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보자 그리스도

1) 중보자의 요청
태초 범죄 이전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본래 중보자가 없이 서로 교통할 수 있었다. 그때에 하나님과 자유의지를 가진 전피조물의 대표인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를 어길 경우 필히 죽을 것이고 이를 지킬때에만 생명이 보장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어겼다. 때문에 인간의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공의의 주이실뿐 아니라 사랑의 주이신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언약의 법대로 책임을 지게하시되 범죄한 인간 자신은 회개를 조건으로 새생명을 얻을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다시말해 다른 존재 곧 중보자가 인간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면 그 인간은 구원 얻는 구속의 법을 인간의 범죄 이후 세우신 것이다. 이렇게하여 죄가운데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었던 인간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의 법에 따라 비로소 중보자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리게된 것이다.

2) 중보자의 필연성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의 죄를 대속할 중보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연적으로 만족되어야 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인간이면서도 절대무능하여서 타인을 위한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될수 있어야 했다. 또한 완전한 제사장도 필요하였다. 둘째 인간을 향하여서는 완전한 죄용서를 보증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기때문에 오직 홀로 사죄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신 자이어야 했다. 종합해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곧 양자 모두의 요구에 만족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기때문에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어야 했다. 그런데 먼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으므로 먼저 하나님이신 분이 완전한 인간이 되사 중보자로서 태초에 세워진 구속의 법을 성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속의 원리에 따라 삼위 하나님 중 제2위이신 성자께서 성육신하사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어 대속 희생을 치르게 된 것이다.
한편 제2위 성자께서 성육신하기 이전 구약 시대의 모든 인간 대제사장들은 그들 자신이 죄를 가지고 있었을뿐 아니라 인간의 죄용서를 보증해 줄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불완전한 중보자들로서 단지 완전한 중보자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의 동물 희생 제사도 그 자체가 구속의 효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약의 예수그리스도 대속 희생을 예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구약의 동물 희생 제사는 미래 예수의 구속 사역과의 관련성 안에서만 구속의 효력을 소급 적용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 완전주의자 비판

1) 완전주의자(Perfectionism)들의 주장
교회사에서 완전주의가 하나의 교리로 주장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시대이다.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간이 완전에 이르는 단계를 3단계로 즉 초보자, 진보자, 완전자 단계로 구분하고 죄와 싸워 성결케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을때 인간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된다고 가르쳤다. 중세의 금욕주의와 수도원 운동은 이런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서 근거한 것이라고도 볼수 있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완전주의 교리는 종교개혁 시대에 거부되었다가 18세기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 다시 주장되기 시작했다. 감리 교회의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John Wesley)도 성령의 특별한 체험에 의해 성도는 생전에 완전애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완전주의자 중 한사람인 윈디쉬(H.Windish)는 말하기를 '성도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이다.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도 영적 상태가 성결과 성실함에 있어서 모범적이다'라고 했다.

2) 완전주의에 대한 비판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중생한 성도는 과거 죄의 권세 안에 사로잡혀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심지어는 반복해서 범죄하던 상태에서 죄와 투쟁하며 점차 의로운 상태로 나아가는 성화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성도가 이생에서 완전하여 질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마5:48에서의 말씀의 참뜻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기에 힘쓰라는 것이지 하나님처럼 완전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한 요일3:9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고의로 계속해서 범죄치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도덕적으로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생전에 완전케된 사람은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볼때 완전주의는 성결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한걸음 더나아가거나 비켜간 것이라 볼수 있다. 누구든지 죄없다 하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요일1:8)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완전을 지나치게 강조할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율법주의와 금욕주의를 낳을수 밖에 없으며 거기서 한걸음 더나아갈때 영적교만이나 자만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