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하는 자가 받는 복
[이사야 44장 1절~5절]
1절 -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절 -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절 -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절 -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절 -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장 3절]
3절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오늘 봉독한 말씀 이사야 44장에 있는 말씀 가운데 특별히 3절에 보면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말한 자에게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그런 사람에게 성신을 부어 주고 또 하나님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가운데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 첫째 복이 무엇인가 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갈망하는 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며 갈망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이삭의 쌍둥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견해로 본다면 에서가 야곱보다 훨씬 훌륭해 보입니다. 에서는 대장부답게 산과 들로 다니면서 짐승을 사냥해 오고 장자권도 팥죽 한 그릇에 척척 넘겨 주고 육체의 생김새부터가 몸이 붉고 털이 많아 남자답고 마음도 넓어 보입니다.
반면에 야곱은 몸에 털도 없이 매끈매끈해서 얌체같이 생긴데다 하는 짓은 또 엄마 치마자락이나 붙잡고 부엌 구석에나 따라다니고 그러다가 형이 배고플 때를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의 눈을 속여 축복 기도를 받고 외삼촌 댁에 가서는 많은 재산을 제 것으로 만든 약삭 빠른 사람이요, 얌체같은 어떻게 보면 도적놈 같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왜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받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꼭 받아야 한다는 사모하는 마음과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에서는 버림을 받았지만 야곱은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아무리 대범하고 남자다운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꼭 받아야 되겠다고 하는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른 것이 다 훌륭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나는 하나님 없이도 산다'하는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도 없고 축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지만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렘 2: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만족과 기쁨은 하나님이신대, 그 하나님을 떠나서 의지하는 마음도 없이 스스로 노력하여 잘 살아 보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악을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웅덩이를 아무리 파려고 해도 터진 웅덩이가 되서 다 물이 새어 나가는데, 너희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너희들 스스로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쓸데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 4:4절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랬습니다. 이 세상만 사랑하고 이 세상과 짝한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원수라고 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갈망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적인 면에서 간음 자입니다.
그러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고 그 은혜를 갈망하는 자가 받을 축복은 무엇인가 살펴 보도록 합시다.
1. 새 힘을 얻습니다.
사 40:30절에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앙망하는 만큼 새 힘과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받을 수 없는 새로운 힘과 능력을 날마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앙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십니다. 저는 영력이 떨어지고 피곤할 때는 그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고 엎드려만 있어도 하나님께 마치 전기를 통하듯이 새 힘을 주시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하나님을 갈망할수록 새 힘과 능력은 더 크게 받고,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고 사모할수록 영적인 능력은 쇠퇴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올라가고 새 힘을 얻고, 세상을 사모하고 사랑할수록 우리의 영력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아멘.
2.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사 49:23절에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사모하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식어지고 하나님을 멀리할 때는 이방 민족을 들어서 자기 백성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수치를 당하게 한 다음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탕자의 비유 말씀 가운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 없이도 잘살 것 같아서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난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옷은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어 돼지 먹이로 배를 채우며 돼지 우리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아버지께서는 새 옷을 입히시고 가락지를 끼우고 내 아들이라고 부르시며 다시 존귀한 자리를 주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믿음이 식어지고 세상으로 자꾸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실패와 낭패를 주셔서 수치와 욕을 당케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버리면 발에 밟힌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예수 믿는 신자들이 믿음이 식어지면 맛을 잃어버려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것으로 수치와 욕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삼상 2:30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순간순간 갈망하며, 마음 속에 주님을 늘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고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며 도리어 존귀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며 '물 떠난 고기는 살지 몰라도 나는 주님 떠나서는 못삽니다'라는 절실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존귀하게 높이 들어 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나갈 때에 생각마다 주님을 사모하고, 말마다 주님을 증거하고, 걸음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이 변치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3. 구원을 얻습니다.
사 45:22절에 보면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죄인, 음부 탕녀, 부랑자라도 자기의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어 있으며,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배부른 사람이 밥상을 대하듯이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적으로 볼 때 훌륭해 보여도 구원을 못 받습니다.
4. 천국을 소유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 가운데 첫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가난하다'는 뜻은 무엇인가 하면 배고픈 사람이 몹시 배가 고파서 밥 한 술이라도 얻어 먹고 싶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는 자는 결국 천국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도 못 받고 천국에도 못 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귀영화가 있고 몸이 건강하고 돈벌이가 잘 되어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앙망하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그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5.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려면 이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불타 올라야 합니다. 그래서 행 1:4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성령)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사모하고 기다리고 바라볼 때에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신자들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사모하며 기다리는 열흘동안 준비하며 기도하다가 마침내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방언이 나오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체험하고 능력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런 체험이 없이 교회에 나오면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고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가지면 그 이상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왠지 모르게 성령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 말씀도 많이 읽고 하다가 어느 부흥회 참석 중에 마침내 성령을 받았는데 그때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만나는 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그저 줄테면 주고 말테면 마시오'하는 자는 결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적 부흥사인 무디 목사님은 구두 수선공으로서 국민학교 3학년 밖에 못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설교를 하고나자 어떤 부인들이 '꼭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줄께요'하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목사님들은 설교하고 나서 은혜 받았다는 말을 할 때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하면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인데 역시 무디 목사님도 자꾸 기도해 주겠다는 말에 나중엔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들은 '당신의 설교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 다음부터 무디 목사님은 자극을 받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에게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을 나에게 주시옵소서'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어찌나 사모했던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할 정도로 사모하며 오래 준비 기도를 하던 중 하루는 뉴욕 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서 부랴 부랴 친구집에 찾아가 방을 빌려서 엎드려 기도하는데 기도가 잘 나오더니 마침내 강한 불이 임하였습니다. 어찌 뜨겁고 강한 능력이 나오는지 이젠 너무 뜨거워서 죽을 것만 같아 '주여 그만 주시옵소서 그만, 그만...' 할 정도로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직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무식쟁이 무디를 따라갈 전도자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그 설교는 다 틀리고 목소리는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키는 조그만하여 보잘 것 없는데, 그는 그런 강한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세계적인 부흥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모하고 매달리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도 못받고 왔다갔다 하면 이것은 꼭 예수 믿는 것이 호랑이 꼬리를 붙잡은 것 같아서 안 믿자니 꼭 지옥이 있는 것 같고 낮에 나와라, 밤에 나와라, 속회본다, 또 이런저런 헌금 남들 하는데 안할 수도 없고 귀찮고 신앙생활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받고 나면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른 땅과 같이 갈한 심령이 되어서 은혜를 사모할 때 성령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자는 비록 도적놈 같은 사람이라도, 깡패, 부랑자, 창녀라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갈망하는 자가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갈망하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며 갈망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마른 땅과 같이 갈급한 심령이 되어서 은혜받고 성령받고 다 축복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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