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영의 상태

[시편 34편 18절]
18절 -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이사야 51장 15절]
15절 -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계란에 껍질과 흰자위와 노른자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육체와 혼(정신)과 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셋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 제일 큰 관심을 갖고 계시고, 이 영 안에는 새 생명이 깃들어 있으며, 이 영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영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며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원수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마귀를 이기는 권세도 받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능력을 받는 것도 이러한 영 안에서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강건하고 힘이 있어서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면 우리의 육체도 정신도 승리하는 복된 생애를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인 영이 약해지고 병들면 겉사람인 육체도 마음도 모든 생활도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삼 1:2절에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속사람(영)의 실패는 겉사람(육. 혼)의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상태가 정상적이어서 영적 생활에 승리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되어지고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영의 상태를 잘 살피고 진단하며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영의 상태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1.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시 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인 영이 통회하는 마음을 가질 줄 알 때 그 영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사 57:15절에 보면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통회하는 심령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도 뻔뻔스럽게 얼굴도 붉히지 아니하고 마음의 괴로움도, 통회하는 마음도 갖지 않는다면 그 영은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가책되는 잘못을 했을지라도 마음에 통회하고 슬퍼하며 회개할 줄 아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흔히 처음 회개하고 주님을 믿을 때나 혹은 크게 죄를 범했을 때에만 심령에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하였으면 그것에 대하여 언제나 통회하는 심령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육신을 입고 존재하는고로 수시로 죄악의 세력이 머리를 들 수 있기 때문에 순간 순간 회개하고 죄를 슬퍼하며 통회하는 심령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살인죄나 간음죄를 범한 때만 통회하는 마음을 갖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음으로라도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좋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구체적인 죄악된 마음을 품었어도 그것을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언제나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으며 깊은 죄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경상도 어느 곳에서 모 부흥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어느 장로님께서 식사를 잘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특별기도를 받겠다 해서 기도를 하시는데 목사님 자신도 모르게 책망을 하면서 장로님께서 외국에 나가 행한 추한 모든 일을 기도 가운데 다 밝히시고 예언기도가 성령님의 역사로 나오자 지금까지 가장 경건한 체 하던 장로가 통회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더랍니다. 그후 지금까지 정신이상자였던 딸이 깨끗한 정신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통회하고 회개해야 될 때인데도 불구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상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시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하는 시편 기자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통회하는 마음이 얼마나 복된 마음인지 알아야 합니다.
문둥병자는 뜨거운 것도 잘 모르고 가시에 찔려도 따끔한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답니다. 죄악의 문둥병이 우리 심령 속에 깊이 들어와서 심령을 마비시키면 통회하는 마음을 가질 줄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살결처럼 곱고 부드럽고 정상적인 심령은 다른 사람이 죄로 여기지 않는 적은 일에라도 통회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그 영혼은 그만큼 복된 것입니다.
한편 이렇게 될 때 나의 생활에 대한 사소한 죄라도 즉시 회개하고 자백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성전에 두 사람이 들어와서 기도를 하는데 바리새인은 기도하면서 머리를 들고 "저는 십일조도 하고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합니다." 자기의 부족과 죄는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자랑만 늘어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가증히 보셨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 세리는 당시 모든 사람에게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어서 감히 성전 앞쪽까지 나오지도 못하고 맨 뒤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치며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애통해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저 사람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하시며 세리처럼 통회하는 심령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한 분은 처음에 은혜받을 때 어찌나 애통해하며 회개했던지 붙잡고 있던 나무가 뿌리채 뽑혀 나무와 함께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합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면서 얼마나 괴로워했던지 졸도까지 했답니다. 그래서 암흑시대에 흑암의 장막을 걷어치울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고, 세계적인 성자 어거스틴은 그가 회개하고 성자가 된 후에도 자주 팔을 물어 뜯으면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좋지 못한 음란한 죄악의 생각이 머리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애통한 것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심령은 마비되었거나 병들었거나 죽은 영입니다.

2. 상한(깨어진) 심령입니다.
시 51: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서 떨게 됩니다. 어떤 이는 크리스찬이라고 하면서도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서 떨 줄을 모릅니다. 불안감조차 갖지 않습니다. 이런 거만스럽고 뻔뻔한 영은 건전치 못한 영입니다. 건전한 영은 다윗 왕처럼 일단 범죄한 줄로 깨달았으면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바스러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한 심령은 회복되기 쉽습니다.
다윗 왕이 뜻하지 않게 마귀의 시험에 들어서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죄악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여 그만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또 은폐하려다 그 남편까지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뻔뻔스럽게 자신의 죄를 몰랐으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나단을 시켜서 다윗 왕을 책망하셨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예화를 들어 말하면서 "바로 그 나쁜 사람이 당신이요"하는 한 마디 말에 지금까지 굳었던 마음이 깨어지면서 심히 애통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 때 지은 시가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상한 심령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징계와 채찍으로 고통을 가해서라도 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단단한 심령과 강퍅한 심령이 깨지면 모든 문제가 자연히 풀려지고 해결됩니다. 남이 나에게 억울하게 한다고 불평하지 말고 남의 허물만 보고 불평하지 말고, 나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깨어질 때, 상한 심령이 될 때 모든 문제는 따라서 해결됩니다.

3. 괴롭고 떠는 심령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은 괴로워하고 떨 줄 아는 심령입니다. 이사야 66:2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괴로움을 느낄 줄 아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떨게 되고 순종도 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믿거나 다 된 체하는 자부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인 것입니다. 원줄기에 붙어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도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와 같은 의식을 늘 가지고 자신에 대한 신뢰심을 버리고 완악하고 거만한 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늘 떨며 조심해야 마귀한테 속지 않고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잘 되고 성공해도 결코 거만해지거나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됩니다. 고후 3:5절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는 무력한 자신"임을 깨닫기 전에는 도저히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괴로워할 줄 알고 떠는 심령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늘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낮아진 심령입니다.
우리의 영이 높아지고 교만해지면 넘어지기 쉽고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누가 말하기를 우리의 영이 키가 커지고 높아지면 마귀의 화살에 맞기 쉬워 실패하기 쉽고, 우리의 영이 낮아지면 마귀의 화살을 피하기가 쉬워 실패하는 예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늘 낮아지는 영", "늘 겸손한 영" 이것이 바로 건전한 영이고 정상적인 영인 것입니다. 잠 16:19절에 보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고 잠 29:23절에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 57:15절에 보면 하나님은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영, 낮아진 영은 자신을 어느 정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겸손하고 낮아진 사람의 생활 가운데 나타납니다. 우리는 늘 깨지고 낮아진 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논 가운데 놀고 있던 개구리가 황새가 날아가는 바람에 그만 황새의 다리를 꽉 물고 황새와 함께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밑에 있던 개구리 동료들이 부러워서 "야, 너 참 재주가 훌륭하구나 누가 그렇게 해 줬니"하고 부러워하며 소리치니까 그 개구리는 우쭐하여 뽐내면서 "내가, 내가 했지"하며 입을 벌리고 말하는 순간 높은 공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영이 교만해지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충고도 설명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주님과의 영적 교제도 방해를 받습니다. 우리의 영이 교만해지거나 강퍅해질 때 고치는 약은 실패를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일입니다. 또한 환난, 고통을 당할 때 우리의 영은 통회하며 괴로운 심령으로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죄와 마귀를 이기고 범사에 승리하고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통회하고 애통하며 겸손히 낮아진 영의 상태를 늘 지키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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