하 19:13~19).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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