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현실을 열어가는 지혜 (공재영 목사님)

[출애굽기 15장 22절~27절]
22절 -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절 -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절 -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절 -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절 -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절 -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인간에게 닥쳐온 현실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어떤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몸이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에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대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 이 병원 문 밖으로 나갔으면 소원이 없습니다.”는 것입니다. 병원 문 밖에 나가게 되면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타까운 현실은 병원 밖으로 나가면 감사하기는커녕 더 큰 원망이 우리를 흔들어 버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인간의 모습으로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자리에 끝이 없는 이기적인 욕망이 자신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기적인 욕망은 지구 전체를 채워도 부족할 뿐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를 보여주고 있는 자리가 본문에서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의 자리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을 알게 하여 그 현실을 좋게 열어가는 지혜를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현실을 더 좋게 열어가는 지혜를 가집시다.

1. 원망의 현장을 찾아봅시다(22-23절).
원망은 악한 마음을 품으면서 대적하는 마음으로 열어가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그 이유는 나 혼자만 힘들기 때문이 아니고 너 때문에 이런 힘든 일이 생겨서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 처한 자리는 그 누구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힘든 상황을 만났던 것이며 오히려 나보다 저 사람이 더 힘든 자리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처한 자리는 결코 원망하거나 절망해야 하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는데서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기에 미래가 닫혀질 현실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자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이런 어려움은 감당할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원망하는 자리가 생기게 된 것은 자신들이 원했던 삶이 열려지게 된 것 때문입니다. 저들은 430년 동안 애굽 나라에서 노예로 살았고 그 자리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노예에서 해방되어 축복의 땅으로 가는 길인데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만 해도 큰 소리로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홍해 바다가 가로막혔을 때에는 하나님이 애굽 왕과 군대는 바다에서 장사지내고 자기들은 살려주시었던 잊을 수 없는 축복의 현장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들이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결코 자신들의 힘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찾으면서 기다리고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원망하는 자리보다 감사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만 힘든 것이 아니고 온 지구촌이 힘든 자리이지만 축복된 자원 하나 없는 이 나라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만한 부와 대접을 받는 자리에 원망보다 먼저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사함보다는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사의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살아온 자리를 찾아봅시다(24절).
이스라엘 민족은 반듯한 자기 땅 하나 차지하지 못할 민족이었는데 하나님이 저들에게 민족 공동체의 축복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수백 년 간 노예로 살았던 민족이었기에 전혀 미래가 없는 자리에서 뛰어난 민족으로 세워주었다는 것입니다. 노예의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해방된 민족이 되어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친히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애굽이라는 대제국의 권세 아래에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지정해 놓으신 가나안이라는 축복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계획은 이스라엘 민족이 세운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애굽 제국의 권세를 굴복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나아가는 광야 길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므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덮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바꾸어가면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라는 바다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죽게 된 민족으로 하여금「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했다」라고 큰 소리로 노래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도 넘기지 못하고 물이 없다고 그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지금 당하는 고통만을 붙잡으면서 불신앙적 삶의 자세를 무섭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우리의 자리와도 같은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목적으로 순종을 요구하시며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우리 모두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의 자리에 세워주셔서 기쁘게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쁨으로 열어온 우리의 생활 모습이 불평과 원망의 마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가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자리이면서 우리를 깨닫게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압박과 서러움 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세계 속에 당당한 주권 국가요 대접받게 된 민족으로 세워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개인도 이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자신의 삶을 믿음으로 세우는 성도로 살아가기 위하여 오늘이라는 현실을 더 좋게 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지금 내가 어디에 세워졌는가를 찾아봅시다(25-27절).
애굽의 노예로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소원이 성취되어 자유의 몸으로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자리에 세워졌는데 고통의 자리에서 소리치기를 “왜 우리를 애굽에서 해방시켜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즉 애굽에서 노예로 있다가 죽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가고 있는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정착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이 아니고 축복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통로에 불과한 것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이런 광야의 길을 저주한다는 것은 자신이 누려야 하는 모든 복을 거절하겠다는 것입니다. 성공이 보장된 것이라면 실패는 고통스런 것이 아니며 미래가 확실하다면 오늘의 현실만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잘 관리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은 반드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망하며 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원망한다고 해서 달라지기는커녕 자신의 마음만 더 악해질 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말하는 것처럼 광야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만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스라엘 민족을 여기까지 인도해 온 것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원망하는 것보다 그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다른 것을 선택하려고 하십니까? 지금 나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은 나를 위해 모든 일을 해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게 하려고 본문에서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면 치료의 하나님으로 우리를 찾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게 하는 자리이며 미래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보상의 자리입니다. 오늘을 믿음의 자리에서 더 좋게 열어가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의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상황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진화되어져 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현실을 열어가는 지혜를 가질 때에 얻어지는 선물입니다. 그 지혜는 첫째 원망의 자리보다 감사할 것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살아온 자리에 내려진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 기도하는 일을 선택하여 미래를 기쁘게 맞아야 합니다. 현실은 미래를 세우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잘 다스려 좋은 세상을 열어가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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