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하는 기도

[이사야 38장 1절~6절]
1절 -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절 -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절 -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4절 -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절 -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절 -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의 위기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하십니까.
과거에 저는 국군 중앙 교회의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에 그 교회의 교인인 윤항중 장군 내외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중령 진급도 못하고 옷을 벗을 뻔 했다는 것입니다. 소령이었을 때 어느 장교가 진급을 못해서 자살을 하고 부인은 머리를 깍고 중이 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유인즉, 동급 장교가 허위로 포상 받았다는 기록을 해서 꼭 진급해야 될 그사람이 진급을 못하고 자살했기 때문에, 전부 재조사를 하는 가운데 윤장군 기록 카드에 허위 표창 기록이 되어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이 없는데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 꼼짝 못하고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 두 분은 먼저 그동안 기도생활 잘못한 것과 십일조 생활 제대로 못한 것을 회개하고 3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랬더니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때 밤을 세우며 군인들이 기록하는 가운데 어느 상사가 42호 표창 받을 것을 이 윤소령 기록카드에 42호를 46호로 잘못 기록하면서 허위 기록처럼 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답니다. 그것도 몇년 전의 문서를 소각해 버리기 바로 직전에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때 간곡히 기도하면서 서원하기를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100명을 전도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기가 참 어렵더랍니다. 그래서 그 육군 대학에 1년 있는 동안 새로 입교하는 군인들 아파트에 먼저 찾아가 청소를 해놓고 짐을 날라다 주니까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할 때에 한 가지 요청이 있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가자고 하니까 다 들어 주더랍니다. 그래서 100명 전도를 목표했는데 108명이나 전도해서 '전도왕'이라는 표창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응답으로 중요한 자리에 보직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직 기도 응답과 하나님의 기적으로 장군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더 많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장군 내외입니다.
또 그때 같은 교인이면서 제게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신, 예비역 장군이며 국방부 기획실장이라는 중요한 위치에 계신 권영해 집사님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그분이 미군 감축 문제로 미국방부 대표 위원들과 회담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편의 충분한 설명을 듣기 전에 저쪽 편에서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조찬 회담 때는 단 몇분 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날 밤에 충분한 설명을 하기 위해 '나는 국가의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금식을 하기 때문에 내일 조찬 회담에는 나가지 못하겠다'고 하자, 태도가 엄숙해지더니 그날 밤 설명하는 말을 다 듣고 다음날 미국 대표들도 한국 대표가 금식 기도까지 하면서 회담에 임한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엄숙한 태도로 한국측 말을 다 들어 주면서 자기들 주장대로 하지 못하고 원만히 회담을 끝냈답니다. 집에서는 그 권장군 사모님이 그 회담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키가 커보이는 마귀들이 설치는 것을 보고 금식하면서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했더니 다 물러가고 마음이 편안해 지더랍니다. 그런 간증을 들으면서 한국에 믿음 좋은 고급 장교들이 많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동시에 기도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위기에서 건져 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죤 프리벨은 말하기를 '인간의 극한 상황이 하나님께는 좋은 기회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곤경에 처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의지하게 되고 극한 상황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되어 하나님이 거기에 응답해 주시고 전혀 불가능했던 일들을 해결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시편 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살지 못하리라'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자포자기 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오직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그는 15년이나 생명을 더 연장받고 당시 이스라엘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앗수르 군대까지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 믿음의 기도가 불가능한 위기의 상황을 변화시켜 축복의 기회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사가 달린 위기 상황도 극복해낸 히스기야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드린 기도였습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오직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사람에게서 얼굴을 돌이키되 그 능력 많은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를 향한 것도 아니고, 어느 의술을 바라본 것도 아니고, 아픈 부위를 바라본 것도 아니고, 어느 징후에 신경을 쓴 것도 아니라,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는 극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쳐다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고 인간의 수단을 의지하고 우연히 해결되거나 저절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경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된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세도 얼굴을 벽으로 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거기다가 절하며 춤추는 가증한 모습을 보시고 이 백성을 다 진멸해 버리고 모세 한 사람을 가지고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실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다 도말해 버릴 바에는 차라리 내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달라'고 하면서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의 죄와 실패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론의 실수를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금송아지에서도, 백성의 죄에서도, 아론의 실수에서도 얼굴을 돌이키고 하나님께만 얼굴을 향하고 간곡히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내고 그 백성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했습니다. 다윗도 얼굴을 벽으로 향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다윗이 자리를 비우고 없는 동안 시글락은 아말렉 사람들의 침략을 받아 성은 불타고 모든 부녀자들이 잡혀가는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다윗과 그와 함께 갔던 백성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높여 울고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다윗은 그 위급한 상황을 보지 않고 분노하여 자신을 치려는 그 백성을 보지 않고 오직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에봇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힘을 얻어 아멜렉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을 도로 찾아온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얼굴을 돌이켜야 합니다. 인간에게서 얼굴을 돌이켜야 합니다. 오직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만 얼굴을 향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어느날 그의 개혁의 동지 한 사람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방문을 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절망적이지만 루터는 모든 것에서 얼굴을 돌이켜 벽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당신은 이 기도를 꼭 들으시고 응답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면 제가 앞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하고 참으로 담대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거의 죽어가던 그 동지가 살았습니다. 루터는 후에 '필립(Philip)이 건강해졌습니다. 그는 거의 죽은 것만 같았으나 나는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났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루터도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찰스 피니(Charles G. Finny)는 '변론하는 기도(Argumentative prayer)는 최선의 기도 방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25, 26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큰 위기 앞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역경과 시련 앞에서, 더이상 손쓸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하여 그분을 변론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의문의 해답과 문제의 해결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기를 당할 때 벽으로 곧 하나님께로 얼굴을 돌이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진실과 전심으로 드린 기도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히스기야가 죄가 없었다거나 허물이 없었다거나 완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38:3절에서 히스기야가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자기가 완전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허물과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외식으로나 형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예레미야 29:12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가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시고 전심으로 부르짖으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만약 이같은 사실을 확실히 믿는 성도라면 위기와 상황에 직면하여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거나 기도하되 무성의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보시며 우리 기도에 귀기울이시는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전심으로 기도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하시며 그의 생명을 15년간이나 연장시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한편 예수님도 육신으로 계실 때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절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려서 응답받았거늘 우리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시시하게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진실과 전심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시며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2절에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노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노하는 것과 같은 강력한 기도, 곧 진실과 전심으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위기 상황이 물러가고 오히려 축복으로 바뀌며,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이 우리 삶 속 깊이 개입하시는 것을 생생히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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